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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20:18:17

토니 애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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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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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 호주의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

<colbgcolor=#132331><colcolor=#fff> 호주 제28대 총리
앤서니 존 "토니" 애벗
Anthony John "Tony" Abbott
파일:토니 애벗 호주 총리.jpg
출생 1957년 11월 4일 ([age(1957-11-04)]세)
영국 런던 램버스
재임기간 제28대 총리
2013년 9월 18일 ~ 2015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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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32331><colcolor=#fff> 부모 아버지 딕 애벗
어머니 페이 애벗
배우자 마지 애벗 (1988년 결혼)
자녀 3명
학력 시드니 대학교 (경제학, 법학 / 학사)
옥스퍼드 대학교 (PPE / 학사)
종교 가톨릭 (세례명: 안토니오)
국적
[[호주|]][[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소속 정당
}}}}}}}}}
1. 개요2. 생애3. 선거 이력4.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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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주의 정치인. 28대 호주 총리를 지냈다.

2. 생애

영국 런던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호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딕 애벗은 뉴캐슬 출생이고 1940년 호주로 이민갔으며 2차대전 때 호주 공군에서 복무했다. 어머니는 1933년에 시드니에서 태어났다. 밑으로 3명의 여동생이 있으며 애벗 가족은 1960년 시드니로 떠났다.

애벗은 1983년 시드니 대학교 경제학, 법학을 복수전공해 졸업했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 1989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PPE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1] 대학교 시절에는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원래 그는 영국 국적만 가지고 있었는데 대학생 시절이던 1981년 호주 국적을 취득했다.[2]

이 후 언론인으로 일하다 1994년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이 후 여러 장관직을 거쳐 2009년부터 2013년에는 자유당 대표로 활동했으며 2013년 총선에서 승리해 마침내 호주 28대 총리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총리가 된 뒤에 계속된 삽질로 국민들의 빈축을 샀고, 여론 조사에서도 노동당의 우위가 이어지자 결국 맬컴 턴불자유당 온건파에 의해 총리 자리에서 쫓겨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쫓아낸 장본인이자 그의 후임인 맬컴 턴불도 3년 뒤 그와 비슷한 과정으로 쫓겨나게 된다.

2019년 5월 18일 총선에서 기후변화이슈를 주도했던 노동당의 집중견제로 선거 막판에 후보포스터도 훼손[3] 되는 등 심각한 고전이 예상되더니 결국에는 25년간 자신이 지켜왔던 워링거 지역구 의석을 무소속 야권 후보에게 15%p차로 대패하며 내주고 말았다.[4] 패배 연설에서 애벗은 "포기자가 되느니 패배자가 되겠다"[5]고 했다. 여담으로 2015 총리직을 갑작스럽게 턴불에게 내쫓기듯이 내주며 그 이후 권토중래하면서 자유당 당수로의 복귀를 꿈꾸는듯이 보였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의회 입성에도 실패하며 이전 총리들이 그랬듯이 사실상 정계은퇴로 평범한 소시민이 되게 되었다.

징병제 재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3.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4 1994년 호주 연방 하원의원 보궐선거 워링거
34,440 (54.21%) 당선(1위) 초선
1996 1996년 호주 연방 선거 42,217 (57.72%) 재선
1998 1998년 호주 연방 선거 39,753 (55.46%) 3선
2001 2001년 호주 연방 선거 39,816 (51.45%) 4선
2004 2004년 호주 연방 선거 40,798 (54.53%) 5선
2007 2007년 호주 연방 선거 46,398 (54.53%) 6선
2010 2010년 호주 연방 선거 50,063 (58.92%) 7선
2013 2013년 호주 연방 선거 54,388 (60.89%) 8선
2016 2016년 호주 연방 선거 44,759 (51.65%) 9선
2019 2019년 호주 연방 선거 39,395 (42.76%) 낙선(2위)

4. 논란

2014년 멜버른 경제협회 콘퍼런스 초청 연설에서 외자유치의 중요성을 역설하던중 "영국이 오기 전까지 호주에는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거나 거의 없었다" 라고 발언해 애버리진과 야당의 비난을 받았다. 그가 사용한 Unsettled 라는 표현은 정주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한데 애버리진을 위한 총리라고 스스로 선언했던거에 비하면 매우 부적절한 표현.

"노인 코로나 환자는 자연사하게 둬야"라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봉쇄 조치에 따른 경제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호주 정책을 '보건 독재'라고 비난했다.#

2021년, 코로나19로 인한 전면적 락다운 상황 와중,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동료와 대화를 하다가 그를 알아본 시민에 의해 고발당해서 벌금을 물었다.# 이에 "남몰래 고발하는 것은 호주인다운 모습이 아니다"라며 항의했다고.

장관 재직 시절 혼외자 문제가 터졌다. 다행히 아들의 용서를 받으며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2019-2020 호주 산불 당시 의용소방대원으로 화재 진압에 직접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총리인 스콧 모리스는 사태 와중에 하와이로 휴가를 갔다가 여론의 뭊매를 맞았는데 이 모습과 대조를 이루었다.


[1] 옥스퍼드에서 석사 학위도 받았지만, 이는 졸업 후 일정 시간만 지나면 자동으로 수요하는 것이라 큰 의미는 없다.[2] 1993년 영국 국적을 포기하면서 단일 국적자가 되었다.[3] 자유국민연합 소속 정치인 중에서 유독 강경 보수 성향이 강한탓으로 이번 선거에서 좌파 성향 시민단체가 그의 지역구에서 상주하면서 낙선해야할 주요타겟으로 지목된데다가 지역민들의 25년 장기집권 피로감이 더해져 위와 같이 참패하는 결과가 나온것이라는 호주 현지 언론의 분석이 있다.[4] 그리고 2019년에 애벗을 의회에서 쫓아낸 잘리 스테걸 의원은 2022년 총선에서도 가뿐히 재선에 성공한다.[5] I would rather be a loser than a qu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