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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침몰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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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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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조사 결과
2.1. 추가 조사 착수
3. 유력한 가설
3.1. 선박 증개축으로 인한 배의 안전성 위협3.2. 무리한 과속 항행3.3. 급격한 방향전환 (급변침)3.4. 화물 과적 및 관리 부실3.5. 부품의 노후화와 검사 부실3.6. 카 페리선의 구조적인 취약점3.7. 기준치에 미달된 평형수
4. 유력하지 않거나 반박된 가설
4.1. 가설이 나오는 이유
4.1.1. 각종 은폐 의혹
4.2. 외력설
4.2.1. 내부 폭발 음모론4.2.2. 김어준 계열 음모론 (앵커설)4.2.3. 잠수함 충돌설4.2.4. 세월호 의도적 침몰 음모론
4.3. 내인설
4.3.1. 유압장치 고장 (정비불량)
5. 진상규명 실패의 원인
5.1. 한국 사회에 강력히 내재되어 있던 사법주의5.2. 박근혜 정부의 방해 및 유가족 탄압5.3. 음모론의 등장과 언론의 검증 방기5.4.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내인설 불신5.5. 전문가들과 언론의 책임 회피

1. 개요

<rowcolor=white> 아직도 세월호 침몰이 '미스터리'라 말하는 당신에게
(뉴스타파 / 2023년 4월 13일 공개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사고 선박인 세월호의 침몰 원인과 이에 대한 가설들을 정리한 문서.

2015년 출범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와 2017년 꾸려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 2018년 출범한 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2기), 2019년 출범한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특수단)은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을 급격한 대각도 변침으로 배가 좌현으로 기울며 제대로 고박되지 않은 화물이 좌측으로 쏠려 잃은 선체의 복원성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만 이는 직접적 원인에 불과하고, 변침을 일으킨 간접적 원인,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정확히 확증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특조위 2기로 불리는 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와 검찰의 특수단 등 조사위원회들의 법적 근거이기도 하다.

2017년 4월에 설치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조사는 세월호 선체 인양으로 새로 확보된 증거를 바탕으로 침몰 당시의 상황을 데이터로 복원하였다. 수백번의 시뮬레이션과 다양한 증거로 활용된 방대한 양의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선조위는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채 두 권으로 나뉜 종합보고서를 제출하며 선조위 활동을 종료하였다. "내인설"[1]이 변침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유력한 가설인데, 이것이 기술적 한계상 과학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이것이 "외인설"[2]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라는 일부 선조위원의 의견에 선조위원 간 마찰이 이어졌고 결론을 합의하지 못했다. 결국 "내인설"을 침몰의 원인으로 규정하지 못한 채로 선조위가 종료되었다. 즉 현재 세월호 침몰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것이 아닌 기술적 한계로 인해 밝혀진 원인을 확증할 수 없는 상태이다.[3] #

사고원인 조사를 해야할 해양안전심판원은 2023년까지도 최종조사보고서를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특검의 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조작을 의심하는 대부분의 근거는 공식적으로 부인되었다.

2. 조사 결과

2014년 10월 검찰은 세월호의 침몰원인에 대해 “조타수의 조타미숙으로 인한 대각도 변침으로 배가 좌현으로 기울며 제대로 고박되지 않은 화물이 좌측으로 쏠려 복원성을 잃고 침몰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colbgcolor=#000>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4123000890_0.jpg
정부 공식 조사 결과

사고 발생 8개월이 지나 정부는 침몰사고의 공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은 폭침설, 좌초설 등 다양하게 주장되었던 음모론들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 못 박았다.#

그러나 2015년 11월 대법원은 "조타수가 큰 각도로 항로를 바꾼 건 침몰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이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본 조타미숙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후 출범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실험 결과, 같은 조건에서는 배가 급회전 하거나 뒤집히지 않았고, 외부 힘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즉, 변침을 행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 이는 2017년 재조사의 근거가 되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공식 조사에도 불구 세월호 침몰 원인에 관한 의혹은 계속 되었다. 이후 세월호 침몰 원인에 관한 정부의 공식 조사는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호, 즉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2017년 4월 출범하였다.

2017년 4월에 설치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조사는 세월호 선체 인양으로 새로 확보된 증거를 바탕으로 침몰 당시의 상황을 데이터로 복원하였다. 수백번의 시뮬레이션과 다양한 증거로 활용된 방대한 양의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선조위는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채 두 권으로 나뉜 종합보고서를 제출하며 선조위 활동을 종료하였다. "내인설"이 변침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가설인데, 이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어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내인설"이 침몰의 원인으로 결정되지 않은 것은 6인으로 이루어진 선조위원들의 의견 차이 때문이다. "내인설"은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를 지나면서 발생한 기계 결함으로 인해 급속하게 우선회하며 배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과적된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며 더 빠른 속도로 배가 기울어버리고, 열려 있던 수밀문을 통해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침몰에 이르게 됐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일부 선조위원들이 이것을 "열린안", 즉 기술적으로 입증할 순 없으니 확정 짓지 말자는 의견을 피력한다. 내인설의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여 외력 등 다른 요인의 존재를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내인설"의 설명에 사용될 충분한 근거가 없으니 "외인설"도 부정할 수 없다는 의견인 것이고, 그에 따라 침몰 원인을 확정 짓지 말자는 의견에 의해 선조위원 간 결론을 합의하지 못했다. 즉 현재 세월호 침몰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것이 아닌 기술적 한계로 인해 원인을 확증할 수 없는 상태이다.#

관련하여 기술적, 과학적으로 입증된 원인이 밝혀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긴 하다.
# 뉴스타파 기사
# 중앙일보 기사

2.1. 추가 조사 착수

2018년 4월 15일,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추가 조사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특조위 2기, 즉 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됐다.

네덜란드 마린사에서 세월호와 조건을 같이 해서 실험을 한 결과 나타나는 항적이 실제 항적과 다르게 나왔기 때문에 외부충격설에 대해 다시 검토한다고 한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실제 마린사의 중간보고서를 입수해 검토해 본 결과 실험에서 나온 다양한 가능 항적들 중 일부가 실제 AIS 항적과 상당히 유사했던 것으로 나왔다.링크[4]

게다가 5월 10일, 세월호를 바로 세운 결과 바닥으로 가려져 있던 좌현에도 외부 충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링크 세월호 조사위 위원장 김창준씨도 사실상 외부 충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인정했다. 링크 조사위 전문가도 정면과 측면에서의 외부 충돌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다만 가능성 자체는 배제하지 않고 조사할 방침이다.

나중에 나온 세월호 손상 보고서에 따르면 선체내 내부 손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좌현 충돌 흔적 없다’ 언론 보도 이해할 수 없어” 외견상 선체에 큰 변형이 없어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그 변형은 눈으로 확인이 가능할 만큼 컸다. 외부에서 싸고 있는 세월호 외판에 큰 상처가 없어 보이지만 의문의 하중과 충격으로 인해 내부 굴조가 부러지고 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외력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변형인데 그것이 사고 당시에 작용된 것인지 인양작업 과정에 발생한 것인지는 더 조사해봐야한다고 마무리지었다.

다만 링크에 나온 기사에서 손상 흔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마지막까지 떠 있던 선수 부분이다. 세월호 침몰 직전 사진들을 보면 세월호가 가라앉기 전에는 이 흔적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링크 게다가 침몰 직전까지 잠수 작업 밑 조사 작업을 하면서 구조정들과 구조단 인원들이 자주 접촉한 부분이고 언론의 촬영을 지속적으로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링크 당시부터 변형이나 충격의 흔적이 관찰되었다면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애초에 내부 변형을 일으킬 만한 충격을 외부에서 순간적으로 받았다면 외형의 변형이 없을 수가 없다. 자세한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인양 도중에 일어난 변형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2019년 11월 11일, 검찰에서 특조위2기와 함께 조사를 할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특수단)을 출범하였다.#

2021년 7월, 세월호 CCTV 영상 복원 과정에서 CCTV 영상을 덮어 씌우기 하지 않는 이상 발견될 수 없는 파일들이 CCTV 영상복원 하드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특검의 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조작을 의심하는 대부분의 근거는 공식적으로 부인되었다. 결국 조사의원회가 결론을 내리길 주저한 결과 무의미한 음모론에 국가적 재원만 낭비한 꼴이 되었다.

3. 유력한 가설

2014년 9월부터 많은 전문가들이 분석한 침몰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가설은 해양공학, 조선공학, 구조공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걸쳐 있어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한 번에 서술하기 어려우므로, 항목 별로 분리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다만, 이 가설을 취급할 때 주의하여야 할 것은 아래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 가설 자체가 2022년 현재도 학술적, 경험적으론 가장 올바를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긴 하나, 위 (3)에 해당하는 사항들이 인양 과정에서 이미 드러났기 때문에, 직립된 상태의 선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가설은 언제든지 수정되거나 기각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가장 인상적인 원인 분석을 참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시 돌아본 4월 16일 그 날

관련하여 부경대학교 환경해양대학 공간정보연구소 이상윤교수는 세월호 침몰사고 원인에 대해 복합원인설을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은 총체적인 원인이 합쳐지면서 발생했다고 하는데, 배의 동적안정성이 붕괴된 것이 복원력 상실의 원인이며, 배의 동적안정성이 불안했던 이유는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사고지점을 운행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원인으로 화물결박이 느슨한 상태 및 배의 과적, 증축에 따른 무게중심이 위로 쏠리면서 배의 복원력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되었고 아마도 배 밸러스트 평형수가 부족했기에 배는 운항 시 및 사고지점에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고 했다. 이때 조류가 매우 빠른 맹골수도를 지나면서 배의 유동이 급격해졌고 배가 좌우로 흔들리면서 배 요동이 심해졌으며, 배가 좌우요동되면서 킥현상이 발생하였고 동시에 변침 및 배 외방경사가 발생하여 배의 복원력이 완전히 붕괴되어 침몰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이후 배의 물에 잠긴 부분부터 침수가 시작되었고 완전히 침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세월호 침몰에 대한 복합원인설을 참조하는 것도 함께 좋을 것이다.

3.1. 선박 증개축으로 인한 배의 안전성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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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무리한 과속 항행

세월호는 출발일 당시 짙은 안개로 인해 예정된 출항시각보다 약 2시간 지연되어 출항을 했다. 따라서 평소보다 2시간 가량 항해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적정 항행속도를 초과한 세월호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력을 유지하면서 과속 운행을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승객들보다 화물이나 차량 운송에서 얻는 수익성 문제로 어쩔수 없이 과속 운행을 지속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 상황.

게다가 조류가 매우 빠르기로 유명한 맹골수도 진입 순간에도 최대 속도를 유지했다는 것이 항적 분석 결과 드러났다. 또한 조류가 빠른 해협을 통과하는 위험한 항로에 진입했음에도 조타실의 운영은 경험이 부족한 신참급인 3등 항해사에 의해 지속되고 있었으며 조타를 담당한 조타사 역시 수사과정에서 다소간 조타상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진술을 했다고 밝혀진 상황이다.

아직 침몰한 선박을 인양해 자세한 전후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섣부른 결론은 어렵지만 무리한 항행 및 난코스에서 경험 부족한 3항사의 선박지휘 및 조타사의 실수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것은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자동차는 과속을 하더라도 브레이크 등의 제동장치를 작동시키면 어느 정도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돌발상황에 대처할 시간이 주어지기라도 한다지만 무게가 무거운 선박의 경우, 조금만 속도가 높아지면 돌발상황 발생 시 대처할 시간이 상당히 촉박해지며 특히 저항이 적은 물 위에서 아무리 전속 후진으로 속도를 줄인다 하더라도 세월호 같은 거대한 선박은 무게가 워낙 무겁기 때문에 관성을 이기지 못하면 선박을 제대로 컨트롤 하기 어렵다.[5]

이는 2014년 1월 31일 발생한 여수 기름유출 사고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선박의 입항을 책임진 도선사가 규정보다 약간 빠른 속도로 항행을 하다가 전방의 유조선 접안용 송유관을 발견하고 급하게 선박을 회전시켰으나 관성의 힘을 이기지 못해 그대로 송유관을 들이받아 막대한 기름이 유출된 사고가 있었다.

세월호 역시 평소 규정속도를 초과한 고속으로 항행을 했다고 항적분석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특히 사고가 난 맹골수도 진입 시에도 평소보다 항적이 상당히 어긋나있는 것으로 볼 때 과속으로 인해 규정된 좌표로 항해를 하지 못하였고, 이를 뒤늦게 인지한 조타실에서 변침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아래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침몰로 이어졌을 개연성이 높아보인다.

3.3. 급격한 방향전환 (급변침)

파일:external/news.nateimg.co.kr/2014041701070443328002_b.jpg
그래픽으로 정리한 선체 기울기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4px; background: currentcolor; font-size: 1em" 우방향 회전 위해 변침(배가 침로를 바꿔 잡는 것) 구간 진입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4px; background: currentcolor; font-size: 1em"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진행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4px; background: currentcolor; font-size: 1em" 관성 작용 및 화물 쏟아져 내리면서 중심 잃어 기울기 시작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4px; background: currentcolor; font-size: 1em" 침몰
부경대학교의 이상윤 교수는 상기 경찰잠정조사와 유사한 단계설 혹은 복합원인설을 주장하여, 세월호는 유속이 특히 빠른 맹골수도에 진입 전 이미 과속으로 인해 요동이 심한 상태였고 유속이 더욱 빨라지자 선회기동 및 변침 등이 일어나면서 속도가 가속된 상태에서 과적 및 화물결박불량, 평형수 부족 등으로 배의 복원력이 붕괴되었고 결국 침몰했다고 하였다.#

목포해양대학교의 임긍수 교수는 인터뷰에서, 안개 탓에 급하게 변침을 하다가 무게중심이 쏠려 전복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해당 항로가 최단거리 항로이기에 항로를 변경했을 가능성은 낮으며 따라서 항로 이탈에 따른 암초 충돌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암초 가능성보다 급선회 외방경사.

연합뉴스 보도에서도 핵심 승무원을 조사한 결과 급격한 방향전환으로 인한 화물쏠림이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연합뉴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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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GYH2014041700170004400_P2.jpg
파일:attachment/62856587.1_59_20140418090602.jpg
세월호 침몰 직전 급변침 항적

그리고 결국 해경의 세월호 항적 조사결과 실제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급변침을 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세월호 침몰 원인, '급격한 변침'에 무게. 해경은 현재 급변침이 사고의 원인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급변침 과정에서 선박이 좌현으로 기울고, 결박이 풀림과 함께 균등하게 배치되어 있던 차량과 화물이 관성에 의해 좌현 쪽으로 쏠리며 무게중심이 급격하게 붕괴되어 배가 서서히 기울다가 사고 신고가 접수된 직후의 시간에 완전히 균형을 잃고 전복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세월호의 차량 결박이 평소에도 허술했다는 증언까지 나와 급변침이 원인이 되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해당 기사

사실 이런 공식 보도들이 나오기 전에 이미 인터넷에서 비슷한 원인을 추정한 글이 올라와 있었다. 침몰 원인 추정 게시글 또한 공식 발표 전에도 종편과 인터뷰했던 화물선 선장들은 급변침을 의심해야 한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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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ipped_ferry_2013_6_11.jpg
완전히 좌초된 페리 아리아케호

이번 SBS 뉴스에서는 2009년에 일본에서 일어난 페리 아리아케호 전복사고의 원인도 세월호의 유력한 원인과 비슷한 급변침이라고 했는데, 복원력을 저하시키는 순풍을 받고 항해 중 우현 뒤편에 파도를 맞게 되었고 고박되어 있지 않았던 화물이 한 쪽으로 몰리며 고박되어 있던 다른 화물을 덮쳐 과도한 하중으로 고박장치가 파손되어 화물이 우현 쪽으로 쏠려 선체가 왼쪽으로 급선회하게 되었고 그 중에 다시 파도를 맞아 선체가 45도 넘게 기울며 복원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다.[7]

비록 일본의 사례이기는 했지만, 이른 새벽에 갑자기 일어난 사건임에도 당황하지 않고 원칙대로 행동한 결과였다. 이 사고를 조사한 일본 정부 보고서는 화물 관리가 느슨했다는 점만 지적했고 선원들의 대처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결론냈다. 선장이 승객과 승무원들을 먼저 내보낼 정도로 배려한 점에선 정말 모범적인 자세이다.MBC 분석정보 해당 기사 1 해당 기사 2 상위 사진 참고

문제는 차량과 화물이 제대로 고정되었다면 급변침을 하더라도 이러한 일이 생길 확률이 상당히 낮아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후술할 조사 결과 세월호에서는 이러한 화물 고정 작업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던 것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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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GYH2014042300060004400_P2.jpg
출항부터 침몰까지의 행적

이후에는 그 정도까지의 급선회가 없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16일 이후 밝혀진 항로에 의하면 선회각은 기존에 알려진 115도가 아닌 45도이다. 그것도 엔진트러블이 발생하여 속도는 떨어지고 있었고, 45도 변침 이후에는 22도 변침과 연이은 속도 저하 증상이 보도되었다. 즉 세월호는 주행 중에 엔진이 꺼졌고, 속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방향도 꺾이면서 표류를 시작한 것이다.

6월 10일의 세월호 사건 첫 공판에서 사고의 핵심당사자인 3등 항해사 박 아무개가 자신의 변호인을 통하여 급변침을 한 까닭은 선박충돌을 회피하기 위함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처음 주장하여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배와의 충돌을 우려하여 레이더와 육안으로 앞쪽을 살피면서 주시하고 있었고, 조타수에게 5도로 방향전환을 지시했으나, 그 후 균형을 잃고 침몰하게 되었다는 것.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급변침을 하게 된 이유자체는 설명되는 셈이나, 왜 이처럼 중요한 사실을 이제야 털어놓는지 의문이 크다. 현재 상대 배로는 사고현장에 가장 일찍 도착했으며, 선장이 언론인터뷰를 통해 충돌할 우려 때문에 레이더로 주시하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는 유조선 둘라에이스호가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다. 충돌위험회피라고는 하지만 두 배가 서로 부딪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기보다는 좁은 수로에서 좀 더 충돌가능성을 줄여보고자 방향전환을 시도했으나, 배 자체의 결함 또는 조타수 과실로 인해서 복원력을 상실하고 침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처럼 중요한 진술이 이 시점에서야 나왔다는 점에서 자초지종은 좀 더 지켜봐야할 일이다.

그러나 7월 15일의 1심 공판중에 위의 박 아무개가 사고 당일 직후 학교 선배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가 공개된 결과, 전혀 다른 내용의 메시지#가 오감으로서 앞서 진술은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해당 내용에서는 어선이나 암초등의 장애물은 없다고 스스로 밝히는 한편, 선배로부터는 변침 과정에서의 실수를 지적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무조건 선장책임으로 하고 자기 책임은 말하지 말라는 조언 등을 받은 것으로 보아 자신에게 유리한(허위진술을 포함) 진술만 하려는 것이 명백. 물론 해당 카톡에서도 선장 이준석은 까이고 있다.

급변침 가설을 집중적으로 다룬 다큐로 프로젝트 부 〈INTENTION〉이 제작 중이며, 원래는 2015년 9월에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새로운 자료가 계속 추가되어 완성이 한없이 늦어지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일부 내용이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서 여러 회에 걸쳐 다루어졌다.

3.4. 화물 과적 및 관리 부실

침몰 직전 찍힌 사진들을 보면 선수 부분에 적재했던 컨테이너가 쓰러져 바닷물에 둥둥 떠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분석에 따르면 선수에 적재된 컨테이너의 무게만 하더라도 수백 톤을 상회하는 수준인데 배의 무게중심이 가뜩이나 증축으로 인해 높아져있는 상태에서 선박의 무게중심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화물 과적이 배의 복원력 손상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세월호에겐 여객 수송은 부수입이고 진짜 주 수입은 화물 운송이었다. 때문에 여객선이었으면서도 여객 운송은 소홀히 하고 화물 운송에 더 신경을 썼다.[8]# 자동차를 적재하는 공간에는 승용차 외에 무게가 상당한 각종 화물차가 다수 적재되었다.[9]

문제는 이런 화물을 적재할 때, 선박의 무게중심을 고려해 치밀한 계산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파도나 조류에 의해 선박은 항상 전후좌우로 롤링이나 요잉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무거운 화물 컨테이너나 차량들을 선체에 단단히 결박(고박)하지 않으면 특정 상황으로 배가 심하게 기울었을 때 이들 화물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서 선박의 무게중심을 무너뜨리는 데 큰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원래 세월호같은 카 페리, 로로선은 구조적으로 급변침과 침수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로로선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세월호와 같은 유형의 사고가 일어난 게 한두 건이 아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무리한 항행 과정에서 조타의 영향으로 배가 기우는 순간 단단히 고정하지 않은 차량이나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세월호의 무게중심이 무너지고, 이는 곧 선박의 복원력을 방해하여 한쪽으로 기울면서 전복되는 상황을 야기했을 것으로 보인다.

수사 과정에서 선원들의 진술을 보면 배가 기우는 반대방향으로 조타를 조절하려 했으나 계속 배가 기울었다는 점, 생존한 승객들이 큰 굉음을 들었다는 점 등에서 화물이나 차량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의 복원력을 망가뜨렸다는 분석에 힘을 더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수산종합연구센터가 실험을 해봤는데, 화물이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배가 방향을 바꿀 때 복원력을 잃어 침몰할 수도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관련 영상).

2014년 4월 22일 KBS를 통해 보도된 기사를 보자면, 세월호의 복원성이 유지되는 화물적재량은 987톤이지만, 사고 당시 세월호는 적재량의 3.7배에 다다르는 3608톤을 실었다고 한다.

또한 세월호에는 적재한 화물들의 균형을 맞춰주는 '로딩(플랜)마스터'라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하청업체인 W통운에 맡겨서 주먹구구식으로 화물을 적재하는 한편, 신고된 화물보다 과적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1500만 원 아끼려다.. 실제로 세월호의 화물을 담당했던 W통운은 청해진해운에 화물 적재량을 허위보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4월 28일 JTBC 정관용 라이브의 꼭지 중 중앙일보 이철호 수석 논설위원이 동남아에서 선사를 운영하는 두 명의 인터뷰를 인용, 세월호의 과적 가능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다. 35분부터 참고 원래 선박의 복원력을 위해 배 맨 밑에 평형수를 만재흘수선(滿載吃水線)이 수면에 닿을 때까지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세월호는 이 평형수를 많이 채우지 않은 것으로 추측했다. 즉, 침몰 후 선수가 수면 위로 나와 있던 것은 선실 내부에 에어 포켓이 있던 것이 아니라, 평형수를 넣는 곳에 물을 미달하여 넣었다는 것이고, 평형수가 빠진 자리를 결박도 안 한 화물들로 벌충했다는 얘기다.

2014년 7월 9일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에 따르면 세월호에는 185대의 차량이 있었으며 승인된 차량대수(97대)보다 88대가 많았다. 그런데 475명의 탑승자 중 단원고 학생 325명과 선원 30명을 빼면 일반 승객은 최대 120명이다. 그는 "세월호에 실려 있는 185대의 차량주인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폐차를 실은 건가? 일반 승객의 숫자를 넘는 차량이 어떻게 실릴 수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제주도로 들어가는 연안 여객선들은 차량을 가지고 가는 승객들의 차도 싣지만 제주도로 차량을 탁송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즉, 세월호에 실린 차량들 중에는 제주도로 운반되던 신차들도 있었던 것이다.

2016년 6월 27일, 세월호 조사특위는 지난 검경합수부가 발표한 화물의 무게와 차이가 있음을 나타내는 보고서를 채택하였다. 특조위에서는 세월호의 화물이 2215톤으로 확인하였으며 출항 전 승인한 987톤보다 무려 1228톤이나 과적된 것으로 확인하였다. 화물의 분류별로 일반 화물 1164톤, 차량 화물(화물차 및 중장비 포함) 728톤, 자동차 192톤, 컨테이너 131톤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화물 중 상당부분이 철근(410톤)으로 기존 합수부가 발표한 286톤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상위는 화물의 고박상태와 무게에 따른 복원력을 재분석을 할 것을 발표하였다. 또한, 이 철근 중 278톤은 제주도 강정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기자재로 나타났다.#

3.5. 부품의 노후화와 검사 부실

선박의 방향을 잡고 충돌을 예방하는 필수 장치인 조타기와 레이더가 부실 덩어리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고장덩어리 '세월호'..방향 잡는 조타기 잦은 수리

기사에 따르면 사고가 나기 불과 보름 전 조타기의 오작동을 지적하며 수리 필요성을 제기하는 문서가 나왔으며, 이를 보면 조타기는 제대로 수리를 마친 것인지 정확히 확인이 어렵다. 또한 선박 주변의 물체를 식별하는 레이더는 최근 4개월 동안 3번이나 교체했고, 엔진의 노후화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이러한 선박의 노후화 부실화는 사업자 대부분이 영세한 탓에 시설투자가 어려운 실정에 원인이 있는데. 이렇게 영세한 해운 회사들은 안전 훈련과 교육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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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jtbc9.png
청해진해운 전 항해사의 증언

4월 18일 JTBC 뉴스 9에 따르면 배의 복원력에 대한 문제가 있어서 2회나 검사를 받았다고 전했다. 1차 검사에서 복원력의 문제 때문에 검사에서 탈락한 선박이 별다른 조치 없이 KR(한국선급)의 2차 검사를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참고

그리고 2014년 4월 21일에 방영된 jtbc 9시 뉴스에서 세월호 전 기관사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배가 크게 그리고 자꾸 기울어서 불안했었다고 하고 그런 이유로 이직이 잦았다고 한다.# 또 세월호의 전 항해사의 전화인터뷰가 진행되었는데 여기에서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선을 취급하는 부산국제터미널을 제외하고 인원이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 이유나 화물고정이나 16번 채널이 쓰이지 않은 이유 등 총체적으로 잘못된 관행이 이루어졌음을 폭로하였다. 사실 그 뒤에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듯하였으나 시간관계상 중간에 끊긴 부분이 이 정도다.#

선령 완화와는 관련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반박도 있다. 이명박 정권 시기인 09년도에 선령 규제를 완화하여 문제가 발생했다는 말들이 많은데, 반박으로 2009년부터 적극적인 해양사고 관리를 위해 사고의 개념을 확대하여 사고현황이 증가하였기 때문이고, 실질적으로 선령에 규제를 가하는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중국밖에는 없다는 것. 또한 선령이 오래된 배가 사고가 많은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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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침몰원인/63.jpg

그러나 이 자료는, 가장 왼쪽에 있는 1997년을 기준으로 하면, 5년 미만은 <약 3만 척에 사고 145척>, 10년 미만은 <약 2만 척에 사고 137척>, 20년 미만은 <2만 척에 171척>, 20년 이상은 <약 9천 척에 사고 119척>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배의 수는 줄어드나 사고 횟수는 대체로 비슷하다. 다른 연도도 마찬가지다. 2001년은 5년 미만의 배가 20년 이상의 배보다 거의 4배나 많으나 사고횟수는 5년 미만의 배는 146회이고 20년 이상의 배는 80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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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침몰원인/e1.jpg

이 자료 또한 배의 숫자는 등장하거나 고려하지 않고 사고 숫자만 비교하고 있다. 또한 다른 나라의 선령 규제여부를 말하는 것은 다른 나라가 사고율이 더 낮다고 하지 않는 이상 관련없는 주장이다. 또한 전체적인 사고 횟수가 많아진 것과 특정 연령대가 특정 연령대 보다 사고율이 높은 것은 다른 것(횟수와 비율)이므로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3.6. 카 페리선의 구조적인 취약점

마지막으로 카페리선은 주차구역이 일반 선실과는 다르게 방수격벽을 설치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로 인해 기울어가는 세월호에 바닷물이 유입되다가 결정적으로 주차구역에 다량의 바닷물이 계속 밀려들어오고 빠른 속도로 배가 가라앉게 된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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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침몰원인/Kronprinsessan_Victoria_05.jpg
카페리선은 승객칸에는 수밀격벽이 있으나, 그 아래 1~2층은 전부 주차공간이므로 수밀격벽이 없다.
참고 선박은 스웨덴의 크론프린세잔 빅토리아호.(Kronprinsessan Victoria) 이 선박은 아직도 현역이다.#

만약 일반적인 여객선의 구조였다면 침수가 시작되더라도 방수격벽 구역을 조절하면 최소한 침몰하는 속도를 지연시키거나 수심이 얕은 곳으로 선박을 조정해 승객들을 최대한 대피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이지만, 거대한 주차구역에 순식간에 대량의 바닷물이 차오르면서 침몰 속도가 매우 빨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카페리선은 크루즈선과는 달리 승객들과 자동차를 같이 싣고 다녀야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부의 1~2층을 수밀격벽 없는 커다란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는 선박이었기에, 안전관리에 있어서는 다른 선박보다 더 신경 써야 할 수밖에 없다.

자세한 설명과 사례가 궁금하다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논란 부분에서 링크한 다음 부분을 참고해 보도록 하자.

3.7. 기준치에 미달된 평형수

배는 불안정한 바다 위를 항해하는 교통수단이다 보니 물살이 거세더라도 항상 평형을 유지해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다. 그래서 배에는 평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물을 채워넣는데 이것이 바로 평형수다. 그런데 세월호는 사고 당시 기준치에 훨씬 미달된 평형수가 채워져 있었음이 밝혀졌다. 본래 평형수는 짐이 많으면 빼고 적으면 채우는 일반 평형수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빼서는 안 되는 고정 평형수가 있다. 그런데 세월호는 바로 이 고정 평형수가 채워져 있지 않았다.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한 전 세월호 기관사의 말에 따르면 세월호는 파도가 쳐서 배가 기울면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좀처럼 복원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본래 평형수가 정상적으로 채워져 있었다면 파도가 쳐서 넘어갈 경우 다시 기우뚱기우뚱하면서 제자리를 찾기 마련인데 세월호는 평소에도 평형수를 제대로 채우지 않고 항해했기 때문에 파도가 쳐서 배가 한쪽으로 기울면 좀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관사는 퇴직금도 마다하고 9개월 만에 사표를 내버렸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도 이 배가 언젠가는 크게 사고가 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세월호는 7,000톤급의 대형 철선이었는데 최초 변침이 시작된 시점이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이었고 선수 부분 조금을 남기고 완전 침몰한 시각은 같은 날 오전 10시 37분이었다. 즉, 최초 변침부터 완전 침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109분으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평형수가 미달되었던 상태에서 배를 급격하게 돌려버렸기 때문에 침몰했을 수 있다. 실제 해경이 촬영한 열화상 카메라에는 4번 평형수가 사실상 비어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문제는 이 4번 탱크가 바로 고정 평형수였다는 것이다. 세월호의 고정 평형수는 총 5개의 물탱크 중 2, 4, 5번 탱크였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4번이 가장 핵심이었고 일본에서 이 배를 인수받을 때도 절대 4번 물탱크에서 물을 빼지 말라는 주의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당시 세월호의 4번 물탱크에는 물이 채워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평행수를 줄이는 만큼 배의 중량을 줄여 줄인만큼 더 많은 짐을 수송할 수 있다.

이 기준치에 미달된 평형수는 전 국민들에게 희망고문을 하는 부작용도 낳았다. 다들 기억하다시피 사고 당시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지 않았고 선수 부분이 약간 떠 있는 상태였다. 당시 정부와 언론에서는 에어포켓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에어포켓 때문에 선수 부분이 가라앉지 않았을 것이라고 희망고문을 가했다. 하지만 에어포켓 따위는 없었고 기준치에 미달된 평형수 때문에 물 대신 공기가 들어차서 선수 부분이 가라앉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거기는 물탱크였기 때문에 설령 에어포켓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승객들이 그곳에 있었을 가능성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4. 유력하지 않거나 반박된 가설

4.1. 가설이 나오는 이유

첫 문단에서 밝혔듯이 사실로 확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그 실체를 밝히기 위한 논의가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것이며, 그 실체에 다가가기 위한 도구로써 가설을 세우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어떠한 성격을 갖는 음모론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는 사고 당시 16초만에 52도 까지 기울었는데, 자력으로 항주하는 여객선이 외력 없이 이런 속도로 급격하게 기우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

무엇보다 검찰의 발표를 토대로 한 2018년 1월 네덜란드 마린의 모형실험에서 사고의 항적과 기울기가 발생하지 않아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선조위는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고 네덜란드 마린에서 지난 1월과 2월 세월호 모형실험이 진행했다. 그 결과 세월호는 과적, 복원성 불량, 조타 실수 및 기기 고장 등으로는 사고 항적과 기울기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와 비슷한 실험은 2014년 국내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에서도 진행됐다. 결과는 같았다. 검찰이 주장한 ‘선체만의 문제’로 사고가 났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틀린 것이 됐다. 기사 일부 발췌 그러나 위의 가설입증에서 볼 수 있듯이 선체만의 문제가 아닌 다른 복합적 원인으로 침몰해졌다는 결론에 거의 도달 했으므로 이 문단만 보고 음모론적 주장을 믿지 말길 바란다. 또한, 검찰의 조사 결과 은폐 의혹, 해경의 데이터 은폐 의혹 등이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는 해당 기관의 발표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고 있는 상황이다.

물 밖으로 인양한 세월호의 직립 작업 이후 육안으로 확인한 결과 외부 충돌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서 아래의 잠수함 충돌설, 암초설 등의 이의제기는 신빙성을 잃은 상황. 잠수함 충돌설이나 암초설 등은 인양 및 직립 이전에도 수차례 반박당하고 불가능함이 입증된 가설들이지만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믿을 수 없다는 의견들이 상당히 거센 가설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인양을 통해 외부의 충돌 흔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해당 가설들은 힘을 잃을 것으로 보여진다. 남은 가설은 닻으로 인한 고의 침몰설인데, 이 또한 기존에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박받은 가설이지만 반박의 논거 또한 증빙되지 않았다. 아직 육안으로 이 가설과 관련된 증거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직립한 선체에 대한 추가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4.1.1. 각종 은폐 의혹


그러나 이 모든 의혹제기는 문재인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특검 조사 결과 그저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4.2. 외력설

외부 충돌이 실제 있었다면 정부나 정보기관이 외부 충돌 사실을 사고 발생 당시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은 바, 아직까지 그 사실이 확인되거나 공개되지 않았으니 사고 발생 당시부터 은폐 행위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폐 과정은 사고 발생 초기부터 이루어졌을 것이고, 구조에 전념해야 할 정부가 그로 인해 구조에 전력을 쏟기 어려웠을 개연성이 높으며, 당연히 사참위는 그 부분을 집중 조사해야 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 사참위 박병우 조사국장#
대한조선학회는 지난 5월 9일과 18일 등 2차례에 걸쳐 사참위 조사국의 '외력' 관련 조사결과보고서 2건에 대한 공식적인 검토 자문 결과를 제출했습니다. 종합 결론은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외력(현실적으로는 좌현 핀안정기 부위에 잠수함의 후방 추돌)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뉴스타파 - [현장에서] 퇴출과 잔존의 기로에 선 ‘세월호 잠수함 충돌 음모론’

<시사저널>은 지난 4월 11일 인터넷판에서 “세월호 외력충돌 흔적이 나왔다”는 제목으로 단독보도를 했다. <시사저널>은 선조위 내부 용역보고서를 인용, “선수 좌측면 하단에 외력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약 46㎝ 정도 들어가는 변형이 발견되었으며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그 힘은 2810톤의 강한 힘이 가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보도가 뜬 직후, 선조위는 해명자료를 내 보도를 부인했다. “가상으로 진행한 설명자료를 실례로 오해해 보도한 오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선조위의 입장은 이틀 후 또 바뀌었다. 외력설을 공식 검토 안건으로 채택한 것이다.

<주간경향>은 4월 13일 선조위 외력설 토의사항 안건(‘세월호 침몰원인 관련 외부물체와의 충돌설(‘외력설’)에 관한 논의’) 문건을 입수했다. 문건을 보면 ‘선조위는 외력설을 배제하지 않고 조사를 진행해 왔음. 새로운 외력설에 대한 논의 및 조사 필요성 검토’ 등의 토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선조위 내부 일각에서… 의문을 제기’라는 표현이 존재한다. 선조위 내부에도 외력설을 심중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기사

유력한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암초가 꼽혔다. 하지만 해양 전문가인 도선사와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사고지점 근처에 뚜렷한 암초는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항로를 설정할 때 해양수산부 인가를 받는데 세월호가 침몰한 항로는 굉장히 안전한 항로 중 하나이다. 물론 침몰 지점전에 항로를 이탈하여 암초에 충돌할 수 있지만 청해진 해운 관계자에 따르면 항해 중 눈에 띄는 항로이탈은 없다고 하였다.# 또 TV 생중계 화면을 보면 선체 바닥에 암초에 부딪힌 파공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사고 당시 쿵하는 충격음과 함께 6000여 톤의 여객선이 순식간에 기울어졌다는 점, 사고 당시 가시거리가 충분하고 파고가 높지 않다는 점 등 일반적인 암초 사고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정황들이 있었다.#

한편 JTBC 뉴스 9에서 침몰된 여객선 영상을 분석한 결과 바닥면에 파인 자국이 발견됐다. 이 파인 자국이 지난 2012년 암초와 부딪혀 침몰한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에 생겼던 충돌 자국과 유사하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생존자의 증언으로는 바닥에서 무언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하지만 무리한 운항과 항로 이탈로 사고를 초래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링크에 나온 KBS 속보를 보면 해양수산부가 안전을 위해 지정한 권장항로 대신 병풍도 뒤쪽을 빠져나오는 항로를 택한 데다 안개 속 인천항을 떠난 배는 세월호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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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바닥 파공 모습[10]

그리고 4월 21일, 세월호가 방향을 바꿀 때 115도가 아닌 45도였던 걸로 확인되면서 급변침 쪽이 더 가능성이 높아졌다.#

4.2.1. 내부 폭발 음모론

카페리 특성상 세월호에 실려 있던 화물이나 차량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선체가 파공하여 침수되었다는 가설이다. 생존자 증언 중 '쾅'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

그러나 후속보도에 따르면 '쾅' 하는 충격음은 선박에 실려있던 컨테이너 등이 선박이 기울어짐에 따라 부딪혀 발생했다는 관계자의 증언이 있어, 섣불리 판단하긴 이르다. 또한 초기에 구조된 단원고 여학생 박 모양의 인터뷰에 의하면 쾅하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사고 2달 전에 있었던 정기점검에서 세월호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은 항적자료와 선원들의 진술 결과 선체 이상 징후가 없다며 폭침설을 부정 내부 폭발설 또한 사실상 음모론으로 결론이 나왔다.

4.2.2. 김어준 계열 음모론 (앵커설)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서 주장한 음모론.
요지는 vts의 항적이 이상하다, 즉 정부에서 항적을 조작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9시 32분의 스틸샷으로 앵커가 안보인다며 이 때 이미 병풍도 쪽으로 접근, 고의적으로 앵커가 내려졌었다는 두 가지 주장이 핵심이다.

하지만 그 후 35분~36분에 다시 나타난 앵커는 무엇이며 또한 일반적으로 앵커를 내리고 올리는데는 전력이 필요하며 현장에서 인력이 기계를 움직여야 한다는 반론과 함께 그 정도로 충격을 가했으면 앵커가 끊어졌을텐데 침몰 직후까지 붙어있었다며 파파이스가 하는 주장은 물리 법칙으로 맞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 # 또한 앵커 체인은 1샤클이 27.5미터이다. 그리고 체인을 회수하는데 있어서 1분당 9미터일 것을 요건으로 하며 누군가가 윈드라스를 10분씩이나 조작하고 있겠으며 하다못해 사고 유발자가 진짜 능력자라서 8시 50분부터 앵커가 회수되기 시작했다는 가정하에 회수를 시작하려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48분까지는 투하가 완료되어야 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시간적으로도 투하 및 회수가 불가능하다며 반론이 제기 되었다.# 앵커가 배를 붙잡는 힘, 파주력의 분석을 통해 파파이스가 주장한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되기도했다.# 또한 파파이스가 제시한 vts의 조작설에 대해서 세월x에서 반박이 나왔다.

그 외에 파파이스에서 언급된 엔진정지설에 대한 반박이나 미확인물체설 등에 대한 반박이 나왔다.

비과학적 음모론 취급을 받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결국 2024년 4월 4일 한겨레에서 대놓고 이 주장을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고 명기했다. #

이후, 2018년 4월 12일에 개봉한 그날, 바다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어졌으며, 앵커에 의한 침몰 및 정부가 공개한 AIS 자료 조작에 관하여 집중되어 있다. 근본적으로 공식 발표된 조사 내용을 부정하며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세월호의 항적이 조작되었음을 주장한다. 8시 49분 사고 이전인 8시 30분 즈음에 이미 선체가 몇 회 기울어진 적이 있었다는 생존자의 초기 증언에 근거해 주장한다. 조사 결과인 과적으로 인한 선체 복원력 부재를 부정하며, 가능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우선적으로 정부가 분석 자료로 사용한 AIS와 해군 레이더 기록은 최초 목격함 '두라에이스'의 선장과 선원들로부터 실제 항적과 다른 것 같다라는 증언을 인용한다. 세월호의 한쪽 닻이 내려가, 병풍도 주변 바다 바닥과 충돌해 침몰하게 된 마지막 급선회 이전 수차례 급선회가 발생하였고, 결국 마지막에 큰 충격을 받아 후술할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침몰했다는 것이다.

먼저 침몰 이전인 약 6시 30분부터 앵커에 의한 급변침으로 보이는 항적 및 AIS RAW 자료[11]가 나타나며, 생존자들의 진술과 차량 내 블랙박스 영상들의 현상을 볼 때에 앵커에 의해 최종적으로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정부의 항적도는 정상적인 AIS의 자료에서 나타날 수 없는 불일치들이 있으므로, 조작된 것으로 판단되고, 해군의 레이더를 이용한 항적도 또한 위치가 옮겨져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세월호가 4번이나 급좌회전을 했는데 관성의 법칙에 의하면 왼쪽으로 기울어질 수는 없고, 이 급좌회전을 한 위치는 모두 수심이 얕은 섬 근처였다는 점이 이 가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이러한 조작에 대한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에서 발표한 항적 자료와 민간업체에서 수신한 항적 자료, 세월호 인근을 지나던 상선들에서 수신한 항적 자료가 93% 일치하였고, 나머지 6%는 경미한 오차이다. 영화에서 주장한 조작이 사실이려면 위 자료가 모두 조작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특히, 민간업체 중엔 외국의 상선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주장한 항적 조작의 다양한 근거는 모두 기각될 수밖에 없다.

또한, 급회전에 대한 근거로 레이더 항적을 근거로 삼았는데, AIS - 레이더 간 항적의 불일치, 레이더 항적의 오차는 세월호뿐만 아니라 모든 선박에 대해 일어나는 것으로, 이러한 오차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즉, 급회전이나 급변침을 하지 않았어도 레이더 항적에는 그런 모양의 항적이 남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영화에서 주장 전개의 주 논거로 삼은 AIS RAW 자료라는 것은 유가족 일부가 개인적으로 수집하여 갖고 있다가 영화 제작진에 제공한 것으로 공인된 자료가 아니며, 관련 재판에서도 증거 능력을 인정 받지 못한 바 있다.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주장했던 고의 침몰 음모론이 욕을 먹자 새로 주장한 음모론이다. 근본적으로 공식 발표된 조사 내용을 부정하며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세월호의 항적이 조작되었음을 주장한다. 8시 49분 사고 이전인 8시 30분 즈음에 이미 선체가 몇 회 기울어진 적이 있었다는 생존자의 초기 증언에 근거해 주장한다. 조사 결과인 과적으로 인한 선체 복원력 부재를 부정하며, 가능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우선적으로 정부가 분석 자료로 사용한 AIS와 해군 레이더 기록은 최초 목격함 '두라에이스'의 선장과 선원들로부터 실제 항적과 다른 것 같다라는 증언을 인용한다. 세월호의 한쪽 이 내려가, 병풍도 주변 바다 바닥과 충돌해 침몰하게 된 마지막 급선회 이전 수차례 급선회가 발생하였고, 결국 마지막에 큰 충격을 받아 후술할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침몰했다는 것이다.

4.2.3. 잠수함 충돌설

16년 12월 25일에[12] 자로라는 인물이 세월X라는 영상을 통하여 주장했다. 잠수함 충돌주장에 대해 비판도 많아 음모론 취급을 받는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황당한 것은 자로는 원래 김어준의 음모론을 반박하는 취지로 영상을 제작한 것이었다. 세월X의 8시간 분량 내용의 90%는 김어준 음모론을 파훼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나머지 10%에서 김어준보다 더 막나가는 음모론을 제기했고, 그것을 JTBC를 비롯한 언론이 받아먹으면서 이후 원인규명 작업에 크나큰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

4.2.4. 세월호 의도적 침몰 음모론

세월호를 정부에서 어떤 목적에서 어떤 방법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침몰시켰다는 음모론.

어떤 목적인가, 어떤 방법을 쓴건가에 대해서는 저마다 여러가지 설이 있다. 정부 소유 국정원 소유였던 세월호가 부정선거 여론조작, 국정원대선여론조작 등과 같이 입막음을 위해 계획되었고 세월호가 너무 커서 어뢰로도, 폭탄으로도, 잠수함 추돌로도 안 뒤집어지니까 이미 추돌했던 그 잠수함으로 앞에서 충돌, 그래도 안되니까 해경이 끌어서 세월호를 뒤집어 엎었다# # #는 것. 이 경우 구속기소 된이후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하고있다.

그외에도 세월호 인신공양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주식갤러리에서 유행하는 최태민 영생교 교주 기일 인신공양설 # # #이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기 최순실이 영세교 교주 최태민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제정일치 사회'라는 비판이 일던 시기에 맞물려 호응을 얻은 글이다.

그러나 게이트의 몸통이 드러나며 결국 영세교라는 사이비 종교는 그냥 허울뿐이고 본질은 돈에 집착하는 사기꾼들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며 사그러든 주장이다. 돈 안 되는 일은 안 하는 인간들이었다.[13] 즉, 이 또한 역시 음모론일 뿐이다. 세월호 사고 직전까지의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등의 배경들을 살펴보면, 적어도 정부가 위의 조그마한 이익들을 위해 이런 참사를 일으켰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4.3. 내인설

문단 3에서 지적된 다양한 원인들이 세월호라는 배 한 척에 누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슨 외력 따위가 없어도 세월호 내부적으로 누적된 원인들만으로 침몰이 가능했다는 가설. 2018년 선조위에서 내놓은 "내인설 보고서"의 공식 입장이었다.

4.3.1. 유압장치 고장 (정비불량)

유압장치 고장 가능성을 보도한 뉴스타파 영상
뉴스타파 기사

2018년 5월 11일 뉴스타파는 세월호의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장나 있었음을 보도했다. 2개의 유압장치중 한쪽의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돼 유압이 제대로 차단되지 않아 37도 우현전타 상태로 고정 되었고, 이후 좌현으로 변침을 시도했으나 반대쪽으로 동일한 압력의 유압이 가해졌지만 이것으로는 우현전타로 고정된 방향타를 되돌릴수 없었고 결국 균형을 잃었다는 것이다.[14]

자동차를 생각해 보면, 핸들을 돌린 뒤 저절로 핸들이 중립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유압장치가 고장나서 오른쪽으로 돌아간 바퀴가 중립으로 돌아오지 않고 들러붙어서 운전자가 아무리 핸들을 돌려도 소용이 없어진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 비상조치를 제대로 이행했다면 고장난 유압 장치 쪽 유압을 끊고 정상 작동 중인 유압 징치만 가동하면 방향타를 움직여 기울어지지 않았을 수 있지만, 승무원들은 이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또한 정상절차로는 항구를 빠져나와서는 한 개의 유압 장치만 가동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세월호는 인천항 출항부터 침몰시까지 계속 두 개의 유압 장치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세월호가 복원성이 좋은 배였다면(즉 과적을 하지 않고, 고박을 제대로 하고, 평형수를 채웠다면) 솔레노이드 고착이 발생해도 팽이처럼 뱅그르르 몇 바퀴 돌다가 엔진 끄면 멈추고, 다시 제주도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온갖 시스템적 적폐가 집중된 배였기 때문에 뒤집혀 버렸다는 것이 이 가설의 핵심 주장이며, 2018년 선조위의 내인설 보고서의 내용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4월 사참위는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반드시 항해 중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침몰 이후 발생했을 수도 있기에 침몰 원인으로 확정할 수 없다며 솔레노이드 정비불량설을 기각하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문제는 이 보고서가 "일정 문제"를 이유로 대한조선학회 등 해기사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지 않았다는 것. 이후 대한조선학회에서 보고서를 따로 입수해서 검토했는데 엄청나게 욕을 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솔레노이드 정비불량은 선조위 단계에서 세월호 침몰원인의 내인설의 핵심 스모킹건이었으나, 잠수함 충돌 음모론에 집착한 사참위의 거부로 인해 향후 국가 공식 보고서에 포함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참위 이후 새로운 국가조사기구가 생기기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이 상황은 앞으로도 뒤집히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5. 진상규명 실패의 원인

5.1. 한국 사회에 강력히 내재되어 있던 사법주의

일찍부터 사고조사위원회가 발전한 영미권과 달리 한국에서는 사고조사위원회 대신 검찰 수사가 그 공백을 메꿔왔다. …… 검찰 자신도 대형참가 관련 대응이 자신의 업무라고 생각했으며, …… 해외의 재난조사가 기술적 조사와 사법적 조사를 분리하는 원칙을 채택하고 있었다면, 한국의 재난조사는 사법적 조사가 기술적 조사를 포괄하는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 이러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한국의 재난 인식론은 대체로 법적 과실 인정 여부를 재난의 인과관계와 동일시하고, 더 강력한 법적 처벌이 재난의 재발을 막을 것이라는 사법적 관점을 고수했다. 법적 책임을 묻는 것 외에 다른 재난 대응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층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의 계속된 실패는 사법적 재난조사의 구조적 한계라기보다 수사기관의 의지 문제로 이해되었다.
박상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 p 145-146, 149

5.2. 박근혜 정부의 방해 및 유가족 탄압

새누리당과 정부는 세월호 참사 조사위원회가 구성되면 청와대 등 대통령에게 책임이 향할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막고자 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조사를 기술적 조사로 한정하기를 바랐다. …… 수사권, 기소권은 결국 확보되지 못했다. 가장 원했지만 가장 닿을 수 없는 권한으로서의 수사권, 기소권의 존재는 재난조사위원회의 성과를 사법적 권한이 좌우할 것처럼 여겨지게 했으며, 이것이 이후 세월호 조사위원회에 대한 모든 평가 지점을 압도하게 된다.
박상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 p 78
물리적인 폭력을 지시하는 국가를 어떻게 인격화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사회 구조가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직접적인 폭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가. 시행령 투쟁 과정에서의 구체적이 폭력 경험은 피해자 가족과 시민사회운동게 깊이 각인되었다. 2015년 4-5월에 걸친 국가의 이러한 대응은 침몰 및 구조 실패와 과도한 탄압을 하나로 연결하는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사고, 참사 이후의 대응만이 아니라 침몰과 구조 과정까지도 의도에 의한 국가폭력일 수 있다는 사고가 싹트는 토양을 제공했다.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 p 87
특조위 시기 정부의 방해는 직접적인 억압에 의해서보다 위원회가 책임 있는 선택을 회피하도록 한 데서 효과를 발휘했다. 세월호 특조위가 갈등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조사 과제를 설정하기보다 피해자들의 선정을 받아 조사 방향을 마련하겠다는 선택을 했을 때, 이미 특조위는 실패를 향한 길을 열었다. …… 조사 방향 설정의 책임을 피해자들에게 떠넘기면서 특조위는 가설 없는 조사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사법적 관점을 더 강화하고 의혹을 부각하는 결과를 낳았다.
박상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 p 218-219
정부와 보수진영이 유가족에 대해 폭력적으로 대응하고 여야 합의로 출범한 특조위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모습이 드러나면서 세월 호 참사의 성격과 진상규명의 지향점에 관한 진보적 사회운동 진영의 관점이 ‘국가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이는 세월호 침몰 원인에도 ‘의도’와 ‘기획’이 존재한 의혹이 있다는 관점을 강화시켰고, 이런 흐름에 조응해 대두된 음모론적 대안 가설이 앵커설과 잠수함설이었다.
김성수, 세월호 침몰 원인 논쟁의 형해화와 언론, p 64

5.3. 음모론의 등장과 언론의 검증 방기

<김어준의 파파이스> 진행 방식을 보면, 김어준 씨가 의혹의 개요를 밝히면 김지영 감독이 기술적 근거를 해설한다. 그리고 배석한 한겨레 취재기자가 즉석에서 질문하고 답변을 받는다. ‘언론 검증을 거친 합리적 의혹’이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획득한 방식이었다.
잠수함설의 대중적 확산도 언론의 담론경쟁 전략과 관계됐다. 자로의 영상 공개 당일 JTBC가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자로의 잠수함설을 정면으로 다뤘다. 당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최고조로 치달으며 진보언론의 뉴스 프레임이 ‘국정농단’으로 형성되던 시기였다. 특히 JTBC는 촛불집회의 도화선이 된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로 대중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었다.
…… 저널리즘의 규범적 원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겨레와 JTBC 모두 보수언론과의 담론 경쟁을 위한 프레임 전략 차원에서 앵커설과 잠수함설을 각각 활용했을 뿐, 과학적 검증을 통한 ‘사실 확인의 규율’은 지켜내지 못했다.
김성수, 세월호 침몰 원인 논쟁의 형해화와 언론, p 62-64
선체 인양 후의 외력설은 다른 증거들을 부인하고 모든 증거를 자신에게 맞게 해석하는 음모론의 성격을 띠었다.
홍성욱, ʻ선택적 모더니즘ʼ의 관점에서 본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논쟁, p. 131

5.4.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내인설 불신

시민들은 정부・여당이 무언가 감추고 있기 때문에 세월호와 관련된 활동을 방해하거나 억압한다고 의심했고, 따라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침몰 원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설명이 정부・여당이 선호하던 설명과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은 박근혜 정부와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는 집단이며, 따라서 신뢰하기 힘들다고 생각되어졌다.
홍성욱, ʻ선택적 모더니즘ʼ의 관점에서 본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논쟁, p. 126
국민대책회의와는 다른 목소리를 낸 사회운동 단체들은 세월호 참사 조사에 필요한 것은 구조적 원인 규명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들은 구조 실패가 국가의 부작위 혹은 무능이 아니라 '의도'가 있는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는 세월호 참사 열흘 뒤에 발표한 성명에서 "정부가 구조를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다"라고 언급했고,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역시 세월호 참사는 "사고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구조를 저지하도록 명령한 자가 누구인지 찾는 것이 핵심이지 '근본적 원인'을 찾겠다는 것은 엉뚱한 소리라는 입장이었다.
박상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 p 60
4.16연대의 해양적폐세력 낙인찍기에는 논리의 비약이 심했지만 이는 피해자 가족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해양적폐세력 프레임은 피해자 가족들의 전문가 및 보수정당에 대한 불신과 공명했다.
박상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 p 278
해양 적폐 세력이 지지하는 가설(내인설)은 박근혜 검찰이 내린 결론과 유사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4.16연대의 주장은 선조위 내에서도 유사한 논리가 통용될 수 있도록 했다. …… 은폐 가담자로 지목되지 않은 위원 …… 들은 유가족이 단식농성까지 하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었던 다른 입장이 없었다. 명백하게 조사위원회를 방해하려 한 특조위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과 달리, 선조위 위원들은 대체로 진상규명을 통해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달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시절의 조사에 조금이라도 관여된 이들은 '해양적폐세력'으로 몰리고, 조금이라도 이전의 검찰 수사 결론과 유사한 의견을 표명하면 역시 적폐 세력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에게는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만이 주어졌다.
박상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 p 281-282
"그때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발견되고부터 4 ‧ 16가족협의회랑 4 ‧ 16연대 쪽에서 조사관들한테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들 하더라고. 침몰 원인이 기계 고장으로 확정되면 ‘국가 책임’이 빠져버린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내인설에도 국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들이 수두룩하게 깔려 있는 것 같은데, 그쪽 생각은 다르더라고."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A 인터뷰, 2021. 4. 29.)
김성수, 세월호 침몰 원인 논쟁의 형해화와 언론, p 73
열린안을 (내인설과) 별도의 안으로 남기려고 노력한 위원들과 4.16연대 등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서사가 계속 대중의 분노를 자아내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의 불씨가 커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밝혀진 사실이 충분히 소통되지 못해 생겨난 정보의 격차는 오히려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을 서서히 고립시켰다. 진상규명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 재난을 일으킨 어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박상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 p 309

5.5. 전문가들과 언론의 책임 회피

유가족과 시민 단체는 이들 세 위원과 새누리당 추천 김영모 부위원장까지를 묶어 ‘해양대 출신의 해피아 적폐 세력’으로 규정하고 사퇴를 요구했다. 결국 공길영 위원은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조사 활동에서 손을 뗐다. …… 이같은 일련의 사건은 솔레노이드밸브 철심 고착이 실물로 확인된 직후부터 2달여에 걸쳐 진행됐다. 이 과정을 지켜본 국내 조선해양 전문가 그룹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 결과 ‘세월호 관련 이슈에 개입했다가는 손해와 상처만 남게 된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언론 취재에 응하는 조선해양 전문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위축됐고 현재는 사참위의 용역 의뢰마저 회피하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김성수, "세월호 침몰 원인 규명 지연과 주류 언론의 책임"[15], 13
해외 전문기관을 포함해 조선해양 전문가들 다수가 외력설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정황은 파악된다. 그러나 선조위 종합보고서 이후, 시뮬레이션을 통해 내인설과 잠수함설의 재연 여부를 검증한 정영구(2020)의 연구 정도를 제외하면 조선해양 분야에서 세 월호 침몰 원인을 직접적으로 탐구해 들어간 연구는 사실상 전무했다. 가장 공신력 있는 기관인 대한조선학회도 내인설과 열린안 보고서에 대해 평가를 내놓지 않았다.
김성수, 세월호 침몰 원인 논쟁의 형해화와 언론, p. 74
대다수 언론은 뉴스타파 보도 내용 가운데 ‘사고 순간의 모습’만을 반복해서 보여 주는데 그쳤을 뿐, 이 영상 속에 세월호 침몰 원인 규명의 핵심 요소들이 담겨 있다는 사실 을 전달하기는커녕 스스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선조위는 격렬한 내부 논쟁 끝에 2018년 8월 ‘내인설’과 ‘열린안’을 병기한 종합보고서를 발간하며 활동을 종료했다. 그러나 두 보고서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어느 쪽이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지를 평가해 보도한 매체는 뉴스타파와 한겨레 외엔 전무했다. 절대 다수 언론들의 보도 요지는 “1 년 반 동안 활동한 세월호 선조위가 결국 침몰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두 개의 결론을 내놨다”는 것이었다.
선조위 종합보고서에 대한 주류 언론들의 ‘결론 없음’ 보도는 공히 ‘외력’으로 분류되는 앵커침몰설과 잠수함 충돌설 등 음모론들이 지속될 수 있는 공간을 계속 유지시켜 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성수, "세월호 침몰 원인 규명 지연과 주류 언론의 책임", 7-10
"자세한 과학적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열린안이 근거도 취약하고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건 금방 감이 잡혔죠. 그런데 유가족들이 그쪽을 지지하니까 사실 대놓고 비판적으로 쓰기는 좀 어려운 거고요. 그런 상황에선 3대3이라는 구도에 맞춰서 드라이하게 쓰는 게 제일 안전한 거잖아요. 다른 기자들도 비슷했을 거예요." (선조위 종합보고서 발표 기자회견 참석 방송기자 C 인터뷰, 2021. 2. 10.)
김성수, 세월호 침몰 원인 논쟁의 형해화와 언론, p. 78
"세월호는 해상에서 사고가 났을 때는 아무도 안 죽었어요. 근데 이게 사고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참사로 번져버린 거죠. 모든 참사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요. 그런데 가족들은 인정을 못 하겠죠. 쉽게 수긍 못할 거예요. 난리를 칠 거예요. 이런 사소한 것들 때문에 우리 애들이 죽었다고? 이런 부분들을 전문가 그룹과 언론이 설득해내는 것도 사회적인 책임이라고 생각을 해요. 피하지만 말고요."
장훈 / 416안전사회연구소 소장 (고 장준형 군 아버지)
전문가 집단의 추가 논쟁이나 평가가 진행되지 않았고 언론도 이를 추동하는 공론장 형성 기능을 회피하면서 세월호 침몰 원인 논쟁은 멈춰 섰다.
김성수, 세월호 침몰 원인 논쟁의 형해화와 언론, p. 80

[1]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를 지나면서 발생한 기계 결함으로 인해 급속하게 우선회하며 배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과적된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며 더 빠른 속도로 배가 기울어버리고 열려 있던 수밀문을 통해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침몰에 이르게 됐다는 이론.[2] 선체 외부에서 강한 충격이 가해져 선체의 복원성이 상실되어 침몰에 이르게 됐다는 이론.[3] 모든 선조위원이 내인설을 침몰의 원인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라는 결론을 내리기로 합의했더라면, 법적으로 추가 조사 위원회를 열 수 없기 때문에 일부 선조위원이 합의를 반대했던 것이다. 사실상 현재 기술력으론 내인설을 완벽하게 재현하여 입증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은 앞으로의 세월호 침몰 원인 조사의 무한 헛바퀴를 돌게하는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4] 애초에 원래 AIS 항적과 비교해 "근사치가 한 번도 안 나왔다"고 주장했다고 알려진 권영빈 선조위 상임위원은 당시 출연했던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제작진이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발언이 잘못 전달된 거라고 답했다.[5] 영화 타이타닉의 빙산 충돌 장면에 잘 묘사되어 있다.[6] 배의 중량 자체도 빈 배 기준으로도 거의 7,000톤에 육박하는데 이때 100대가 넘는 차량과 이에 버금가는 화물을 적재한 상태라 10,000톤이 훨씬 넘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렇게 적재한 것이 인가받은 차량보다 32대를 더 적재하고 출항한 것이다.[7] 다만 이 사고에서의 선장과 승무원들의 행동은 세월호 사고와 비교될 정도로 정반대였다.[8] 서울~제주 간 여객 운송은 예전부터 주로 항공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해운사들 입장에서 제주행 여객 운송은 이윤이 나는 장사는 아니었다. 거기다 저가항공사가 활성화되고 제주행 항공노선이 대규모로 증편된 현재는 항공좌석을 구하지 못하거나 비용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려는 게 아니라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선박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괜히 김포~제주 간 항공노선이 세계에서 가장 바쁜 항공노선에서 1위를 차지한 게 아니다. 다만 화물의 경우 항공기로는 선박과 같이 대규모 수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선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채소, 식품류만 항공기로 운송되고, 중량 화물운송의 경우 선박이 현재도 주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9] 파일:세월호 차량 분포도 1.jpg 일반인이 제작한 분포도[10] 출처: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실 제공) 2014-7-9 #[11] 송신되는 자료 중 1로 시작하는 자료는 일반적인 상황(별다른 사건이 없음)에 전송되었고, 3으로 시작하는 자료는 사건 발생시 전송하는 자료(급변침, 특정 속도 임계치 구간 도달)에 해당하는데, 해군 레이더 자료에 나타나는 급변침 구간과 인천항 출항시 급변침/급가·감속 구간에서 3으로 시작하는 자료가 전송되었다. 또한, 함선의 속도에 따라 전송되는 간격이 다르다. 고속일수록 전송 간격이 짧다.[12] 영상 업로드는 25일에 시작했지만 용량이 커서 완료는 26일에 완료하였다.[13] 그리고 추가로, 날짜 등이 딱 맞아떨어졌다면야 혹시나 싶었겠지만 보면 며칠 씩 차이나는 날짜를 억지로 당기고 늦춰 맞춘 것이다. 이런 공양 같은 건 날짜를 굉장히 중요하게 따지기 때문에 이 역시 오류가 있다.[14] 비행기에서 이와 비슷한 원인으로 발생한 사고가 보잉 737 방향타 결함 사건이다.[15] 서울대학교 과학기술과 미래 연구센터 주관 "과학기술학의 관점에서 본 세월호 논쟁의 쟁점들" 워크숍에서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