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26 21:36:02

쿠르트 폰 티펠슈키르히


파일:나치 독일 국장(화이트).svg 독일 국방군의 장성급 장교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상급대장 OF-9
Generaloberst / General admiral
파일:Si_4a.png / 파일:130px-WMacht_Lw_OF9_GenOberst_1945.png / 파일:AA-2A.png
육군
상급대장
한스 폰 젝트 | 쿠르트 폰하머슈타인에크보르트 | 게오르크 린데만 | 베르너 폰 프리치 | 루트비히 베크 | 요하네스 블라스코비츠 | 프리드리히 프롬 | 하인츠 구데리안 | 오이겐 리터 폰 쇼베르트 | 쿠르트 하제 | 에리히 회프너 | 프란츠 할더 | 헤르만 호트 | 게오르크한스 라인하르트 | 고트하르트 하인리치 | 알프레트 요들 | 로타르 렌둘릭 | 에르하르트 라우스 | 에버하르트 폰 마켄젠 | 요하네스 프리스너 | 한스 위르겐 폰 아르님 | 에두아르트 디틀 | 카를 힐페르트 | 니콜라우스 폰 팔켄호르스트
공군
상급대장
쿠르트 슈투덴트 | 에른스트 우데트
해군
상급대장
알프레트 잘베히터 | 오스카 쿠메츠 | 한스 게오르크 폰 프리데부르크 | 빌헬름 마르샬 | 발터 빌헬름 율리우스 바르체하
병과대장 OF-8
General der Waffengattung / Admiral
파일:Si_4b.png / 파일:200px-WMacht_Lw_OF8_GenWaGtg_h_1945.svg.png / 파일:AA-3A.png
육군
병과대장
보병대장
프란츠 마텐클로트 | 안톤 도슈틀러 | 프리드리히-빌헬름 뮐러 | 쿠르트 폰 티펠슈키르히 | 테오도어 부세 | -한스 크렙스 | 빌헬름 부르크도르프 |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 | 디트리히 폰 콜티츠 | 카를 에두아르트 | 카를-하인리히 폰 슈튈프나겔 | 프리드리히 올브리히트
명예 파울 폰 레토포어베크
기갑대장
핫소 폰 만토이펠 | 발터 벵크 | 빌헬름 리터 폰 토마 | 발터 네링 | 발터 크뤼거
포병대장
발터 폰 자이틀리츠-쿠르츠바흐 | 헬무트 바이틀링 | 에두아르트 바그너 | 에리히 마르크스 | 에른스트에버하르트 헬 | 프리츠 린데만
통신대장
에리히 펠기벨 | 알베르트 프라운
산악대장
카를 에글제어 | 프란츠 뵈메
공병대장
발터 쿤체
공군
병과대장
브루노 브로이어공수 | 오이겐 마인들공수 | 울리히 케슬러조종
해군
대장
빌헬름 카나리스 | 오토 칠리악스 | 귄터 뤼첸스
중장 OF-7
Generalleutnant / Vizeadmiral
파일:Si_5a.png / 파일:1256px-WMacht_Lw_OF7_GenLt_h_1945.svg.png / 파일:AA-4A.png
육군
중장
한스 폰 보이네부르크-렝스펠트 | 히아친트 그라프 슈트라흐비츠 | 헬무트 폰 판비츠 | 한스 슈파이델 | 오스카 폰 힌덴부르크 | 아돌프 호이징거 | 아구스틴 무뇨스 그란데스 | 에밀리오 에스테반 인판테스
공군
중장
발터 베버 | 아돌프 갈란트 | 테오도어 오스터캄프
해군
중장
-
소장 OF-6
Generalmajor / Konteradmiral
파일:Si_6a.png / 파일:200px-WMacht_Lw_OF6_GenMaj01_h_1945.svg.png / 파일:AA-5A.png
육군
소장
발터 도른베르거 | 카를 게프하르트 | 카를 브란트 | 헤닝 폰 트레슈코프 | 하인리히 크라이페 | 하인리히 폰 베어 | 한스 오스터 | 오토-에른스트 레머 | 루돌프-크리스토프 폰 게르스도르프
공군
소장
디트리히 펠츠
해군
소장
-
※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준장 계급은 독일 국방군 해군, 즉 크릭스마리네에만 존재.
※ 윗 첨자 : 전사
{{{#!wiki style="margin: -6px -5px; font-size: 0.8em; color:#FFF" ※ 둘러보기 }}}
}}}}}}}}}
파일:Kurt_von_Tippelskirch.png
이름 Kurt von Tippelskirch
쿠르트 폰 티펠슈키르히
출생 1891년 10월 9일
독일 제국 베를린
사망 1957년 5월 10일
뤼네부르크
최종 계급 파일:Si_4b.png 육군 보병 대장
주요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주요 서훈 백엽 기사십자 철십자장

1. 개요2. 제2차 세계 대전
2.1. 동부전선 초기2.2. 데미얀스크 전투2.3. 이탈리아 8군2.4. 동부전선 말기2.5. 베를린 전투2.6. 이후
3. 여담

[clearfix]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의 나치 독일 독일 국방군의 군인. 최종계급은 보병 대장이다.

2. 제2차 세계 대전

2.1. 동부전선 초기

1941년 1월 5일, 제30사단장으로 임명된 티펠슈키르히는 바르바로사 작전에 참전하게된다. 이후, 티펠슈키르히의 30사단은 폴라강(Reka Pola)에 주둔한 돌격하는 소련군을 막아낸 후, 반격을 시도했고, 전투는 일주일동안 지속되었다, 조금씩 조금씩 밀고나가 마침내 소련군을 격퇴시키고 폴라강을 건너 목표를 달성하였다. 이에 공로를 인정받아 티펠슈키르히는 30사단을 대표해,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수여받았다.

2.2. 데미얀스크 전투

1942년 초, 이후 계속 별 전투 없이, 진군만하던 제30사단은 데미얀스크 전투에서 포위되었고, 티펠슈키르히는 데미얀스크에서 빠져나오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후 탈출했다.

2.3. 이탈리아 8군

1942년 8월, 티펠슈키르히는 돈강 근처 이탈리아 8군의 연락 장교가 되었고, 이는 티펠슈키르히 인생에서 힘든 시기가 되었는데, 고집불통 이탈리아군은 티펠슈키르히의 전략적 조언을 무시하였고, 그해 말 이탈리아 8군은 그 악명높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그후 티펠슈키르히는 1943년 2월, 12군단 사령관으로 재배치 되었다.

2.4. 동부전선 말기

1944년 6월 4일, 지휘관이 점점 부족해지던 독일은 티펠슈키르히를 제4군 사령관 고트하르트 하인리치의 후임으로 재배치하였다. 4군 사령관에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44년 6월 22일 동부전선에서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된다. 압도적인 제2벨라루스전선군의 공격으로 중부집단군의 4군은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모길레프 지역을 방어 중이던 티펠슈키르히의 4군은 점점 포위당할 위험이 증가하자 반복적으로 후퇴를 요청을 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고집으로 후퇴허가가 너무 늦어지게 된다. 뒤늦은 허가 이후 독일 제4군 병력은 큰 피해를 입으면서 드네프르 강과 베레지나강을 건너 간신히 후퇴하는 데 성공했다. 후퇴작전 동안 제4군은 사방에서 소련군의 공격과 추격을 받았고 군단장 2명을 비롯해 고위장교들이 소련군의 공습에 노출되어 전사했다. 제4군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예하 부대들간에 통신과 연락마저도 불안정해졌다. 티펠슈키르히는 직접 슈토르히 정찰기에 탑승하여 동분서주하며 후퇴작전을 통제하고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소련군이 제공권을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큰 위험을 감수한 행동이었는데 이 와중에 그가 탑승한 슈토르히기는 대공사격에 피격되어 격추될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련군 3개 전선군이 4군을 쫓아가 포위했고, 결국 1944년 7월 1일 민스크 동쪽에서 4군 병력 대부분이 포위되었다. 4군은 1944년 7월 8일 항복했고 한명을 제외한 군단장 및 사단장 전원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는 비참한 운명을 맞았다. 앞서 7월 1일 무렵 제4군의 전멸이 확실해지자 티펠슈키르히는 부하들에 합류하여 최후를 함께 하려했다. 하지만 제4군 참모장인 에리히 데슬레펜 대령이 포위망에서 같이 죽거나 항복할 게 아니라 살아남아 계속 싸울 것을 강권했고 티펠슈키르히는 이를 받아 들여 뜻을 접었다.

1944년 7월 18일 그는 비행기 추락으로 부상을 입었고, 7월 30일, 모길레프 지역 지연전 공로로, 백엽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수여받았다. 10월 31일, 로레인에 있는 1군으로 재배치된 티펠슈키르히는, 오토 폰 크노벨스도르프의 후임으로 1군 사령관으로 배치되었다.

이후, 12월 13일, 이탈리아 전선의 14군 사령관으로 배치되었고, 1945년 2월 말까지, 지휘했다. 1945년 4월 말, 브란덴부르크에 주둔한 급조된 국민돌격대로 이루어진 21군으로 다시 배치되었다.

2.5. 베를린 전투

항복 직전 4월 29일, 고트하르트 하인리치가 비스툴라 집단군 사령관에서 해임되고, 빌헬름 카이텔 원수는 임시로 비스툴라 집단군 티펠슈키르히를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그후 연합군과 협상을 하게되고, 1945년 5월 2일 미군에게 항복했다.

2.6. 이후

이후는 책을 쓰며 평범한 동네 할아버지처럼 살다가 1957년 사망했다.

3. 여담

위에 사진만 봐도 알겠지만, 엄청난 노안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