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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06:17:46

정의당(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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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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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신인 '모두의 전선' 시절 단일 명부로 선거에 참여, 현재 원내에서 단일 교섭단체로 활동.
2. FORJA : 'Fuerza de Orientación Radical de la Joven Argentina(젊은 아르헨티나의 급진적 지향의 힘).
3. ARI : 'Afirmación para una República Igualitaria(평등 공화국을 위한 선언).
4. UNIR : 'Unión para la Integración y el Resurgimiento(통합과 부흥 연합).
5. 페론주의 우파 이념으로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메넴주의에서 유래.
6. '전진 자유'는 우파 성향의 3~4개 정당이 모인 연합이나, 유일한 의원인 호세 루이스 에스페르트는 공식적으로 무소속.
7. 2023년 2월 22일 집권 정의당이 주도하는 '조국을 위한 연합'에서 갈라져 나온 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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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의사회주의당 로고.png
Partido Justicialista
심볼 파일:정의사회주의당 심볼.png
약칭 PJ
한국어 명칭 정의주의당
페론(주의)당
상징색
하늘색

하얀색
창당일 1946년 11월 21일
이념 페론주의
포퓰리즘
지도주의
아르헨티나 내셔널리즘
내부계파:
키르치네르주의[1]
메넴주의
정통 페론주의
혁명 페론주의
스펙트럼 빅 텐트
중도좌파 ~ 좌익 (키르치네르주의)
중도우파 ~ 우익 (메넴주의)
극우 (정통 페론주의)
좌익 ~ 극좌 (혁명 페론주의)
주소 130 Matheu Street
부에노스 아이레스
당대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청년 조직 페론주의자 청년
소속 정당연합 정의자유전선 (1973년 대선 당시)
승리를 위한 전선 (2003년 대선 당시)
시민의 통합 (2017년 총선 당시)
모두의 전선 (2019년 대선 당시)
조국을 위한 연합 (현재)
당원 수 3,204,329명(2022년 기준)
상원 의석 수
36석 / 72석
하원 의석 수
91석 / 257석
당가 페론주의 행진곡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명칭3. 역사
3.1. 후안 페론 정부3.2. 카를로스 메넴 정부3.3. 키르치네르 정부3.4. 현재
4. 이념과 성향5. 정당연합6. 기타

[Clearfix]

1. 개요

아르헨티나페론주의를 표방하는 빅 텐트 정당.

아르헨티나 정치를 양분하는 기성 양대 세력 중 한 쪽의 구심점으로, 페론주의 정당연합을 주도하고 있다. [2]

2. 명칭

현지 공용어인 스페인어로 표기한 당명은 'Partido Justicialista[3](영어로는 Justicialist Party[4])'인데, 뜻을 풀어보면 'justicialismo[5](영어로는 justicialism[6])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justicialista(=justicialist)'는 스페인어에도 영어에도 없는 단어다. 즉 원래 있던 단어들을 인위적으로 조합해 만들어낸 합성어라는 얘기. 이 단어를 만든 이는 다름 아닌 후안 페론 전 대통령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페론주의를 창시했지만 정작 이 이념을 지칭할 때 페론주의(peronismo / peronism)라는 단어보다 justicialismo(justicialism)라는 신조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정의(justicia[7])'와 '~주의(ismo[8])'를 합쳐 만들어낸 표현으로, '정의주의'라고 번역해야 그 의미에 가장 가까운 직역이다. 따라서 정확한 당명은 '정의주의자당'으로 번역된다. 다만 이 단어와 개념 자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보니 국내에서는 그냥 '정의당'이라고 번역하거나 justicialsm이 사실상 페론주의(peronism)와 동일어임을 감안해 '페론당'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3. 역사

3.1. 후안 페론 정부

정치적 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1945년 노동당을 창당하였으나 당내 반대파에 의한 갈등이 일자 1947년에 강제로 해산해버린 후안 페론 대통령이 자신의 사당(私黨)으로 창당하였다. 페론 대통령의 높은 인기 덕에 창당 직후 곧바로 집권여당이 되었고, 그의 집권기에 타 정당들을 압도하는 우위 정당 체제를 구축하며 페론주의의 기틀을 다지는 여러 경제·사회 정책을 시행하였다. 다만 포퓰리즘 성향으로 좌파와 우파를 넘나들며 오락가락한 페론 대통령의 행보에 발을 맞추다 보니 노동자 인권을 증진하고 사회복지를 확대하면서도 언론을 탄압하고 나치 독일에 부역한 전범들을 받아들이는 등 소신 없는 성향을 여실히 드러내며 비판을 받았다.

줏대 없는 포퓰리즘에도 불구하고 여성참정권을 도입하고 노동자들의 사회적 권익을 확충하면서 다수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지속적으로 성장했으나, 국민적 인기를 구가하던 영부인 에바 페론이 사망하고 페론 대통령의 이혼 합법화 정책 강행에 가톨릭교회가 등을 돌리면서 지지 열기가 식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일어난 1955년 군사 쿠데타로 페론 정권이 실각하면서 졸지에 불법 정당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아직 지지 기반은 남아있었는지 합법화 여론이 일면서 기층 민중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 겨우 다시 합법 정당이 되었으나 1966년 군사 쿠데타로 다시(...) 불법 정당이 되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후 보수 우파 일색의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는 게릴라전이 연이어 벌어지는 등 사회적 혼란 속에 정권 측과 협상을 시도, 합의안을 타결하면서 1973년에 다시 합법 정당이 되어 정계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그 해 페론 전 대통령의 측근 중 하나인 엑토르 호세 캄포라(Héctor José Cámpora)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재집권하였고, 그는 페론을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부통령과 함께 동반 사임해버렸다. 이에 해외로 망명해 있던 페론이 귀국한 뒤 9월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하며 10여 년만에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그러나 페론 대통령이 취임 10개월여 만에 사망하고 그의 세 번째 아내인 부통령 이사벨 페론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러나 그녀는 석유파동의 직격탄을 맞아 침체기에 빠진 경제와 당내 계파 갈등 같은 국내외의 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고, 우유부단한 대처로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1976년 3월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육군 총사령관을 필두로 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이사벨 페론 정권이 실각,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세 번째(...)로 불법 정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된 비델라의 독재정권이 행한 더러운 전쟁으로 당원의 상당수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으며, 이로 인해 반군부 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서며 자유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경제 정책을 엉망으로 만들어 국민의 삶을 위기에 빠트린 군사정권이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하며 큰 타격을 입은 뒤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면서 다시 합법 정당이 되었고, 민주화된 아르헨티나에서 급진시민연합과 양당 체제를 구축하며 주요 정치 세력으로 부상했다. 정작 1983년 대통령 선거에서 급진시민연합 소속인 라울 알폰신 후보가 당선되며 야당으로 전락했으나, 알폰신 정부가 두 번째 임기 중반부터 불어닥친 경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지지율이 급락하자 정권심판론을 내세워 1987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했다. 결국 알폰신 대통령이 임기 만료 이전에 사퇴하면서 1989년에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이 선거에서 시리아 아랍계 인사인 카를로스 메넴을 후보로 내세워 승리하며 여당으로 복귀하였다.

3.2. 카를로스 메넴 정부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선거 유세에서 산업 국유화 및 임금 인상 조치로 경제를 살리겠다며 좌파 성향을 드러냈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적극 도입하고 자국 화폐인 페소화의 가치를 미국 달러화에 고정하는 페그 정책과 대대적인 민영화 정책을 펼치면서 당을 우경화시켰다. 이는 당내 좌파의 반발을 낳았지만 어쨌거나 아르헨티나 경제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받아온 인플레이션이 진정세로 돌아서고 그에 따라 중산층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경제가 되살아나기 시작, 메넴 대통령은 국민의 높은 지지 속에 1995년 대선에서 압승해 재선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메넴의 2기 정부 들어 실업률이 급등하는 등 민영화 정책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경제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났다. 결정적으로 1997년 아시아에서 시작된 외환 위기의 후폭풍이 아르헨티나를 덮쳐 경제난을 불러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권과 얽힌 부패 스캔들이 불거지며 지지율이 폭락했다. 결국 에두아르도 두알데를 후보로 내세운 1999년 대통령 선거에서 급진시민연합의 페르난도 데 라 루아 후보에게 패하며 다시 야당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는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데 라 루아 대통령은 망가진 경제를 붙잡고 씨름하다 2000년 12월 397억 달러 규모의 구제 금융을 요청하였고, 이듬해인 2001년 말 끝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채로 대통령직에서 사퇴했다. 부통령까지 사퇴하면서 임시 대통령 지명을 위해 소집된 의회는 상원의장 라몬 푸에르타, 산 루이스 주지사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하원의장 에두아르도 카마노를 연이어 임시 대통령으로 지명하였으나 이들 셋 모두 10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퇴했다. 결국 의회는 양원 합동회의를 열어 표결 절차를 진행한 끝에 두알데를 지명, 그가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데 라 루아의 잔여 임기를 채우게 되었다.

두알데를 포함한 임시 대통령 4인이 모두 당원이었기에 이 기간 동안 비공식적인 여당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경쟁 상대인 급진시민연합의 실책에 따른 임시 집권이었고, 당 지지율이 낮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경제 위기와 함께 정치적 혼란도 지속되며 여러 정치인들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 독자 출마를 선언하는 상황이 이어졌는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여러 정파로 분열되었으며 이후 선거 때마다 새로운 인물 중심의 정파연합을 결성하는 폐단을 반복하게 되었다.

3.3. 키르치네르 정부

2003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내에서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 네스토르 카를로스 키르치네르 산타크루즈 주지사,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전 임시 대통령 3명의 후보가 독자 출마를 선언했다. 이 셋은 실제로 각각 다른 선거연합을 꾸려 대선에 출마하였다. 메넴은 '충성을 위한 전선'이라는 선거연합에 더해 중도우파 보수정당인 민주중도연합의 지지를 받아 출마했고, 키르치네르는 '승리를 위한 전선'이라는 선거연합의 후보로 출마하였으며, 사아는 '인민운동전선' 선거연합에 더해 연합자유당의 지지를 받아 출마했다. 공식적인 분당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세 개의 정파로 당이 갈라지게 되었다.

세 후보를 포함해 총 5명의 후보가 맞붙은 1차 투표에서 놀랍게도 집권 시절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낮은 지지율 속에 퇴임했던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이 24.45%를 득표하여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하였다. 2위는 22.25%를 득표한 네스토르 카를로스 키르치네르였다. 이에 같은 당 소속인 메넴과 키르치네르 두 사람이 나란히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러나 결선투표는 진행되지도 않고 당선자가 결정되며 선거는 종료되었다. 에두아르도 두알데 전 임시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키르치네르가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지지율 70%를 넘어섰고, 이에 결선투표 경쟁자인 메넴이 중도 사퇴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단독으로 남은 키르치네르가 2차 투표 실시 없이 자동으로 당선되었다. 다만 메넴과의 대결에서 약 70%를 득표하여 얻은 당선이 아닌, 고작 22.25%만으로 싱겁게 얻어버린 당선이라는 점은 그의 콤플렉스가 되었다.

2003년 3월 대통령으로 취임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모를 정도라는 혹평을 들어온 아르헨티나 경제를 단 4년 만에 깔끔하게 되살리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하였다. 전임 정부들의 페소화 평가절하 조치에 따른 효과가 재임기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외채를 조정하는 한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 공업국들을 상대로 수출 붐을 일으켜 경제난을 해소하는데 성공한 것. 그가 집권하는 동안 아르헨티나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두 배 가까이 급증했고, 4년간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8%로 고성장 시대를 맞이했다.

다만 복지 지출 지속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좌파 포퓰리즘 성향은 여전히 두드러졌으며, 메넴 정부 시기에 도입했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며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페론주의와 결합하였다. 또 성소수자 인권 증진과 낙태 허용 등 진보적인 사회 정책을 거침없이 추진했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자잘한 흠결도 더러 있었지만 어쨌든 망해가던 경제를 되살려낸 것만으로도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국민의 열성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재임 중 치러진 총선에서도 압승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로 인해 당내에선 메넴 정권의 신자유주의 기조를 옹호하는 중도우파 메넴주의 세력이 힘을 잃고, 점차 진보 좌파 성향이 짙은 이른바 키르치네르주의가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당내 좌파인 이들 키르치네르주의자들은 현재도 당의 주류 세력이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경제 위기를 극복한 실력파 정치인이라는 호평을 받고, 재임 내내 과반의 국정지지율을 기록하였다. 그는 재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국민의 환송을 받으며 2007년 퇴임했다. 대신 2007년 대통령 선거에는 그의 아내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가 후보로 지명받아 출마하였는데, 남편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높았기에 정책 계승을 내건 그녀는 45.28%를 득표하여 무난히 당선되었다. 이 당선으로 키르치네르 부부는 역사상 최초의 '민주적 선거로 탄생한 부부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는 전임자인 남편에 비해 국정 운영 면에서 여러 허점을 노출하였고, 2008~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경기 침체가 불어닥치면서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하며 정치적 위기를 맞는 듯했다. 다행히 경제가 2010년 들어 되살아나기 시작하면서 경제성장률이 고공행진을 기록했는데, 이 와중에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남편 네스토르가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경기 회복과 남편에 대한 전국적 추모 분위기 속에 크리스티나는 201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 1차 투표에서 54.11%라는 과반 득표로 결선 없이 당선을 확정지으며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집권 2기에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정부는 1기 초반의 경제 위기보다 더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남편의 정책 기조를 계승하면서 페론주의 좌파 성향에 해당하는 정책들을 쏟아냈으나 지나친 포퓰리즘과 언론 통제로 여러 번 구설수에 올랐으며, 독재를 꿈꾸며 권위주의 행보를 보이려 한다는 지적도 받았다. 경제난 속에 2014년 결국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뒤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며 수출업계에 불황이 닥치면서 경제성장률은 0%대로 추락했고, 인플레이션이 점점 심해지면서 고물가에 서민 경제가 신음하기 시작했다. 지지율은 다시 급락했고 레임덕에 빠졌다. 그럼에도 남편 네스토르에 대한 국민의 향수가 여전한데다 아르헨티나 정치권에서 키르치네르주의를 필두로 한 페론주의 진영의 영향력이 무시 못할 수준으로 광범위해진 상황이라 차기 선거에서 정권 재창출을 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시절부터 그를 중심으로 하는 좌익 정파 '승리를 위한 전선'이 당내 우익 정파와 마찰을 빚으며 제대로 결집하지 못했고, 페론주의 우파 인사인 세르히오 마사 전 경제부 장관과의 관계 회복에도 실패하는 등 분열과 갈등을 수습하지 못한 채로 대선에 임하게 됐다. 2015년 대통령 선거에서 다니엘 시올리를 후보로 내세웠으나, 페론주의를 비판해온 중도우파 공화주의제안당마우리시오 마크리 후보가 당선되어 정권 교체를 달성하면서 2001년 이래로 15년 가까이 유지해온 집권당 지위를 내려놓았다.

3.4. 현재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페론주의 좌파인 키르치네르주의 정권의 포퓰리즘을 해소하고 아르헨티나 경제의 고질병인 과도한 정부 지출, 초인플레이션, 페소화 가치 하락 등을 해결할 대안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았으나 실제로 집권 4년 동안 그의 정책은 쓰러져가는 아르헨티나 경제를 전혀 되살리지 못했다. 전기세와 가스 요금, 공과금 등을 급하게 인상하다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냈으며,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도 자국의 금리를 내려 자본 유출을 심화해버렸다. 연금 개혁과 노동시장 규제 완화 역시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게다가 연이은 정책 실패로 국민의 국정지지도가 급락하자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경제적 우파의 소신을 접고 재정 완화 기조로 돌아섰는데, 이미 초인플레이션과 화폐 가치 하락이 급격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확장 재정은 이도저도 득을 보지 못했다.

마크리 정부 집권기 내내 야당으로서 이러한 실정을 사실 자신들이 원인 제공은 더 많이 해놓고 맹렬히 비판하였고, '승리를 위한 전선'을 개편해 '모두의 전선'이라는 새로운 선거연합을 결성했다. 이 선거연합의 후보로 2019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알베르토 페르난데스가 재선에 도전한 마크리 대통령을 꺾고 당선되어 4년여 만에 재집권하였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은 이 선거에서 페르난데스 후보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출마해 함께 당선되었다.

전임 마크리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고 경제를 되살리겠다며 호기롭게 집권하긴 했는데(...) 아르헨티나 경제는 여전히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초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며 인플레이션율이 전년 동기 대비 100%가 넘어가는 현상이 일상이 되어버렸고, 이에 대응해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겠다며 금리를 100% 안팎으로 대폭 올리는 막장급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화폐인 페소화는 휴지조각 수준으로 그 가치가 폭락했으며, 오히려 미국 달러화가 더 가치 있는 화폐로 대우받는 중(...). 이런 난국을 좌파 포퓰리즘 성향의 페르난데스 정부가 제대로 헤쳐나갈 리 만무한 상황이다. 당연히 정부의 국정지지도는 바닥. 결국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 선거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하며 재선 도전을 포기했다. 그의 재선 불출마에 일각에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부통령의 출마설이 나돌았으나, 그녀도 끝내 출마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더 악화되는 경제 위기 속에 2023년 10월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존의 정당연합 '모두의 전선'을 개편해 '조국을 위한 연합'을 결성했으며, 이 정당연합의 후보로 한때 당내 우파 인사였고 현재 신당 '회복 전선' 소속인 세르히오 마사 경제부 장관을 선출했다. 다만 '조국을 위한 연합' 소속 예비후보들의 득표 총합이 각 당의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개방형 국민참여경선 'PASO'(8월 13일)에서 신생 정당연합 '자유 전진', 중도우파 야당연합 '변화를 위해 함께'에 이어 3위에 그치며 쉽지 않은 선거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런데 2023년 10월 22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자신들의 연합이 내세운 세르히오 마사 후보가 36.69%를 득표해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하며 페론주의 지지층이 탄탄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PASO에서 깜짝 1위를 해 충격을 준 뒤로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1위에 오르며 접전우세를 보이던 극우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 자유전진 후보는 29.99%를 차지해 2위에 그쳤다. 한 달여 뒤로 예정된 결선투표에서 마사 후보와 밀레이 후보 간 양자대결이 예정되어 있다.

2023년 11월 19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마사 후보가 44.3%를 득표하며 2위를 기록, 55.7%를 득표한 밀레이 후보에게 패해 낙선했다. 이에 따라 밀레이 당선인이 취임하는 12월 10일부터 야당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4. 이념과 성향

페론주의포퓰리즘을 바탕으로 좌우를 말 그대로 모두 포괄하는 빅 텐트 정당이다. 페론주의로 대동단결 다만 현재는 좌파 정당에 가깝긴 하다. 후술되어 있지만 2003년 이후 신페론주의라고 불리기도 하는 키르치네르주의자들이 당 주류를 차지했기 때문.

역사적으로 보면 당의 이념과 성향, 노선은 하나로 규정하기 매우 어렵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의 중심 가치인 페론주의를 창시한 후안 페론부터가 좌우를 오락가락하는 정치적 행보와 결단을 반복했기 때문. 이로 인해 그의 정치적 후계자들이 좌우 어느 쪽에 해당하는 정책을 추진해도 "이건 페론 각하의 이러저러한 신념과 정책을 계승하는 것이다!", "페론도 생전에 이러저러한 정책을 한 적이 있다!"라고 합리화하기에 아주 좋은 빌미를 제공해버렸다.[9]

이러다보니 페론주의를 큰 틀에서 동의하기만 하면 당원이 되다보니 여러 이념을 가진 인물들이 뒤섞여있는게 현실인데, 21세기 들어 네스토르와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 대통령 부부의 12년 집권 동안 대두된 키르치네르주의는 중도좌파 성향이며, 그 이전에 집권한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의 집권기에 대두된 메넴주의는 중도우파 신자유주의 성향을 띤다. 게다가 지금은 철저한 비주류가 되었지만 후안 페론이 살아있을 시기 초창기 형태의 정통 페론주의 세력은 파시즘에 비유될 정도의 우익~극우 성향을 띄었다. 1970년대 군부를 몰아내고 페론이 재집권하던 시기에 몬토네로스와 같은 극좌 성향의 혁명 페론주의 세력과, 호세 로페스 레가와 같이 반공주의 성향을 띄는 극우주의자도 페론주의자임을 표방했다. 한편 한 마디로 페론주의라는 말만 갖다붙여놓고 실질 내용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페론 시절에는 페론주의 항목에도 있지만 페론 스스로가 복지 제도에 우호적이거나 세속주의, 원주민 배려 등 좌파적인 정책도 제법 도입했지만 정작 공산당은 탄압하고 일부 나치 망명자들을 받아들이는 이중적인 면모도 보였다.[10] 허나 스페인 내전 시절 좌파 망명객들이나 나치에 탄압받던 유대인, 집시들도 잘 받아들였으며,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의 우파 군사정권 시절엔 되레 이쪽이 탄압받은 역사도 있기 때문에 우파 정당이라고 보기도 뭐하다.

때문에 일종의 빅텐트 정당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특히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속에서 페론당은 여러개의 정당으로 분당되었고[11], 이후 좌파 성향의 페론당 당원과 우파 성향의 당원이 따로 당을 차렸기 때문에, 지금 와선 페론주의 정당을 총괄해서 좌파니 우파니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얘기나 다름없다. 단지 오늘날 들어선 좌파 성향의 정당이 세가 세다보니까 좌파로 분류되는 것이다.

특히 2천년대 네스토르 카를로스 키르치네르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 시기 각종 반신자유주의, 좌파 정책을 내걸면서 성과를 보고 높은 지지를 얻었기 때문에 오늘날엔 좌파 페론주의자들이 당의 주도권을 잡고 가는 경향이 있다. 다만 중도파와 우파 페론주의자들이 따로 정당을 차려서 출마하는 것은 여전했기 때문에 2019년 선거에서도 두 개의 정파로 따로 출마했다. 걍 이쯤되면 분당하는게 맞지 않나

5. 정당연합

아르헨티나 정치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페론주의의 본류로서 가장 큰 페론주의 정당이기 때문에, 페론주의 정당들의 우두머리 격으로 이와 관련한 정당연합을 항상 주도해왔다. 1973년 후안 페론의 귀국과 세 번째 대선 도전 때는 '정의자유전선'이라는 정당연합을 이끌었고, 이후 20세기 들어 카를로스 메넴네스토르 카를로스 키르치네르의 독자 출마를 계기로 여러 개의 선거연합으로 분열되었다. 이는 현재까지 이어져, 지금도 당내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뭉친 계파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선거연합을 결성해 따로 출마하는 후보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2003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권을 잡은 뒤 12년간 재임한 키르치네르 부부의 영향으로 당내 좌파 이념인 키르치네르주의와 이들 부부의 선거연합 정파인 '승리를 위한 전선'이 당의 전면에 대두되었으며, 이는 2017년 총선을 앞두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의 주도로 '시민의 통합'으로, 다시 2019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 후보와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 부통령 후보의 주도로 '모두의 전선'으로 계승되었다.

2023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모두의 전선'은 '조국을 위한 연합'으로 개칭되었다. 당내 주류 계파인 키르치네르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연합인 만큼 페론주의 좌파 성향이다.

6. 기타

페론주의가 워낙 아르헨티나 정치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기에, 페론주의자들 중에는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다. 다음은 본 문서의 정의당과 이 당이 주도하는 '조국을 위한 연합' 외에 페론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들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페론주의를 표방한다는 점만 같지 각 정당들의 성향은 천차만별이라는 점에서 유의.


[1] 현재 당내 주류 계파.[2] 정당연합의 명칭은 자주 바뀌고 있어, 2003년부터 2017년까지 승리를 위한 전선(FPV)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시민단결(CU),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모두의 전선(FdT)를 사용하다 현재는 조국을 위한 연합(UP)라는 명칭으로 활동하고 있다.[3] 파르티도 후스티시알리스타[4] 저스티셜리스트 파티[5] 후스티시알리스모[6] 저스티셜리즘[7] 후스티시아[8] ~이스모[9] 후안 페론 외 그의 아내인 에바 페론도 페론주의계에선 제법 내세우는 인물이다.[10] 페론은 항목에도 있듯 노동당을 창당하였지만 소싯적엔 베니토 무솔리니의 영향도 같이 받았던데다가 쿠데타로 실각당한 이후로는 독재자 프랑코 체제하의 스페인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등 극우 인사들과도 연줄이 제법 있었다. 웃긴건 이 시절 체 게바라랑도 교류하면서 서로를 동정하기도 했다.[11] 사실 90년대 페론당은 성향적으로는 좌우 당원들이 골고루 섞여있었지만, 당시 대통령인 카를로스 메넴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대대적으로 도입하다보니 이때 한정으론 우파정당이라고 해도 큰 손색이 없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