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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에 대항해 반란을 이끈 보리켄 타이노인 아궤이바나 2세 족장(카시케)의 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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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aíno카리브 해 제도에 분포했던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다. 현대에는 묶어서 타이노라 통칭하지만, 여러 섬에 거주하다 보니 차이가 있었던 종족이었다. 현재 이들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짐에 따라 약간의 세분류가 되었다. 예를 들면, 소앤틸리스 제도에 거주하던 토착민족은 이른바 "카리브족"으로 분리하기 시작했다.[1]
타이노는 본래 민족명이 아니었으며 타이노어에서 귀족 계층을 의미하는 'nitaino'나 '좋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현지어에서 따온 말로 추정된다.
지금 쿠바, 바하마, 자메이카, 푸에르토리코,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등의 영토에 거주했지만 안타깝게도 타이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현지 주민 중 극소수이다. 하지만 인구조사에 의하면 여전히 수천 명 가량의 사람들은 스스로 타이노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2. 역사
- 스페인인들의 도착 직전의 타이노족 분포 범위
이들은 남아메리카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원은 아직까지도 논쟁거리이다. 크게 3분류로 나뉘우고 있다. 일단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들은 카리브 제도의 원주민들 중의 하나인 아라와크족과는 친척 뻘 되는 이들로 알려져 있다.[2].
3. 사회와 문화
보리켄 타이노 마을(yucayeques)
전통적으로 이들은 카시케(cacique)라는 족장이 다스리는 연합체를 두고 모계 혈연 사회를 이루었으며, 제미(zemi)라는 고유의 토착 신앙이 있었다. 수렵 채집을 했으나 지역에 따라서는 농업에 더 의존하며 정착 생활을 했다.
3.1. 계급
스페인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타이노 사회는 크게 카시케(cacique), 니타이노(nitaínos), 보히케(bohíques), 나보리아(naborias)라는 네 개의 계급으로 구성되었다. 타이노인들은 섬의 특성과 생산성을 이용한 효율적인 자연 수확 및 농업 생산 시스템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하거나, 음식을 하거나, 농작물을 재배하거나, 다른 생산적인 일을 했다.추장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카시케는 남녀 모두 될 수 있었고, 통치자가 남성이면 카시케, 여성이면 카시카라고 불렀다. 카시케는 니타이노 계급에서 선출되었고, 모계로부터 권력을 받았다. 카시케는 공동체를 보호하고 사람들의 복지를 보장했으며, 농업 및 식품 생산을 관리하고 감독했다. 카시케의 권력은 다스리는 마을의 규모로 결정되었으며, 친족이나 의례 등과 관련된 동맹을 기반으로 했다. 따라서 카시케의 능력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잘 먹여살리고 보호하는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타이노 카시케는 일부다처제를 할 수 있었으며, 구리와 금을 섞어 만든 합금 장식과 각종 깃털, 면화로 만든 장신구를 착용했다. 구리와 금으로 만든 합금 장식인 구아닌(Guanín)은 "중심의 별" 또는 "중심 정신"을 의미하는 최초의 타이노 신화 속 카시케 아나카쿠야(cacique Anacacuya)를 상징하며, 추장의 지위를 상징하는 상징물이었다.
니타이노는 귀족 계급으로, 카시케의 가족과 전사가 포함되었다. 공동 작업 할당 및 감독, 농작물 심기 및 수확 , 마을 주민들의 평화 유지와 같은 운영 문제를 돕는 관리인은 니타이노 계급에서 선출되었다. 나보리아는 하층 계급으로 농민과 노동자를 포함했다.
보히케는 영적 세계를 관장하는 종교 사제였으며, 신들과 소통하고, 신이 노했을 때 때 달래고, 부족을 대신하여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의술사 역할도 겸하여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부상당한 사람을 고치고, 부족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신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였다. 이러한 의식을 수행하기 전에 며칠 동안 금식하고 신성한 담배 코담배를 흡입하는 등 특정 정화 및 정화 의식을 수행했다.
3.2. 음식
타이노인들은 수렵과 채집, 농업으로 얻은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요리를 했다.고기는 개 등 가축은 물론 설치류, 이구아나, 새, 거북 등 주변에 서식하는 다양한 야생동물에서 얻었고 가끔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고 조개와 굴을 캐거나 서인도제도매너티를 사냥하기도 했다.
타이노인들은 어업에 주로 종사했으며 매우 뛰어난 어부들이었다. 빨판상어를 이용한 낚시를 하기도 했고,[3] 독성 식물의 뿌리를 강이나 하천에 풀어 기절한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4] 맹그로브 숲에서 홍합과 굴을 캐기도 했고, 바닷가에서 물새를 사냥하기도 했다.
반면 푸에르토리코(보리켄), 히스파니올라(아이티), 자메이카 등 상대적으로 고도의 발전을 이룬 집단 공동체에서는 수렵 채집보단 농업에 더 의존했다. 옥수수, 호박, 콩, 고추, 땅콩, 고구마도 재배했지만 가장 많이 재배된 작물은 주식인 카사바(유카)였으며 흙을 높이 쌓은 밭을 만들어 효율적으로 경작했다. 카사바는 독성 물질을 제거하고 갈돌에 갈아 가루로 만든 후 빵을 만들어 먹었다. 또한 아메리카 본토의 관습과 달리 옥수수는 가루로 갈아서 빵을 만들지 않고 그냥 익혀서 먹었다.[5] 또한 옥수수로 치차(chicha)라는 술을 빚었다. 이외에 파인애플, 조롱박, 목화도 집 주변에서 재배되었고, 코코넛, 구아바, 자미아(Zamia) 뿌리 등은 야생에서 채취했다.
타이노인들 역시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처럼 담배를 재배하고 흡연을 했다. 담배는 말아서 시가로 피거나,[6] 담뱃대를 이용하거나, 속이 빈 관에 넣고 흡입했다.
3.3. 종교관
자체 다신교를 믿었으나, 지금은 사멸되어 정보가 부족하다. 주로 딱따구리나 조개, 나리꽃 같은 형상의 신들이 있다.3.4. 신체와 묘사
타이노인들은 굉장히 온화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이었다. 가끔 자신들을 침략하러 오는 카리브족들을 제외하면 마땅한 적이 없어서 살인이나 도둑질조차 일어나지 않았고, 외부인들을 경계심 없이 잘 대해 주는 등 기본적으로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오죽하면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모두 내어주려고 할 정도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의 첫번째 접촉 때 콜럼버스는 타이노인들을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들로 묘사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왕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들은 우리와 거래를 했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선의의 표시로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기쁘게 하는 데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매우 온유하고 악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살인이나 도둑질도 하지 않습니다. 폐하께서는 이 세상에 이들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다고 믿으실 것입니다. 그들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세상에서 가장 감미로운 말을 하며, 온유하고 항상 미소를 짓습니다."라고 보낼 정도였다. 그러나 왕에게 보낸 편지가 무색하게 콜럼버스는 이들을 노예로 부려먹을 생각을 했고, 2차 항해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욕을 드러내었다.3.5. 근세
카리브 제도는 콜럼버스가 상륙한 곳이었으며 이와 함께 타이노인의 수난 또한 시작되었다. 무기라고는 활이나 도끼 등 원시 무기밖에 없던 타이노인들은 철제 갑옷과 각종 무기로 무장한 스페인 콩키스타도르의 공격에 거의 무력했는데 심지어 스페인인들이 데려온 마스티프종 군견 한 마리가 타이노 원주민 전사 세 명과 전투력이 비등한 수준이었다. 타이노족들은 손쉽게 스페인인들의 노예가 되었다.[7] 침략자들의 인적 및 물적 수탈과 전염병의 창궐로 삽시간에 많은 수가 죽어갔으며, 16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스페인 왕국이 보호에 나섰지만 이미 늦었다. 도미니카의 역사가 프랑크 모야 폰스에 의하면 1514년 당시 히스파니올라 섬[8]에 주둔한 스페인인들은 평균적으로 타이노인 현지처를 두 명 이상 두고 있었다고 한다.[9] 이렇게 스페인인들이나 관체족, 흑인 등 구대륙 출신 이주민들과 통혼하여 그 부모들에게 면역력을 물려받은 혼혈 타이노족 외에 타이노족 집단은 유럽의 착취와 유럽, 아프리카발 전염병으로 전멸했다.같이 진출한 프랑스의 지배에 시달린 아이티 또한 마찬가지. 이들이 죽어간 자리에는 아프리카에서 수입된 흑인들이 자리를 대신했을 뿐이다. 종종 아프리카 흑인들이 프랑스령 생도맹그[10]의 플랜테이션에서 도망쳐 나와 이웃한 스페인령 도미니카로 도망친 후 타이노족 촌락에 합류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들을 마룬(밤색)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렇다고 타이노인들이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죽어간 건 아니고, 아이티, 쿠바[11], 푸에르토리코[12] 등 큰 섬의 공동체 중심으로 스페인에 맞서 여러 차례 항전하기도 했다. 타이노인들은 섬의 지형지물을 활용한 게릴라전에 상당히 능숙했고,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고 스페인 지도자를 사살하거나 스페인 정착지를 없애버리기도 했다.
관체족들중에는 스페인에 의해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코 등으로 끌려가다가 도망친 뒤에 타이노족들과 통혼한 경우도 존재한다.
3.6. 현대
타이노 부흥운동 공동체인 Jatibonicu Taíno Tribal Nation의 기. |
현대에 타이노어, 타이노인의 문화는 절멸되었다. 유럽인들의 착취에 가장 처음으로 노출되어서, 타격이 매우 심각했다.[13] 이미 16세기 말에 타이노인들은 전멸되었다.[14]
물론 이들의 유전자가 아예 절멸한 것은 아니며, [15]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 푸에르토리코, 쿠바에는 혼혈 타이노인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들은 타이노 남성들과 결혼한 흑인들이며 매우 소수이다. 타이노족들과 관체족들이 통혼한 사례도 존재해서 관체족 혈통이 흐르는 경우도 있다.
타이노 전통 문화는 카사바 농업과 어업, 약초를 통한 민간요법 같은 일부 문화만 잔존한 상태이며, 최근에야 유적 발굴을 통해 이들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날에는 그나마 남아있는 사료와 유적을 토대로 타이노 문화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타이노 후손 공동체와 부흥 운동 공동체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일부 공동체는 옛 타이노족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타이노 문화를 자신들의 삶에 접목시키려는 부흥주의 공동체도 있다.
아이티의 반불감정은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인종구성은 바뀌었으나, 타이노족에 대해서 잘못 말하면 안 된다고 한다. 아이티, 도미니카, 쿠바는 타이노인 역시 그들의 역사로 간주하고 있고 타이노족 후손들은 지금도 타이노 문화 행사를 열며 타이노족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때문.
아이티, 쿠바, 바하마는 그 어원이 타이노어에서 유래한 국명이다.
쿠바의 옛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도 원주민인 타이노인과 혼혈된 물라토 출신이었다.
4. 유명한 타이노인
타이노 학살사나 생활상을 주로 라스 카사스 신부가 기록했기 때문에, 이름이 남아있는 타이노인 대부분은 스페인에게 맞선 추장(카시케)나 저항가들이다. 이름 역시 타이노 원어가 아니라 스페인식 발음으로 변형되었을 수도 있다.- 히스파니올라 타이노 추장
- 과카나가릭스: 콜럼버스와 처음으로 조우하고 그들을 도와준 추장.
- 아카노렉스
- 아마넥스
- 아나카오나
- 아라모카
- 아야무이누엑스
- 아이라과이
- 비아우텍스
- 보헤키오
- 카오나보: 현재 도미니카 공화국 시구아요의 추장
- 엔리키요: 현재 도미니카 공화국 바라오나 주의 추장
- 보리켄(푸에르토리코) 타이노 추장
- 아궤이바나 1세 (위대한 태양)
- 아궤이바나 2세 (용감한 자)
- 아베이: 살리나스의 추장
- 알론소: 우투아노의 추장
- 아라마나: 코아(토아) 강 지역의 추장
- 아라시보: 리오 아바코아(리오그란데 데 아레시보) 지역 yucayeque의 추장
- 아이마코(아이마몬)
- 바그나마나이: 카구아스의 추장
- 카시마르
- 카구악스: 카구악스의 추장. 현재 카구아스는 그의 이름을 기린 것이다.
- 코메리오
- 쿠바 타이노 추장
- 자메이카 타이노 추장
- 아메이로: 스페인과 끝까지 좋은 관계를 맺은 몇 안 되는 타이노인. 자메이카를 방문한 디에고 멘데즈와 친구가 되어 무역만 하고 헤어졌다.
[1] 카리브인들은 극소수가 도미니카 연방이나 베네수엘라에 주거하고 있다.[2] 이들의 사촌뻘 민족인 아라와크족도 상당한 고난을 겪어왔던 이들인데, 이들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도달하기 이전에 이미 카리브족에게 정복당하면서 여자들을 그들의 첩으로 빼앗기거나 하는 등의 수모를 겪어야했다.[3] 빨판상어의 흡착력을 이용한 방법인데, 빨판상어를 낚싯대에 매달고 물고기를 붙잡아 올리는 방식이다,[4] 다행히 인체에 지장은 없는 약독성 식물을 사용했다. 지금도 아마조니아 원주민들은 이런 방식으로 물고기를 잡는다.[5] 카리브 해의 기후상 쉽게 상해서 빵으로 만들지 않았다. 반면 카사바 빵은 쉽게 상하지 않았다.[6] 지금도 쿠바는 시가로 유명하다. 다르게 말하면 쿠바의 시가는 타이노 원주민 시절부터 유래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셈.[7] 비교하자면 아즈텍과 틀락스칼텍의 경우 나름 누비 갑옷도 입고, 오랜 기간의 군사 훈련을 통해 단련이 이루어진 전사들이라 이들보다는 전투력이 우월한 편이었다. 오툼바 전투의 기적적 대승이 아니었다면 아즈텍을 타이노족의 경우처럼 단기간에 정복하는 일은 어림도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애초에 나름 아메리카 대륙의 크고 아름다운 제국급이었던 아즈텍 제국, 잉카 제국과 변방 도서의 신석기 수준의 원시 소수민족 부족 타이노인의 역량을 비할 수가 없다.[8] 지금의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9] 인근의 푸에르토리코 동부의 경우 주민들의 모계 MtDNA의 61%는 타이노 원주민 계열이었으나 부계 Y-DNA에서는 사실상 0%로 나왔다고 한다.[10] 지금의 아이티[11] '아메리카의 첫 반란자'로 불리는 아투에이가 활동한 곳이다.[12] 타이노어로 용감한 자들의 땅이라는 뜻의 보리켄이라고 불렀고 그만큼 걸출한 지도자들을 배출한 섬이었다. 대표적인 지도자로 아궤이바나 2세가 있다.[13] 반대로 스페인과 거리가 먼 편이었던 중남미 대륙 본토의 경우 원주민 인구 및 문화가 타격을 덜 받은 편이다. 특히 멕시코, 페루와 볼리비아에서는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달리 제국(아즈텍 제국, 잉카 제국)과 문명(마야 문명)의 중추지여서 인구도 다소 많았고 라마나 기니피그 같은 포유류 가축을 사육했기 때문에 면역력이 조금은 더 강한 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있다.[14] 타이노족 후손들과 부흥운동 단체에서는 타이노인과 타이노 문화가 절멸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최근 들어 타이노 부흥운동이 푸에르토리코와 미국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재건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네오-타이노 단체의 일부 지도자가 극단주의자라고 비난하는 학자들도 있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15] 쿠바인, 도미니카 공화국인, 푸에르토리코인, 아이티인들도 타이노인의 혈통을 일부 이어받은 것으로 추정된다.[16] 태생은 아이티(히스파니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