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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9:55:18

존 스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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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33><colcolor=#fff> Apple 제3대 CEO
존 스컬리
John Sculley
파일:존 스컬리.jpg
출생 1939년 4월 6일 ([age(1939-04-06)]세)
뉴욕 주 뉴욕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브라운 대학교 (건축설계 / 학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경영학 / MBA)
직업 기업인
소속 스컬리 브라더스 (파트너)

1. 개요2. 경력
2.1. 펩시콜라2.2. Apple 입사2.3. Apple에서의 행보2.4. Apple 이후
3. 평가4.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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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기업인.

펩시콜라의 사장과 Apple의 CEO를 거쳤다. 학창 시절에 엄청난 스펙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CEO까지 했으면서도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무서워했다고 해서 이걸 극복하려고 일평생 노력했지만 군중 앞에서 위축되는 단점은 잘 고쳐지진 않은 것 같다.

2. 경력

2.1. 펩시콜라

1957년 브라운 대학교에 입학하여 건축설계를 전공하여 1961년 학사 학위를 졸업하였고 같은 해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들어가 1963년에 MBA를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에 펩시콜라에 취직했는데, 이 때 펩시는 한창 코카콜라와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콜라 전쟁'을 진행하고 있던 상태였다. 다만 스컬리가 들어왔을 때까지는 코카콜라가 훨씬 더 우월한 상황을 보이고 있었다. 빠른 승진을 통해 음료수 부서의 책임자가 된 스컬리는 이런 상황을 타개할 필요성을 느끼고 그 유명한 블라인드 테스트펩시 시대 광고를 만들었다. 이 광고를 설명하자면...

이 두 광고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펩시콜라의 매출이 미칠듯한 스피드로 상승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상승해서 코카콜라를 따라잡는가 싶더니 결국 코카콜라를 뛰어넘는 데 성공한다.[1] 그 공헌 덕분에 스컬리는 차기 CEO 후보로 낙점되어 결국 사장 지위에 올라갔다.

2.2. Apple 입사

당시 Apple은 마케팅 쪽에서 뛰어난 인재가 필요하다는 내부 의견에 따라 헤드헌터를 보내 여러 사람들을 포섭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스컬리 역시 마케팅으로 펩시를 바로 세운 일등공신이라는 점 때문에 Apple의 타깃이었다. 때문에 스컬리에게도 헤드헌터를 보내 Apple의 다음 CEO가 되어달라고 했지만 스컬리는 매번 사양했다. 잡스의 사후에 나온 자서전에 나온 스컬리의 언급에 따르면 잡스와 만나기 전부터 어느 정도 관심은 있었다고 한다. 특히 10살 먹은 두 자식들이 잡스의 팬이었던 게 영향을 주었다고. 그래서 Apple 측에서는 꾸준한 접촉과 매킨토시 기술 데모 등을 보여 준 끝에 스컬리가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이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고, 마지막으로 Apple로 들어오게 되는 계기가 될 필살기를 날렸다.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콘도로 스컬리를 초대한 후 Apple의 CEO를 맡아달라 부탁했고, 스컬리가 거절하자 비장의 한마디를 날렸다.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까?
(Do you want to sell sugar water for the rest of your life, or do you want to come with me and change the world?)
- 민음사의 스티브 잡스 255쪽

존 스컬리의 증언에 의하면 봉급도 파격적인데다 잡스의 사업 아이템이 마음에 들었지만, 일부러 한 번 튕겨봤는데 이 말을 듣곤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잡스의 눈빛은 마치 레이저라도 발사할 것 같은 기세였다고(...)[2]. 여하튼 강한 임펙트를 받은 스컬리는 바로 Apple로 이적할 준비를 했다. 당시 펩시 CEO인 켄달의 허가까지 얻은 후, 당시 Apple의 CEO였던 마이크 마쿨라와 잡스의 승인 끝에 스컬리는 연봉 230만 달러를 약속받고는 Apple로 이적하게 되었다.

2.3. Apple에서의 행보

사실 스컬리는 초기에는 Apple에서 별 반응이 없었다. Apple 직원들은 잡스까지 포함 대부분이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일하곤 했는데, 스컬리는 초장부터 정장넥타이까지 빼 입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는 IBM과 경쟁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설을 했었는데 여기서도 스컬리의 연설에 대한 문제점은 드러났다.

목표 자체는 확고부동했지만 뼛속까지 공돌이인 Apple 사원들에게는 '지루한 인간'으로 보였고 무엇보다 식품회사에서 IT회사로 오다 보니까 IT에 관한 지식이 좀 모자랐던 게 문제였다. 때문에 엄청나게 공부해서 결국 IT 지식에 관한 문제점은 해결했다고 한다. 사실 Apple의 부단한 꼬드김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넘어온 회사에서 이 정도 노력을 한 것을 보면 자기 일에 애정이 확실히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스컬리가 Apple에 들어온 1983년 당시 Apple은 엄청 크고 있었다. 심지어 망한 물건 취급 받는 Apple III도 10만 대가 팔려 나갔을 정도였고 인터뷰도 자주 하면서 '컴퓨터계의 거물'로 떠오르던 참이었다. 잡스와의 관계도 원만해서 함께 산책을 하거나 놀러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서전에 보면 잡스는 스컬리를 곧 호구로 보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스컬리가 잡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붙어다니기도 했다고 하고.

그러나 곧 잡스가 맡았던 프로젝트인 Apple LisaMacintosh의 판매 부진, 믿었던 Apple II의 판매하락세 등 암운이 겹치기 시작한다. 거기다가 잡스 특유의 인간성 문제가 1980년대 초반에는 꽤 심했기 때문에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성이 있었다. [3] 결국 Apple 주식을 15% 가지고 있었지만 하는 일은 없이 무늬만 사장이던 잡스를 좌천시킨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잡스는 오히려 스컬리를 쫓아내기 위해 일부 중역들을 불러다가 자기 편으로 만들며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스컬리는 말까지 더듬으면서 화를 냈고 잡스는 "억울하면 누가 쫓겨날지 익명 투표 한번 해볼까?"라고 하면서 회사 중역들을 모아놓고 익명 투표를 준비했으며 이 투표 결과 잡스가 쫓겨났다. 이 때 잡스는 어떻게든 동정여론 모아서 역전 좀 해보려고 신문에 자신의 사임 편지를 광고로 보내기도 했는데, 별 반응이 없어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쫓겨난 잡스는 NeXT을 차리는 등 전전긍긍하였고 한참 후에야 겨우 돌아온다.

잡스가 이렇게 자폭한 후 스컬리는 Apple의 불합리한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부서 통폐합과 인사정리 등을 실시했다. 당시 Apple에는 Apple II부, Apple III부, Apple Lisa부 하는 식으로 부서가 엄청 나뉘어 있었다. 각 부서가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말만 같은 회사지 사실상 수십 개의 군소 영주들로 구성된 봉건제 국가나 다름 없는 형태였다.[4] 더군다나 잡스가 자기 입맛에 맞는 부서만 적극 밀어주는 경향이 심해서 잡스의 눈 밖에 난 부서는 그야말로 찬밥 취급이었다. 스컬리의 개혁은 Apple의 사내 문화를 성공적으로 바꿔낸다.

그러나 하드웨어 개발에서는 힘을 못 쓰기 시작했는데, 스컬리 본인이 워낙 미래기술에 관심이 많아 미래지향적인 것들만 자꾸 요구했기 때문이다. 특히 타블렛 계열 기기에 자꾸 집착해서 지식 탐색기 같은 하드웨어를 구상하기도 했고 최초의 PDANewton MessagePad도 이 때 만들어졌지만, 하드웨어의 성능과 소프트웨어 기술 모두 실용성있는 기기가 되기에는 한참 모자라서 시장에서 반응을 얻지 못하고 사장됐다. 스컬리의 발상은 현대의 PDA스마트폰, 태블릿 등을 이루는 중요한 핵심이 되었다는 점 때문에 현재는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평가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시기상조었던 것.

거기다가 회사 구조 자체가 각 부서별 시스템에서 사장 중심 시스템으로 개편된 후에는 자유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이 어려워져서 소프트웨어 쪽에서도 부진해졌다. 더욱이 Apple의 전통인 개념 없는 가격 정책도 잡스 시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Macintosh만 해도 잡스는 2,000달러에 팔고 싶어했지만 스컬리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2,500달러라는 가격이 매겨졌다. 잡스가 iPad를 처음 내놓았을 때 덤핑(...)한다는 드립까지 나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1989년 컴퓨터 대호황기에도 가격을 내리지 않더니 점점 제품이 안 팔리기 시작한다.

결국 스컬리는 Apple의 경영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원래 공화당원이었던 스컬리는 민주당 후보인 빌 클린턴 진영의 정보고속도로 공약에 감동해 민주당 쪽 선거운동에 열중하다가 1993년 Apple 이사회에 의해 CEO에서 물러나게 된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 정보고속도로 정책은 부통령 후보인 앨 고어의 작품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방송, 통신, 인터넷을 포괄하는 IT 정책과 환경 분야는 앨 고어 부통령이 전권을 행사했다.

2.4. Apple 이후

이후 벤처 캐피탈리스트 회사인 Sculley Brothers LLC를 설립하였고, 현재 실리콘 밸리에서 Misfit이라는 스타트업을 시작하여 트레이닝 매니저 가젯인 Shine을 발표하였다.

3. 평가

스티브 잡스한테 안 낚였으면 존 스컬리는 펩시를 코카콜라급 또는 그 이상의 기업으로 올려놓은 전설적인 CEO로만 평가받았을 것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블라인드 테스트는 펩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잘 알려져 있으며, 설탕물 팔아먹은 전적만으로도 존 스컬리는 충분히 고평가를 받을 만한 사람이다. 하지만 확 튀는 캐릭터를 필요로 하는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에게 스컬리는 너무 지루한 사람이었고, 그의 공과에 상관 없이 스티브 잡스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던 애플에게 스컬리는 잘해야 2군 정도로 밖에는 보일 수 없었다.

이걸 가지고 사정을 잘 모르는 앱등이들은 간혹 'Apple은 최고의 CEO와 최악의 CEO를 함께 냈다'면서 존 스컬리를 암군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스컬리는 1986년까지는 Apple을 IBM에 이은 2위 기업으로 올려놓았던 경력이 있다. 만약 이 때 스컬리가 없이 스티브 잡스가 계속 Apple을 맡았다면 Apple은 80년대에 진작 망했을 거라는 시각도 많은 만큼, 스컬리를 암군 취급하는 건 옳지 못하다. 이건 사실 Apple빠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엔 Apple빠보단 잡스빠가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아이돌 그룹 팬덤 내에서도 특정 멤버만 지지하는 팬이 있는 것처럼.

실제로 잡스가 Apple 내에서 막장 행보를 거듭해 이사회에서 잡스를 거의 포기했을 때도 스컬리는 오히려 잡스의 편에 서서 어떻게든 그를 Apple 내에서 구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스컬리가 거듭된 이사회의 압박과 잡스의 똘짓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와중에 잡스는 스컬리의 해외 출장 소식을 듣고 그 사이에 쿠데타를 준비해 스컬리 뒷통수를 크게 치려고 했지만 이미 사내에 잡스 아군은 없었기에 그 소식이 스컬리 귀에 들어가 참다참다 결국 폭발한 스컬리는 출장을 취소하고 잡스 축출 의제를 이사회에 올리는 결단을 내어버린 것. 스컬리가 잡스를 쫓아 냈다기보다는 Apple에서 쫓겨나는 잡스를 끝까지 붙잡아주고 있던 스컬리의 등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잡스가 칼로 찌르려다 실패하고 자폭했다는 쪽에 더 가깝다.

그는 Apple에서 나온 이후 IT 역사의 메인스트림에서는 물러 났지만, 그렇다고 그가 남긴 것이 없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Apple에 들어오면서 IT 공부를 했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지식 탐색기라는 개념을 창안해 낸 것은 스컬리이다. 그 개념을 잡스가 iPhone스마트폰, 그리고 iPad태블릿 컴퓨터이라는 형태로 승계, 완성해 냈으며, 그것이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생각해 보면 스컬리는 잡스가 그를 낚아냈을 때 한 말처럼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스컬리가 애플에 들어와서 이런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지 않았었더라면, 지금 우리에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같은 스마트기기가 더 늦게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그는 이루어 놓은 업적은 크지만 거기에 비해서 잡스에 가려 평가절하가 되고 있어서 그런지, Wired가 선정한 Apple의 영웅과 악당 중에 존 스컬리는 희생양으로 올라와 있다(...). 존 스컬리의 후계자인 마이클 스핀들러길 아멜리오는 악당으로, 스티브 잡스는 쫓겨나기 전과 iMac 출시 후로는 영웅. 쫓겨난 후와 iMac 출시 전까지는 악당으로 나와 있다.

관리자형 CEO라는 점에서 팀 쿡이 존 스컬리와 여러가지로 비교되기도 한다.

4. 창작물에서



[1] 물론 콜라 시장으로 한정하면 여전히 코카콜라가 우위에 있다. 그러나 펩시콜라는 콜라 외에도 게토레이, 치토스, 도리토스 등을 가진 종합식품회사로서 코카콜라를 능가한다.[2] 저 레이저를 쏘는 것 같은 눈빛이 잡스가 사람들을 대할 때 쓰는 스킬 중 하나였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사람을 응시하는 특기가 있었고, 이런 기술을 이용해 상대를 자신에게 넘어오게 하는데 능숙했다.[3] 잡스의 성깔은 Apple에서 쫓겨나고, NeXT가 실패하면서 얻은 경험 덕에 다시 Apple로 돌아왔을 적엔 많이 나아졌다. 물론 근본까지 바뀌진 못했지만.[4] 잡스가 모델로 삼고 있던 기업이 일본의 소니였는데, 소니의 각종 사업부가 딱 이런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이 문제로 소니는 2000년대 이후로 심각한 위기상황까지 갔었지만 적어도 80년대의 소니는 아직은 큰 문제가 없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