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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12:11:49

아카시야 산마

게닌 BIG 3
타모리 아카시야 산마 비트 다케시
<colbgcolor=#333333><colcolor=#ffffff> 아카시야 산마
[ruby(明石家, ruby=あかしや)] さんま | Sanma Akashiya
파일:external/contents.oricon.co.jp/83800_201101120411346001294835834c.jpg
본명 [ruby(杉本, ruby=すぎもと)] [ruby(高文, ruby=たかふみ)] (스기모토 타카후미, Takafumi Sugimoto)
출생 1955년 7월 1일 ([age(1955-07-01)]세)
와카야마현 히가시무로군 코자가와초
출신 나라현 나라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74cm, 62kg, B형
배우자 오오타케 시노부[1] (1988 ~ 1992)
자녀 장녀 IMALU
직업 게닌, 사회자, 배우
소속사 요시모토 흥업[2]
데뷔 1974년
동기 시마다 신스케
별명 오와라이 괴수, 꽁치[3]

1. 개요2. 데뷔 전3. 연예계 경력
3.1. 1970년대3.2. 1980년대3.3. 1990년대3.4. 2000년대3.5. 2010년대
4. 개그 스타일5. 일본에서의 인기6. 야나기야 킨고로와의 공통점7. 방송사와의 관계
7.1. NHK7.2. 아사히7.3. TV 도쿄7.4. 독립 방송국
8. 스포츠광
8.1. 축구
9. 어록10. 출연 방송 소개
10.1. 현재 레귤러10.2. 역대 방송 목록10.3. 드라마10.4. 라디오
11. CM12. 영화13. 무대14. 저서15. 수상 경력16.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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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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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MC, 개그맨.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게닌으로[4] 오와라이 괴수(お笑い 怪獣)라 불리는 인물. 1970년대에 데뷔하여 노력과 재능으로 1980년대 중반 탑 연예인으로 자리잡은 이래 현재까지 4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일본 연예계 최정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다.

비트 다케시, 타모리와 함께 일본 개그맨 빅3로 불린다.[5] 닛폰 테레비, 테레비 아사히, TBS 테레비, TV 도쿄, 후지TV 등 일본의 거의 모든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의 메인 MC를 담당한 경력이 있는 코미디언이다.[6]

조혜련해피투게더에서 일본 개그우먼과 촬영했을 당시 유재석을 소개할때 유재석을 한국에서 아카시야 산마와 비슷한 인기를 지닌 개그맨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다만, 산마의 개그 스타일은 야한 농담애드립에 강한 신동엽에 가깝다.

2. 데뷔 전

와카야마현 출신이지만 3살 때 가족들이 나라현으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산마가 아직 어릴 때 그의 친모가 사망했고 수산물 가공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재혼을 하여 의붓어머니를 데리고 왔다. 의붓어머니에게 이미 산마보다 어린 아들이 1명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낳은 친아들만 사랑하고 자신에게는 그 애 하나 밖에 없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정도로 산마를 자신의 아들로 여기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자 산마는 의붓어머니의 관심을 받기 위해 이때부터 개그를 연마하여 가족들에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의붓어머니와 겨우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다고 한다. 1살 어린 의붓동생과는 사이가 상당히 좋았지만 산마가 19살 되던 해에 화재로 사망했다고 한다.

나라 시립 코반 초등학교 시절에는 '날다람쥐를 잡은 소년'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고 중학교 때는 나라현 중학생 스모 대회에서 2위에 올랐다고 한다. 지금도 학교에는 산마가 당시 잡은 다람쥐가 전시되어 있다고. 산마 본인에 의하면 자신에 인생 모테키 최정점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미 남웃기기로 전교에서 유명해서 학교 축제때는 체육관에 전교생들을 앉혀놓고 혼자 2시간 동안 원맨쇼로 토크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신학기 써클활동 모집시기에 다른 써클의 홍보스피치를 강당에서 부탁 받아서 해줬는데 폭소의 도가니. 그걸 본 타 써클도 너도나도 산마에게 부탁해서 전부 해줬다고 한다. 학교 다니는 목적이 공부가 아니라 애들을 웃기러 다니는 거였기 때문에 재밌는 것이 안떠오르는 날에는 부담감 때문에 학교에 무단결석을 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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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의 고등학교 졸업사진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74년 2월, 라쿠고(전통 만담)의 쇼후쿠테이 문파로 입문해서 '산마'라는 이름을 받는다.(즉, 본래 예명은 쇼후쿠테이 산마.)[7] 입문 동기는 카게츠 극장에서 본 마츠노스케의 신작 라쿠고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 마츠노스케를 만났을 때 입문의 이유를 질문 받은 산마는 "센스가 좋으니까"라며 솔직한 마음을 전했고, 매우 무례한 발언에 대해 마츠노스케는 "저런, 고맙습니다"라고 답례했다고 한다. 입문 생활은 삭발당하는 것 이외는 그다지 엄하지 않았고 방임 주의였다고 한다.

입문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교토 카게츠에서 데뷔. 이때 산마는 고전 만담인 "서쪽으로 여행"을 10일 정도 공연하였다. 그는 이 시기를 회상하면서 "첫 무대라서 긴장으로 머리가 하얗게되고, 자세를 다시했다"고 한다. 산마를 '미러볼'이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그의 재능에 주목한 산마의 스승 마츠노스케는 "산마를 라쿠고가 아닌 게닌으로 세우고 싶다"고 생각했고 스승의 뜻에 따라 산마는 라쿠고에서 게닌으로 전업하게 되며 이때부터 쇼후쿠테이 대신 아카시야를 쓰게 된다.

3. 연예계 경력

3.1.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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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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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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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바츠이치 기자회견. 밑에 여자는 오오타케 시노부.

3.4. 2000년대

3.5. 20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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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그 스타일

콤비 위주의 일본 예능계에서 솔로로 활동하는 핀 게닌이 이토록 전방위 커버가능한 능력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다. 산마의 요시모토 후배이자 전설적인 오와라이 콤비인 다운타운조차도 진행은 하마다, 웃음분량은 마츠모토 둘로 나뉘어서 할 정도. 특히 산마가 더욱 돋보이는 점은 여타 콤비들과 함께 방송에 출연했을 때 존재감이 묻히기는 커녕 가장 압도적으로 주목받고 분량을 뽑아낸다는 점이다. <모리타 카즈요시 아워 웃어도 좋다고! 그랜드 파이널> 당시에도 여러 거물급 게닌들이 총출동한 와중에 가장 큰 핵심 분량이랑 웃음은 산마가 계속 뽑아냈다. 또다른 천재적인 개그감과 애드립으로 유명한 마츠모토 히토시조차도 계속 웃음을 만드는 산마를 보고 "이 아저씨 계속 잘 팔리네"라며 반농반진으로 감탄했다. 우리가 잘 쓰는 표현으론 '악마의 재능'이자 '예능 치트키'인 셈. 한마디로 혼자서 웃음과 분량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일본 게닌들 중에서도 단연 톱. 같은 오와라이 BIG3로 군림하고 있는 기타노 타케시조차도 웃음을 만드는 능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산마를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고 누누히 말했다.

5. 일본에서의 인기

6. 야나기야 킨고로와의 공통점

오와라이 평론가 사이조 조슈를 필두로 전쟁 전부터 전후에 걸쳐 코미디계 톱스타로 활약한 야나기야 킨고로와 현재의 산마의 공통점을 지적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 둘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7. 방송사와의 관계

7.1. NHK

7.2. 아사히

'산마 뭐든지 더비'에서 발생한 자신과 테레비 아사히의 마찰로 인해 1995 년 9월 프로그램이 갑자기 종영된 후, TV 아사히에서는 레귤러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심지어 방송국에 출연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 정도. 2009년, '아메 토크'에 출연하기 위해 처음으로 현 본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계열국인 아사히 방송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아서 레귤러 프로그램은 없지만 전국 특별 프로그램은 1년에 몇 번 출연하고있다.

7.3. TV 도쿄

사회를 맡은 '토요일 밤의 쇼'가 산마와 아와지 케이코와의 섹드립 토크로 호평을 받아서 최고 시청률이 13%라는, 당시 심야 방송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획득했지만 "저런 야한 프로그램은 보기에 안좋다."라는 상층부의 판단에 의해 갑자기 종영되었고 산마 본인은 엄청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산마는 TV 도쿄에서는 래귤러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공개적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시청률이 높든 말든 더 이상 숫자에는 연연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개그맨으로서의 삶에서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다가 2018년에 절친한 후배인 데가와 테츠로가 진행하는 <데가와 테츠로의 충전해 주셔도 괜찮겠습니까?>란 방송에 게스트 출연하면서 34년만에 TV 도쿄에 출연하게 되었다. 산마 본인은 "데가와의 방송이라 신경 안쓰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TV 도쿄의 방송이더라. 하지만 뭐, 34년이나 지났으니."라며 출연을 승락했고, 이에 TV 도쿄의 사장마저 감사의 코멘트를 남겼다.

7.4. 독립 방송국

독립 방송국 프로그램 출연은 2번 밖에 없다. 비와코 방송에 출연 경험이 있지만, 이후는 독립 방송국에 출연은 없었다. 2015 년 3월에는 교우 관계에 있는 코지마가 출연하는 '시로쿠로 안잣슈'(치바 TV)에 월별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것은 관동 지방의 독립 방송국 제작 프로그램 첫 출연이다.[25]

8. 스포츠광

스포츠 관전을 취미로 삼고있다. 직장에서 집을 비울 때를 제외하고는 심야나 BS나 CS 스포츠 중계를 실시간으로 관전한다. 축구는 유럽 각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 야구의 MLB · 미식 축구의 NFL · 농구의 NBA · 아이스 하키의 NHL · 테니스 4대 대회 · 골프 메이저 대회 등 보는 스포츠 종목이 매우 폭넓다. 올림픽과 FIFA 월드컵이 개최될때 TV 중계 캐스터를 맡기도 하며 현지에서 관전하는 것도 많아, 도요타 컵(현 FIFA 클럽 월드컵)에서는 중계 게스트로 매년 현지에서 관전하고 있다.

8.1. 축구

메시는 "아직 먼이야기라 생각해본적이 없다"라고 냉정하게 대답했지만 이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큰 경기를 치른 직후여서 지쳐있고 한창 세레머니하고 있는 와중에 큰 무례였다"는 등 비판이 쇄도 하였다. 이 모습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업로드 되었고, 스페인과 메시의 모국 아르헨티나의 미디어에서도 "이상한 인터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없는 이상한 인터뷰"라고 밝혔다. 또한 영국의 축구 전문 매체는 "일본의 개그맨 아카시야 산마에 의한 바르셀로나의 스타로 비참한 인터뷰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축구 방송의 좋지않음을 보여주었다"고 보도했다. 스웨덴에서는 "독점 인터뷰에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전세계 언론의 비판에 대해, 산마는 2011년 12월 24일 방송 된 MBS 라디오 "영 타운 토요일"에서 "메시는 출연 예정이 없는데 일본 테레비가 무리하게 날치기 같은 느낌으로 데려왔다"고 방송국의 지원으로 메시 선수가 시종 불만이었다는 것을 밝혔다. "두번 다시는 메시와 만날 수 없다"며 복잡한 심정을 밝혔다. 메시는 2011년 12월 31 일자 스포르트 종이의 인터뷰에서 은퇴에 대해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로사리오에서 생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아르헨티나의 저널리스트 레오나르도 화치오는 메시의 평전에 "공연히 메시의 은퇴 후를 걱정하는 경우가 있다"고 쓴데다가, 산마의 질문과 메시에 대답을 언급하고 있다.

9. 어록

※ 실제 아카시야 산마가 한 이야기를 올려주십시오

10. 출연 방송 소개

10.1. 현재 레귤러

10.2. 역대 방송 목록

10.3. 드라마

10.4. 라디오

11. CM

レナウン「CHARGE」 (1984) スズキ 「Hi PERSON 'S」 (1985)
カルピス (1986) キッコーマン (1986)
興和「新コルゲンコーワ」 (1988) カルビー「かっぱえびせん」 (1991)
일본 텔레콤 (2000) 일본중앙경마회 (2003)
일본 코카콜라 토요타 ' 코롤라 아쿠시오' (2006)
닌텐도 Wii (2007) 키코망 (2009~)
시오노기 제약 (2012~) GREE 「낚시 ☆ 스타!」 (2012~)
기린 「キリン濃い味デラックス」「キリン濃い味<糖質0>」 (2013~)

12. 영화

13. 무대

14.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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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geocities.co.jp/kadokawabikkuri218-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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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수상 경력

16. 이야깃거리


[1] 일본의 거물급 여배우로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 중 한 명이다. 일본 정부에서 훈장까지 수여했을 정도이다.[2] 절세와 자기 관리가 목적인 개인 사무실을 따로 마련하여 방송이나 개런티 관리는 이곳에서 하고 있다.[3] '산마'에는 꽁치라는 뜻이 있다. 아카시야 산마를 광고모델로 기용한 낚시 모바일 게임에서 기간 한정 레어 물고기로 뻐드렁니 꽁치가 나온 적이 있다.[4] 여담으로 한국 개그맨 중에서 90년대까지만 해도 잘나가던 서세원이 산마를 철저히 카피한 것으로 나름 유명했다. 과거 서세원쇼에서 튀어나온 앞니를 개그 소재로 삼고 바닥에 구르면서 웃는 리액션 등의 원조는 산마다. 그러나 산마는 지금도 잘 나가는 한편 서세원은 2000년대에 각종 악행이 탄로나며 몰락했다. 개그에도 차이가 있는데 원조격인 산마가 호불호는 갈린다고 할 지라도 안티들도 "정말 골때리게 웃긴다"라는 평을 내릴 정도로 웃기는 능력 자체는 인정할 정도인데 데드 카피인 서세원은 자신이 절대적인 갑이되어 상대를 일방적으로 비하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 스타일을 지닌 개그맨이었기에 "개그가 불쾌하다"는 여론이 전성기 시절에도 상당히 우위를 점했었다. 두 사람의 방송을 보면 순발력이나 치고 빠지는 센스에서 차이점이 뚜렷하게 보인다.[5] 물론 세월이 지나면서 다운타운, 톤네루즈 등의 거물급 후배 개그맨들도 나타나긴 했다.[6] NHK까지 따지면 폭소문제가 있다.[7] 여담이지만, 집안이 꽁치가공업을 하고 있어서 산마(秋刀魚)라고 지었다고 말하고 다닌다. 이게 농담이 아닌 듯 한게 그의 사형은 자전거 가게를 하던 집안이라 사도루(サドル.새들, 즉 자전거 안장)라는 예명을 받았다는 듯. 동기이자 절친인 시마다 신스케에 의하면 24시간 밝고 명랑하던 산마가 이때는 꽤나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이를 보면 처음엔 산마라는 예명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8] 산마는 FNS의 날 행사에서 유일하게 개근 출연한 연예인이다. 다만, 2007년까지 종합 사회로는 등판하지 않았다.[9] 당시 일본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있던 개그맨 비트 다케시가 프라이데이 습격 사건으로 잠시 자숙의 시간을 가졌는데 이 때 비트 다케시가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넣을 개그맨으로 아카시야 산마를 방송국 PD들애게 적극 추천하였고 그 결과 아카시야 산마는 수 많은 방송에서 대활약하면서 최전성기를 맞아하였다. 그래서 아카시야 산마는 비트 다케시를 은인이라 생각한다고 한다.[10] 일본의 거물급 여배우로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 중 한명이다. 일본 정부에서 훈장까지 수여했을 정도. 대한민국에서는 영화 철도원에서 타카쿠라 켄의 극중 아내 역으로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11]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effd68da.jpg[12] 방송에서 비트 다케시가 가위를 들고 산마의 대기실에 침입, 산마의 패딩 점퍼를 가위로 잘라 붙이고 게임기를 망치로 박살내는가 하면 산마의 차를 부수어서 산마가 주저 앉아버린 것이 화제를 일으켜 비트 다케시가 성공적으로 게닌 복귀를 할 수 있었다. 이후 방송에서 산마가 밝히기를 다케시가 차 키 꽂는 곳을 못 찾으니까 작은 목소리로 가르쳐 주고 말리는 척 하면서 기어 바꾸는것도 다 가르쳐주는 등 다케시가 자신의 자동차를 완전히 박살낼 수 있게 도와줬다고 한다.[13] 그녀는 해당 자서전에서 산마 이외에도 안전지대의 보컬 다마키 코지, 타하라 토시히코, 쟈니스 소속의 모 아이돌과 사귀었다고 폭로했다.[14] 2000년대 27시간 테레비 평균 시청률 3위, 최고 시청률 4위[15] 2000년대에는 그다지 공연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같이 나오는 방송들이 자주 있었기에 지금도 친한 사이이다.[16] 하마다는 예전에 27시간 테레비에서 HEY!x3의 MC로서 녹화를 하던 중에 산마가 갑자기 난입하자 겁도없이 산마에게 화를 냈다가 역으로 화가 나버린 산마에게 찍소리도 못할 정도로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원래는 먼저 안 나갈려고 했었는데 마츠모토, 우치무라, 난바라가 떠밀어 버리는 바람에 먼저 나와버리게 되었다.[17] 이 상황에서 몇몇 보케역 게닌들이 역대 출연자들로 이뤄진 청중들에서 랜덤하게 강제로 무대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옛날 외국인 탤런트로 유명했던 산콘을 자꾸 소환하려고 하는 마츠모토가 하이라이트.[18] 히가시노 코우지가 진행하는 와이도나쇼라는 방송에서 실제로 본인들은 "우린 상관 없는데.진짜로 그랬어요?"라는 마츠모토에게 이이토모 디렉터가 "약간 의도적으로 따로 배치했다"라고 답변하기도 했다.[19] 산마, 다운타운, 웃쨩난쨩, 나인티나인, 폭소문제, 톤네루즈 순으로 각 15분씩 시간이 배정되어 있었다고 하며, 한팀 나가면 한팀 들어오는 식으로 촬영하는게 원래 계획이었는데, 산마가 관객들에게 최고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30분이나 써먹었다고 한다. 다운타운과 웃쨩난쨩은 선배가 하는 일이라 이걸 어쩌나 하다가, 과거 빅3들이 잘나가던 시기에 난입 개그를 자주 펼쳤던 걸 기억하고 "까짓거 함 해 보자"라며 뛰쳐나갔고, 톤네루즈도 "이래야 축제답지"라며 난입한 거라고 한다. 이에 대해 산마는 "우리세대 개그를 잊지 않아준 후배들에게 고맙다"라며 본인의 라디오에서 언급하기도 했다.[20] SMAPxSMAP에 출연 했을 때는 나카이가 의자를 빼주자 "이 장면에서 네개 다섯개는 보케를 던질만한게 있는데 그냥 이렇게 빼주면 어떡하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 같은 방송에서 츳코미에 관해서는 "0.몇 초의 세계다. 시청자가 하고 싶은 말을 시청자가 떠올리기 바로 직전에 하는 츳코미가 가장 좋은 츳코미다"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21] 1985년~1989년, 1995년, 1998년~2003년. 19회 중 통산 12회[22] 산마저택이 2001~2006, 2011~2014년까지 10번, 혼마뎃카가 2011, 2013년 2번.[23] 좋아하는가 하는 질문이 아니라 알고 있느냐는 질문. 즉, 인기도가 아니라 유명도 조사.[24] 산마가 절찬했던 게닌들중 한명인 고사카 다이마오를 피코타로로써 만나게 되었다.[25] 이에 관한 에피소드가 재미있는데, 본 문서 마지막 항목에 있는 각주 내용이 바로 이 방송에서 벌어진 일이다. 원래는 코지마가 거의 7년여 가량을 출연해 달라고 졸랐지만 스케쥴 문제 등으로 미뤄만 오다가, 겨우 스케쥴이 비는날과 방송 녹화일이 맞아서 출연을 결정했고, 이때까진 어디까지나 "쉬는날에 친한 후배인 코지마의 방송에 놀러간다"라는 이유였기 때문에 게스트 출연이 아닌 지나가다 난입으로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코지마에게 산마가 놀러온다는 소식을 들은 방송국의 높으신 분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초 거물이 온다는 것에 당황해서 요시모토측에 안해도 되는 연락(산마는 어디까지나 후배 찾아 놀러오는 것 뿐이니까 업무관련이 아니기에 요시모토에 연락할 필요가 없었다.)을 해 버렸고, 난데없이 지방 방송국에 산마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은 요시모토 측에서는 확인 후 아예 정식 오퍼로 받아들여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론 정식 게스트 출연이 되어버렸다고.[26] 특설 스튜디오에서 전화 인터뷰라고 알려져있었는데, 실상은 경기장 한쪽 구석에 임시 부스 같은 걸 만들어놓고 퇴장하려는 메시를 납치하듯이 붙잡아 와서는 즉석 인터뷰를 감행했다.[27] 은퇴후 계획이라고 알려져있는데, 원본은 "どうも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サッカーの質問はみんな聞いてるやろうから、老後はどうしはるんですか"(감사합니다. 축구에 대한 질문은 다들 했을 테고, 노후에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이다. 실제로 '은퇴 후'라고 하면 지도자의 길을 선택한다든지, 스포츠 해설위원이 되겠다든지 하는 제 2의 진로를 두고 하는 얘기가 되지만, 노후라고 해버리면 제 2의 진로조차 다 끝나고, 노후연금 받고 사는 시기를 의미하므로 은퇴 후라는 말보다 더욱 큰 실례다.[28] 본인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모닝구 무스메 멤버들에게 한 이야기.[29] 시험 점수가 나빠서 고민하고있는 학생들에게. 만점(満点)과 하늘 가득하다는 뜻의 만천(満天)의 발음이 만텐(まんてん)으로 같다는 것을 이용한 말장난.[30] 明石家さんま 珠玉の名言[31] JAL 123편 탑승 예정이었다가 일이 일찍 끝나서 ANA로 비행기를 바꿨는데, 이때 JL123에서 520명이나 사망한 사고가 일어났고 충격을 받은 산마는 한동안 활동 중단을 한적이 있다. 이후 그의 좌우명인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득"이 나왔다.[32] 드라마 첫 출연[33] 아카시야 산마, 오오타케 시노부 주연의 드라마로 일본 트렌디 드라마의 시초로 평가 받는다.[34] 거의 매년 오사카와 도쿄에서 아카시야 산마가 주최하는 콩트 라이브[35] 시무라는 칸토, 산마는 칸사이.[36] 기무라 타쿠야가 추천했다고 한다.[37] 지방 방송 사장급 인사들이 산마가 들른다니 완전 패닉이 돼서 요시모토에 "이번에 신세지게 됐습니다."라고 인사 전화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