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김 Jonny Kim | |
<colcolor=#fff><colbgcolor=#005696> 본명 | 조너선 용 김(Jonathan Yong Kim) |
한국명 | 김용 |
출생 | 1984년 2월 5일 ([age(1984-02-05)]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우주 비행사, 조종사, 의사, 군인 |
신체 | 180cm / 75kg |
학력 | 산타모니카 고등학교 (졸업) 샌디에이고 대학교 (수학 / 학사)[1] 하버드 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M.D.) |
미국해군사관학교 (명예 학사) | |
소속 | 미합중국 해군 (2002 - 현재) |
NASA (2017 - 현재) | |
계급 | 소령 |
SNS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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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NASA 소속의 우주 비행사, 조종사, 의사, 미합중국 해군 소령이자 전직 네이비 씰 요원이다. 한국계 미국인 2세로 아르테미스 계획이 성공할 경우 한국계로는 최초로 달을 탐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 생애
2.1. 유년기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태생이며, 아버지는 다른 많은 한인 1세대처럼 생계를 위해 자영업을 했었고, LA 도심에서 주류가게를 했다고 한다.아버지는 알콜중독에 가정폭력을 일삼았으며, "어머니와 동생을 지키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에, 고교 성적이 우수했음에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군 입대를 결심했다. 아버지는 그가 군 입대를 앞둔 2002년 2월 술에 만취해 들고 그와 어머니를 아령으로 폭행하고 집 안에서 총을 쏘다가 경찰이 출동하자, 경찰과 대치하다가 끝내 경찰의 지시를 거부하여 사살되었다고 한다.#
2.2. 네이비 씰 요원
2002년 산타모니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해군에 입대하였다. 해군의무병 A 학교 훈련을 마친 후 BUD/S에 지원해 CLASS 247기로 수료했고, 해군 특수전 훈련을 마친 뒤 SEAL 제3팀 (SEAL Team 3) 에 배치되었다.
특수전 의무[4], 수색·정찰, 스나이퍼, 고공강하, 해상척후조, 고급특수전술 교육 등을 수료했다. 이라크 전쟁에 두 차례 파병하여 알 카에다 상대로 100여 차례의 전투 작전[5]을 수행하였으며 포인트맨, 특수전 의무병, 저격수 등의 다양한 보직으로 활동했다.
당시 조니 김과 복무했던 인물들 중에는, 훗날 유명인이 되는 사람들이 많다. Task Unit Bruiser에서 함께 파병 근무했던 전우로는 <네이비 씰 승리의 기술>의 저자이자 <익스트림 오너십>으로 유명한 조코 윌링크 (Jocko Willink) 소령,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주인공인 전설적인 저격수 크리스 카일 (Chris Kyle, 2013년 사망) 상사[6], 마크 알란 리 (Marc Alan Lee, 2006년 전사) 병장, 케빈 랙츠 (Kevin Lacz) 하사, 명예 훈장 수훈자인 마이클 A. 몬소어 (Michael A. Monsoor, 2006년 전사) 병장 등이 있다. 위 사진에서 조니 김과 함께 있는 인물이 케빈 랙츠.
네이비 씰 요원으로 복무하면서 은성훈장, 동성훈장 (Combat V 약장 포함), 해군/해병대 공로훈장 (Combat V 약장 포함), 전투행동약장 등을 수여했으며 상당히 뛰어난 대원이었다.
2.3. 의사 (미 해군 군의관)
이라크 전쟁 파병 기간 라마디 전투 중 총상을 입어 안면이 박살난 동료 라이언 조브 (Ryan Job)[7]를 응급처치하고 있었는데, 군의관(소령)과 응급 기도 확보에 관한 방법으로 언쟁하다 계급에 밀려 의견을 관철시키지 못했고[8], 결국 군의관이 돌이킬 수 없는 오판을 하게 된다.[9][10] 결국 라이언은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본국에 후송되어 여러차례 수술을 받던 중 사망했다. 전쟁터에서 구르고 구른 베테랑 전투의무병이었던 조니 킴은, 가장 아끼는 동료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비참함과 주먹구구식 전투 현장 군 응급의료에 절망을 느끼고 군의관을 지망, 응급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2차례 파병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한 조니 킴은 STA-21 (Seaman to Admiral Program) 과정을 통한 장교 전환 프로그램에 2009년 합격하였으며[11], 조코 윌링크의 추천서를 받아, 네이비 씰 본부 근처 미 해군 ROTC 프로그램이 개설되어있는 샌디에이고대학교 수학과 (2009-2012)를 3년 만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하였다.[12]
이후 팻 틸먼 장학생에 선정되고,[13] 미 해군 의학외과국 장교 신분으로 하버드 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2012-2016) 을 합격 및 졸업하여 의사 면허 및 학위 (M.D.) 를 취득, 대위 군의관이 되었다.[14][15]
하버드 부속 병원인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및 Brigham and Women's Hospital에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과정을 1년 반 수련하였으며[16], 2022년 3월에 해군 소령으로 진급했다.
2.4. 우주 비행사
하버드 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재학 중에 만난 우주비행사이자 의사였던 스캇 패러진스키로부터 영감을 받고, 우주비행사 후보생으로 지원했다. 당시 그를 포함해 18,300명이 지원하였다.
2017년 6월에 NASA 우주인단 22기 최종 12인에 선발되었다. 2017년 8월부터 약 2년 반 동안 훈련을 받고 2020년 1월 수료하였다. 2025년 3월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으로 향할 예정이다.
2024년 달 착륙을 목표로 하는 아르테미스 계획 17인 후보로 선발되었다. 첫 유인기인 2024년 11월 예정된 2호기 승무원에는 선발되지 못했다.
2.5. 해군 조종사
2022년 미 해군항공교육사령부 (NATRACOM)에서 조종사 훈련을 수료하였으며[17], 비치크래프트 T-6 텍산 II 단독 비행에 성공하였다. 이후 노스롭 T-38 초음속 항공기, 벨 206 헬리콥터 조종에 성공하여 2023년 공식적인 해군항공대 조종사 (naval aviator)가 됐다. 미 해군과 NASA의 지원으로 비행학교에서 모든 훈련을 받고, 항공 군의관 (flight surgeon)과 조종사를 겸하는 미 해군 항공의료 이중지정자 과정 (Aeromedical Dual Designator Program; AMDD)을 수료했다.
3. 기타
- 한국에서는 특수부대 요원-의사-우주비행사-조종사라는 전대미문의 스펙 끝판왕의 인물로 간혹 화제가 되곤 한다.
- '조코 팟캐스트'에 출연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상
- 군에 들어간 계기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력해질 필요가 있어서"였다.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아동 학대로 인해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아버지가 폭력을 행할 때마다 수없이 다짐했다고 한다.
- 대학때 현재의 아내를 만났으며, 슬하에 자녀 셋을 두고 있다.
- 조니 김이 당시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것이 알려졌을 때, 북미 커뮤니티에선 동양인의 성실성과 높은 학업성취도 등의 스테레오타입과 겹쳐 "아시아인들 사이에 새로운 사회적 성공의 기준이 생겼나보군.", "이걸 또 아시안이?", "엄마가 제발 조니 김을 알게 하지 마세요."라는 식의 댓글이 굉장히 많이 달렸었다.영상 조니 김이 불우한 유년기 겪으며 미국에 있는 다수의 동양계들이 흔히 자라는 유복한 환경과 정반대의 환경에서 자랐다는 게 알려지면서, 더욱 고평가 받게 되었다.
- 2021년 명예 훈장 수훈자인 전직 미 해병대 카일 카펜터 (Kyle Carpenter)[18]와 함께 미국해군사관학교 명예 학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22년 8월 28일 방송에서 조니 김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 알쓸인잡 2023년 1월 20일 방송에서 조니 김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1] 네이비 씰 본부에서 매우 가까운 미 해군 ROTC 과정 (NROTC) 협력 대학교이다. 조니 김의 상관이었던 조코 윌링크도 같은 대학 동문이다.[2] 학부 재학 (2009 - 2012) 중에는 미 해군 ROTC 과정 (NROTC) 소속 겸임[3] 2012년 STA-21를 통해 소위 임관, 의대 교육 기간 (2012 - 2016)에는 의학외과국 (BUMED) Medical Corps 소속 예비 군의관 신분이었으며, 졸업과 동시에 대위로 승진하여 정식 군의관이 됐다.[4] 미 육군특수작전사령부 산하 존 F. 케네디 특수전센터학교에서 교육받았다.[5] 대표적으로 라마디 전투[6] 조니 김은 크리스 카일과 Punisher 팀에서 같이 활동했다. 위 사진 가슴에 있는 해골 마크가 바로 Punisher 마크다.[7]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극중 비글스[8] 당시 조니 김은 20대 초반의 병장에 불과했다.[9] 라이언은 왼쪽 볼에 총상을 입어서 광대뼈가 함몰된 상태라 NPA(코 인두 기도 확보, 흔히 알려져 있는 기도 삽관을 의미한다.)를 하면 안됐는데 (현장 환경도 좋지 못했다.) 조니 김이 총기 안전 검사를 받으러 간 사이 NPA를 강행했다. 심각한 안면 골절이 있으면 윤상갑상연골절개술(cricothyroidotomy) 등 침습적 방법을 통해 경부로 직접 airway를 만들어줘야한다.[10] 당시 조니 김은 라이언의 상태를 보고 당장 라마디 캠프로 후송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장교와 목소리를 높여 말다툼을 했지만 상술한 계급 차이 때문에 밀리고 말았다.[11] 미 해군의 간부사관 제도로 말 그대로 “수병에서 제독까지”라는 프로그램이다. 2013년 기준 핵잠수함 병과를 제외하고 합격률이 3.5%에 달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며, 국비 지원으로 대학 학위를 취득하게된다. 미 해군 ROTC (NROTC) 과정을 통해 신분 전환하게된다.[12] STA-21 제도를 통해 병에서 장교 신분으로 전환하려면, 3년 내에 졸업해야한다. 때문에 군 생활만큼이나 힘든 시기였다고하며, 생활비 충당을 위해 학교 주차요원으로 파트타임 근무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현재의 아내를 만났다고 한다.[13] NFL 선수 출신 아프간 전쟁 영웅으로, 아군 오인 사격으로 인해 전사한 뒤, 틸먼을 군 입대 선전도구로 삼던 군 당국이 이를 덮으려했었다. 팻 틸먼 장학금은 현역 및 제대 군인들의 대학 공부를 지원하는 경쟁률 높은 프로그램이다.[14] 의사 면허를 취득한 장교는 대위 (O-3)로 자동 진급한다.[15] 여담으로 이때 전쟁터와 다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아내와 첫째 아이를 신경쓰기 위해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운동과 공부를 병행했다고 한다.[16] 후술할 NASA 우주인으로 소속을 옮기며, 잔여 수련은 마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 해군 의학외과국의 군의관 과정의 경우, 졸업 후 레지던트 과정 중 1년 이상 수료 (PGY-1)를 의무 규정으로 두고있다. 여담으로 둘째, 셋째 아이가 이 시기에 태어났다.[17] CNATRA라고도 한다. NASA 우주인에 많은 미 해군 출신이 진출하였는데, 군사 조종 경력이 없는 해군들은 CNATRA에서 비행 교육을 수료 받는다. 이후 해군 전투기 조종사 교관이 되기 위해 받는 전문화 교육이 바로, 그 유명한 탑건 프로그램의 후신인 해군항공전개발센터 (NAWDC) 타격전투기 전술교관 (SFTI) 프로그램이다.[18] 아프간 전쟁 중 동료에게 날아오는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한쪽 눈을 잃었으며, 생존자 중 최연소의 기록으로 2014년 메달오브아너 훈장을 받았다.[19] 사이제리야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의 영수증 컵을 만드는 공장에 지원했는데, 스펙이 우주비행사, 외과의사, 그린베레 출신이라는 내용이다. 작은 공장에 취직하기에 오버스펙이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과장되게 만든 설정인데 실제와 비슷하다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