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05 17:22:59

타이라노 키요모리(드라마)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헤이안 시대의 무사 및 최고 권력자에 대한 내용은 타이라노 키요모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ffff,#1f2023><tablebgcolor=#ffffff,#1f2023> 파일:NHK 로고.svg
大河ドラマ シリーズ
대하드라마 시리즈
2010년대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료마전
龍馬伝
고우 ~공주들의 전국~
江 ~姫たちの戦国~
타이라노 키요모리
平淸盛
야에의 벚꽃
八重の桜
군사 칸베에
軍師官兵衛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꽃 타오르다
花燃ゆ
사나다마루
真田丸
여자 성주 나오토라
おんな城主 直虎
세고돈
西郷どん
이다텐 ~도쿄 올림픽 이야기~
いだてん
~東京オリムピック噺~
}}}}}}}}} ||
파일:NHK 로고 화이트.svg 대하드라마
파일:타이라노 키요모리 로고(가로).png (2012)
타이라노 키요모리 / 平淸盛 / Tairano Kiyomori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a6fe8ba2.jpg
방송 시간 매주 일요일 밤 8시 00분
방송 기간 2012년 1월 8일~2012년 12월 23일
방송 횟수 50부작
제작 파일:NHK 로고.svg 일본방송협회
채널 파일:NHK G 로고.svg NHK 종합 / 파일:NHK BS 프리미엄 로고.svg NHK BS 프리미엄
연출 시바타 타케시
극본 후지모토 유키
음악 요시마츠 타카시
출연
해설 오카다 마사키

1. 개요2. 마케팅3. 등장인물4. 평가5. OST6. 드라마 속 풍습7. 주요 배역 비교 (對 드라마 요시츠네)

[clearfix]

1. 개요


주연은 마츠야마 켄이치. 헤이안 시대의 무장이자 최고 권력자 타이라노 키요모리와 그와 맞붙은 미나모토 가문(미나모토노 요시토모와 요리토모, 요시츠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1118년부터 1181년까지, 공간적 배경은 헤이안 시대일본 전 지역(대부분의 장면은 쿄토후쿠하라)이다.

2. 마케팅

파일:external/www.hotchkiss.co.jp/kiyomori-00001-m.jpg
공식 포스터
파일:external/pbs.twimg.com/icon03.jpg
공식 캐릭터

3. 등장인물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external/blog-imgs-46.fc2.com/002_20120127101707.jpg
주요 등장 인물

4. 평가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80px><bgcolor=#f6c700><tablebordercolor=#f6c700><tablebgcolor=#fff,#191919><:> [[IMDb|
파일:IMDb 로고.svg
]] ||
( XXX위{{{#!wiki style="display:inline-block; display:none; margin-left: 0.5em")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80px><bgcolor=#000000><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FFFFFF,#191919><:> 파일:Filmarks 로고.svg ||
별점 4.0 / 5.0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ff0558><bgcolor=#ff0558> 파일:왓챠피디아 로고 화이트.svg ||
별점 3.0 / 5.0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80px><bgcolor=#032541><tablebordercolor=#032541><tablebgcolor=#fff,#191919><:> 파일:TMDB 로고.svg ||
점수 85%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px><tablebgcolor=#fff,#191919><bgcolor=#275c9d><tablebordercolor=#275c9d> 파일:MyDramaList_logo.png ||
별점 8.0 / 10


타이라노 키요모리 역에 마츠야마 켄이치가 캐스팅되었다.본격 헤이안 시대 SALHAE 하라!! 요시츠네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역을 맡았던 나카이 키이치[6]는 정반대로 본인을 유배보낸키요모리의 아버지인 타이라노 타다모리를 연기했다.[7] 요시츠네에서 어린 요시츠네를 맡았던 카미키 류노스케는 여기서는 성장한 어른 요시츠네를 맡았다.

NHK 사극이 주인공 미화보정이 상당한 만큼 그간 악역으로 묘사된 타이라노 키요모리를 새 시대를 열어간 주역으로 묘사할 것이라 했는데, 말 그대로 주도적이고 의식적으로 무사의 시대를 연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마츠야마 켄이치 외에 노다메 칸타빌레로 유명한 타마키 히로시, 파문전사 마츠다 세이코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것과는 달리 첫회 시청률은 17%대로 낮은 편이다. 2011년작인 "고우 공주들의 전국"이나 2010년작인 료마전도 첫회 시청률이 20%를 넘었던 걸 감안한다면 의외의 상황. 아무래도 최악의 드라마로 꼽힐 정도였던 "고우 공주들의 전국"의 악영향이 타이라노 키요모리에게까지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6화에서 키요모리가 나는 해적왕이 될 거다라는 원피스스러운 드립을 쳐서 세간에 비웃음 섞인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첫회 17%대에던 시청률은 갈수록 바닥을 향해 가고 있다. 심지어 12화에선 최저 시청률인 12%대까지 떨어진 상황. 최악의 드라마로 비난을 받았던 "고우 공주들의 전국"조차도 13% 밑으론 떨어지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심각한 상황. 12%대까지 추락한 것은 2003년작 무사시 이후로 거의 9년 만이라고 한다.

이후 인을 폐쇄하는 부분에서 시청률이 상승하였으나, 45화에서는 시청률이 7.3%를 기록하였고 최종화인 50화가 9.5%를 기록하며 평균 시청률 12%를 기록하여 NHK 대하드라마 역대 최저 평균시청률을 기록했다. 3년 후인 2015년 방영작인 꽃 타오르다도 후술하겠지만 주인공의 인지도가 낮았다는 유사한 연유로 12%의 평균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시청률 부진의 요인으로는 무엇보다도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인지도가 낮아서라는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키요모리의 업적이나 그와 관련된 사건들은 고등학생 수준의 역사 교과서라면 반드시 필수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중요한 것들이지만, 키요모리 본인은 보고 즐길 수 있는 창작물의 주인공으로서는 다소 임팩트가 부족하고, 키요모리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주변 인물들이 그다지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데다 시대나 사건들도 센고쿠 시대 등 오락적으로 창작할 거리가 널려 있는 시대의 것들에 비해 다소 심심하기 때문. 이런 이유로 대중성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물론 키요모리 자체는 사극에서 자주 등장했지만, 그간의 키요모리는 모두 겐지에 맞서는 악역의 이미지가 강한데다 미나모토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겐페이 전쟁 시점에 키요모리는 거의 죽기 직전[8]이었기 때문에, 정작 미나모토는 알아도 키요모리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 일본의 일반인들의 시각이라고.

게다가 헤이케 가문의 경우는 일본인들도 잘 모른다는 말이 있다. 워낙 치세가 짧아[9] 헤이안 시대의 연장선에서 평가되는데다 헤이케의 후손들이 겐지에 의해 멸망하고 가마쿠라 막부가 성립되기 때문에 존재감이 부족하다.

타이라노 키요모리에 대해서 재해석을 한 건 좋았지만 워낙 마니악한 소재인 탓에 일반인에게는 어필하기 힘들었고, 웬만한 역사 매니아들도 콧방귀를 뀔 만한 이상한 내용이 많아서 양면으로 망한 재해석이라는 것이 실패의 원인.

재미있게도 이 드라마에 대해서 효고현 지사는 "화면이 더럽다."라고 혹평을 한 반면, 고베시 시장은 "위화감이 없었다."라고 극찬하는 등 상당히 상반되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위화감은 없지만 촌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평가를 받은 셈.

고증 반영은 NHK 대하드라마답게 훌륭했다. 농민들은 거의 신석기시대 수준의 모습이고, 헤이케겐지를 비롯한 무사집안 일족들도 거의 거지꼴 수준으로 꾀죄죄하게 묘사된 편이었다. 당대 최고위 귀족들은 아예 이빨을 검게 칠한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사실 이런 이빨을 검게 칠하는 풍습은 실제로 헤이안 시대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풍습이기도 한데 문제는 21세기 현대인들이 봤을 때 보기 거북해보일 정도로 비주얼이 해괴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도 왜 저렇게 이빨을 검게 칠하냐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한술 더떠서 당시 드라마 제작진들은 실제 고증대로 여성 출연진들에게도 이빨을 검게 칠하는 걸 요구했었으나 여성 출연진들의 극렬한 반대로 남성 출연진들만 이빨을 검게 칠하는 걸로 나오게 되었다. 게다가 이 남성 출연진들의 경우 연기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꾸 검게 칠한 게 지워지다보니 나중에는 이빨에 검정색 마우스피스를 끼고 연기했다고 한다.

또한 극중에서 천황가를 가리켜 왕가(王家)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도 소소하게 일본 내부에서 주목받았다. 한국의 언론에서 덴노를 '일왕(일본 국왕)'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한 논쟁이 있음을 감안하면 꽤 센세이셔널한 일로, 일본 국회 국정감사장에서까지 이 문제가 언급될 정도였다. 일본 참의원 총무위원회에서 NHK에 배정할 예산을 심의할 때 가타야마 사쓰키(片山さつき) 참의원 의원이 참고인으로 출석한 NHK 회장 마쓰모토 마사유키(松本正之)에게 "우리나라에서 이 왕가라는 호칭이 헤이안 시대에 일반적이었다는 역사 교육에 어느 정도 합의된 바가 전혀 없는데, 무슨 생각으로 이 국민적인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런 판단을 하셨느냐?"라는 질문을 던졌고, 마쓰모토 회장은 "전문가에 따르면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기에 걸친 중세사 연구의 역사, 학술적 분야에서는 당시 정치의 중심에 있던 법황을 중심으로 하는 '집안'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데 '왕가'라는 말이 사용되었다고 한다"라고 답변했다.[10]

당시 본작의 역사 고증을 맡은 혼고 가즈토(本郷和人)[11]# 이소 도모아키 프로그램 수석 프로듀서 역시 모두 "'왕가'라는 표현은 결코 천황가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었다"[12]고 일본 언론에 일일이 해명해야 했다. [13]
<ドラマ・平清盛>では、天皇や上皇の家を「王家」と称します。ですが、今までの大河ドラマでは、天皇家とか皇室とかの語を用い、王家とはいわなかった。どうして今回は新しい呼び方を取り入れるのか。
先ず押さえておかねばならぬのは、当時の言葉の使い方です。
そこで調べてみると、天皇家も皇室も王家も、使われていない、が正解です。当時は天皇や上皇や皇太子や女院などをひとまとめにして「ファミリー」として考える、ということをしなかった。
ある研究者の整理(「<王家>をめぐる学説史」歴史評論2011年8月号)によると、王家という語が用い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は、第1章(3)でふれた黒田俊雄氏の権門体制論からのようです。
その後、西洋史の影響を受けて、日本の歴史学でも「王権」の分析が盛んになりました。戦前のように、日本の天皇は他国に例を見ない唯一無二の存在である、というのではなく、天皇を国の頂点に君臨する王と捉える。そうすると自ずと他国との対照・比較の視点が開け、東アジアの中の日本、世界の中の日本を考える際にも有用である。ですので、現在の学界では、王家という呼び方が確実に市民権を得ているのです。そこで時代考証の判断として、学問的な見地から、「王家」の語の採用を提案しました。
(번역) <드라마 다이라노 키요모리>에서는 천황이나 상황의 집안을 '왕가'라고 칭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대하드라마에서는 천황가라든가 황실이라든가 하는 말을 사용했지 왕가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번에는 새로운 호칭을 도입하는가.
먼저 분명히 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당시의 언어 사용법입니다.
그래서 조사해 보니 '천황가'도 '황실'도 '왕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가 정답입니다.[14] 당시에는 천황이나 상황이나 황태자나 궁녀 등을 한데 묶어 '패밀리'로 생각한다, 는 게 없었습니다.
한 연구자[15]의 정리(<왕가>를 둘러싼 학설사> 역사평론 2011년 8월호)[16]에 따르면 왕가라는 단어가 사용되게 된 것은 제1장(3)에서 언급된 구로다 토시오(黒田俊雄)의 권문체제론(權門體制論)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서양사의 영향을 받아 일본 역사학에서도 왕권 분석이 활발해졌습니다. 전쟁 전처럼 일본 천황은 타국에 유례가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라 천황을 국가의 정상에 군림하는 '왕'으로 파악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와의 대조·비교의 시점이 열려 동아시아 속의 일본, 세계 속의 일본을 생각할 때에도 유용합니다. 그래서 현재 학계에서는 '왕가'라는 호칭이 확실히 시민권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고증의 판단으로 학문적 견지에서 '왕가'라는 단어를 채택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혼고 가즈토(本郷和人) <수수께끼 다이라노 기요모리(謎とき平清盛)> 62~64쪽

다만 담당자에 따르면 놀랍게도 이 '왕가'라는 용어의 사용은 일본 학계의 학술적 견지를 따른 거였다. 일본 학계에서는 이미 '인세이'를 포함한 일본의 중세사를 연구함에 있어 '왕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혼고 가즈토의 책에 나온 구로다 토시오의 권문체제론이란 쉽게 말해서 중세 일본이라는 나라는 군주 즉 '왕가'를 국가의 핵심에 두면서도 '섭가'와 '무가' 등 여러 '권문(權門)'[17]이 상호 보완적으로 존재하며 국가권력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국가관이다.

천황이라는 '군주'가 정점에 군림하면서 '귀족 권문'인 공가들이나 '군사 권문'인 무가들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또한 공가나 무가는 무조건적으로 천황에게 복종하면서) 상황 전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천황 역시도 공가나 무가와 마찬가지로 '권력'을 가진 한 '축'으로서 기능하면서 이들 '축'이 서로 융합하고 견제하기를 반복하며 일본 역사가 진행되었다는 것이 이 권문체제론의 골자이다. 구로다 토시오의 권문체제론은 현대 일본 중세사 연구에 있어서는 권문체제론의 반론이라고 할 수 있는 고미 후미히코(五味文彦)의 두 개의 왕권론(二つの王権論)[18]과 함께 일본 중세 정치 권력을 설명하는 '정설'로 자리잡았다.

구로다 토시오는 이 권문체제론을 주창하면서 '천황가'나 '황실'이라는 용어가 근대 일본 국가권력에 의해서 사용된 용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황실이라는 용어 자체는 이미 고대의 사서인 속일본기에도 나오므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설명하자면 이전까지는 일본에서 '왕'으로 부르다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천황'으로 고쳤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일본에서도 '천황'이라고 부르든 '왕'이라고 부르든 어느 한쪽이 경칭이라거나 비하라거나 하는 인식이 없었는데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천황'만이 높이는 칭호이고 왕이라는 칭호는 낮추는 칭호라는 인식을 메이지 신정부라는 국가 권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정립시키고 대중에 프로파간다로 퍼뜨렸다는 것이다. 구로다 토시오는 근대에 성립한 용어로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모종의 선입견, 이데올로기 등 사고상의 제약을 줄 수 있다고 보았고, 그러한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중세 당시에 실제로 자주 사용된 예를 볼 수 있는 '왕가'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창한 것이다.[19]

쉽게 말해 '천황가'니 '황실'이라는 용어가 엄연히 천황가에 비등하게(혹은 그 이상으로) 중세 일본 역사 전개의 중추를 차지했던 섭가나 무가를[20] 단순히 천황가나 황실에 부속된 곁가지이고 독립성이 없었다고 여겨지게 함으로써 일본 역사를 지나치게 천황 중심으로만 이해해 버리는 착오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 구로다의 지적이다.

5. OST

오프닝 음악
메인 테마(メインテーマ) (반주)
주제가
장난을 치려고(遊びをせんとや)

본 드라마의 사운드 트랙은 요시마츠 타카시가 제작했으며, 이 중 '결의(決意)'나 '청춘(靑春)' 같은 트랙은 숨겨진 테마곡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웅장하고 힘있는 명곡. 이 트랙들이 메인 테마로 쓰이지 못하고 극중 BGM에서 머물렀던 것은 토호쿠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 전국이 가라앉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가능하면 튀지 않는 분위기의 곡을 테마로 하라는 윗분들의 언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에 언급한 두 트랙을 비롯해 사운드 트랙의 몇 곡들은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사운드 트랙 중 헤이안시대 당대의 자장가였던 '장난을 치려고(遊びをせんとや)'의 트랙에는 하츠네 미쿠의 보컬이 샘플링되어 있다.

6. 드라마 속 풍습

7. 주요 배역 비교 (對 드라마 요시츠네)

등장인물 요시츠네 (義経)
(2005년)
타이라노 키요모리 (平淸盛)
(2012년)
타이라노 키요모리
(平淸盛)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33f17dc8.jpg 파일:external/contents.oricon.co.jp/2019976_201212250673833001356403438c.jpg
와타리 테츠야 마츠야마 켄이치
(주인공)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源頼朝)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42aad1dc.jpg 파일:external/www.cinemacafe.net/41124.jpg
나카이 키이치 오카다 마사키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源義経)
파일:external/2174ec503dcfe449d2b19653db368bcf8692c81c10991ef795906a00be6642d5.jpg 파일:external/pic.pimg.tw/1379786002-3841441074.jpg
타키자와 히데아키
(주인공)
카미키 류노스케
무사시보 벤케이
(武蔵坊弁慶)
파일:external/4.bp.blogspot.com/Yoshitsune-2013-07-20_012536.jpg 파일:external/chachacha-mama.up.seesaa.net/d0017307_15151745B15D.jpg
마츠다이라 켄 아오키 무네타카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03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03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타이라노 키요모리 역은 소년기에는 마에다 오시로가 맡았다.[2] 타이라노 시게모리 역은 유년기에는 마루야마 아유무, 소년기에는 히라오카 타쿠마가 맡았다.[3]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소년기는 나카가와 타이시가 맡았다.[4]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의 유년기는 하시노 류노스케가 맡았다.[5] 다카쿠라 덴노 역은 소년기에는 미타니 쇼타가 맡았다.[6] 젊은 시절 레전드급 히트작인 다케다 신겐의 주연을 맡아 이름을 알린 배우다.[7] 본래 천황 앞에서 공경들에게 사시라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멀쩡한 눈이다.[8] 1180년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거병하였는데 바로 다음 해인 1181년에 사망하였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활약하기 시작한 해는 키요모리의 생애 마지막 해이다.[9] 헤이지의 난(1159년)부터 단노우라 전투(1185년)까지 26년밖에 안 된다.[10] #(138/140, 320 참조)[11] 도쿄대 사학과 교수로 전공은 일본 중세사. 다카하시 마사아키와 함께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시대 고증을 맡았다. 한국에는 그의 저서 <센고쿠 시대 무장의 명암 - 세키가하라 전투의 배신과 음모>가 2022년글항아리에서 번역되어 나왔다. 일본에서 새로운 연호 레이와(令和)가 선포되었을 때, "令에는 '명령'이라는 뜻이 있는데 꼭 '평화롭게 지내라'라고 권위적으로 명령하는 것 같다."라고 이 레이와 연호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 일본에서 국회의원이 세습 비슷하게 대물림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원래 일본인들은 세습을 좋아했다"며 "일본은 역사적으로 과거제 같은 것도 없었고 섬나라 특성상 도망갈 데도 없으니 치열한 경쟁보다는 출생으로 모든 게 납득되는 세습이 받아들여지기 쉬운 환경이었다"고 씁쓸하게 지적한 적도 있다. # 여담으로 AKB48의 엄청난 팬으로, 총선거를 일본 중세사나 전국시대에 비교하여 분석하는 글을 기고하거나, 방송에 초대되기도 하였다.[12] 週刊ポスト2012年2月3日号[13] 이때 데인 경험인지 10여 년 후에 방영된 같은 시대를 다룬 가마쿠라도노의 13인에서는 '왕가'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14] 정확하게 말하면 '천황가'라고 쓰나 '왕가'라고 쓰나 어느 쪽이든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왕가라고 쓴 것이 꼭 사실에 맞다고도 할 수 없지만, 천황가라고 쓰는 것도 사실에 맞는 건 아니라는 얘기.[15] 다카마쓰 모모카(高松百香)[16] <「王家」をめぐる学説史> 『歴史評論』 2011年8月号 #[17] 이 '권문'은 한국사의 권문세족이라는 용어에도 나오는 그 권문으로, 한국에서와는 달리 구로다 토시오는 이 권문에 '왕가' 즉 천황과 상황의 가문들까지도 포함시킨다.[18] 덴노의 조정과 쇼군의 막부를 각각 하나의 '왕권'으로 간주한다.[19] 구로다 토시오 '중세 천황제의 기본적 성격', 1977.[20] 일본 역사를 공부해 보면 알겠지만 일본 역사는 결코 군주인 천황이 주도해서 뭔가를 운영하거나 결단한 역사가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없다. 말 좀 험하게 보태면 일본이라는 '왕국'의 역사에서 군주의 역사는 조선과 같은 군약신강을 넘어서 그냥 군주가 셋칸 혹은 쇼군의 권력에 기생충처럼 들러붙어서 연명하는 구조로 메이지 시대까지 천 년 넘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