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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5 10:53:57

잇파츠야

1. 개요2. 잇파츠야게닌 일람3. 잇파츠야에서 벗어나거나 피한 게닌 일람4. 잇파츠야가 사는 법5.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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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격 위아더 잇파츠야.

一発屋.

원래는 프로야구에서 큰 거 한방, 즉 홈런을 노리는 선수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2000년도 이후로는 가수나 작가, 영화감독이나 배우, 개그맨 등이 한번 크게 히트친 이후에 조용히 사라지는 상황을 일컫는 상황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사회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크게 히트하고는 붐이 사그러든 이후에는 TV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게닌쪽에서 이렇게 불리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방송에서 잇파츠야라고 칭할 경우 게닌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1]

일반적으로 잇파츠야 게닌의 선두주자로 불리우는 사람은 선뮤직 소속의 댄디 사카노. 2003년 겟츠!라는 프레이즈와 독특한 포즈로 일세를 풍미했다.

이후로도 여러 잇파츠야들이 등장을 했는데, 그 중 대다수가 핀 게닌인 경우가 많으며, 토크 능력보다는 하나의 확실한 네타[2]가 국민적으로 인기를 얻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의 기간동안 인기를 얻었다가 붐이 사그러들면 정말 갑작스러울 정도로 TV에서 모습을 볼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인기가 최고조일 때는 하루 수면시간이 2시간이 안되는 경우도 많으며, 많은 잇파츠야 출신들이 "워낙 정신없이 여기저기서 영업을 뛰다보니 저녁이 되면 아침에 뭘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고 증언할 정도로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공연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중견 게닌들이 잇파츠야가 될 경우엔, 이 붐이 사그러들면 이후 TV에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어질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장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며, 벌 수 있을 때 벌어둬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고.[3]

대다수의 잇파츠야 게닌들은 토크 능력이나 MC 능력이 일반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많으며, 설령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브레이크 중에는 메인 네타만을 원하는 방송 관계자들 때문에 능력을 보일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4] 그래도 영업에서는 확실히 해내는 잇파츠야들도 있는데, 이쪽은 자신있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컬러를 잃지 않고 계속 살리면서 재미를 주기때문에 살아남는 케이스다.

상당수의 잇파츠야 게닌이 재적하고 있는 선 뮤직의 경우, 이러한 게닌들도 잇파츠야 게닌이라는 카테고리로서 작게나마 꾸준히 일거리를 얻어주고 있는데, 그딴 건 관계없어!로 일세를 풍미했던 코지마 요시오가 내년이면 TV에서 사라질 게닌 랭킹의 상위를 꾸준히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TV에서 사라지고 있지 않는것도 이런 선 뮤직의 노하우 덕분. 와타나베 프로덕션도 여러 잇파츠야 게닌을 보유 할 정도로 잘 관리해 주고 있다. 하지만 다른 연예기획사의 경우엔 그런거 없다. 붐이 사그러들면 이후로는 TV 에서 거의 보기 힘들 정도. 그 요시모토 흥업의 경우도 간사이, 간토를 불문하고 소속 코미디언이 너무 많고 간사이는 요시모토 신희극을 위시한 극단, 라쿠고 쪽까지 손대고 있어서[5] 잇파츠야 관리가 엉망이다. 무디 카츠야마도 2007년 짧은 브레이크 후 얄짤없이 일이 끊겨서 미야기현까지 오디션을 보러 가야 했을 정도.

댄디 사카노 이후로는 잇파츠야 게닌이 붐이 지나면 수입이 거의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한창 히트칠 때 번 돈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게를 연다거나, 집을 구입[6]하는 등 이런저런 대비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테레비 아사히의 '시쿠지리 선생-나처럼 되지 마'에서는 잇파츠야 게닌들이 실패담을 들려주면서, 반면교사가 될 말을 많이 들려주기도 한다.

잇파츠야의 개그는 보통 임팩트가 강력한 캐치 프레이즈 한마디로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매년 일본에서 주최하는 유행어 대상 상위권에는 그 해 날렸던 잇파츠야의 유행어가 꼭 들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 순간이 그 잇파츠야 게닌의 피크이다. 다음해 유행어 대상이 발표될 즈음 전년도 유행어 대상을 받은 게닌은 거짓말처럼 잠잠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카지삭크 등 코미디언 유튜버들의 성공은, 피크를 전후하여 TV에서 사라졌던 잇파츠야 게닌들도 지속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잇파츠야가 그간 내세웠던 기믹들 중에선, 201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코미디, 방송, 음악계에서 유행하는 부캐 성격의 캐릭터가 엄청나게 많다. 예외적으로 부캐를 내세워서 활동한 코미디언들 중에서 잇파츠야를 피한 사람이 '매튜 미나미'를 기믹으로 활동했던 후지이 타카시, '딜런'을 기믹으로 활동했던 나다기 타케시.[7]

2020년대 이후로는 잇파츠야가 이전보다 잘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도 잇파츠야와 비슷한 부캐가 있으나, 유튜브 등 뉴미디어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기한을 정해 놓고 활동하는 편이며 실제로 김경욱도 특정한 부캐의 인기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8]

2. 잇파츠야게닌 일람

3. 잇파츠야에서 벗어나거나 피한 게닌 일람

사실 똑똑한 사람이 많다[19]파일:나스비.jpg

4. 잇파츠야가 사는 법

히트 친 시기에는 워낙 인기인이라 여기저기 불려 나가지만, 짧은 기간에 워낙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슬슬 질리기 시작하는 시기(빠르면 3~4개월, 늦어도 6개월째 쯤엔 끝물이라고 본다)가 되면 이후의 행보를 걱정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보통 잇파츠야 게닌이라면 TV에 나오는 동안은 거의 똑같은 소재만 반복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일반 시청자들에겐 인기 네타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방송 관계자들도 그 부분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능력(MC능력이나 토크능력, 히나단에서의 대응력 등)에 대해선 신경도 쓰지 않으므로, 인기가 사그라든 이후에는 거의 불려지지 못하는 게 일반적.[58]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잇파츠야 게닌들이 여러가지 대책을 생각해 놓았는데, 아메토크!원조 '지금이 제철'이란 소릴 들었던 게닌의 회에서 이런 대책들이 소개된 적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등등이 있다.

실제로 위의 잇파츠야 게닌 탈출자들이나 언급되지 않은 잇파츠야 출신들 중에 어느정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친분을 맺어둔 프로듀서 덕분에 간간히 방송에 출연하며 명맥을 잇거나, 특정 특기로 고정 방송을 따 내거나, 지방 방송국에서 간판방송을 갖고 있는 경우들인 경우가 많다.[62]

워낙에 잇파츠야 게닌들의 명멸이 빈번한 일본의 연예계이다 보니, 퀴즈 방송 등에서는 인기가 사그라든 잇파츠야 게닌들을 모아서 히트했던 연도 순으로 정렬하는 퀴즈를 내기도 한다.[63] 일본에서 퀴즈 프로그램 수입으로 먹고 사는 퀴즈 헌터들에게 있어 사실상 예능계 문제은행의 필수요소급 취급을 받는데, 워낙에 수가 많고 개월수를 따져서 정확하게 정렬해야 하는 구조상 상당히 난이도 높은 문제로 분류된다.

간사이권 코미디언들의 경우 도쿄 진출에 실패하고 잇파츠야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그냥 요시모토 흥업의 존재로 인해 마켓셰어가 보장된 간사이로 돌아가서 잘 먹고 잘 사는 게닌들도 많다. 물론 배수진을 친 경우에는 아예 도쿄로 거주지를 옮기고 간사이에서 맡은 프로그램도 하차하지만.[64] 최근에는 코미디의 지역구분이 점차 사라지고, 코로나19로 방송계 전체 일이 줄어들면서 유튜브 활동으로도 돈을 많이 벌며 간사이권 코미디언들이 굳이 도쿄에 진출하지 않더라도 도쿄에서도 유명해지고 있다.

위에서 소개된 잇파츠야 게닌의 대부분은 단발성 핀게닌의 네타나 짤막한 콩트를 전문으로 다루었던 니혼TV의 프로그램 엔타노카미사마에서 스타가 된 케이스가 많다. TV방송이 아닌 극장에서 라이브 공연 등으로 간간히 지명도를 올리던 게닌들이 TV에 진출할 수 있는 성지와도 같은 존재였던 것. 실제로 엔타노카미사마가 한창 뜨던 당시에는 각 방송사에서 너도나도 잇파츠 개그방송을 그러나 엔타노카미사마가 시청률이 저하하면서 점점 인기가 사그러들더니 2010년 종영하게 되자 다른 방송사에서도 개그 방송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자연히 잇파츠야 게닌들이 대중에게 알려질 수 있는 기회도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다. 현재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핀게닌이 설 수 있는 무대는 연 1회 개최되는 R-1그랑프리 정도이다. 2010년대 이후로 이렇다할 신생 잇파츠야가 떠오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65]

5. 같이보기



[1] 간혹 원 히트 원더를 잇파츠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2] 토크 능력이 떨어지는 코미디언이 많은 것은 코미디언의 능력 외에 일본의 코미디업계를 둘러싼 환경과도 연관이 있는데, 정치, 사회 관련 소재를 풍자한 토크보다는 이러한 '네타'가 인기를 끄는 것이 일본 코미디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 부작용인지는 몰라도 코야부 카즈토요, 타무라 켄지 등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의 발언을 TV나 라디오서는 할 수 없으니 SNS나 간사이 로컬 프로그램에서 직접적, 혹은 우회적으로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3] 아메토크!의 잇파츠야 관련 회에서는, 당시 초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던 스기짱이 선배 잇파츠야들에게 조언을 들을 때 MC들이 "캐릭터 잊지 말라고"라며 여러 번 주의를 줄 정도로 진지하게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하는 등 절실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6년 새롭게 뜬 20년차 게닌 나가노의 경우도 오와라이 용 옷은 한 벌이지만 공연은 하루에 몇개씩 뛴다고 밝혔고 휴식시간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에따른 수입의 변화는 작년의 100배 이상이다고 전했고 동료들이 좀 쉬라고 하지만 벌 수 있을 때 벌어야만 한다고 했다.[4] 잇파츠야 출신으로 재기를 달성한 아리요시 히로이키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아메토크!에서 막장 별명을 지어주는 캐릭터가 크게 먹혀 이후에도 타 방송에서 별명 지어주는 사람으로 호평받고 있을 때 이러다간 그냥 별명이나 붙여주는 기계로 끝나고 만다라는 생각에 적정한 타이밍에 별명 캐릭터를 졸업하면서 토크력, MC능력등을 어필함으로서 롱런할 수 있게 되었다.[5] 게다가 라쿠고는 한참 선배들이 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 진입이 어렵다.[6] 일본에선 전근 등의 사정으로 인하여 보통 월세를 사는 게 일반적인데, 수입이 줄어들 것이 뻔하니 아예 월세 걱정없도록 집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월세가 비싼 편이라 직주근접성을 고려해 아예 도쿄에 집을 사는 방법이 싸게 먹힌다고.[7] 애초에 이 둘은 간사이권을 중심으로 예능계에서 입지를 탄탄히 다져 놓은 상태에서 부캐 기믹을 밀었으며, 이들이 부캐를 내세운 건 데뷔 9~10년이 지나서였다.[8] 실제로 피식대학메타코미디 소속 크리에이터 그룹들의 사례를 보면 짧은 기간 동안 부캐를 밀고, 적절한 시기에 부캐를 봉인하는 편이다. 물론 콩트, 스케치 코미디, 스탠드업 코미디 등 기본기가 튼튼한 상태에서 컨셉을 잠시 봉인해 둘 뿐이고 완전히 컨셉을 버리는 건 아니라서,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으면 다른 세계관에서 잠시 부활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김경욱의 예언은 다나카상으로 인기를 끌 시 그가 한때 모사했던 일론 머스크의 이미지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현실이 되었다.[9] 사마~즈는 사카노를 오고쇼 (쇼군의 태상왕격의 위치) 배우라 부르며 아직도 군림하는 게닌이라고 칭찬하였다.[10] あるある探検隊[11] 간사이의 경우 타무라 켄지의 사례를 보듯 전국적으로 특이한 복장을 하는 사람도 간사이 로컬에선 분장 지우고 캐주얼한 복장으로 방송한다.[12] 평생독신이었고 가족은 아버지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의 사장인 비트 다케시가 신원 보증인이 되었다고 한다.[13] 그 아리요시도 "너무 깠네..."라는 코멘트를 날리며 씁쓸하게 웃었다.[14] 검열되어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성병 혹은 문춘이라고 외쳤다고 추정되고 있다.[15] 이 '바통 설'은 의외로 잇파츠야 게닌 사이에서 퍼져(?)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 2017년 한 방송에서 레이저라몬 HG가 출연했을때 HG도 '보이지 않는 바톤'을 언급하며 비슷한 내용을 설파한 바 있다. HG 본인은 바톤을 코지마 요시오에게 빼앗겼다고. 2017년 현재 그 바톤은 토니카쿠 아카루이 야스무라가 갖고 달리다가 (불륜 등으로) 혼자 넘어지며 떨어뜨린 바톤을 히라노 노라가 주워 달리고 있다고 한다[16] 이게 어느 정도냐면,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 중 가장 사이가 나쁜 콤비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불만은 다른 사람이 부추겼다고 하는데, 실제로 사이 나쁜 콤비로 W코론을 소개한 게 나이츠의 하나와 노부유키다. 키소산추는 해산 후 '켄메리'라는 콤비를 결성해 아다치구를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17] 알려진 바로는, 일단 총원 13명의 개그맨이 관련된 사건에서 주동자는 한명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주동자의 권유로 참여했다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타노신고는 바로 그 주동자 급의 소행을 더 나쁜식으로(출연료로 고액을 요구하거나 후배들에게 참여를 강요하거나 하는 식) 했다고 한다.[18] 오덕 기믹의 핀 게닌으로 대활약 중이고, 가가가 문고의 라이트노벨인 게닌 데스티네이션 (芸人ディスティネーション)도 썼다.[19] 이게 농담이 아닌 게, 코미디언들 중에서 좋은 평판을 얻어 성공하는 사람을 보면 똑똑하거나 고학력자인 사람이 상당수 있으며, 코미디계에서는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똑똑해야 성공하기 때문이다. 사실 코미디언들이 지속적으로 네타를 작성하고 무대를 꾸며나가며 토크 및 방송, 행사능력으로 먹고 살게 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지식, 센스와 통찰력. 한국의 잇파츠야라고 할 수 있는 김경민마리텔 22화에서 한 "개그맨은 멍청해야 된다"라는 식의 발언이 문제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직종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자 지적 수준에 대한 모독. 코난 오브라이언, 로완 앳킨슨, 박지선 의문의 1패[20] 일본어로 2를 '니'라고 발음한다.[21] 그래서 와세다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동대왕에서 준레귤러를 맡고 있다.[22] 옛날에 시마다 신스케가 진행했던 버라이어티인 퀴즈 헥사곤에, 잇파츠야팀으로서 같이 출연한 하타 요오쿠와 친하다. 댄디 사카노는 존경하는 선배로써 해당 팀으로 들어오게 하는 등 두말할 것 없이 친하다.[23] R-1에서 준우승했을 정도면 적어도 코미디언으로서의 능력은 업계 최상위권 수준이다. 심지어 주최 방송사가 칸사이TV인데, 칸사이 방송사가 주최한 대회에서 우승했을 정도면 전국적으로 재미는 보장되었다는 의미.[24] 당시 우승자인 할리우드 자코시쇼는 "과장된/너무 힘이 들어간 모노마네"로 스튜디오의 스테프와 MC인 아메아가리 결사대를 포함하여 전원 초토화시켰다.[25] 결혼 후로도 그 흔한 불륜 루머 하나 없고, 사치를 한다는 소문도 없이 오히려 부모님께 5천만 엔을 드렸다거나, 2천만에 넘는 가게를 장만해 드렸다는 등의 미담만 나오는 중이다.[26] 현재는 주로 아이들도 볼 수 있는 개그를 지향하며 영업을 하는 중인데, 그런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각종 자격증까지 땄을 정도라고 한다.[27] 아리요시가 나온 방송이기도 하다.[28] 24시간내내 온라인 스트리밍(...)을 하고 그걸 한국에서도 시전했다.[29] 마지막에 방으로 된 세트장을 수만명의 방청객 앞에서 해체했다. 당연히 나스비는 멘붕.[30] 단, 소속사인 와타나베 프로덕션의 선배 여성 게닌들로부터는 많은 도움을 얻었다. (야시로 유, 이모토 아야코 등)[31] 그런데 나카야마 킨니쿤은 이 양반 때문에 일을 뺏겨서 HG가 잇파츠야 시절 28세에 미국유학을 갔다(...). 물론 지금은 미국 유학 경험이 전화위복이 되었고, 헬스트레이닝 열풍이 불면서 100만 유튜버가 되어 잘 나가고 있다. 사실 나카야마 킨니쿤이 HG에게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을 소개해준 은인이기도 하다.[32] 레이자라몬 콤비는 도시샤대-리츠메이칸대 정기전 포스터에 등장한 적이 있다.[33] 그래도 다시 잘 돼서 연수입 6억엔까지 다시 올라왔다.[34] 미야사코 히로유키가 100만엔, 타무라 료가 50만엔, 레이저라몬 HG가 10만엔을 받았다. 나머지 게닌들은 10만엔 이하이고, 대부분 3만엔씩 받았다.[35] 위에 언급된 아메토크!에서 뭔가 어필할 수 있는 특기가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를 듣자 "저 캠핑 관련 자격증 있어요!"라며 야외 로케 등에 강한 면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기도 했다.[36] Good 을 느끼하게 발음한 것[37] 배우로서는 데가와 테츠로, 웃짱난짱과 동기다. 실제로 거의 20살 가까이 차이나는 나이어린 선배 개그맨들에게도 꼬박꼬박 존대를 하며 선배대우를 했지만 데가와에게만은 동기처럼 대했고, 데가와도 배우 동기로서 대해줬다고 한다.[38] 에도의 동기 중 한명은, 자기 모친이 장난삼아 "나도 NSC한번 들어가 볼까?"라는 농담에 "엄마처럼 나이든 사람이 NSC에 있겠수?"라며 대꾸했는데, 입학식날 보니 자기 모친과 동갑인 에도가 있어서 당황했다는 에피소드를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NSC에는 가끔 늦은 나이에도 게닌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는 편이라고.[39] 이건 시마다 본인의 잘못된 처신도 한몫했다.[40] 후술한 대로 방송인이 주업이 아니다.[41] 특히 만자이는 데뷔 반년 만에 M-1 그랑프리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한 경력이 있다. 그것도 부유덴 네타가 나오기 전에.[42] 특히 신세기 에반게리온 오덕이다. 오덕검증을 하는 퀴즈프로그램에서 팬들도 고뇌할 법한 문제들을 전부 맞추며 정식 에바덕후 게닌으로 인정받았다.[43] dragoner는 넷 우익이나 자위대에 비판을 하기도 한 인물이지만 대중에서 그렇게 주목 받는 인물이 아니다. 이야마 아카리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향한 강한 비판을 하는 학자이나, 극우잡지 WiLL에다 칼럼을 게재한 적이 여러번 있었고, 트위터에서 페미니스트들과 입헌민주당이나 일본 공산당의 인물들을 비롯한 진보 인사들의 트윗들을 인용 리트윗해 비판하고, 이렇게 하여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공격을 유도하는 짓을 매일같이 해대고 있으며, 이에 대해 비판하는 까들의 트윗들을 인용 리트윗 하고 바보같이 비판하는 말투로 다시 써서 폄하 하고 있다. 극우 유튜브 채널에서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다, 2020년 이후로는 악명높은 DHC TV에도 출연하기 시작하였다.[44] 특히 주간문춘 같은 황색언론이나 마토메를 중심으로[45] 그래도 샌드위치맨이 메인 진행자인 BS후지에서 방영되는 토호쿠 타마시 TV라는 콩트 프로그램 에서는 준수한 실력을 선보인다.[46] 특히 이 사건 이후 카노가 참석한 기자회견이, 카노의 성격에 의해 콩트나 런던하츠의 기획처럼 변해버리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해 오히려 호감도가 늘었다.[47] 이 네타는 에가시라 2:50이 북한을 방문할 때 현지 주민들 앞에서 피로하게 된다.[48] 2010년 가량엔 아예 새로 집을 지었다. 구입한 게 아니라 신축 가옥을 아예 새로 올렸다는 것! 영업 자주 뛰는 게닌을 다룬 방송에선 반 농담삼아 "사실 이렇게 방송에 나오는 게 우리에겐 오히려 손해다"라고 발언할 정도.[49] 방송 수록이 시작되기 전에 관객들의 흥을 돋우는 역할.[50] 1라운드에는 마술사와 개, 2라운드에는 안마[51] TBC의 '소레이케 미미조'라는 프로그램의 라디오카 리포터를 맡았다.[52] 전국방송에서는 테레비 아사히의 '시쿠지리 선생'에서 선보인 적이 있다.[53] 실제로 호스트 시절 노숙자 생활을 했는데, 길가에서 쓰러진 자신을 구해준 사람들이 바로 친구였던 샌드위치맨이었다.[54] 일본의 평균적인 회사원 월급이 25~30만엔 사이라고 한다.[55] 브레이크중 갑자기 방송에 안 나오겠다고 선언한 뒤 일이 끊겼으며, 한때 공황장애로 병원치료를 받다가 라이브공연에서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방송 관계자들에 의해 다시 복귀하게 된다.[56] 특히 한 신년 생방송 네타 방송에서 실수로 음부를 드러내버려 카메라가 황급히 화면을 전환한 건 유명한 사건.[57] 훗날 쇼텐의 야마다 타카오는 아키라100%와 함께 다운타운DX에 출연할 당시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있어서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라고 생각했으나, 정작 야마다를 제외한 쇼텐의 라쿠고가들은 말로 웃기는 성향이라 이건 코미디가 아니라고 깠다고 한다.[58] 특히 일본의 경우 미국과는 다르게 스탠드업 코미디 시장이 발달하지 못하여 수입에서 방송 및 행사 진행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그나마 선술한 와타나베 아츠무나 유병재 같은 방송작가 출신이라면 프로그램 구성에 참여하여 수입을 얻을 수 있지만.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한 협찬, 광고수익이 직접 코미디언 본인에게 들어오기 시작했다.[59] 무디 카츠야마의 오리콘 인터뷰에 따르면, 도쿄에서 브레이크한 적이 있던 코미디언들이 지방 방송국에서도 좋은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덧붙여서 일이 끝나고 나서는 주변에 인사를 많이 하며, 개그의 내용에도 신경써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막말 등 비하 개그는 안 한다고.[60] 카마이타치도 전국적으로 인기스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TVer 등으로 꾸준히 방송되는 로컬 칸무리 프로그램을 남겨두고 있다.[61] 이는 학습지, 학원 회사들이 쓰는 마케팅 전략이기도 하다. 실제로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 어머니들을 공략하는 것. 한국에서도 보니하니라는 유사 케이스가 있다. 전집은 제외[62] 특히 간사이 로컬 방송국의 경우, 도쿄에 안 나와도 고급 맨션이나 고급 차를 살 수 있을 정도. 허나 이것도 문제(?)가 있는데, 적응 문제로 인해 간사이에서 성공하는 게닌들 중 상당수가 도쿄로 진출할 생각을 안 한다. 원로 코미디언들의 경우 아예 도쿄에 방송이 없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간사이권에선 유명해도 전국적으로는 무명에 가까운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점차 유튜브, TVer 등의 뉴미디어 플랫폼 등을 통해 지역구분이 사라지는 젊은 코미디언들과 대조된다.[63] 코지마 요시오가 이 컨셉으로 잇파츠야 게닌들을 모아 2010년대부터 공연을 열기도 한다. 개그계의 문제은행[64] 그래서 간사이권 게닌들은 도쿄 진출을 하더라도, 간사이 및 서일본 지역에서 하는 로컬 프로그램 한두 개쯤은 남겨 두기도 한다. 문화 차이 등으로 실패사례가 너무 많았기 때문.[65] 사실 잇파츠 네타뿐만 아니라 지상파 전체에서 점점 개그 네타 프로그램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이는 현재의 한국 개그계와 동일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