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차범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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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멕시코전 · 네덜란드전 · 벨기에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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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선경기
1.1. 1월: 1997 호주 4개국 친선대회
1.1.1. vs 노르웨이 - 1:0 승
1997 호주 4개국 친선대회 제1경기 1997. 01. 18. (토) 17:15 (UTC+10) | ||
레이크사이드 스타디움 (호주, 멜버른) | ||
주심: 게리 코널리 | ||
0 : 1 | | |
- | 57' 김도훈 |
1.1.2. vs 호주 - 1:2 패
1997 호주 4개국 친선대회 제2경기 1997. 01. 22. (수) 20:30 (UTC+10) | ||
선콥 스타디움 (호주, 브리즈번) | ||
주심: 사이먼 미칼레프 | ||
2 : 1 | | |
36' 매튜 빙리 72' 앨리스테어 에드워즈 | 75' 하석주 |
1.1.3. vs 뉴질랜드 - 3:1 승
1997 호주 4개국 친선대회 제2경기 1997. 01. 25. (토) 17:15 (UTC+10) | ||
시드니 풋볼 스타디움 (호주, 시드니) | ||
주심: 브렛 휴고 | ||
1 : 3 | | |
33' 보건 코베니 | 76' 박건하 82' 고종수 85' 유상철 |
2. 월드컵 예선
2.1. 2~3월: 1998 FIFA 월드컵 아시아 1차예선
2.1.1. vs 홍콩[1] - 2:0 승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1차예선 6조 1차전 1997. 02. 22. (토) 15:30 (UTC+8) | ||
홍콩 스타디움 (홍콩, 코즈웨이 베이) | ||
주심: 오가와 요시미 | ||
0 : 2 | | |
- | 61' 서정원 74' 최문식 |
2.1.2. vs 태국 - 3:1 승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1차예선 6조 2차전 1997. 03. 02. (일) 16:00 (UTC+7) | ||
수파찰라사이 경기장 (태국, 방콕) | ||
주심: 루쥔 | ||
1 : 3 | | |
48' 피야퐁 피우온 | 18' 노상래 73' 하석주 86' 최문식 |
3. 친선경기
3.1. 4~5월: 친선경기
3.1.1. vs 중국 - 2:0 승
1997 한중 정기전 1997. 04. 23. (수) 19:45 (UTC+8) | ||
베이징 노동자 경기장 (중국, 베이징) | ||
주심: 셀레라젠 수브라마니암 | ||
0 : 2 | | |
- | 45', 57' 박건하 |
3.1.2. vs 일본 - 1:1 무
1997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1997. 05. 21. (수) 19:00 (UTC+9) | ||
국립 요요기 경기장 (일본, 도쿄) | ||
주심: 피롬 운-프라세르트 | ||
1 : 1 | | |
88' (PK) 미우라 카즈요시 | 56' 유상철 |
4. 월드컵 예선
4.1. 5~6월: 1998 FIFA 월드컵 아시아 1차예선
4.1.1. vs 홍콩 - 4:0 승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1차예선 6조 3차전 1997. 05. 28. (수) 19:00 (UTC+9) | ||
한밭종합운동장 (대한민국, 대전) | ||
주심: 하짐 후세인 이사 | ||
| 4 : 0 | |
홍콩 | ||
25' (PK) 유상철 39', 72' 최용수 86' 박건하 | - |
4.1.2. vs 태국 - 0:0 무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1차예선 6조 4차전 1997. 06. 01. (일) 15:00 (UTC+7) |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자말 알-샤리프 | ||
| 0 : 0 | |
- | - |
5. 친선경기
5.1. 6월: 1997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5.1.1. vs 이집트 - 3:1 승
1997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제1경기 1997. 06. 12. (목) 19:00 (UTC+9) |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셀레라젠 수브라마니암 | ||
| 3 : 1 | |
12' 박건하 65' 유상철 77' 최문식 | 23' 하디 카샤바 |
5.1.2. vs 가나 - 3:0 승
1997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제2경기 1997. 06. 14. (토) 17:00 (UTC+9) | ||
수원종합운동장 (대한민국, 수원) | ||
주심: 루사메 진다마이 | ||
| 3 : 0 | |
5' 서정원 49' 최문식 54' 최용수 | - |
5.1.3. vs 유고슬라비아 - 1:1 무
1997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제3경기 1997. 06. 16. (월) 19:00 (UTC+9) |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셀레라젠 수브라마니암 | ||
| 1 : 1 | |
19' 서정원 | 55' (PK) 슬라비샤 요카노비치 |
5.2. 8월: 친선경기
5.2.1. vs 브라질 - 1:2 패
1997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1997. 08. 10. (일) 19:00 (UTC+9) |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모하메드 나즈리 압둘라 | ||
| 1 : 2 | |
7' 김도근 | 83' (PK) 호나우두 90' 소니 안데르송 |
5.2.2. vs 타지키스탄 - 4:1 승
1997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1997. 08. 24. (일) 19:00 (UTC+9) | ||
대구시민운동장 (대한민국, 대구) | ||
주심: 피롬 운-프라세르트 | ||
| 4 : 1 | |
타지키스탄 | ||
3', 34' 김도훈 19' 최용수 65' (PK) 유상철 | 33' 알리세르 투크타에프 |
5.2.3. vs 중국 - 0:0 무
1997 한중 정기전 1997. 08. 30. (토) 19:00 (UTC+9) | ||
동대문운동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닉 아마드 야쿠브 | ||
| 0 : 0 | |
- | - |
6. 월드컵 예선
6.1. 9~11월: 1998 FIFA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여튼 한국 축구 사상 전무후무한 쾌진격이었는데, 이런 압도적인 성적에다 이기고도 자만하지 않고 다음 상대를 대비하는 차 감독의 겸손한 발언과 노트북을 그라운드에 가지고 다니면서 하프타임이나 경기가 끝나고 난 후에 컴퓨터를 사용하여 무엇인가를 하는 장면이 예선전에서 방송국 카메라에 여러 차례 잡히면서 차 감독의 인기와 신뢰감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2] '차범근의 리더십' 류의 처세술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차범근을 대통령으로'라는 반농담도 회자되었다. 당시 중앙일보에 도올 김용옥의 차범근 감독의 경기 후 기독교적 언행에 대해 자제를 부탁하는 정중한 칼럼이 실렸고, 차 감독이 회답을 했는데 그 두 칼럼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고, 역시 같은 시기 폭발적 인기를 구가했던 김국진이 진행했던 '스타 다큐'에서도 차범근호를 다룬 특집이 나올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대단했다.문제는 이런 과도한 열광으로 인해 차범근호의 실체가 가려지면서 본선에서의 비극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것. 차범근호 호성적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운빨이었다는 걸 당시 국민들은 알지 못했다. 이 시절 한국이 월드컵 연속 3회 진출의 업적을 이룩한 아시아의 강자라곤 해도 지금처럼 월드컵은 당연히 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절대적인 위상을 가진 것은 아니었고,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언제나 진땀을 흘리며 겨우겨우 진출했다. 아시아의 월드컵 진출권은 70년대까지 1장 이하였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좀 한다고 해도 원탑은 아니었던 한국은 번번히 마지막 관문에서 좌절하는 편이었다. 물론 다른 아시아 팀들 다 물리치고 정상에 선 적도 몇번 있지만 그럴때마다 타 대륙과 플레이오프 벌여서 깨진 바람에... 그나마 원톱은 못해도 아시아 Top 2에는 들만한 능력은 지닌 덕에 아시아 출전권이 2장으로 확대된 80년대부터 한국의 월드컵 진출이 다시 시작된다.
바로 전 대회인 1994 FIFA 월드컵 미국은 자력 진출에 실패해 기적이나 바래야 했을 만큼 월드컵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1994년 대회 때의 최종예선 시스템은 진출팀을 전부 모아 조 구분 없이 풀리그로 벌이던 방식이었는데, 한국이 1994년에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진출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아시아의 온갖 강팀들이 하나의 조에 모여서 2팀을 뽑는 풀리그 형식이었는데 빡세지 않을 리가 있나? 사실 사우디-이란-이라크-한국-일본-북한 이런 조 편성이면 지금도 한국이 2위 안에 확실히 들 거라고 장담하긴 힘든데 그때는 더 힘들었다. 한국이 월드컵은 당연히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2002년 월드컵에서의 대성공과 함께 이때부터 아시아 월드컵 진출권이 4.5장으로 고정되면서 웬만큼만 하면 월드컵 진출권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98년 월드컵 때부터 진출국을 32개국으로 늘리면서 아시아의 출전권이 3.5장으로 늘어났는데, 이로 인해 최종예선이 이전까지의 풀리그 방식이 아닌 두개 조로 나누어 최종예선을 치르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1998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 A조: 이란, 사우디, 중국, 쿠웨이트, 카타르
- B조: 한국,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UAE, 일본
중동은 전력도 만만찮고 원정 거리가 멀어서 월드컵 지역예선마다 한국을 괴롭혀온 팀이 많은데, 1998 예선에서는 대부분 A조로 몰리고 한국은 B조에 들어가는 행운이 일어났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은 구소련 해체 이후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라 꼴이 엉망진창이라 정상적인 전력을 내기 힘든 상황이었고, 우즈벡은 한국 원정 때 주전 공격수 쉬크비린[3]이 비행기를 놓쳐 참여 못하는 등 한국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상황이 흘러갔다. 게다가 당시 월드컵 최종예선은 2022년 기준인 지금처럼 경기 간격을 넉넉히 잡고 천천히 진행하는 게 아니라 팀들을 한 번에 몰아놓고 단기간 동안 경기를 뛰는 식이라 좋은 흐름의 유지에 용이했다. 지금이야 아무리 빨라야 1년 걸리지만 98 프랑스월드컵 지역예선은 2~3개월만에 진출을 확정했기 때문.
하지만 실체야 어쨌든 이전까지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하거나 힘겹게 본선에 진출했던 것과 달리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는 쾌승을 거듭하며 명실상부 아시아 깡패의 위용을 보이며 예선을 통과했기에 팬들의 기대감은 부풀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일반 팬들이 생각하기에 한국의 실력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착각이 낳은 열광적인 지지는 차범근호가 지닌 지나치게 공격적인 전술의 약점을 제대로 짚어 보지 못한 채 본선을 맞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만다.
6.1.1. vs 카자흐스탄 - 3:0 승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1차전 1997. 09. 06. (토) 19:00 (UTC+9) |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산탄 나갈링감 | ||
| 3 : 0 | |
24', 67', 74' 최용수 | - |
6.1.2. vs 우즈베키스탄 - 2:1 승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2차전 1997. 09. 12. (금) 19:00 (UTC+9) |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웨이지홍 | ||
| 2 : 1 | |
15' 최용수 87' 이상윤 | 74' 올레그 샤츠키흐 |
6.1.3. vs 일본 - 2 : 1 승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 예선 B조 3차전 1997년 9월 28일 일요일 14:00 (UTC+9) | ||
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 (일본, 도쿄도) | ||
주심: 사드 카멜 마네 | ||
1 : 2 | | |
65' 야마구치 모토히로 | 83' 서정원 86' 이민성 |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6.1.4. vs 아랍에미리트 - 3:0 승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4차전 1997. 10. 04. (토) 19:00 (UTC+9) |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루시앵 부샤르도 | ||
| 3 : 0 | |
아랍에미리트 | ||
7' 하석주 67' (PK) 유상철 80' 이상윤 | - |
6.1.5. vs 카자흐스탄 - 1:1 무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5차전 1997. 10. 11. (토) 16:00 (UTC+5) | ||
센트럴 스타디움 (카자흐스탄, 알마티) | ||
주심: 오마르 아부 룸 | ||
1 : 1 | | |
51' 파벨 에브테에프 | 4' 최용수 |
6.1.6. vs 우즈베키스탄 - 5:1 승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6차전 1997. 10. 18. (토) 17:00 (UTC+5) | ||
파흐타코르 마르카지 스타디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 ||
주심: 압둘 쿠드헤이르 | ||
1 : 5 | | |
65' (PK) 안드레이 피오도로프 | 18', 41' 최용수 38' 유상철 57' 고정운 70' 김도훈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경기 8일 후에 있었던 UAE vs 일본 경기는 이 시점의 조 2/3위간의 맞대결이었는데, 이 둘이 서로 1-1로 비겨버리면서 해당 시점 기준 각각 승점 8점(UAE)과 7점(일본)에 그쳤고, 대한민국을 1위로 확정[12]시켜버렸다. 차범근호는 잔여 경기와 상관 없이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직행이 확정되었다.
6.1.7. vs 일본 - 0:2 패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7차전 1997. 11. 01. (토) 15:00 (UTC+9) |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대한민국, 서울) | ||
주심: 에스팬디어 브머매스트 | ||
| 0 : 2 | |
- | 1' 나나미 히로시 37' 로페스 바그너 |
다만 한국이 일부러 일본에게 져준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긴 했다. 일본과 플레이오프를 놓고 다투던 UAE가 한국 같은 강팀이 어떻게 일본에게 질 수 있나며 크게 분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차기 월드컵 공동 개최국이었으니... 결국, 일본은 한국에 승리한 여세를 몰아 마지막 카자흐와의 홈경기에서 승리하여 기적 같은 2위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낸다. 차범근 감독은 이후 2002년 5월 방영된 MBC 스페셜에서 "승부조작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본선에 진출해서 여유로웠던 반면에 일본은 워낙 벼랑끝이다보니 악착같이 경기에 임했는데 여기에 밀려서 패한 것이다."라며 패배한 이유에 대해 해명했다.
6.1.8. vs 아랍에미리트 - 3:1 승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B조 8차전 1997. 11. 09. (일) 16:55 (UTC+4) | ||
자예드 스포츠 시티 스타디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 ||
주심: 피에트로 체카리니 | ||
1 : 3 | | |
아랍에미리트 | ||
51' 주헤르 사에드 | 9' 이상윤 42', 66' 김도훈 |
[1] 이 당시 홍콩은 일국양제에 입각한 홍콩 특별행정구가 아닌 영국령 홍콩이었다. 홍콩은 1차예선이 종료된 1997년 7월 1일자로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었다.[2] 당연하지만 90년대 후반임을 감안하면 컴퓨터를 다룬다는 것만 해도 대단해 보일 시기였다. 현대로 굳이 비유하자면 2010년대 초반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막 활성화될 때 태블릿을 들고다니며 경기를 분석한다고 보면 된다. 나중에 컴퓨터 안에 실제로는 별 거 없었다는 얘기도 나오긴 했지만.[3] 공격형 미드필더 카시모프와 함께 1994년 우즈벡이 한국에 유일한 A매치 승리를 거둘 때 한 몫 했다.[4] 3:0[5] 2:1[6] 2:1[7] 3:0[8] 다만 첫 4경기 중 일본전을 제외한 3경기가 홈이었기에 자축하기에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존재했다.[9] 4년뒤 히딩크를 영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며 한국 축구역사에 나름대로 공을 세운 인물이다.[10] 당시 카자흐스탄 원정은 매우 불리한 여건이었다. 경기장은 제대로 뛰기도 어려울 정도로 잔디 관리가 안 돼 있었고, 체제 편의를 위한 카자흐 측의 지원은 전무하다시피 했다.[11] 차범근 감독은 이후 "카자흐스탄에 도착해 보니 도저히 경기를 뛸 수 있는 시설이나 상황이 안 됐다. 우리보다 먼저 경기한 일본이 왜 고전할 수밖에 없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다만 우리 다음에 경기할 UAE에게 정보를 주지 않기 위해 이런 내용을 언론에는 흘리지 않았다."고 회고했다.[12] 이 시점 2위인 UAE, 3위인 일본은 잔여 경기가 각각 2경기씩 남은 상황이었고 2위인 UAE가 잔여경기 전승(승점 +6)을 하더라도 승점 14점에 그치기 때문에, 이 시점에 이미 승점 16점인 대한민국을 넘을 수 없다.[13] 일본 대표팀은 오카다 타케시 감독 취임 이후 우즈벡 원정에서 질 뻔 하다가 후반 막판에 미우라의 극장골로 무승부, UAE와의 홈경기에서도 1-1로 무승부를 거뒀는데 UAE와의 홈경기가 끝나고 말그대로 폭동이 일어나 미우라가 자신을 욕한 관중을 패려고 했던 영상이 우리나라 스포츠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14] 이중 1패는 당연히 승리가 예상되던 카자흐스탄 원정에서 직전 경기에 감독이 퇴장당해 감독 없이 경기를 치렀기 때문인지 예상 외로 3-0으로 발린 경기이다. 이 경기 이후로 UAE가 갑자기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다른 1패는 우리와의 경기...[15]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두고 있어서였는지 "한국, 일본이 사이좋게 월드컵에 가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물론 우리 본선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었으니, 일본에 한 수 접어준다는 생각으로 관대해진 것이지, 만약 입장이 반대였으면 있을 수 없는 일.[16] 일본도 카자흐/우즈벡 원정에서 무승부에 그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 외의 경기에서는 한국전 패배 외에는 패 없이 승점을 착착 쌓아 막판 3경기를 앞두고 3위로 밀려있는 절망적 상황에서 2위 플레이오프까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