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21:25:10

제트추진연구소

{{{#!wiki style="margin: -5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gcolor=#000><table bordercolor=#000> 파일:NASA 로고.svg NASA
산하 시설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에임스 연구 센터
(ARC)
암스트롱 비행 연구 센터
(AFRC)
글렌 연구 센터
(GRC)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GSFC)
제트추진연구소
(JPL)
<rowcolor=#fff> 존슨 우주 센터
(JSC)
케네디 우주센터
(KSC)
랭글 연구 센터
(LaRC)
마셜 우주 비행 센터
(MSFC)
스테니스 우주 센터
(SSC)
}}} }}} }}} ||

제트추진연구소
Jet Propulsion Laboratory
파일:JPL_RedBlack_rgb_stacked_5in_160601.width-1024.png
설립 1936년 10월 31일
소재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디렉터 Laurie Leshin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로고
파일:JPL-logo-black.svg
위치

1. 개요2. 역사3. 폰 카르만 강연4. JPL이 등장하는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Site_du_JPL_en_Californie.jpg

NASA의 우주선들을 만드는 연구소. 현재는 NASA의 행성과학 부서에서 쓰는 행성 탐사선을 개발, 운용하고 있으며, 장차 유인 소행성, 화성 탐사에 쓰일 장비들도 연구하고 있다. 나사에 버금가는 명성을 가진 유명한 곳이다.

캘리포니아패서디나와 라 카냐타에 걸쳐 있으며, 형식상 NASA의 산하에 있으나[1] 실제 운영은 Caltech이 담당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운영되는 방식과 동일한 것으로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정부 외 기관이지만, 관련 법과 규정에 의한 정부출연(즉, 물주가 정부이다) 기관이며, 이에 따라 정부의 인사통제에 의하여 운영된다. 한국의 준정부기관인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소속 연구원들이 공무원 규정과 유사한 연구소 자체 규정에 의하여 행동이 제약되는 것을 고려하면, JPL의 운영 방식을 이해하기에 편리하다.

2. 역사

파일:external/eandscaltech.files.wordpress.com/p-9007a_.jpg

JPL의 전신이었던 Caltech의 로켓동아리 (1936년 11월 15일, 왼쪽으로부터 루돌프 쇼트(Rudolph Schott), 아폴로 스미스(Apollo Milton Olin Smith), 프랭크 맬리너(Frank Malina), 에드워드 포먼(Ed Forman), 잭 파슨스(Jack Parsons))

1936년 캘텍 대학원생 프랭크 맬리너(Frank Malina), 잭 파슨(Jack Parsons), 웰드 아놀드(Weld Arnold), 아폴로 스미스(Apollo M. O. Smith), 에드워드 포먼(Edward S. Forman), 첸쉐썬(錢學森) 등이 만들었던 로켓 동아리가 전신이다. 회장은 프랭크 맬리너였다. 이들은 자작 로켓을 만들며 패서디나 인근 아로요 세코에서 날렸는데, 로켓 실험이 상당히 위험해서 팀원이 위기에 처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동아리의 별명은 suicide squad 였다.

이들의 지도교수 테오도르 폰 카르만[2]이 동아리를 정식으로 학교 연구소로 편입하여, 제트추진연구소라고 이름붙였다. 실제로 로켓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로켓 연구소"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1930년대 당시 로켓이라는 단어가 양판소 SF 물에서 남용되어 싸구려 냄새가 났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었다.[3] 하지만 이 기관은 설립 당시부터 제트엔진이 아니라 로켓엔진만을 연구했다. 다만 로켓 엔진은 어차피 제트 엔진(제트추진)의 일종이다.

한편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로켓무기의 중요성을 인식한 미 군부는 이 연구소를 적극 지원했고, 연구소는 캘텍이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지만, 형식상 캘텍 산하에서 거액의 연구비를 대는 물주인 미육군 소속이 되었다.[4] 연구소는 학내에서 로켓 관련 연구를 하다가 폭발사고를 여러번 일으켰기 때문에, 안전상 학교와 좀 떨어진 아로요 세코로 옮겼다.

2차대전 당시 이들은 주로 항공기용 로켓 부스터(JATO)와 전후에 전력화된 커퍼럴 지대지 미사일 등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V2를 실전에 투입한 나치 독일에 비해서는 매우 뒤떨어져 있었고, 나중에 베르너 폰 브라운이 미국에 투항하자 미국 우주개발의 방향은 JPL출신보다는 폰 브라운의 입김이 작용한다. 어쨌든 JPL에서 양성된 인력들과 브라운 및 나치독일의 기술, 천조국의 무지막지한 돈지랄이 합쳐져서 미국은 스푸트니크보스토크로 앞서나가던 소련을 따라잡고 아폴로 계획으로 소련보다 먼저 달에 착륙한다.

원래부터 상상력의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공상적인 연구가들은 대체로 성향상 진보적이었고 사회주의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매카시즘 시대에 여러명의 종사자가 감옥에 가거나 쫓겨난 불상사도 있었다. 설립자이자 제2대 소장인 프랭크 맬리너는 유럽에서 도피성 외유를 했고, 첸쉐썬은 비밀취급 자격을 박탈당한채 연금생활을 하다가 중국으로 추방되었으며[5] 이들의 지도교수이자 제1대 연구소장인 폰 카르만(Theodore von Kármán)도 육군 항공대 총사령관 헨리 아놀드 원수의 고문이었음에도 여러번 FBI에 의해 조사받았았다.

1950년대 이후 우주 경쟁이 본격화되고 나사가 설립되자 미육군에서 NASA소속으로 이관되어 나사의 여러 장비들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운영에는 전현직 미군/국방부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심지어 1980년대 SDI가 화두에 오를 적에는 NSA 국장을 지내고 공군참모총장으로 예편한 루 앨런 장군을 연구소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3. 폰 카르만 강연



2016년 7월 강연 : 돈 탐사선세레스, 베스타, 이온 엔진을 다루고 있다.

JPL에서는 주요 연구원, 책임자들이 강단에 서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 강연을 개최하고 있다. 이름하야 폰 카르만 렉처(Von Karman Lecture)로, 유튜브나 USTREAM, JPL 홈페이지에서 생중계도 진행된다. 다만 JPL의 본분이 행성과학, 행성 탐사선 개발인지라 아무래도 주제는 유인 우주선보다 행성간 무인 탐사선에 치중하는 경향은 있지만 허블 우주 망원경,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같이 JPL이 아닌 미션 컨트롤에서 다루는 떡밥도 자주 올라오고 유인 소행성, 화성 탐사 같은 화끈한 주제도 올라온다. 보통은 쉽게쉽게 설명하는 편이라 웬만큼 해당 주제를 섭렵해본 덕후 사람이라면 무자막으로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 잘 찾아보자.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지루하다 지루하다는 지적이 있어서인지 가끔 위의 돈 미션처럼 개드립이 빵빵 터지는 강연도 있다. 참고로 저 분 중증 트레키다. 스타트렉 50주년 특집기사에서 JPL 대표로 덕밍아웃하셨...

강연 목록은 JPL 아카이브 참조. 유튜브에도 올라오긴 하지만 유스트림보다 며칠 늦게 올라오는 편이다. 강연이 끝나면 마이크에 줄서서 질문을 하는데 몇개씩 강의를 보다보면 몇달 전에 온 우주덕이 또 와서 질문 던지기도 하고 개중엔 거의 JPL 죽돌이(...)들도 있다.[6] 또한 외국인들[7]도 많이 오는데 문제는 이들이 영어를 버벅거려서 온갖 브로큰 잉글리시로 손짓 발짓 섞어가며 눈물겨운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박사님들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해주신다(...) 현지 시간 기준으로 매월 셋째 목요일 저녁에 열리는게 보통이지만 연구원들의 스케줄이나 NASA 행사 일정에 따라 한주씩 앞당겨지거나 미뤄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가끔 빅 이벤트가 있는 경우 그 시기에 맞춰 강좌를 배정한다. 예를 들어 2016년 9월에는 카시니-하위헌스 그랜드 피날레 특집[8]으로 진행되어 많은 우주덕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4. JPL이 등장하는 대중매체

NASA의 우주선이 등장하는 대다수의 매체에서 등장한다. 다만 현실의 JPL과는 좀 다르다. NASA의 외부 천체 탐사용 우주선은 모두 무인 탐사선들이다.왜냐하면 유인 탐사선이 무인 탐사선보다 나은 점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1] 사실 21세기 들어서는 흔히 생각하는 우주선과 우주 탐사기구들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나사의 모습은 이쪽이다. 나사는 그걸 관리감독하는 일만 하며, 미항공우주국이라는 이름에 맞게 항공기 쪽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우주탐사 같은 비생산적인(...) 일에 총력을 다하기는 힘들다.[2] 카르만 효과의 발견자로 잘 알려져 있다.[3] 현재로 비유하자면, 어떤 연구소가 "워프 연구소"나 "UFO 연구소"라는 이름을 가진다면, 아마도 이런 연구소가 진지한 연구를 한다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워프 연구소는 진지한 것 같은데?[4] 당시 공군은 육군항공대라는 이름으로 육군의 하부기관이었다. 하지만 이 연구소의 후원자는 육군항공대의 사령관이자 후에 공군 원수로 영전하는 헨리 아놀드 장군이었다.[5] 첸박사는 이후 마오쩌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중국의 우주개발을 주도하였다.[6] 장소가 장소라 청중들 중에는 캘텍 학생 내지는 교직원과 가족, 교내외 인근 시설 임직원들이 많다.[7] 젊은 사람이라면 높은 확률로 캘텍 유학생이다.[8] 2017년 9월에 토성 대기에 진입하며 미션을 마감할 예정이다. 즉, 2016년 9월부터는 카시니에겐 마지막 1년이 시작하는 셈이다.[9]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지만, NASA 국장으로부터 6개월 정도 걸릴 로켓 제작 일정을 3개월로 줄이라는 지시를 받는다. JPL 소장을 비롯한 구성원 전체가 경악했지만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서는 정말 어쩔 수가 없어서 미친듯한 철야 작업으로 진짜 3개월 만에 로켓을 만들었다. 이 계획은 결국 실패했지만, 패스파인더를 통한 통신망 개통이나 화성 로버와 상승선 개조작업에 큰 도움을 줘서 주인공의 생존에 많은 보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