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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15:12:06

이재주

이재주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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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2.svg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0.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8 2000 2009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002561> 파일:KBO 로고(가로형,유색배경).svgKBO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홈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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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rowcolor=#373a3c,#dddddd> 문승훈
해태 / 6개
이종옥
롯데 / 6개
이민호
1명(A)
5개
이동수
삼성 / 5개
김재덕
해태 / 7개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rowcolor=#373a3c,#dddddd> 최희창 외
1명(B)
5개
최희창
해태 / 8개
김광현
삼성 / 9개
김무성 외
2명(C)
8개
조효상
1명(D)
11개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rowcolor=#373a3c,#dddddd> 김상현
KIA / 13개
이재주
KIA / 9개
김승관
롯데 / 13개
곽용섭
삼성 / 13개
김승관
롯데 / 8개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rowcolor=#373a3c,#dddddd> 권희석
KIA / 12개
김승관
롯데 / 12개
모상기
삼성 / 12개
오장훈
롯데 / 14개
김강
한화 / 14개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rowcolor=#373a3c,#dddddd> 모상기
삼성 / 21개
나성범
NC / 16개
안태영
넥센 / 14개
박노민
1명(E)
11개
한동민
상무 / 21개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rowcolor=#373a3c,#dddddd> 한동민
상무 / 22개
문상철
상무 / 36개
문상철
상무 / 22개
양석환
상무 / 13개
강민성
kt / 12개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rowcolor=#373a3c,#dddddd> 이태훈
삼성 / 12개
오장한
NC / 17개
김석환
KIA / 18개
A: 이민호(해태), 김정수(쌍방울)
B: 최희창(해태), 이지환(롯데)
C: 김무성, 이동욱(롯데), 김승관(삼성)
D: 조효상, 이상현(한화)
E: 박노민(한화), 조평호(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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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기록
KBO 통산 최다 대타 홈런 20개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46번
이상대
(1989~1990)
이재주
(1992)
이종호
(1995.5.11.~1995)
태평양 돌핀스 /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7번
김경기
(1990~1992)
이재주
(1993~2001)
프랭클린
(2002~2003)
KIA 타이거즈 등번호 62번
최명환
(2002)
이재주
(2002)
박재홍
(2003~2004)
KIA 타이거즈 등번호 25번
신동주
(2001~2002)
이재주
(2003~2009)
고우석
(2010)
}}} ||
파일:external/sports.chosun.com/98w69157.jpg
이재주
李在珠 | Lee Jae-Ju
출생 1973년 12월 25일 ([age(1973-12-25)]세)
강원도 강릉시
(現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노암초 - 경포중 - 강릉고
신체 188cm, 102kg
포지션 포수1루수, 지명타자[1]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2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태평양)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1992~2001)
KIA 타이거즈 (2002~2009)
응원가 김추자 - 무인도[2][3]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여담5. 연도별 주요 성적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KIA 타이거즈의 야구 선수.

2. 선수 경력

2.1. 태평양-현대 시절

파일:/pds/201002/04/70/c0098370_4b6a706ea70d3.jpg
데뷔 초창기 1994~95시절 태평양 돌핀스 시절의 모습.[4] 은퇴 직전년도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이질감이 느껴진다.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0815200658437G.jpg
현대 유니콘스 시절.

원래 포지션은 포수였다. 야구선수로는 드문 강원도 출신으로 노암초등학교, 경포중학교, 강릉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연고 팀[5] 태평양 돌핀스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그러나 태평양 돌핀스에는 이미 김동기라는 확고한 주전 포수가 있었고, 몇 년 간 김동기의 백업 포수로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태평양이 현대그룹에 인수되고 김동기가 은퇴하자 주전으로 발돋움하나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장광호, 김상국으로 포수를 돌려막던 현대 유니콘스가 현금 트레이드로 쌍방울 레이더스박경완을 영입하며 다시 백업 신세. 1997년도에 72타석에서 무려 7홈런[6]을 칠 정도로 장타력은 좋았지만 수비가 좋지 못하여 결국 박경완의 영입 후 현대에서는 완전한 대타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도 1998년과 2000년 모두 백업포수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각각 한 타석에만 출전했지만 우승반지를 2개나 획득하였다.

결국 2002 시즌이 시작 직전 KIA 타이거즈로 현금 트레이드된다. 사실 KIA에서도 대타보다는 백업 포수를 기대하며 데려왔는데..

2.2. KIA 타이거즈 시절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40323163947432.jpg
KIA 타이거즈 시절.

이재주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KIA 이적 이후인데 2003년부터 주로 대타나 준주전으로 출장했고, 2004년에는 개인 최다 대타 홈런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하는 등 백업 멤버로 쏠쏠하게 활약한다. 그 이후로도 대타 혹은 부상당한 김상훈의 백업 포수로 나와주다가, 2006년 풀 타임 4번타자가 된다. 당시 서정환 감독은 자신의 눈밖에 난 마해영LG 트윈스로 트레이드하고 4번 타자로 이재주를 점찍어놓은 상태였다. 팀에 좋은 선수가 없어[7] 기회가 주어진것이다.

2006 시즌 성적은 115게임에 출장해서 0.284 13홈런 59타점. 4번 타자 치고는 타점이 부족했지만[8] 3번 장성호와 함께 KIA의 눈물나는 타선을 이끌어갔다. 타 시즌이면 중심타선의 지명타자로써 부족해 보이는 성적이나 사실 2006 시즌은 13개 치고 홈런 공동 11위일 정도로 역대급 투고타저 시즌이라 준수한 성적이다. 타점도 리그 16위이고.[9] [10]

2007 시즌도 개막 이후 지명타자로 쭉 나갔지만, 아니나 다를까.... 5월에 최희섭대한민국으로 돌아오면서 주전 자리를 뺏겼고[11], 다시 원래 자리인 대타로 돌아오게 된다. 시즌 성적은 90게임 출장 0.259 5홈런 36타점. 시즌 후에 FA를 신청했으나 수비 포지션이 없는 나이든 대타요원을 원하는 팀은 없어 미아 위기에 봉착했고, 결국 협상 마감 직전 원소속팀 KIA와 계약금 없이 1년 8천만원에 계약하게 된다. 전년도 연봉이 1억이었는데 FA 계약을 하고도 오히려 연봉이 20% 삭감된 것. FA 미아가 되어 계약을 못한 선수는 있어도 계약을 했는데 연봉이 삭감된 것은 이재주가 유일하다. 이렇다보니 이재주가 FA를 한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후 12년이 지나 2020년 김태군이 FA계약을 했으나 연봉이 삭감되며 두번째 사례가 되었다. 여튼 드문 케이스.

2008 시즌 역시 최희섭의 존재로 대타로만 활약할 듯 싶었으나, 최희섭의 부상으로 이용규 빼면 아무것도 없는 KIA 타선[12]의 4번타자로 복귀했다. 이 시즌에 87게임에 출장해서 0.276 12홈런 58타점을 기록했는데, 풀타임 출장했으면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09 시즌엔 최희섭이 부활[13]하고, 김상현나지완이 중심타선에 자리를 잡아서 이재주의 자리는 없어졌다. 지명타자 자리에 홍세완[14]판단이이 있고, KIA의 대표타자 장성호 조차 주전에서 밀려 1루/ 좌익수/지명/대타로 한 타석이라도 더 나오려하던 시즌이라 이재주는 타석에 서는것 조차 힘들어졌다. 결국 51게임에 출전해 0.194 4홈런 21타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이 시즌엔 통산 대타홈런 20호째를 쏘아올리며 당분간 리그에서 깨지기 힘든 기록을 만들었다. 4개의 홈런만을 쳤지만 8월 1위 다툼을 하던 SK전에서 경기 초반 대타투입의 강수 속에서 쓰리런을 쏘아올려 기선을 제압해 승리에 기여하는 등 저조한 스탯에 비해서는 영양가가 있는 활약을 했다.

2009년 한국시리즈에선 부진했으며, 시즌 종료 후 방출당했다. 사실 부인이 출산을 앞두고 있던 터라 아무리 프로가 비정하다고 해도 너무한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새로운 팀을 물색하고 있다가 넥센과 접촉했고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갑자기 이재주가 계약을 취소하였고 이후 이적 소식이 들리지 않으며 사실상 은퇴 상태. 방출된 이유가 코치들과의 불화 및 케미스트리 저해라는 소문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구단들 입장에서는 나이도 많고 배트 스피드가 점점 떨어지고, 사실상 수비 포지션이 없는 이재주를 계속 데리고 있기보다는 어린 유망주를 키우는게 합리적이다. 게다가 말년병장 포스까지 뿜어주니..

3. 플레이 스타일

극단적인 당겨치기를 선호하는 타격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떨어지는 볼에 삼진을 많이 당한다. 그러나 전성기에는 볼삼비가 1에 가까울 정도로 선구안이 나쁜 타자는 아니었다.

이재주가 야구계에 남긴 가장 큰 기록은 바로 대타 홈런 기록. 1990년대에도 일발장타력이 있고 대타 홈런을 잘치는 선수로 소개되었다. 프로 통산 대타홈런이 20개로 KBO 통산 1위.[15] 2위 기록은 9개(최동수, 최훈재, 전대영)로 그 위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세계 기록은 1970년대 일본 한큐 브레이브스에서 대타 전문으로 활약한 타카이 야스히로의 27개이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기록은 2011년 시즌 중 워싱턴 내셔널즈에서 은퇴한 맷 스테어스의 23개.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고 투수 타석에 찬스가 걸리는 경우가 생기는 일본 센트럴리그나 미국 내셔널리그에서는 대타요원도 꽤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리그는 애초에 대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고 프로야구가 포지션 분업화로 인해 날로 로스터가 빡빡해지는 추세인지라 2010년대 이후로는 예전처럼 장타력은 뛰어나지만 아예 수비 포지션이 없어 수비에선 교체가 불가피해 로스터를 2명 이상 잡아먹게 되는 이재주같은 선수를 대타로 두기보다는 장타력이 좀 떨어지더라도 대타로 나선 후에도 교체하지 않고 수비에 투입할 수 있는 선수를 더 선호하는 것이 트렌드이다. 대타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주로 왕년의 강타자가 말년에 지타에서도 밀렸을 때 은퇴 전까지 몇 년 거쳐가거나, 부상이 다 낫지 않은 강타자가 잠시 자리하거나, 신인급 유망주들의 시험대로 쓰이거나 하는 등등 정규직이 아닌 임시보직이기 때문에 애초에 젊고 잘 치면 대타로 투입하지 않고 주전으로 투입한다. 그러나 충분히 방망이가 되면서도 포수로서 수비력이 떨어져서 박경완, 장광호김상국에게 밀렸던 현대 시절과, 1루 자리에 장성호가 건재하던 상황에서 주전 지명타자로 자리잡으려던 찰나 최희섭이라는 거포가 갑자기 복귀하는 등 팀 사정과 맞물려 전문 대타요원으로 선수 생활을 오랫동안 이어간 이재주가 지명타자 있는 리그에서는 비교적 특이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향후 오랫동안 깨지기 힘들 기록이다.

4. 여담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1992 태평양 11 12 .250 3 0 0 0 3 1 0 1 0 3 .308 .250
1993 66 180 .267 48 14 0 4 17 16 0 17 1 44 .330 .411
1994 23 41 .146 6 0 0 2 5 7 0 7 2 21 .300 .293
1995 5 4 .000 0 0 0 0 0 0 0 1 0 1 .200 .0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1997 현대 37 66 .212 14 3 0 7 15 10 0 5 0 30 .264 .576
1998 39 36 .194 7 0 0 2 5 2 0 9 1 15 .362 .361
1999 9 15 .067 1 0 0 0 0 0 0 1 0 4 .125 .067
2000 76 114 .193 22 5 0 3 14 14 0 14 3 33 .298 .316
2001 45 79 .228 18 2 2 4 14 9 0 6 0 29 .282 .456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02 KIA 26 33 .152 5 0 0 2 5 2 0 3 0 16 .222 .333
2003 103 257 .280 72 8 0 11 42 29 1 29 1 56 .353 .440
2004 119 250 .256 64 16 1 8 39 34 0 40 6 51 .369 .424
2005 79 124 .250 31 8 0 5 19 10 0 22 2 32 .372 .435
2006 115 377 .284 107 26 0 13 59 38 1 52 2 78 .370 .456
2007 90 243 .259 63 13 0 4 36 19 0 34 0 47 .344 .374
2008 87 261 .276 72 15 0 12 58 37 2 45 3 49 .382 .471
2009 51 108 .194 21 1 1 4 21 11 0 20 4 32 .338 .333
KBO 통산
(17시즌)
981 2200 .252 554 111 4 82 355 239 4 306 25 541 .347 .418

6. 관련 문서


[1] 사실 대타로 나올때 가장 무서운 타자다.[2] KIA의 이재주~ KIA의 이재주~ 오오오오오~ 오오오오~[3] 이 응원가는 2009년 시즌 끝난 뒤 사실상 은퇴 후, 2010년부터 한기주에게 넘어갔다.[4] 저 유니폼은 1994~95년도 유니폼, 이전의 태평양 유니폼은 녹색+노란색이었다.[5] 당시만 해도 광역연고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태평양 돌핀스의 연고권은 인천, 경기, 강원. 이후 경기-강원 지역은 현대가 인천을 떠난 후 새로 인천에 들어온 SK 와이번스의 광역권 연고지가 되었다가 2007년 KBO가 도시연고제를 시행하며 연고지가 아니게 되었다.[6] 그해 타율이 .212였는데, 순장타율이 3할6푼에 달했다.[7] 2002~2005년 사이만 해도 팀에는 프랜차이즈 이종범 외에 믿을만한 선수는 트레이드로 건너온 신동주 및 FA가 된 심재학마해영만 있었다. 즉, 팀에서 키운 유망주가 없었다. 김경언이나 이현곤이 있었지만, 팀 성적이 좋을땐 그들의 개인성적이 신통치 않았고 팀 성적이 하락할땐 개인성적이 올라가기만 했다.[8] 다만 이 때는 타점 1위인 이대호가 90타점도 안 될 정도로 투고타저였다.[9] 2006년은 대표적인 투고타저 시즌으로 손꼽힌다. 시즌 종료 후 아시안게임에서 도하참사가 일어나 다음해에 마운드의 높이와 공인구를 손보게 되었다.[10] wRC+ 기준 2006년 타자 중 10위이다. 팀을 지탱했던 3인 중 장성호가 5위, 이용규가 15위였던 것을 생각하면 팀의 중심타자로써 매우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다라는 평을 받을 수 있다. 이해에 팀의 중심타선은 장성호 이외에 뚜렷하게 활동한 선수는 없었다. 지난해 까지 있던 심재학마해영은 팀이 최하위가 될때 제대로 된 활약은 커녕 경기도 많이 빠져먹기 일쑤였다. 거기다 소위 인터넷에서 퍼진 김기아 타선 이라는 말이 2006년~2008년 팀 타선이 그닥 좋지 않았던 사이에 나온 멸칭이 였다.[11] 이와중에 중복 포지션 이면서 같은 손잡이인 베테랑 선수 장성호가 간만에 외야로 밀려나는 사태도 있었다.[12] 즉, 이용규 or 김원섭이 출루하고 환호 하지만 최희섭 or 장성호가 병살을 치면 팬들은 혈압 유발과 소주 찾기 바쁘다 라는 말이 유행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최희섭은 경기 당일날 부터 아프다고 감독의 심기를 건드려 지지하던 팬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보여줬다. 즉, 감독경기가 없는 날이거나 그 전날 미리 아프다고 말해주면 팀 닥터와 동행해서 병원에 가거나 엔트리 말소든 어떻게든 하겠다는 인터뷰를 공공연히 했는데 명색이 팀의 중심타자가 징징 거리니 감독도 화가 안날래야 하겠나...[13] 이 시즌이 최희섭의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14] 홍세완도 결국 해당 "포지션에서 더 이상 수비를 할 수 없다" 라는 판정을 받고 지명타자나 1루를 겸업해야 했다.[15] 2000년에만 해도 임수혁 보다 대타홈런이 적었다.[16] 파일:/pds/201002/04/70/c0098370_4b6a6c58ccc1a.jpg[17] 박경태 말로는 그땐 자신도 22살이고 맞을짓을 한게 맞다고 넘어갔지만, 프로선수들끼리 집합걸고 빠따를 치는 일은 지금 했다가는 바로 매장당할 일이다. 당장에 프로시절도 아닌 고교시절에 학폭 미투로 훅간 선수들을 생각해보자.[18] 이재주가 후배들에게 사과를 한 야유회는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그리고 8구단 시절 군기와 규율이 가장 강하던 팀이 해태였는데 구타, 집합은 일상다반사였다. 정확히 말하면 타이거즈의 야수조가 군기가 빡센 것이고 금발 염색하고 다닌 최향남이나 신인 시절 놀아재끼던 임창용, 경기 전날 술 먹고 다니던 선동열의 사례에서 보이듯 투수조의 군기는 그렇게 쎄지 않았다고 한다. 투수조의 군기는 LG 트윈스가 타이거즈보다 더 빡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