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4:51:34

조선을 떠나며

파일:Wo70Yeq.jpg
1. 개요2. 저서의 가치3. 기록된 내용4. 관련 문서

1. 개요

2012년 12월 5일 역사비평사에서 출판된 이연식 저작의 논픽션.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것과 같이 8.15 광복을 맞은 재한일본인들의 상황을 담은 저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해방의 기쁨을 맞이한 우리의 입장에서 쓰여진 저서들은 많지만, 지배세력 국민들이 식민지에서 맞이한 해방 당시의 심정은 어떠했었는지를 알려주는 저서로서 읽어볼 만한 도서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인 이연식은 1970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한국현대사와 한일관계사를 공부했다. 당시 해방의 상황에서 '불쌍한 집단'을 찾는 중, 해외 귀환 동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으로 <해방 직후의 해외 동포의 귀환과 미군정의 정책>이라는 석사논문을 썼다.

그러다 일본 문부과학성 초청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의 국립도쿄학예대학에서 유학하던 중, 그곳에서 패전 후 일본으로 귀환한 귀환 일본인(히키아게샤)들에 대한 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의 해방 후 한국에서 일본으로 귀환한 일본인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대로 그가 박사논문으로 낸 해방 후 한반도 거주 일본인 귀환 연구 사료가 된다.

2. 저서의 가치

한국인 입장에서는 식민지에서 살다가 간 식민통치국 국민들인 일본인들의 귀환사에 대해 굳이 알 필요가 있는가 반문할 수 있지만, 피지배국이었던 한국의 눈으로 본 해방의 시각과 지배국 국민들이었던 일본인들의 눈과 입장에서 본 해방의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살던 일본인들이 패전을 맞아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갑자기 떨어진 것에 울분을 토하거나 슬퍼하는 이야기 중 상당부분을 비판적 혹은 분석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조선인에 대해서는 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조선에서 모은 재산 대부분을 잃게 된 자신들만 피해자인 것처럼 생각한다든지, 타지에서 자라 본토 일본인과 묘하게 다른 정체성을 가졌지만 동시에 대다수 조선인과 유리된 삶을 살았던지라 조선 땅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서도 조선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낮다든지.

3. 기록된 내용

생소한 만큼 꽤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다. 여기 자세히 나와 있다.

4. 관련 문서


[1] 조선에 살면서도 조선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다.[2] 주로 한국에서 식민지 지배 보상을 요구하면 나오는 카운터였다. 한일기본조약을 맺게 되면서 일본은 공식적으로 일본인이 한반도에 남겨두고 온 자산의 청구권을 포기한다. 한국은 연합국으로부터 제대로 승전국 대우를 받지 못했으므로 상황이 꼬여버렸다. 일본 측도 그걸 알고서 주장한 것이다. 실제로 현대까지도 가끔씩 나오는 주장인데, 당시 이걸 집행한 주체가 미군정이었던 데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도 이를 재확인했기 때문에 그 청구권을 보장하려면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자체를 무효화시키고 미국, 영국, 러시아(소련의 후신이자 소련의 모든 외교 협약을 승계함), 중국 및 대만 등의 구 연합국과 적대행위를 재개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대한 청구권을 주장했으나 미국 국무부가 서한을 보내 '일본은 청구권이 없다'고 명시하자 일본 정부가 급히 한국 외교부에 외교문서를 보내 이 주장을 철회한 사건이 있었다.[3] 이 혼란은 광복 초기라 피할 수 없는 것들이긴 했으나, 일본도 책임이 없다곤 할 수 없다. 마지막에 조선총독부가 돈을 미친듯이 찍어내 뿌린 통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징용, 징병 등으로 중국, 동남아시아, 태평양 등으로 끌려갔던 한국인들이 돌아오면서 주택난이 시작된 것이다.[4] 당시 소방관이 동원된 이유는 일본 제국의 소방대가 일본제국 경찰의 산하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 소방청 내용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