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직할시 제13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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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호 | 이정무 | 박준규 | 문희갑 | ||
서 을 | 북 | 수성 | 달서 | ||
최운지 | 김용태 | 이치호 | 김한규 | ||
* 서 갑 정호용 사퇴 (1990.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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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 항목은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의 대구직할시 지역구 선거 결과를 정리하는 항목이다. 선거구는 가나다순이 아니라 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된 순서로 한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쓰는 공식 발표법이기 때문이다.2. 결과
13대 총선 대구직할시 지역구 결과 |
민주정의당 |
8석 |
3년 전 총선까지 야권 표심이 만만치 않았던 대구가 직전 대선을 거치면서 완벽한 보수 여당의 텃밭으로 바뀌었다. 김현규, 목요상, 유성환, 윤영탁 등 통일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모두 민정당 후보들에게 큰 표 차로 패했고, 해산 직전인 한국국민당을 지키던 달서의 이만섭 의원도 반전 없이 낙선했다.
2.1. 중구
자세한 내용은 중구(대구 선거구) 문서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중구 대구 중구 일원[1]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유수호(劉守鎬) | 47,594 | 1위 |
| 56.87% | 당선 | |
2 | 김현규(金鉉圭) | 31,660 | 2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37.83% | 낙선 | |
3 | 구영(具永) | 549 | 5위 |
[[평화민주당|]] | 0.65% | 낙선 | |
4 | 이수만(李守萬) | 2,783 | 3위 |
[[신민주공화당|]] | 2.32% | 낙선 | |
5 | 서병환(徐秉煥) | 1,099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3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05,892 | 투표율 79.58% |
투표 수 | 84,269 | ||
무효표 수 | 584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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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유수호 후보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판사로써 소신있는 판결을 내려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고, 변호사 시절에도 무료 변론 등 사회활동에 앞장섰다. 다만 본격적인 정계입문 때는 경북고 동기인 노태우, 김윤환, 정호용 등과의 인연으로 인해 민정당을 선택했다.
민주당은 구미시-군위군-칠곡군-선산군 선거구에서 3선을 기록한 야권 중진인 김현규 의원을 공천했다. 김현규 후보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민정당 실력자인 김윤환을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데, 하필 대구의 중심지인 중구 선거구에 마땅한 거물 후보가 없자 지역구를 옮겨 출마했다.
유수호 후보가 19% 차이로 승리했다.
2.2. 동구
자세한 내용은 동구(대구 선거구) 문서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동구 대구 동구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준규(朴浚圭) | 85,854 | 1위 |
| 54.92% | 당선 | |
2 | 목요상(睦堯相) | 46,725 | 2위 |
[[통일민주당|]] | 29.89% | 낙선 | |
3 | 안병달(安柄達) | 2,163 | 5위 |
[[평화민주당|]] | 1.38% | 낙선 | |
4 | 최규태(崔圭泰) | 16,230 | 3위 |
[[신민주공화당|]] | 10.38% | 낙선 | |
5 | 권영식(權寧植) | 5,350 | 4위 |
[[한겨레민주당|]] | 3.4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04,483 | 투표율 77.08% |
투표 수 | 157,607 | ||
무효표 수 | 1,285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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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에 의해 정치규제를 당한 박준규 전 의원은 제13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민정당에 입당했고 대구 동구 선거구에 공천을 받는다. 민주당은 현역 의원인 목요상 후보를 공천했다.
대구가 워낙 민정당 강세 지역이고, 박준규 후보도 거물인지라 상대인 민주당 목요상 후보를 두 배 가까운 격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2.3. 서구 갑
자세한 내용은 서구 갑(대구) 문서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서구 갑 내당1동, 내당2동, 내당3동, 내당4동, 비산4동, 평리2동, 평리4동, 평리5동, 상이동, 중리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호용(鄭鎬溶) | 52,847 | 1위 |
| 54.34% | 당선 | |
2 | 서훈(徐勳) | 19,242 | 3위 |
[[통일민주당|]] | 19.79% | 낙선 | |
3 | 양의강(梁義網) | 884 | 5위 |
[[평화민주당|]] | 0.91% | 낙선 | |
4 | 백승홍(白承弘) | 22,234 | 2위 |
[[신민주공화당|]] | 22.86% | 낙선 | |
5 | 김현근(金顯根) | 2,044 | 4위 |
| 2.1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23,691 | 투표율 79.16% |
투표 수 | 97,919 | ||
무효표 수 | 668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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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과 현직 노태우 대통령의 육사 11기 동기이자, 전두환 정부 시절 육군참모총장, 내무부장관, 국방부장관 등을 지낸 정호용 예비역 대장이 민정당 공천을 받았다. 민정당 텃밭인 대구에 공천을 받았고, 본인도 거물인지라 손쉽게 승리했다.
문제는 당선 이후에 터진다. 정호용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육군특수전사령부 사령관으로써 진압 작전에 적극 참여했기에, 광주 특위를 거치면서 5공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많은 지탄을 받는다. 정호용은 결국 정권 이미지 악화와 3당 합당 과정에서 발생할 차질을 우려한 노태우 정부의 압박을 받고[2] 반강제적으로 의원직을 사퇴한다. 보궐선거에서는 민자당 문희갑 후보가 당선됐다.
한편 이 선거에서 2위로 낙선한 백승홍 후보는 이후 꼬마민주당, 민주당을 거치며 1990년 재보궐선거와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낙선하다가 무소속으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을 지냈으며[3], 3위로 낙선한 서훈 후보는 고향이 있는 동구 을로 지역구를 옮겨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석패했다가 1993년 재보궐선거, 15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재선 의원을 지냈다.
2.4. 서구 을
자세한 내용은 서구 을(대구) 문서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서구 을 비산1동, 비산2·3동, 비산5동, 비산6동, 비산7동 평리1동, 평리3동, 평리6동, 원대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최운지(崔雲芝) | 43,324 | 1위 |
| 49.15% | 당선 | |
2 | 유성환(兪成煥) | 30,575 | 2위 |
[[통일민주당|]] | 34.69% | 낙선 | |
3 | 신달선(辛達善) | 5,391 | 3위 |
[[신민주공화당|]] | 6.12% | 낙선 | |
4 | 서중현(徐重鉉) | 2,333 | 5위 |
[[한겨레민주당|]] | 2.65% | 낙선 | |
5 | 이종섭(李宗燮) | 4,785 | 4위 |
[[한국국민당(1981년)|]] | 5.43% | 낙선 | |
6 | 최영(崔渶) | 1,730 | 6위 |
| 1.9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2,586 | 투표율 79.01% |
투표 수 | 88,949 | ||
무효표 수 | 811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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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도만 놓고 보면, 현역 전국구 의원인 민정당 최운지 후보보다 현역 지역구 의원인 민주당 유성환 후보가 앞섰다. 게다가 유성환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노신영 국무총리에게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가, 정권이 면책특권을 무시하고 구속해가는 바람에 유성환 국시론 파동의 주인공이 되어서 더 유명세를 탔다. 또한 최운지 후보는 야당인 신민당에서 여당인 민정당으로 갈아탄 철새 정치인이라는 약점도 있었다.
투표 결과, 민정당 최운지 후보가 인지도에서 밀렸지만 보수적인 민정당이 우세한 지역 정서를 등에 업고 여유있는 표차로 승리했다.
2.5. 남구
자세한 내용은 남구(대구 선거구) 문서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남구 대구 남구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정무(李廷武) | 55,611 | 1위 |
| 41.88% | 당선 | |
2 | 성만현(成萬鉉) | 14,440 | 4위 |
[[통일민주당|]] | 10.87% | 낙선 | |
3 | 송효익(宋孝翼) | 1,839 | 5위 |
[[평화민주당|]] | 1.38% | 낙선 | |
4 | 김해석(金海碩) | 42,540 | 2위 |
[[신민주공화당|]] | 32.03% | 낙선 | |
5 | 신진욱(申鎭旭) | 18,352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3.8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8,551 | 투표율 79.37% |
투표 수 | 133,772 | ||
무효표 수 | 990 |
이정무 vs 김해석 1Round
민정당은 기업가이자 정치신인인 이정무 전 대구백화점 사장을 공천했다. 하지만 공화당 김해석 후보도 2번이나 낙선했지만 유의미한 지지율을 얻었고, 동정여론을 기대할 수 있는 무시못할 후보였다. 대경권 최대의 중등교육기관 사학법인인 협성교육재단의 이사장인 신진욱 전 의원도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이정무 후보가 9.8% 차이로 김해석 후보를 꺾고 처음 당선되었다. 김해석 후보는 대구에서 당세가 약한 공화당 후보치고는 꽤 선전했지만, 3번째 패배를 맛봐야 했다. 4년 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설욕전에 성공한다.
2.6. 북구
자세한 내용은 북구(대구 선거구) 문서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북구 대구 북구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용태(金瑢泰) | 68,064 | 1위 |
| 46.04% | 당선 | |
2 | 박승국(朴承國) | 62,293 | 2위 |
[[통일민주당|]] | 42.14% | 낙선 | |
3 | 서정식(徐正植) | 14,136 | 3위 |
[[신민주공화당|]] | 9.56% | 낙선 | |
4 | 서정달(徐正達) | 3,314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2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98,046 | 투표율 75.35% |
투표 수 | 149,226 | ||
무효표 수 | 1,419 |
현역 재선 의원인 민정당 김용태 후보가 민정당 텃밭인 대구에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민주당 박승국 후보와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박승국 후보는 현역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등을 지냈으며 지역에서 예식장을 경영하는 재력가이기도 했다.
결국 김용태 후보가 겨우 이기면서 민정당이 대구 관내 8개 선거구를 모두 석권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1위와 2위와의 격차가 3.9%밖에 나지 않았으며, 이는 8개 선거구 중 가장 적은 격차였다.
2.7. 수성구
자세한 내용은 수성구(선거구) 문서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수성구 수성구 일원[4]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치호(李致浩) | 66,731 | 1위 |
| 44.64% | 당선 | |
2 | 윤영탁(尹榮卓) | 50,184 | 2위 |
[[통일민주당|]] | 33.57% | 낙선 | |
3 | 이상희(李尙熹) | 21,727 | 3위 |
[[신민주공화당|]] | 14.53% | 낙선 | |
4 | 이강철(李康哲) | 8,459 | 4위 |
[[한겨레민주당|]] | 5.65% | 낙선 | |
5 | 권만성(權萬晟) | 2,366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5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98,674 | 투표율 75.90% |
투표 수 | 150,715 | ||
무효표 수 | 1,248 |
80년대 후반 수성구는 대구의 신흥 중산층 거주지로 떠오르고 있었다. 따라서 대구의 중심인 동성로가 있는 중구 선거구와 함께 민정당과 민주당이 대구에서 유독 관심을 가진 선거구였다.
민정당 이치호 후보와 민주당 윤영탁 후보 모두 관료 출신의 현역 의원으로, 안정을 추구하는 이곳의 중산층 성향에 부합하는 후보였다. 4개월 전 대선 때보다는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결국 민정당 텃밭이라는 이점을 살린 이치호 후보가 승리한다.
2.8. 달서구
자세한 내용은 달서구(선거구) 문서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달서구 달서구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한규(金漢圭) | 57,434 | 1위 |
| 42.41% | 당선 | |
2 | 권병태(權炳台) | 25,806 | 3위 |
[[통일민주당|]] | 19.05% | 낙선 | |
3 | 이왕식(李旺植) | 1,101 | 5위 |
[[평화민주당|]] | 0.81% | 낙선 | |
4 | 임갑수(任甲壽) | 5,353 | 4위 |
[[신민주공화당|]] | 3.95% | 낙선 | |
5 | 최한별(崔한별) | 972 | 6위 |
| 0.71% | 낙선 | |
6 | 이만섭(李萬燮) | 44,742 | 2위 |
[[한국국민당(1981년)|]] | 33.0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82,743 | 투표율 74.63% |
투표 수 | 136,379 | ||
무효표 수 | 9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