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02:16:26

형조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삼사 의정부 국왕 직속

삼군부 오위 비변사 오군영 속오군
<rowcolor=#f0ad73> 고려 중앙정치기구 · 대한제국 중앙정치기구
}}}}}}}}} ||

1. 개요2. 연혁3. 직제4. 산하 기관5. 유관 기관6. 형조판서 목록7. 관련 기록물8. 기타
8.1. 현대 사법 기구와의 비교 및 대조
9. 관련 문서

1. 개요

형조(刑曹)는 조선 시대의 중앙 행정기관육조의 하나로 추관(秋官), 추조(秋曹)라고도 한다. 사법, 형법, 소송[1] 등의 업무를 맡았다. 수장은 정2품 판서다.

오늘날 행정부법무부, 법제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사법부법원에 해당한다. 관청은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었다.

2. 연혁

고려 시대에는 상서육부의 하나로 상서형부(尙書刑部)라고 하였다.

원 간섭기에 전법사(典法司)로 격하되었으나 공민왕이 반원 정책을 펼치면서 형부로 환원시켰고, 이후 다시 전법사와 형부를 반복하다가 공양왕 대에 형조로 개편, 이후 조선에 그대로 승계된다. 전법사 시절에는 기관장을 전법판서라고 하였다.

3. 직제

4. 산하 기관

5. 유관 기관

6. 형조판서 목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분류:형조판서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 관련 기록물

8. 기타

반역왕실의 안위와 관련된 사건은 의금부에서 담당하였다.

8.1. 현대 사법 기구와의 비교 및 대조

형조는 갑오개혁(1894) 이후 법무아문(法務衙門)으로 개편되었다. 따라서 형조의 후신은 겉보기에는 법무부라 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속단하여서는 안 된다. 현대로 보자면 법무부+대법원+대검찰청이라 할 수 있다.

근대적인 사법제도에서 소추와 재판과 행형은 서로 다른 독립기관이 담당하였다. 소추와 재판을 같은 기관이 담당하게 될 경우 소추는 곧 유죄를 의미하게 된다. 수사관과 재판관이 동일인이고 그는 유죄의 확신을 가지고 재판을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무죄추정의 원칙,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권리는 전혀 보호받지 못하게 될 상황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소추와 재판은 분리된다.

또한 유죄의 입증과 형의 집행은 서로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한 기관에서 동시에 처리할 이유도 없다. 때문에 행형도 분리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경우 위 세 가지 기능이 분리되어 소추는 검찰, 재판은 법원, 행형은 법무부가 담당하게 되었다.[4] 하지만 조선시대는 이를 구분하지 않고 형조에서 모두 처리한 것이다. 때문에 형조는 굳이 말하자면 법원이 그 후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 사법기능의 가장 중심은 법원이기 때문이다.

9. 관련 문서

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의 쟁송제도
신문고(申聞鼓) 상언(上言)
격쟁(擊錚)
민사소송
사송(詞訟)
형사소송
옥송(獄訟)


[1] 오늘날로 치면 3심을 맡았다. 조선시대에는 수령이 1심을 담당하고 관찰사가 2심을 맡았다.[2] 다만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징역형의 개념이 없어서 당시의 감옥은 처벌과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교도소보다는 구속기소된 미결수를 수용하는 구치소에 더 가까웠다.[3] 수나라 시절 형조의 명칭이 도관(都官)이었고, 주례에서 형조에 대응되던 사구(司寇)의 속관 중 하나인 사예(司隸)가 이후 수도권을 관할하는 기관의 명칭으로 지정되는 등 전반적으로 "서울"의 기능과 "사법기구"의 기능은 뒤섞이는 일이 잦았다.[4] 다만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는 검찰청과 행형을 담당하는 교정본부는 모두 법무부의 산하에 있는 기관이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