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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3 12:30:14

베네딕토 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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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교황 문장.svg 가톨릭 교회의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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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 147, 150대 교황
베네딕토 9세
Benedictus IX
출생 1012년
교황청 로마
사망 1055년 / 1056년 (향년 42~44세)
재위기간 제145대 교황
1032년 ~ 1044년 (약 12년)
제147대 교황
1045년 4월 10일 ~ 1045년 5월 1일 (21일)
제150대 교황
1047년 11월 8일 ~ 1048년 7월 17일 (약 8개월)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가톨릭의 제145대, 147대, 150대 교황이다.

2. 생애

역사상 유일무이한 3선 교황으로 본명은 테오필락투스 3세다. 임기가 정해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다선일수록 좋은 거지만 종신직 영구집권직을 3선했다는 것은 문제가 많을 확률이 다분하다. 베네딕토 9세는 정말로 문제가 많은 교황이었다. 베네딕토 9세가 이룩한 것 세 가지부터가 3선 교황, 교황직 매매, 가문빨 업고 교황 선출이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그가 교황이 된 것은 순전히 부모 잘 만나서라고 할 수 있는데, 선임 교황인 베네딕토 8세요한 19세의 조카이기도 했고, 부친 투스쿨룸 백작 알베릭 2세가 그를 베드로좌에 앉히려고 무진장 애를 썼기 때문이다. 그렇게 20살의 젊은 나이에 교황에 오른 베네딕토 9세는 선정을 베풀기는 커녕, 연산군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암군 테크를 타기 시작한다[1]. 너무 젊은 나이에 교황이 되어서 이런 기행을 펼쳤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런다기엔 인노첸시오 1세라는 훌륭한 반례가 존재한다. 그도 23세의 젊은 나이에 집권했으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신학 이론을 내놔서 그리스도교 사회에 핵폭탄을 떨군 펠라기우스를 파문하거나, 서로마 제국을 침공한 서고트족과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 사이를 중재하는 등으로 교황으로서의 책무를 다했고, 때문에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똑같이 20대에 교황이 되었음에도, 베네딕토 9세는 인노첸시오 1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2].

어쨌든, 그가 재임 기간 중 벌인 기행 또는 벌였을 거라 추정 되는 기행들을 열거해 보면 살인, 강간, 남색(동성연애), 그리고 교황의 집무실이자 거처인 라테라노 궁전을 주지육림으로 만든 것 등이다. 이 정도면 교황이 아니라 길거리 시정잡배라고 해도 지나칠게 없을 정도다. 그래도 장점이라고 뽑아보자면 종교적으로는 정통 신앙을 확고히 지지했고, 교황권을 세속의 권위보다 우위에 있음을 강조해서 교황의 권위를 세우고자 한 것이다.

결국 1044년 9월 로마에서 크레센티파에 의해 반란이 일어나 베네딕토 9세를 내쫓고 이듬해 1월에 사비나의 주교 조반니가 교황좌에 올라 실베스테르 3세가 된다. 하지만 베네딕토 9세는 군대를 이끌고 1045년 3월에 로마에 입성하여 실베스테르 3세를 내쫓고 두번째로 교황좌에 착좌한다.

일단 권좌는 되찾았으나 로마 시민들은 베네딕토 9세를 지지하지 않았고, 이에 베네딕토 9세는 대부(代父)이자 사제인 요한 그라시아누스에게 거액[3]을 받고 교황직을 넘긴다. 역사상 유래 없이 교황직이 매매된 것이다.[4] 더구나 베네딕토 9세가 교황직에서 물러난 이유 중 하나는 결혼을 하고 싶어서였다. 거래는 성사 되었고, 그라시아누스는 그레고리오 6세라고 명명되며 148대 교황이 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로마 교회의 혼란은 계속되었는데 교황좌에서 쫓겨났던 실베스테르 3세가 자신이 정당한 교황이라고 주장한데다가 이유야 어쨌든 새로 교황이 된 그레고리오 6세도 선출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교황직을 팔았던 베네딕토 9세까지 입장을 바꿔 거래는 무효라면서 교황직을 다시 내놓으라고 요구하였다. 자신을 교황이라 주장하는 3명의 인물이 난립하자 로마는 혼란에 빠졌고, 결국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3세가 개입하기에 이른다. 황제는 수트리 공의회를 소집했고, 베네딕토 9세와 실베스테르 3세의 교황직 박탈을 선언하고, 그레고리오 6세에게는 사임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그리고 새롭게 밤베르크의 주교 수이드거가 교황으로 선출되어 클레멘스 2세로 명명된다.

하지만 베네딕토 9세는 자신의 폐위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047년 8월 클레멘스 2세가 사망하자 동년 11월에 라테라노 궁전을 접수하고 3번째로 교황좌에 착좌한다. 결국 1048년 7월 참다 못한 황제의 군대가 출동해 베네딕토 9세는 축출된다. 이 후 브릭센의 주교 포포가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어 다마소 2세로서 교황좌에 오른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베네딕토 9세는 끝까지 자신의 폐위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1049년에는 성직매매 혐의로 고발되어 파문당하기에 이른다.

이후의 베네딕토 9세의 행적은 불분명하나 레오 9세가 파문을 취소한 것으로 봐서는 권좌에 대한 욕심을 접은 듯 하다. 말년에는 수도원에서 은둔 생활을 했으며, 1056년에 사망하여 그로타페라타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1] 허나 그 연산군도 재위 9년차까지는 부왕인 성종 못지않은 명군의 면모를 보였다. 나머지 3년 동안 희대의 폭군으로 타락한 게 문제지 어쨌든 즉위한 직후에는 나름대로 업적도 있었지만, 베네딕토 9세는 즉위 초부터 최종적으로 폐위될 때까지 내내 폭군으로서의 면모만 보였다. 그 연산군과 비교하기도 실례인 수준이다.[2] 심지어 인노첸시오 1세는 선종했을 때의 나이가 39세로, 44세에 선종한 베네딕토 9세보다도 더 짧은 인생을 살았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두 교황의 일생이 극과 극이었던 건, 각자의 인품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3] 1,000-2,000파운드의 은[4] 다만 이것을 단순히 교황직 매매로만 치부하긴 애매하다. 베네딕토 9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문의 영향으로 교황이 된 것을 후회했으며, 심지어 반란까지 겪자 이에 대해 상담하고자 대부였던 그라시아누스를 만났던 것이다. 베네딕토 9세는 자신이 물러나는 대신 연금으로 활용하고자 일정 금액을 받기 원했고 로마 교회에서도 거액을 주고라도 다른 교황을 세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 했기 때문에 이런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요한 그라시아누스는 당시에 평판이 괜찮은 성직자로 경건하다는 평을 받고 있었던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