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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3세 | 바오로 6세 | 요한 바오로 1세 | 요한 바오로 2세 | 베네딕토 16세 | ||||||
제266대 | ||||||||||
프란치스코 | }}}}}}}}}}}} |
가톨릭 교회의 교황 | ||||
제179대 첼레스티노 4세 | → | 제180대 인노첸시오 4세 | → | 제181대 알렉산데르 4세 |
<colbgcolor=#ffe100><colcolor=#670000> | |
교황명 | <colbgcolor=#FFFFFF,#1F2023>인노첸시오 4세 (Innocentius IV) |
본명 | 시니발도 데 피에스키 (Sinibaldo de Fieschi) |
출생 | 1195년경 |
제노바 공화국 제노바 또는 마나롤라 | |
사망 | 1254년 12월 7일 (향년 59세) |
[[시칠리아 왕국| ]][[틀:국기| ]][[틀:국기| ]] 나폴리 | |
재위기간 | 1243년 6월 25일 - 1254년 12월 7일 (11년) |
언어별 명칭 | 라틴어: Innocentius PP. IV 이탈리아어: Papa Innocenzo IV 영어: Pope Innocent IV |
[clearfix]
1. 개요
180대 교황.2. 생애
라바냐 백작 우고와 베아트리체 그릴로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르마 대학교와 볼로냐 대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잠깐 볼로냐에서 교회법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교회법 학자로 명성을 얻어 교황청의 법률가로 근무했고, 1227년에 교황청 부상서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첼레스티노 4세가 선출된지 20일도 채 안돼 사망했으나, 추기경들의 봉쇄 선거 거부 및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시칠리아 왕국 국왕 프리드리히 2세에 대응하는 문제 등으로 1년 반가량 지체된 끝에 피에스키가 만장일치로 교황에 선출되었다. 인노첸시오 4세는 즉위한 이후 실질적인 전임자인 전전임자 그레고리오 9세가 견지했던 반 황제 정책을 지속했다. 이 문제 때문에 프리드리히 2세가 롬바르디아의 구엘프당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교황령 내에서 교황의 입지가 불안정해지자 로마를 떠나 피렌체를 거쳐 프랑스 왕국 리옹[1]으로 망명했고, 제1차 리옹 공의회를 소집해 프리드리히 2세를 파문, 폐위시키고 독일 제후들을 선동했다. 이후 몇몇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계속된 파문과 복권에 질린 독일 제후들은 교황권의 신장도 바라지 않았고 프랑스 국왕 루이 9세도 프리드리히에 동정적인 태도를 보여 생각 외로 황권에 위협은 되지 못했다.
중세의 신성 로마 제국은 기본적으로 황제권과 제후(영주)권, 교황권의 균형 위에 서 있는 나라였고 제후들은 많은 경우 자신들의 봉권적 권력을 억압하는 황제에 맞서기 위해 교황과 협력하였으나, 그렇다고 제후들이 덮어놓고 교황 편을 든 것은 아니다. 제후들의 입장에서는 교황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 역시 황제의 권력이 강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계해야 할 상황이었던 것. 이런 상황에서 교황의 필살기라 할 수 있는 파문이 지나치게 남발된 것 자체가 교황과 교회가 지나치게 세속 군주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 요소가 되었다. 그렇게 하고도 황제를 제압하지 못하고 번번히 교황이 역으로 털린 상황이었기에, 당시 독일 제후들이 황제에게 등 돌리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여튼 이러한 상황은 1250년에 프리드리히 2세가 사망한 이후 어느정도 수습되었다. 페루자(1251~1253)를 거쳐 로마로 돌아온 교황은 계속해서 강경한 반 호엔슈타우펜 가문 노선을 견지했고, 시칠리아 왕국의 섭정이 된 만프레디에 맞서 전쟁을 일으켜 나폴리에 입성하였으나 포자에서 조카 굴리엘모 피에스키 추기경이 이끌던 교황군이 참패하자 충격을 받아 1254년 12월에 나폴리에서 사망하였다.
한편 몽골 제국에 카르피니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사절을 파견했다. 교황은 카르피니 등을 통해 '침략행위를 그만두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과 '헝가리 왕국을 침략한 이유를 설명할 것'을 요구했고, 당시 몽골 제국을 다스리던 귀위크 칸은 이에 대한 답장에서 "네 요구를 둘 다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반박하며, "헝가리인은 칸에게 복종하라는 신의 명령을 믿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보낸 사신들을 죽였다. 신의 도움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모든 땅이 우리에게 정복되었으므로 이것이야말로 신의 뜻이다. 너희는 어째서 신의 뜻에 반항하느냐. 당장 몽골 제국에 항복하고 교황을 비롯한 모든 왕공들은 나에게 친조하라."[2]고 주장했다. 또한 1251년에는 리투아니아 대공인 민다우가스가 가톨릭 교회의 세례를 받자 그를 리투아니아 왕국의 국왕으로 책봉했다.
수도자 개개인은 청빈을 요구받지만 수도회 운영상 재산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대에 법인 개념으로 이어지는 Persona ficta 개념을 처음으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조카 오피초는 인노첸시오 4세의 선출 직후 안티오키아 라틴 총대주교가 되었고, 다른 조카들인 굴리엘모와 오토부오노는 추기경이 되었다. 이 중 오토부오노는 훗날의 하드리아노 5세이다.
[1] 이때 조카인 베아트리체 피에스키와 결혼한 피에몬테 영주 톰마소 2세의 일가인 사보이아 가문의 도움을 받았고, 톰마소 2세의 막내 남동생 필리프를 리옹 대주교로 임명하여 보답했다.[2] 이는 몽골에서 평화가 의미하는 것은 강자의 평정 아래에 분쟁을 유발할 적대자가 물리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상황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