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靑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예전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이라고 설명한다.전거(典據)는 이러하다.
청구국은 (군자국의) 북쪽에 있으며 거기 사람은 오곡을 먹고 비단을 입으며 거기 여우는 네 다리에 아홉 꼬리가 있다.(靑丘國 在其北 其人 食五穀 衣絲帛 其狐四足九尾.)
『산해경』, 「해외동경」
같은 이름의 별자리[1]가 조선 땅에 대응한다고 한다. 오방색에서 '청'은 동쪽을 나타내는 색인데 한반도가 중국 동쪽에 있으므로 이렇게 이르렀다고도 한다.『산해경』, 「해외동경」
공자의 이름을 피휘하여 靑邱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신뢰성이 의심되는 논란의 서적,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紀)에도 청구국에 관련된 기록이 나온다. [2]
고시씨(高矢氏)의 후손들은 남동쪽의 땅에 봉해졌는데 산하(山河)가 빼어나고 수려하며 초목이 번창하고 우거져있어 청구국(靑丘國)이라 하니 이들은 낙랑홀(樂浪忽)에 살고 있다.[3](高矢氏之後, 封于南東之地, 山河秀麗, 草木暢茂, 曰靑丘國, 宅樂浪忽.)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도 청구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사용된 지 꽤나 오래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612년 수양제의 조서에서는 청구 바깥에서는 모두 공납을 행하고 벽해의 물가에서는 정삭을 받는데, 고구려가 강제로 보물을 빼앗고 왕래를 끊는다고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647년 당태종이 고구려를 재차 침공해서 바다를 건너 요동을 공격할 때 좌무위대장군 우진달(牛進達)을 청구도(靑丘道) 행군대총관으로 삼은 기록이 있다.
문무왕이 안승(安勝)을 보덕국왕(報德國王)에 책봉하는 글에서 “공의 사조의 덕과 공은 크고 높아서 위풍이 청구에 떨쳤다.”고 쓴 것 등이 있다.
경덕왕 시기에 활동한 법상종 승려 대현(大賢)이 스스로 청구사문(靑丘沙門)으로 일컬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견훤의 서신에 왕건이 보낸 답서에서 “청구에서 난을 수습한다.”라고 쓰기도 했다. 삼국유사가 인용한 이제가기에 의하면 견훤의 8번째 아들 이름이 청구(靑丘)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식민사학단체인 '청구학회'가 여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영조가 "청구에 너와 나뿐이다."[4]라고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뿐만 아니라 당대 조선에서도 스스로를 부르는 별칭으로 청구를 썼음을 알수 있다.
족보의 이름에도 붙여지기도 했는데, 강릉 김씨의 족보 이름이 청구세보(靑丘世譜)다. 그외에도 국내의 족보 전반에 걸처 망라한 계보서 중 청구씨보(靑丘氏譜)가 있다.
시조집의 제목에서도 조선의 노래란 뜻의 청구영언으로 흔하게 붙었다.
전통적으로 청구의 어원은 다음과 같다고 여겨졌다. 오방색 때문인지 '청(靑)'은 동쪽을 가리키는 의미가 있고, '구(丘)'는 마을이란 뜻이 있으니, '청구'는 동쪽 동네 즉 동쪽 나라를 말한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 입장에서 동쪽에 있던 나라를 뭉뚱그려 '청구'라고 불렀던 것인데, 통일신라 등 한반도에 나라가 등장하니 그냥 그 나라를 '청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에 있던 나라에서는 '청구'를 자기 나라 별칭 중 하나로 인식했고, 시간이 지나자 나라의 명칭 중 하나로 굳어버렸다고 보는 것이다.[5]
한편 '청구'의 어원에 대해 다른 해석도 존재하는데, 2019년에 박광민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이 온지논총 제60집에 발표한 ‘고조선 국명 및 지명에 대한 어원적 고찰’이란 논문에서 '청구'를 일본어 속에 남아 있는 고대 한국어의 흔적을 통해 ‘아ㅅ달’로 읽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청(靑)’의 일본어 독음이 ‘あお(아오)’이며 ‘구(丘)’는 ‘달’로 읽을 수 있으므로 ‘아사달’ ‘조선’ ‘청구’라는 말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동일한 말이란 흥미로운 주장이다. 기사출처 KCI 등재논문
2. 서울특별시의 지명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행정동 명칭. 일제강점기에는 사쿠라가오카(櫻ケ丘/앵구)라 불렸는데, 해방 이후 일본식 지명을 갈아치우는 과정에서 사쿠라가오카의 독음인 앵구와 발음이 비슷한 청구(靑丘)를 가져온 것이다. 이후 1955년부터 1970년까지 행정동 명칭으로 쓰다가 법정동에 맞추어 신당4동으로 변경한 뒤 2013년 다시 청구동으로 돌아갔다.청구역, 청구동계의 직접적인 유래도 이것이다.
3.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건설 회사
청구(기업) 문서로.4. 請求
법률용어로 쓰일 경우, 재산분할 청구, 손해배상 청구, 헌법소원 청구 등 다양한 뜻으로 쓰인다.
[1] 지금의 바다뱀자리 일부와 그 근처의 별들. 바다뱀자리 베타별과 바다뱀자리 크시별이 청구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들이다.[2] 그러나 보통 위서로 간주된다.[3] 아마 '고시씨의 후손들'은 본래 북부여사람이거나, 아니면 남동쪽으로 내려가 북부여를 세우고 그 전까지 보다 북방의 어딘가에서 살았던 것일 수 있다. 동부여, 백제, 고구려를 낳은 최초의 부여계 국가인 북부여의 사람들조차 '자신들은 원래 이 곳의 사람이 아니다'라며, 먼 북방의 탁리, 혹은 고리라는 나라에서 남하한 이들의 후손이라 밝혔음을 중국의 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4] 임오화변 며칠 후 세손인 정조가 내시를 보내 문안인사를 하자 영조가 한 말이다. 즉 "네 아비는 해쳤어도 내가 죽으면 너 뿐이니 안심해라"[5] 국민이 스스로 자국을 부르는 명칭과 외국인이 쓰는 명칭이 다르다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며 어색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당장 현대 대한민국만 보아도, 한국인은 자국을 대한민국이라고 부르지만, 외국인은 Korea라는 명칭을 쓰며 그것을 어색해하지도 않는다. 타국의 사례를 들자면 핀란드의 경우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라 이름을 핀란드라고 부르지만 정작 핀란드인은 자기 나라 이름을 '수오미'라고 부르며, 아무도 둘이 다른 것을 어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도 역시 정식 명식은 '뱌랴트'지만 한국인 대부분은 그런거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