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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3세 | 바오로 6세 | 요한 바오로 1세 | 요한 바오로 2세 | 베네딕토 16세 | ||||||
제266대 | ||||||||||
프란치스코 | }}}}}}}}}}}} |
가톨릭 교회의 교황 | ||||
제211대 바오로 2세 | → | 제212대 식스토 4세 | → | 제213대 인노첸시오 8세 |
<colbgcolor=#ffe100><colcolor=#670000> | |
교황명 | <colbgcolor=#FFFFFF,#1F2023>식스토 4세 (Sixtus IV) |
본명 | 프란체스코 델라 로베레 (Francesco della Rovere) |
출생 | 1414년 7월 21일 |
제노바 공화국 제노바 | |
사망 | 1484년 8월 12일 (향년 70세) |
교황령 로마 | |
재위기간 | 1471년 8월 9일 ∼ 1484년 8월 12일 (13년 3일) |
[clearfix]
1. 개요
제212대 교황.2. 생애
1414년 7월 21일 사보나 인근 첼레에서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체스코 델라 로베레는 프란치스코회에 일찍 입회하여 교육을 받았다. 볼로냐와 파도바에서 공부한 후 몇몇 대학에서 강의도 했고, 특히 설교가로 명성을 떨쳐 프란치스코회 수사들과 도미니코회 수사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된 주제에 대해 몇몇 논문을 집필한 예리한 신학자이기도 했다.로베레는 리구리아 관구장을 비롯한 여러 직책에 봉직한 후, 1464년 5월 19일에 프란치스코회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1467년 9월 18일에 추기경으로 서임되었으며, 바오로 2세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따른 교황 선거에서 예기치 않게 유력 후보로 부상했다. 그는 선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밀라노 공작에게 선물 공세를 했고, 그의 수행원 역할을 하던 조카 피에트로 리아리오에게는 추기경에 서임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신학자요 중개자로서의 평판 또한 그의 선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로베레는 사생활이 엄격하고 의지도 강했다. 그러나 교황이 되고 나서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자비함을 과시하면서 교황직은 조직적으로 세속화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식스토 4세는 오스만 제국에 대한 십자군 원정에 열성적이었고, 함대를 갖추는데 아낌없이 투자했으나 유럽의 권력자들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함대는 1472년에 스미르나 상륙에만 참여했을 뿐, 대단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1480년 8월 이탈리아 본토에 있는 오트란토가 오스만군에게 함락되자, 1481년에 식스토 4세는 또다른 십자군을 조직하여 1482년 9월에 탈환했다. 그러나 이는 교황군의 승리였다기보다는 술탄 메흐메트 2세의 갑작스러운 붕어에 따른 것이었다.
<부르주의 국본조칙>을 견지하고 있었던 프랑스의 루이 11세와의 관계는 껄끄러웠다. 식스토 4세는 프랑스에서 교황이 교령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국왕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루이 11세의 법령을 비판했다. 또 1474년과 1476년에 가톨릭 교회와 러시아 정교회의 재일치를 위한 바오로 2세와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 간의 협상을 계속 이어나갔다. 이는 사실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모스크바 대공국의 지원을 얻으려고 한 것이었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충실한 프란치스코회 회원이었던 식스토 4세는 탁발수도회의 특전을 크게 확대했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의 전례 거행, 곧, 미사와 시간 전례를 허락했으며, 프란치스코회 신학자인 보나벤투라를 시성했다.
식스토 4세는 1478년 11월 1일에 가톨릭 왕들의 요청으로 스페인에 이단심문소를 설치하여, 1482년에서 1485년 사이에 그곳의 운영을 점검했고, 1485년에 토마스 데 토르케마다를 최고심문관으로 확정했다. 1478년에는 콘스탄츠 공의회의 법령들을 파기했다.
식스토 4세의 최우선 관심은 교황령과 자기 가문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었고, 종교적 문제는 뒷전이었다. 선출되자마자 그는 약속을 무시하고 두 젊은 조카, 피에트로 리아리오와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훗날의 율리오 2세)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다른 친척들도 부를 축적하며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피에트로가 1474년에 방탕에 빠지자, 그의 사악한 영향력을 그의 형제인 지롤라모 라아리오가 넘겨 받았다. 지롤라모는 밀라노 공국의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 공작의 딸이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걸 카테리나 스포르차와 결혼하여 백작이 되었다. 지롤라모와 줄리아노는 종종 이탈리아의 정치적 분쟁과 소란을 반란으로 왜곡하여 교황 식스토 4세에게 보고했다. 1478년 파치 가의 음모에 지롤라모가 식스토 4세를 끌어들인 일은 최악이었다.
피렌체 공화국의 통치자로 군림하던 메디치 가문의 형제 로렌초와 줄리아노를 살해하려는 음모가 있었는데, 교황은 이 음모에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인지하고는 있었다. 로렌초는 부상을 입고 도망쳤으나 줄리아노는 살해되었다. 이 사건으로 식스토 4세는 피렌체와 무익하고 불명예스러운 전쟁을 시작했고, 지롤라모가 부추기는 바람에 베네치아로 하여금 페라라를 공격하게 했다.
1483년에 식스토 4세는 돌연 진영을 바꾸어 베네치아에 영적 형벌을 부과하면서 베네치아로부터 등을 돌렸다. 1484년 교황 모르게 체결된 바그놀로 평화조약은 식스토 4세와 조카들이 기대했던 로마냐의 지방 확장을 성사시켜 주지 않았고, 로마와 라치오에서 반란만 불러일으켰다. 탐욕스러운 친척들 때문만이 아니라, 전쟁과 건축 사업으로 재위기간 동안 교황청의 지출은 막대하게 늘어났다.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대사를 수여하는 등 수입을 늘렸지만, 식스토 4세는 후임 교황에게 막대한 빚을 남겼다.
1482년 3월 예전에 식스토 4세의 친구였던 개혁 성향의 크로아티아 대주교 안드레아 자모메틱이 바젤 공의회를 다시 소집하려고 했다. 그는 공의회가 교황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교황의 성무 집행을 정지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1483년 식스토 4세는 보편 공의회 항소 금지 조항으로 대응했다. 교황은 이듬해에 사망했는데 이탈리아의 군주들이 식스토 4세에게 평화를 강요하자 격노하여 울화병으로 일찍 사망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