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미상 가명 마르시올리 |
명칭 | 철가면(Homme au masque de fer) |
수감지 | 피네롤로 감옥 |
소지(착용) 물건 | 벨벳가면, 철가면 |
생몰년도 | ? ~ 1703년 11월 19일 |
Homme au masque de fer
(? ~ 1703년 11월 19일)
1. 인물소개
1679년 이탈리아 반도 피에몬테 피네롤로[1] 감옥에 이감되어 1698년 프랑스의 바스티유 감옥으로 이송된 수수께끼의 재소자. 기록엔 철가면이 아니라 벨벳가면을 쓰고 있었다고도 하는데, 정확히는 피네롤로에서 1681년 에그질로 이송되고, 다시 1687년 프랑스 남부해안의 섬인 생 마르그리트로 옮겨졌다. 이 기간 동안은 철가면을 쓰게 되었고, 1698년 바스티유로 옮겨지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벨벳가면으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이송될 때마다 처음 피네롤로에서 그를 담당했던 전담 교도관이 함께 따라가 식사 제공 등 모든 접촉을 전담하였고, 가면을 벗거나 타인과 대화하는 것 등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급 식사와 술을 제공받는 등 대접은 재소자치고는 매우 좋았다고 하기 때문에 단순히 처벌을 목적으로 가면을 씌우고 대화를 금지한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죽을 당시, 매장기록에는 마르시올리라는 가명으로 등록되었다.
2. 현재까지 분분한 정체
2.1. 루이 14세의 쌍둥이 형제? 친아버지?
그 정체가 여전히 의문이기 때문에 각종 문학 작품에서 떡밥으로 활용되었다. 가장 유명한 설명은 철가면 이야기를 최초로 언급한 볼테르가 제기한, 쌍둥이 형제설이다.[2] 루이 14세에게는 쌍둥이 형이 있었으며, 이것을 알게 된 루이 14세가 그를 죽이는 대신 철가면을 씌워 가두었다는 것이다. 루이 14세와 똑같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가면을 씌웠다는 것.[3] 또 다른 유명한 설명 중 하나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친아버지라는 것이다. 즉, 루이 14세가 사실은 루이 13세의 아들이 아니라 바람을 피워서 낳은 자식이었다는 뜻이다. 사실 루이 13세 부부는 결혼한지 23년동안 자식이 없다가 23년만에 루이 14세를 낳았기 때문에, 루이 14세의 어머니 안 도트리슈가 바람을 피웠다는 소문은 당시에도 있었다. 누구나 얼굴을 보면 루이 14세와 닮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에 가면을 씌웠다는 것. 프랑스 드라마 베르사유에서는 친아버지설을 채택했다.어느 날, 철가면 사나이가 접시에 칼로 글자를 긁은 채로 밖으로 내던졌다. 바람을 타고 접시는 멀리 날아가 모래에 떨어져 살짝 깨졌는데 지나가던 어부가 주웠다. 어부는 대충 방향을 보고 이 교도소에서 온 거 같아서 이걸 가지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관리가 접시에 새겨진 글을 한참 보더니 정색한 얼굴로 "자네? 여기에 적혀진 글을 읽어보았나?"라고 하는 거 아닌가. 어부는 저는 까막눈이라 뭐라고 써있는지 모른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관리는 마음놓은 얼굴로 말하길
"자넨 참 운이 좋군. 아무 것도 모르게 되었으니. 나가보게."
어부는 아무 해없이 돌아왔으나 대체 뭐라고 적혀졌기에? 그리고, 그 글을 알아보았더라면 날 죽였다는 거 아닌가? 섬뜩해졌고 이후 지인들에게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며 이 이야기가 알려졌다. 대체, 그 접시에 새겨진 글은 뭐였을까? 라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다.프랑스 소설 '왕비의 침실'에서는 왕족 중 한 사람으로, 사실 루이 14세의 생부(역시 왕비가 불륜)라는 것으로 나오기도 하며, 재상 "루부아"의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활약하던 반정부 투사일 거라 추정하는 소설도 있다(포르튀네 뒤 부아고베의 소설 철가면. 하지만 실제 루부아 후작은 재상이 아니라 육군대신이었고 재상 콜베르 밑의 실무자에 불과했다.). 영화판 G.I. Joe에서는 적국에게도 몰래 무기를 팔아온 무기상에게 불로 달궈서 시뻘게진 철가면을 씌우는 형벌을 내리고 영원히 그 가면만 쓰고 살게한다.
하지만 현재 많은 학자들은 쌍둥이 형제일 거란 가설을 그냥 구전 수준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의학적인 문제[4]도 있고, 17세기 프랑스는 야만적인 관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당시 왕비의 출산은 국가적인 사건이라는 이유로 왕비의 출산 장면을 주위에서 사람들이 구경하는 관습이 있었다. 당시는 아무나 왕비의 출산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출산 구경꾼들은 엄청나게 많았다.[5] 그러므로 만약 쌍둥이였다면 그 많은 구경꾼들의 입을 모두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6] 또한 루이 14세에게는 남동생인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1세가 버젓이 있었는데 쌍둥이 형제가 설령 있었다고 해도 필리프처럼 작위를 내리고 살게 하면 되지 굳이 정체를 숨길 필요는 없다. 만약에 정체를 숨겨야 했다면 필리프도 신분이 말소되었어야 할 것이다. 친아버지 설도 루이 13세가 불임이어서 씨내리를 구해 루이 14세를 낳게 했다면 왕위 계승에 크게 필요 없는 동생 필리프를 낳기 위해 또 씨내리를 구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2.2. 아니라면 어떤 인물인가?
철가면 이야기가 나오게 된 최초의 원인인 볼테르를 생각해볼 때 철가면의 정체는 그냥 벨벳가면을 쓴 어떤 죄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프랑스는 공포정치를 실현하며 수많은 죄수들이 감옥에 수감되어 죽었고 수감자 중 벨벳가면을 쓴 사람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7] 철가면이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한 이유도 단순히 그가 돈 많고 빽 있는 복역수, 이른바 '범털'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바스티유 감옥은 이후의 프랑스 혁명의 첫단계인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이 유명해졌기 때문에 정치범이나 강력범죄자들을 수감한 곳으로 이미지가 굳어버렸지만, 실제로는 죄수들 중 높으신 분들이 주로 수감된 감옥이었다. 당연히 그 시설이나 죄수들에 대한 대우도 감옥치고는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루이 14세에게 밉보여서 종신형을 받은 마지막 쉬르앵당탕[8] 니콜라 푸케의 시종인 외스타스 도제르로 추정한다. 사실, 교도소의 죄수명부에 등재된 이름이 외스타스 도제르다. 모시던 푸케가 옥사한 후 푸케가 알고 있던 프랑스 왕실의 비밀들이 시종의 입을 통해 새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시종에게 가면을 씌우고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가설의 약점은 감옥 안에서 귀족이 누리는 후한 대접을 받고 전담 교도관이 철가면을 대할 때 항상 윗사람을 모시듯 기립자세로 시중을 들었다는 점인데 철가면이 일개 시종이라면 교도관이 굳이 그렇게 공손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반박이 가능한 것이, 예나 지금이나 유럽 사회에서 시종은 단순한 하인이 아니라 비서나 보좌관에 준하는 위치인지라 아무나 할 수 없었다. 왕실 시종은 귀족들만이 할 수 있었고, 고위 귀족들은 자신보다 약간 낮은 지위의 귀족 자제들을 시종으로 채용할 정도였다. 철가면이 당대의 최고위직이었던 푸케[9]의 시종이었다면 절대 평민은 아닐 테고, 이미 교도관보다는 한참이나 높은 신분이니 감옥 안에서 상전 대접받고 살았다고 하면 이상할 게 없다. 니콜라 푸케는 한때 루이 14세의 총신이자 프랑스 왕국의 재무장관이었고, 프랑스 최고의 갑부이자 벨릴 후작이라는 작위를 가진 고위 귀족이기도 해서, 그의 시종이라면 못해도 최소 남작이고 시종장이었으면 하급 귀족급이었을 수도 있으니 당연한 얘기다[10].
그래서 시종 외스타스 도제르와 동명이인인 귀족 '외스타스 도제르 드 카보예'(Eustache Dauger de Cavoye)가 철가면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외스타스 도제르 드 카보예는 리슐리외 추기경의 경호대장인 아버지[11]와 루이 14세의 모후 안 도트리슈의 시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루이 14세와 친분이 있었는데, 방탕한 생활로 악명이 높다가 루이 14세 시대 귀족사회를 뒤흔들고 루이 14세의 로얄 미스트리스인 몽테스팡 후작부인, 올랭프 만치니까지 연루된 독살청부업자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 따라서 신분을 감추고 비밀리에 수감당할 당위성, 감옥 내에서의 후한 대접 등을 감안할때 그가 철가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하지만 외스타스 도제르 드 카보예가 생 라자레 감옥이라는 다른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는 기록, 거기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도 발견되어 이 추정은 최근에는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2.3. 철가면은 한명인가?
학계에서 오랫동안 연구되는 것과 달리 신비학자들에게서는 오래전에 식은 떡밥이다. 이유는 철가면이 한명을 지칭하는것이 아니라 당시 소위 말하는 '범털'을 지칭하는 용어라는 것이다.[12] 한마디로 철가면에 대해 쓰는 감옥일지 기록이 한명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여러명에 대한 것이고 범털이니 귀족적인 풍모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며 오랫동안 감옥에 있다가 죽은것이 아닌 여러명의 철가면이 왔다가 나갔고 그 와중에 죽은 사람도 있었으리라는게 신비학자들의 추측이다. 위에서 설명한대로 철가면 사나이가 유명해진것은 볼테르의 역사서 『루이 14세』 에서인데 볼테르는 반체제주의 사상가였다. 철가면 사나이에 대해 기록한 감옥일지가 있는것은 사실이며 볼테르는 이를 짜깁기 하여 루이 14세의 정통성을 조롱하는 장치로 쓴 것이다. 한마디로 생각보다 미스터리한 구석은 없기에 이미 신비학자들 사이에서는 더이상 연구되지 않는 주제다.[1] 본래 사보이아 공국의 영토로 30년 전쟁 중반부터 프랑스가 관리하던 곳이었다.[2] 알렉상드르 뒤마의 철가면은 볼테르설을 기초로 창작된 작품이다.[3] 쌍둥이의 한쪽을 숨긴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임신 중이였던 왕비가 쌍둥이를 낳으면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4] 위의 설명에도 나오듯이 벨벳가면인 이유. 무거운 철가면을 쓰고 30년 가까이 생존할 순 없다고 한다.[5] 아기가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6] 여담으로 이 관습을 폐지한 것은 바로 루이 16세이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첫딸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를 낳을 때,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방안의 산소가 부족해져 왕비가 죽을 뻔 했기 때문. 그래도 허가받은 일정한 수의 사람들은 출산을 참관하는 것이 허락되었다.[7] 볼테르는 당시 풍자시 작품으로 섭정 오를레앙 공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바스티유 감옥에서 1년간 옥살이를 한 적이 있으며 자신은 이것이 굉장히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했다.[8] 재무총감으로 번역된다.[9] 푸케는 후작이었다.[10] 당장 옆 나라 영국에서 왕이 X싼 것을 처리하는 직책부터가 후작만이 전담하는 직위였다(...).[11]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 달타냥의 행적이 이 사람을 모티브로 했다.[12] 당시 프랑스 정권은 브랑빌리에 후작 부인이 일으켰던 독살 사건이 원인이 되어 많은 관련자들을 체포 하였고 기밀 유지에 매우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