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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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度支部 | Ministry of Fi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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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d700> 설립일 개국 503년 탁지아문
폐지일 융희 4년 8월 29일 국권피탈
대신 고영희 (말대, 제32대)
소재지

탁지부청사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15 (서소문동)
하급 기관 1관방 6국 1소 12과
1. 개요2. 역사3. 직제4. 청사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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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탁지부()는 조선대한제국에 존재했던 관청. 국가의 재무를 담당하던 부서로, 오늘날의 기획재정부(재무부)에 해당된다. '탁지(度支)'라는 말은 '탁용지비(度用支費)'의 약자이며, 위나라 조비 때 설치한 관청에서 유래했다. 수나라 때는 민부(民部), 당나라 때는 태종 이세민의 민(民)을 피휘하기 위해 호부(戶部)로 바뀌었지만 상당 기간 별칭으로 사용되었다.

2. 역사

1894년 갑오개혁으로 설치한 탁지아문을 1895년에 개칭한 것으로, 갑오개혁 이전 국가 재정을 담당했던 호조의 기능을 거의 이어받아 정부의 재무를 총괄하고 회계·출납·조세·국채·화폐·은행 등에 관한 일체 사무를 관장하며 각 지방의 재무를 감독했으며 전국 9개의 관세사와 220개의 징세소를 두었다.

그러다가 1905년 재정 고문으로 온 메가타 다네타로에 의해 통감부에 예속되기 시작했다. 1905년 7월 1일 메가타는 이른바 '재정 정리 사업'의 일환으로 화폐정리사업이란 명목으로 대한제국의 화폐 가치를 급락시키고 조세 징수권까지 강탈하였고, 1906년 9월 24일의 칙령 제55호로 '건축소 관제'를 공포하고 탁지부 건축소를 설치했다가 1910년 경술국치로 폐지되었다.

3. 직제

소속 기관으로는 대신관방·사세국·사계국·출납국·회계국·서무국이 있었다. 그 중 사세국·사계국은 1등국, 출납국은 2등국, 회계국·서무국은 3등국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관원으로는 대신 1명, 협판 1명, 국장 5명, 참서관 3명, 주사 64명으로 구성되었다.

아래는 탁지부의 소속 기관들의 업무다.
실무 부서로서 공사부를 설치하여 건축 업무와 토목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고, 감독계와 영선계를 운영함으로써
조사, 계획, 내역뿐 아니라 시공, 감리 등 건축물 공사의 전 과정을 맡도록 하였다. 또한 각 지역에는 출장소를 개소하여 전국의 공사 현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토록 하였으며, 벽돌의 원활한 수급을 위하여 벽돌 제조소를 설치하고 직접 생산하게 하였다. 또한 산하에 회계과를 두고 문서와 직원의 관리 및 예산, 계약, 회계 등의 각종 행정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탁지부가 건축한 건물들은 주로 벽돌조와 목조 건물들의 관청들로, 목조 건물들의 경우 일본식 가옥이나 아니면 일본 목조 건축과 서양식 건축 양식이 절충된 의양풍 양식으로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4. 청사

탁지부 청사는 1907년 현재의 서울특별시청 서소문 별관 자리에 있었던 청사로 본래 한성부 청사를 이용했고, 그러다가 의정부의 청사로 활용될 계획이 1907년 7월 24일 한일 신협약이 체결되면서 본래의 건립 계획과 달리 완공 후에는 탁지부 청사로 사용되었다. 연건평 435.2평의 벽돌조 2층 건물로 계획되었으며, 공비 81,034원(圓)의 건물이었다.

구체적인 평면은 알 수 없으나 대체적으로 중앙에 중정을 가진 방형으로 중앙부를 정면으로 돌출시키고, 첨탑을 세워 정면성을 강조하고, 좌우대칭이며 네 모서리 부분이 사방으로 돌출된 형태로 계획되었다. 입구는 정면과 측면의 세 곳에 계획되었으며, 정면의 현관에는 포치가 구성되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홀과 좌우로 뻗은 복도를 마주하게 된다. 홀 정면으로는 중정으로 나갈 수 있는 계단이 계획되었다. 좌우의 복도를 통해 마룻바닥의 실들이 배치되었다. 복도는 중정을 둘러싸고 있으며, 중정 후면에 배치된 대형 실을 다시 한 번 감싸고 있어 전체적으로 ‘8’자로 계획되었다. 건물의 양 측면 부분에는 소형 실이 계획되었다.

후면의 1층에는 베란다, 열주랑을 만들어 2층에서 테라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즉, 돔이 있는 ‘잉글리시 르네상스 양식에 세제션식을 가미한’ 고전적인 외관으로 계획되었다. 청사의 외벽은 구조가 벽돌조였음에도 당시 치장 벽돌 수급의 문제로 회반죽으로 마감되었다. 다만, 회반죽 마감으로 석조 건물을 모방하여 시공한 것이 특이하다. 지붕은 쌍대공 트러스 구조로 일본식 기와가 사용되었으며 중앙부 첨탑은 동판으로 마감하고 정상부에는 피뢰침을 설치하였다. 지붕에는 일본식 기와가 사용되었으며 중앙부 첨탑은 동판으로 마감하고 정상부에는 피뢰침을 설치하였다.

이후 1909년 청사 동쪽에 증축 청사가 계획되었고, 증축 청사의 평면 또한 알 수 없으나 배치도 상으로 볼 때 제1 청사와 대략 비슷한 규모로 추정된다. 벽돌조의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왕대공 지붕틀로 계획되었다. 정면은 중앙축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의 입면으로 관공서로서의 권위적 입면으로 계획되었고, 정면부에 철물 장식 등을 통하여 현관을 강조하였다. 증축 청사의 측면으로는 목조 교량 형식의 연결 복도로 본 청사와 연결동선을 계획하였고, 후면에는 화장실과 식당으로 연결되는 복도가 추가로 계획되었다.

1910년 탁지부 통계과 자리에 신축된 제2청사의 부지 계획은 종래의 고가(古家)를 전용하던 탁지부 통계과 건물을 철거한 자리에 계획되었다. 탁지부 제2청사는 정면 약 36.3m, 측면 약 34.5m 크기로 중정이 있는 ㅁ자 형태로 계획되었다. 양식 목조 2층 건물이며, 지붕은 목조 트러스로 계획되었다. 입면은 비늘판벽으로 계획되었으며, 현관 포치를 돌출시켜 중앙부를 강조하였다. 이는 1910년대 초중반의 양식 목조 구법에 의한 관립시설에서 전형적으로 관찰되는 입면상의 공통점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건물은 탁지부 제2청사로 활용되지 못하고, 준공 이후 토지조사국 청사로 전용되었다.

본관 청사의 경우 본래는 건립 당시의 덕수궁에 임어한 고종 황제를 고려하여 덕수궁 남쪽에 바로 면하는 부지에 들어서게 된 것인데, 결과적으로 덕수궁을 위압하는 건축물로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1911년부터는 경성 고등법원, 1928년부터는 형사 지방법원으로 사용되었고 해방 후에도 법원 시설로 운영되었다가 1970년에 새로운 법원 청사를 신축하기 위해 철거되었다.

증축 청사의 경우에도 본연의 목적과는 달리 일제의 어용 기관인 중추원 청사로 활용되었고, 해방 후 대한민국 법무부 청사로 활용되다가 본관 청사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 철거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 마찬가지로 서소문 별관이 되었다.[3]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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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나 공공단체가 소유하는 재산.[2] 사건이나 기록을 문서로 작성함. 또는 문서로 작성된 사건이나 기록의 안건.[3] 청사 내용은 국가기록원 일제 시기 건축 설계도를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