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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7:41:18

청구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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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물 寶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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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이본(異本)
3.1. 진본
3.1.1. 국가유산청 소개글
3.2. 최남선3.3. 이희승(李熙昇)본3.4. 홍재휴(洪在烋)본3.5. 이병기(李秉岐)본3.6. 이가원(李家源)본3.7. 일본3.8. 장서각
4. 구성
4.1. 1항4.2. 2항: 여말(麗末)4.3. 3항: 본조(本朝)4.4. 4항: 열성어제(列聖御製)4.5. 5항: 여항육인(閭巷六人)4.6. 6항: 규수삼인(閨秀三人)4.7. 7항: 연대결고(年代缺考)4.8. 8항 : 무명씨(無名氏)4.9. 9항: 삼삭대엽(三數大葉)4.10. 10항: 낙시조(樂時調)4.11. 11항: 장진주(將進酒)4.12. 12항: 맹상군가(孟嘗君歌)4.13. 최종항: 만횡청류(蔓橫淸類)
5. 전시

1. 개요

청구영언()은 조선 영조 4년(1728)에 남파(南坡) 김천택(金天澤)이 엮었다고 알려진 시조집이다.[1]

2. 내용

해동가요(海東歌謠), 가곡원류(歌曲源流)와 함께 국내 3대 시조집으로 불리며, 가곡, 시조, 가사를 연구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바이블로 평가받는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국내 시조집에서 편찬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2]

3. 이본(異本)

3.1. 진본

원래 오장환(吳章煥)본이라 불렀으며,[3] 1728년에 쓴 남파(南坡)의 자서(自序)가 붙어있어 원본으로 여겨졌다. 1948년 조선 진서 간행회에서 발행하면서 진본이라 불리고 있다. 수록된 시조는 580수이다.

현재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22년 4월 26일에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됐다. 영인본 다운로드 주해편 다운로드

3.1.1. 국가유산청 소개글

‘청구영언’은 조선 후기까지 구비 전승되던 총 580수의 노랫말을 수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가집(歌集)이다. 청구(靑丘)는 우리나라, 영언(永言)은 노래를 뜻하는 말로서, 가집은 가곡(歌曲)이라는 우리의 전통 성악곡으로 불리던 시조를 모아 놓은 노랫말(가사) 자료집이다.

‘청구영언’은 조선 후기 시인 김천택(金天澤)이 쓰고 편찬한 책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그의 친필(親筆)인지는 비교자료가 없어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이 완성되기까지 10년 넘게 노랫말을 수집한 김천택의 노력이 담긴 자료라는 점, 당시까지 전해 내려온 가곡을 작가의 신분이나 지위보다 노랫말의 가치를 우선해 수집하고 완성한 현전 최초(最古)의 가곡집이라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당대인들이 선호한 곡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틀을 짜고, 작가가 분명한 작품은 작가별로, 작자미상의 작품은 주제별로 분류한 체계적인 구성을 갖추었으며, 작가는 신분에 따라 구분해 시대순으로 수록함으로써 노랫말 전승의 역사까지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청구영언’의 체제는 이후 가곡집 편찬의 전범(典範)으로 널리 활용되어 200여종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편찬되었을 정도로 후대에 끼친 영향이 매우 지대하다.

‘청구영언’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집이자 2010년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가곡’의 토대가 된 자료로서, 내용의 중요성 뿐 아니라 조선 후기까지 민간에서 사용된 언어와 유려한 한글서예풍 등 국어국문학사 및 음악사, 한글서예사, 무형유산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3.2. 최남선

육당본(六堂本)이라고도 한다. 수록된 작품은 시조 999수와 가사 16편이다

3.3. 이희승(李熙昇)본

일석본(一石本)이라고도 한다.

3.4. 홍재휴(洪在烋)본

수록된 시조는 310수이다.

3.5. 이병기(李秉岐)본

가람본이라고도 한다. 수록된 작품은 시조 596수와 가사 11편이다.

3.6. 이가원(李家源)본

연민본(淵民本)이라고도 한다.

3.7. 일본

오구라본(小倉本)이라고도 한다. 일본 도쿄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3.8. 장서각

한국학중앙연구원이 1981년에 파평사람 윤석창(尹錫昌)에게 받은 육천권 남짓한 옛 서적에 있던 시조집으로 1995년에 부산대학교 교수 강명관이 소개하고 2003년 이상원 교수가 다뤘다가 2020년에 권순회와 함께 주해하여 출간하였다. # 시조 455수가 실렸다. 서로 다른 두 시조집을 1814년에 베낀 걸로 추정된다.

4. 구성

진본의 내용 구성은 다음과 같다.

4.1. 1항

4.2. 2항: 여말(麗末)

고려말 작품 6수가 수록되어 있다.

4.3. 3항: 본조(本朝)

조선조에 41명이 쓴 작품 203수를 수록하고 있다.

4.4. 4항: 열성어제(列聖御製)

어제시조(御製時調) 다섯 수가 실렸다.

4.5. 5항: 여항육인(閭巷六人)

여항육인의 작품 65수를 수록하고 있다.

4.6. 6항: 규수삼인(閨秀三人)

기생 3명의 작품 5수를 수록하고 있다.

4.7. 7항: 연대결고(年代缺考)

3명의 작품 3수를 수록하고 있다.

4.8. 8항 : 무명씨(無名氏)

저자를 알 수 없는 작품 104수가 수록되어 있다. (294 ~ 397)

4.9. 9항: 삼삭대엽(三數大葉)

우리나라 옛 전통 성악곡 형식의 가곡의 하나인 삼삭대엽 55수가 수록되어 있다. (398 ~ 452)

4.10. 10항: 낙시조(樂時調)

조선시대 향악 악조인 낙시조 10수가 수록되어 있다. (453 ~ 462)

4.11. 11항: 장진주(將進酒)

송강 정철의 작품 장진주사(將進酒辭) 1수가 수록되어 있다. (463)

4.12. 12항: 맹상군가(孟嘗君歌)

작자, 연대 미상의 잡가(雜歌)인 맹상군가(孟嘗君歌) 1수가 수록되어 있다. (464)

4.13. 최종항: 만횡청류(蔓橫淸類)

여러 사설시조 116수가 수록되어 있다. (465 ~ 580)

5. 전시

2017년 4월 28일 부터 2017년 9월 3일까지 국립 한글 박물관 3층 특별 전시실에서 청구영언과 그 속의 가곡들을 무료로 전시하였다.


[1] 그러나 풍산사람(豐山人) 홍만종(洪萬宗)이 쓴 「청구영언서(靑丘永言序)」 및 「이원신보서(梨園新譜序)」가 발견되면서 홍만종이 엮은 시조집을 김천택이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다. 논문 기사[2] 사실 효령대군의 10대 종손 이형상(李衡祥)이 1713년에 『악학습령(樂學拾零)』이란 시조집을 먼저 엮었다. 다만, 이 시조집은 머릿말을 비롯한 앞부분이 없으며, 이형상이 죽은 뒤에 나온 시조도 적혔고 가필한 자취도 있어서 현재 남은 시조집은 이형상이 엮은 원본이 아닌 건 분명하다. 그래도 『청구영언 진본』에는 없는 시조도 들어있고 분량도 방대하다. 병와가곡집이란 이명이 있다.전문 다운로드[3] 월북한 시인 오장환의 소장품이었다.[4] 그러나 본서를 비롯하여 모든 시조집이 「청석령(靑石嶺)」이 효종어제시조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로 소현세자예제(睿製)시조고 능양군이 화답하여 「작구가(雀鷇歌)」를 지었으나 권만(權萬)의 문집인 『강좌집(江左集)』에 한문으로 옮긴 것만 적혔을 뿐 어떤 시조집에서도 빠졌다. 모든 소현세자예제시조를 효종어제시조로 속이고 인조어제시조를 뺐으니 역사왜곡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시조의 지은이가 시조집마다 다르다든가 청구영언 등에서 지은이를 알수 없다는 시조가 뒷날에 나온 시조집에서는 지은이가 나오는 등 시조집에 실린 서지사항이 엉터리가 많다.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