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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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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닐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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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96블루웨이브우승.pn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1996

파일:NPB 로고.svg 1996년 일본시리즈 MVP
토마스 오말리
(야쿠르트 스왈로즈)
트로이 닐
(오릭스 블루웨이브)
후루타 아츠야
(야쿠르트 스왈로즈)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1995, 1996년 퍼시픽 리그 지명타자 부문 베스트 나인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1996년 퍼시픽리그 최다 홈런
1995년
코쿠보 히로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8홈런
트로이 닐
(오릭스 블루웨이브)
32홈런
1997년
나이젤 윌슨
(닛폰햄 파이터즈)
37홈런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1996년 퍼시픽리그 최다 타점
1995년
이치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타나카 유키오
(닛폰햄 파이터즈)
하츠시바 키요시
(치바 롯데 마린즈)
80타점
트로이 닐
(오릭스 블루웨이브)
111타점
1997년
코쿠보 히로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14타점

두산 베어스 등번호 99번
결번 니일
(2001)
박기민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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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special.buffaloes.co.jp/img_photoplayer08.jpg
트로이 닐
Troy Neel
본명 트로이 리 닐
Troy Lee Neel
출생 1965년 9월 14일 ([age(1965-09-14)]세)
텍사스 주 프리포트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브라조스우드 고등학교
신체 193cm, 95kg
포지션 1루수, 지명타자
투타 우투좌타
프로 입단 1986년 드래프트 9라운드 (전체 208번, OAK)
소속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2~1994)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5~2000)
두산 베어스 (2001)

1. 개요2. 선수 경력
2.1. 메이저리그 시절2.2. 일본 프로야구 시절2.3. 한국 프로야구 시절
3. 연도별 성적4. 그 외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트로이 닐은 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오릭스 블루웨이브, 두산 베어스에서 뛴 미국의 우투좌타 내야수이다. KBO 등록명은 '니일'.

2. 선수 경력

2.1. 메이저리그 시절

원래 농구 선수였으나 20살때 야구에 두각을 나타내며 야구를 시작했다. 1986년 드래프트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9라운드 (전체 208번 픽)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성한다.

1992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였으며 3시즌간 230경기를 뛰면서 0.280 37홈런 120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93년에는 마크 맥과이어 등 기존 팀의 주포들이 부상당한 틈을 타 주전 지명타자로 활약하며 19홈런 63타점을 기록하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으나, 다음 해 상대적으로 부진하며 주전경쟁에서 밀렸다. 그래도 3시즌간 OPS 0.837, OPS+ 128을 기록했으니 백업으로서는 매우 훌륭한 선수였다. 아마 세이버메트릭스가 보편화되고 일본 구단들의 씀씀이가 줄어든 지금이라면 쉽게 일본으로 넘기지 못했을 수도.

2.2. 일본 프로야구 시절

그뒤 1995년부터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가게되는데 거기서 엄청난 전성기를 맞게된다. 6시즌 동안 614경기에 출전하며 136홈런, 435타점을 기록했고 96시즌에는 홈런-타점 2관왕에 올랐다. 같은 해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시리즈 MVP[1]를 수상했다.

하지만 기량이 다소 늦게 핀 선수라(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에 만 27세였다) 노쇠화 영향이 있었는지 조금씩 성적이 하락했으며 1997년 시즌 종료 후에 비싼 몸값 때문에 한 번 자유계약으로 풀려 애너하임 에인절스와 계약을 했으나, AAA에서 메이저 승격이 되지 않자 다음 해 시즌 도중 오릭스와 재계약하여 일본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다만 재계약 이후에도 전성기의 폼을 다시 되돌리진 못했고[2], 결국 2000년을 끝으로 전력외 통보를 받으며 6년 간의 일본 생활을 마감한다.

2.3. 한국 프로야구 시절

그러던 중 타선 강화를 원하던 두산 베어스에서 2001년 시즌을 앞두고 그를 영입하게 되는데 그는 돈보다 야구를 사랑해서 한국에 왔다는 희대의 개드립을 펼쳤다. 뭐 사실 맞는 말인 것이 일본 시절 큰 활약으로 거액의 연봉을 받아 이미 큰 부자였고, 나이도 36세로 은퇴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였기에 2001년 당시 KBO같은 별 볼일 없는 리그에서 여태까지 받던 금액과 비교하면 푼돈을 받으면서 굳이 말년에 힘들게 뛰느니 그냥 은퇴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돈보다는 진짜 야구가 좋아서 온 게 맞기는 했다.[3]

여담으로 2001년 초 스프링캠프에 테스트차 들어왔을 때 기존의 두산 외국인 타자였던 타이론 우즈가 그를 꽤나 견제했다고 한다. 이 당시 우즈는 그를 꽤 경계했는지, 아무도 모르는 그린 머레이라는 선수를 칭찬하며 구단에 추천하기도 했다.하지만 두산은 닐을 영입하게 된다.

닐은 훈련이 끝나고 가끔씩 공을 주웠는데 그것이 김인식 감독에게는 마음에 들었는지 닐을 엄청 좋아하게 된다. 사실 지금도 훈련 끝나고 공 줍기는 볼보이와 막내들이 하는 것인데, 이걸 지금보다 더 선후배관계가 엄격했던 20년 전 그 시절 비싼 몸값을 받고 온, 고참축에 들어가는[4] 용병이 솔선수범해서 했으니 감독 입장에선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 그는 그렇게 감독의 총애를 받으며 덕아웃에서 나 정도 선수는 해도 된다.는 말을 남기며 덕아웃에서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5]거기에 그는 뉴질랜드에 리조트를 소유했을 정도로 엄청난 갑부였었다.

그의 기량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범경기에서 18안타 2홈런 11타점으로 수위타자에 오르며 그의 기량논쟁은 끝났다. 개막전에서 몸에 맞는 볼로 부상을 당해 10일 동안 1군에 제외되었던 그는 돌아오자마자 삼성전에 마수걸이 홈런을 쳐냈다.[6]

하지만 그 뒤로 엄청나게 부진했으며 두산이 우동수 트리오가 해체되자 구상했던 우동닐 트리오는[7] 닐 혼자 나가리가 되었다. 성적면으로는 부진하긴 했지만 고작 17경기 치른 상태라 반등을 기다려볼 수도 있었는데, 결정적인 사건 하나가 그를 퇴출시키고 만다.

당시 두산의 용병투수였던 마이크 파머가 퇴출되자 송별식으로 둘이서 술집에 술을 먹으러 갔는데 거기서 한국인들과 시비가 붙어서 싸우게 된다. 한 한국인 여성이 닐의 엉덩이를 만지자 이에 닐의 부인은 여성에게 술병을 던졌고 그것이 싸움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닐은 당구큐대를 휘둘렀으며 결국 경찰서로 가게 된다. 그리고 이건 외국인 선수 1호 사건으로 기록에 남는다.

한편 두산 입장에서는 성적도 좋지 못했던 닐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골치를 썩던 차에 닐이 제 발로 퇴출 빌미를 제공해버렸고 이때다 싶어 닐도 파머와 같이 방출해버린다. 그리고 닐은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구치소에서 신었던 고무신이 마음에 들어서 가져갔다고 한다.

3. 연도별 성적

역대 성적[8]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2001 두산 17 .193 11 4 0 1 3 7 10 1 15 .324 .316 .639
KBO 통산
(1시즌)
17 .193 11 4 0 1 3 7 10 1 15 .324 .316 .639

4. 그 외

5. 관련 문서


[1] 닐 이후로 일본시리즈 MVP에 오른 외국인 선수는 한동안 나오지 않다가, 2015년 일본시리즈에서 이대호가 일본시리즈 MVP에 오르며, 19년 만에 일본시리즈 MVP를 받은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2] 시즌 중 입단한 1998년에는 중도입단인데도 28홈런을 치며 직전 해보다 성적은 좋았다. 하지만 1999년부터는 아예 풀 시즌을 뛰지도 못했다.[3] 당시 그는 결혼한지 2년밖에 안 된 새신랑이었다. 양육비는 한참 나중 이야기.[4] 1965년생으로 2001년 당시 나이가 36세라 상당한 고참 축에 들었다. 리그 전체로 봐도 당시 김정수(62년생), 조계현(64년생)에 이어 세 번째로 나이가 많았으며 송진우, 한용덕과 동갑이었다.[5]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01년 즈음엔 비행기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비상식적인 일은 아니다. 실제로 한국보다 흡연이 관대한 일본에서는 2000년대 중반까지도 가네모토 도모아키가 덕아웃에서 앉아서 담배 피다가 카메라에 잡힌 적도 있고. 물론 한국 정서상 윗어른인 감독이나 코치가 뻔히 있는데도 덕아웃에서 피우는 건 당시에도 건방진 행동이 맞긴 했으나, 구단에서 거액으로 모셔온 선수인데다가 손님 취급인 외국인이고, 무엇보다 연차도 최고참 축이었기에(사실 오랜 일본 생활로 아시아의 나이 문화에 익숙하기에 '나 정도 선수'라는 말 또한 자신의 연차와 나이를 두고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약간 건방지긴 해도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는 정도였다.[6] 삼성의 감독이었던 김응용 감독은 어디서 저렇게 고급용병을 데리고 왔냐고 말하기도 했다.[7] 본래 표기는 요즘처럼 발음하면 닐에 가까운데 당시는 외래어 표기법상 니일이라고 등록했다.[8]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