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등장하는 용어. 극장판 애니메이션에는 명시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코믹스판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단어로서 등장한다.애니메이션에서도 밝혀졌듯이 사실 부해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징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 물질을 제거하여 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 부해의 정화 작용이 끝났을 때 만들어지는 신세계의 유토피아가 바로 '푸른 청정의 땅'이다.
본래 존재하지 않는 곳이지만 숲의 백성인 세름의 도움으로 나우시카 또한 마음속의 세계에서 이곳을 보고 올 수 있었다. 본래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절망하고 있던 나우시카는 이 세계를 보고 새로운 희망을 얻는다.
하지만...
2. 진실
애니메이션과는 확실히 다른, 원작 코믹스판 나우시카의 주제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푸른 청정의 땅'의 실체.
우선 환경의 정화를 수행하는 부해는 애니메이션판과 달리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인간에 의해 설계된 인공생물계이다.[1] 전 지구적 오염으로 말미암은 세계 멸망의 기로에 섰던 옛 세계의 과학자들이 미래의 인간들의 생존을 위해 부해를 만들었던 것. 게다가 이 부해를 수호하는 오무조차도 인간의 손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이다.
그리고 부해의 정화의 결과로서 만들어지는 이 푸른 청정의 땅에는 나우시카를 비롯하여 나우시카 세계의 모든 인간들, 즉 구세계의 인류는 살 수 없다. 과거의 과학자들은 구세대의 인류마저 다시 창조해 버렸고, 이들은 청정보다 독기에 더 익숙한 수준으로 적응해버렸다. 그렇기에 부해가 정화 작용을 모두 수행하고 사라진 신세계에서는 폐가 순수한 산소를 견디지 못해 파열하고 만다.[2] 즉, 사라져 버린 모든 생명체가 되살아나고 전쟁도 오염도 다툼도 없는 궁극의 유토피아가 바로 푸른 청정의 땅이다.
이 푸른 청정의 땅이 도래하면 슈와에 있는 기술을 통하여 구세계의 인류 또한 맑은 공기가 흐르는 유토피아에서 살 수 있도록 개조되고, 묘소에 보관되어 있던 유전자 조작을 통해 호전성을 거세한 신인류의 씨앗이 깨어나 폭력을 모르고 시와 예술을 사랑하는 주인을 맞는 새로운 세기의 도래가 묘소의 주인이 세운 계획이다.
그러나 나우시카는 이 계획에 반대한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속세 권력자들의 힘을 필요로 했던 슈와의 주인[3]은 계속해서 점균 병기나 히드라 병사와 같은 사악한 기술들을 미끼로 권력자들을 유혹해왔고, 이것이 전쟁이나 대해일(부해의 대규모 확장)과 같은 파국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또한 나우시카는 "이 별에 생명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며 세계 재건을 계획했던 이들도 도르크의 거대한 인공 점균의 행동과 오무의 대해일 같은 행동도 예측하지 못하였듯이, 철새가 대륙을 건너가듯, 인간 또한 폐에서 피를 뿜더라도 계속해서 살아나갈 것이다."라고 말한다.[4]
삶이란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모두 가진 것인데, 슈와의 주인은 잔혹함은 부정하고 아름다움만 남기기 위해 억지로 세계를 정화하려고 하여 수많은 구세계 인류를 죽게 만들었다. 삶을 긍정하지만 죽음이나 멸망조차도 생명의 한 측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우시카와 달리, 슈와의 주인이 믿은 생명이란 말 그대로 흠결없는 빛이었으니, 현생인류 등 폭력적인 생물이 어찌되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결국 양측은 끝까지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슈와의 주인은 나우시카를 '위험한 어둠, 희망의 적'이라고 부르며 죽이려 한다. 이에 나우시카는 생명이란 (그저 빛이 아닌)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빛이라고 일갈하며 맞서 싸운다.
그리고 거신병 오마를 데려왔던 나우시카는 오마의 힘을 빌어 슈와를 무너뜨리고, 신인류의 씨앗까지 휘말려 모두 사라진다. 나우시카는 새 인류의 씨앗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우리와 같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인류가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이 되었을 이들'이라고 하면서 그 씨앗들이 사라지는 것을 슬퍼한다. 하지만 같이 있었던 토르메키아의 왕은 '폭력 또한 평화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일부다. 어느 하나를 인위적으로 제거한 존재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며 대답한다.
그리고 민중들에게는 '푸른 청정의 땅'의 실체-신세계의 도래와 함께 그때까지 살아남던 인류는 멸망하리라는 것-를 숨기고, 부해의 정화 작용에 따라 언젠가 나타날 낙원이라는 피상적인 진실만을 전해준다. 나우시카 또한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고, 전쟁통에 가뜩이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수많은 민중에게 '푸른 청정의 땅'의 진실을 밝힌다면 모두가 삶의 의지를 잃어버릴 것을 염려했기 때문에 진실을 감춘 것이다.
결국 나우시카가 구세대의 인류를 개조하는 기술을 가진 슈와를 파괴했기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세계관의 인류는 푸른 청정의 땅을 밟을 수 없을지도 모르게 됐다. 결국 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나우시카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세름의 말대로 '모든 것을 별에 맡기고 살아가기로 한 셈'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동물종의 유사성, 나우시카 단행본의 비행정들이 비행석을 가공해 만든 엔진을 쓴다는 점, 라퓨타인들이 묘사된 복장이 나우시카의 선조들인 에프탈 인들과 비슷하다는 점, 또한 세라믹으로 만들어졌다는 라퓨타의 로봇 병사들과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된 가공할 과학들 거신병의 레이저와 흡사한 라퓨타의 레이저 등으로 '천공의 성 라퓨타'의 시대가 미래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만약 그렇다면, 인류는 '푸른 청정의 땅'에 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라퓨타인들이 하늘로 확장하게 된 경우도 '푸른 청정의 땅'이 아직 인류에게 맞지 않거나 인구수에 따른 땅 부족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반대로 천공의 성 라퓨타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프리퀄일 수도 있다. 동식물의 유사성이나 복장 등등과 더해서 나빠지는 환경과 군데군데 버려져 있는 건물들과 사막화, 왕위를 놓고 벌이고 있는 분쟁 등등[5]을 보면 오히려 라퓨타가 프리퀄일 확률도 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같은 세계를 다루는 후속작이나 세계의 연결을 그닥 달가워하지 않는 편임을 고려하면, 이는 그냥 그의 특징적인 스타일이 두 작품에 그대로 묻어난 것일 뿐 두 세계는 완전히 별개임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물론 슈와가 없어졌다고 해도 부해는 마지막까지 정화를 계속할 것이며, 고대 인류가 남겨 놓은 문화의 보고는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에 현 인류가 나우시카의 말마따나 피를 뿜으면서 악착같이 적응할 수만 있다면, 인류는 다시 푸르고 청정한 땅을 보게 될 수 있다.
여기서 나우시카의 선택이 문제가 된다. 부해의 독기에 맞게 살아가도록 개조된 구인류가 지구가 정화된 뒤에도 살 수 있도록 원래대로 되돌릴 기술도 슈와에 있었고 신인류와 구인류가 생식 장벽이 없다면 서로 간의 융합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우시카가 슈와와 함께 신인류의 씨앗을 파괴함으로써, 다가올 청정의 땅에서 인류의 존속여부는 도박이 되었다. 다만 구세대의 인류를 증오한 과학자들이 인류에게서 폭력성이 거세되리라 확신한 것을 보면 신인류라는 것들에게 무슨 장난을 쳤는지도 모르는 일이다.[6] 무엇보다 나우시카가 지적하기 전까지 슈와의 구세대 과학자들 또한 구인류가 적용하지 못하리란 사실을 숨긴 채로 기다리기만 하라면서 구인류를 나우시카의 말을 빌리면 '세계를 바꾸기 위한 노예' 취급을 했다.[7]
비록 불확실한 엔딩이지만 멸망도 순리라는 것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생명은 목적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고, 아름다움과 추함을 모두 가진, 생명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생명이 스스로의 힘으로 적응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는 게 작가의 메시지이며, 이 기준에서 보면 어느 정도 희망적인 결말을 남긴 셈이라 볼 수 있다.
여담으로, '푸른 청정의 땅'으로 인도하는 푸른 옷의 사도의 경우 작중에서 전설로 사람들이 믿는 것과 실제의 행적이 다르다. 선대 푸른 옷을 입은 자도 푸른 청정의 땅으로 인류를 인도한 게 아니라 에프탈 왕국의 생존자들을 부해로 이끌어 숲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만들었고, 나우시카의 경우에도 푸른 청정의 땅으로 인류를 인도하기는 커녕 (부해를 만든 선대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인류에게서 푸른 청정의 땅으로 갈 기회를 없애버린 것과 같게 되었다. 오히려 선대 푸른 옷을 입은 자도 나우시카도 부해와의 공존을 이야기했으니 따지면 전승이 잘못되었던 셈이다.[8] 실제로 선대 푸른 옷을 입은 자의 전승을 알고 있는 숲사람 세름도 푸른 옷을 입은 자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고 그저 길을 보여줄 뿐이라고만 말한다. 부해의 설정을 때려 부순 것과 마찬가지로, 나우시카가 종교적 구세주처럼 그려지던 설정도 같이 때려 부순 셈이다.
[1] 이미 여기서부터 '자연의 위대함'을 예찬한 나우시카 애니메이션의 주제를 완전히 때려 부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 나우시카 세계의 인간들은 들이마시면 5분 정도밖에 못 버티고 죽음에 이르는 유독한 포자 가스를 마스크만 쓰면 막아낼 수 있다. 슈와 근처의 '정원'을 지키는 목자는 '부해의 독기 속에서 피부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마스크만 쓰고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은 없는가?'라고 지적했다. 생각해 보면, 그토록 유독한 수준의 가스라면 피부나 점막 접촉만으로도 장기적으로는 독소가 조금씩이나마 누적되는 게 당연할 것이다.[3] 일종의 슈퍼 컴퓨터, 혹은 히드라로 추정. 부분적인 인공지능만을 갖춘 생체 슈퍼컴퓨터라고 정리하면 적절할 것으로 여겨진다. 현실 세계에서도 인간의 '뉴런 체제(뇌)'를 본뜬 컴퓨터를 만들려는 노력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근데 그게 까딱하면….[4] 그 말대로, 부해가 끝나는 곳에서 가장 오래된 부해는 천 년도 더 이전에 생겼던 것이고 지금도 부해는 새로이 생겨나고 있으며 그 긴 시간 동안 인류와 구 시대의 생물들이 새로이 적응할 가능성 또한 충분히 있다. 현실에서의 생물의 역사에서도 수억 년 동안 해양 생물종의 약 96%와 육상 척추동물의 70%가 멸종한 최악의 대멸종인 페름기 대멸종을 비롯한 수차례의 파멸적인 대멸종을 겪었고 대세가 되는 생물군이 동물은 곤충에서 양서류에서 파충류로 그 이후에 포유류로, 식물류는 겉씨식물에서 속씨식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생명은 지구에 존재한다.[5] 에프탈인들도 왕위 분쟁으로 인해 오무들을 남획하다가 멸망했다.[6]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가설 중에 인류와의 혼혈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죄다 불임이 되어 멸종했다는 설이 있다는 것을 보면...[7] 인류의 문화를 보존하던 히드라인 정원의 목자가 슈와를 껄끄럽게 보며 슈와의 기술이 '전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 경멸한 것도 복선이었던 셈이다.[8] 도르크의 챠르카 승정은 실제로 도르크 승회의 가르침과 푸른 옷을 입은 자의 전승이 섞여 이상한 혼합 종교를 믿는 도르크인들을 보며 탄식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