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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20:30:23

히혼의 수치

히혼의 불가침조약에서 넘어옴
파일:external/www.thetimes.co.uk/0048d7ce-ffcc-11e3-_725411c.jpg파일:external/polpix.sueddeutsche.com/juni-deutschland-oesterreich.jpg
지폐를 흔들면서 매수라고 조롱하는 알제리의 축구팬들[1]
언어별 명칭
<colbgcolor=#EEE,#222> 영어 Disgrace of Gijón[2]
Non-aggression pact of Gijón[3]
독일어 Schande von Gijón[4]
Nichtangriffspakt von Gijón[5]
프랑스어 La honte de Gijón[6]
Le pacte de non agression de Gijón[7]
스페인어 Desgracia de Gijón[8]
Pacto de no agresión de Gijón[9]
아랍어 [10]فضيحة خيخون

1. 개요2. 상세3. 전개
3.1. 충격의 서막3.2. 충격의 끝
4. 후폭풍5. 현 조별 리그 체제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6. 유사 사례
6.1. 1982 월드컵 5조 스페인 vs 북아일랜드6.2. 그 외 사례
7. 여담8. 둘러보기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스페인에서 개최된 1982 FIFA 월드컵 24개 본선 진출국들의 조별리그 기간이던 6월 25일 2조 마지막 경기에서 서독오스트리아가 암묵적으로 담합하여 알제리를 떨어뜨리고 나란히 당시 12강 조별리그[11]에 진출한 사건.

1938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사건에 빗대어 안슐루스(Anschluss)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상세

당시 FIFA아시아아프리카 나라들에게 1~2장의 24개국 본선 진출권밖에 주지 않았고, 월드컵 24강에 나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빠져나가기 수준이었다.[12]

그 와중에 당시 아프리카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알제리가 월드컵 24강 본선 진출권을 따냈고, 흥분한 알제리 국민들은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기대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서독, 오스트리아[13], 칠레[14]와 같은 조가 되었다. 칠레 정도만 상대해볼 만하고 나머지 둘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만 같은 상황. 오스트리아는 이제는 월드컵 본선과도 멀어진 2000년대 이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위상을 가졌던 강팀이었으며[15], 특히 서독은 1974년 월드컵 우승, 유로 1980 우승이라는 화려한 전적을 갖고 있는 강팀 중의 강팀이었고 대항마는 오직 직전 대회 우승국인 아르헨티나밖에 없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의 괴물팀[16][17]이었다.

3. 전개

3.1. 충격의 서막

6월 16일 히혼 엘 몰리논에 4만 2천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서독알제리의 24강 2조 첫 경기가 열렸다. 예상처럼 서독은 전반 내내 공격을 펼쳤지만 어째 잘 풀리질 않았고, 0-0으로 전반전을 마친 뒤 후반전에 돌입했는데…


알제리가 강호 서독을 2-1로 격파하는 희대의 사건이 터졌다.[18]

당시 서독의 패배에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고, 누군가는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충격 또는 1966년 북한 이후 최고의 이변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이로써 알제리는 월드컵에서 유럽 팀을 꺾은 최초의 아프리카 팀으로 등극했다.[19] 반면 서독은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팀에게 패배한 최초의 우승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하루 뒤 17일에 열린 칠레오스트리아의 경기는 오스트리아의 1-0 승리로 끝나며, 각각 1경기씩 마친 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rowcolor=white> 승점
파일:알제리 국기.svg 알제리 2[p] 1 0 0 2 1 +1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2[p] 1 0 0 1 0 +1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0 0 0 1 1 2 -1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0 0 0 1 0 1 -1

20일에 열린 24강 2조 두번째 경기. 서독칠레를 상대로 분풀이를 하며 4-1 대승을 거뒀다. 다음 날 21일에는 오스트리아알제리를 상대로 고전하다가 후반전에 내리 두 골을 넣으며 오스트리아가 2-0으로 승. 여기서 다시 조 순위를 살펴보자.
<rowcolor=white> 승점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4 2 0 0 3 0 +3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2 1 0 1 5 3 +2
파일:알제리 국기.svg 알제리 2 1 0 1 2 3 -1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0 0 0 2 1 5 -4

24일에 열린 알제리칠레의 세번째 경기. 주고받는 공방전 끝에 알제리가 3-2로 힘겹게 승리를 따내며 다음날 마지막 서독오스트리아 사이의 경기만 남게 됐다. 이 상황에서의 조 순위.
<rowcolor=white> 승점 결과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4 2 0 0 3 0 +3 1경기 남음
파일:알제리 국기.svg 알제리 4 2 0 1 5 5 0 미정 (경기 완료)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2 1 0 1 5 3 +2 1경기 남음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0 0 0 3 3 8 -5 탈락

일단, 서독은 이기지 못하면 무조건 탈락 확정이고, 반대로 이기면 조 1위로 진출한다. 오스트리아는 더 여유로워서 지지만 않으면 조 1위로 12강 조별리그 진출이 확정이고, 지더라도 2점차 이내라면 2위로 12강에 진출한다. 알제리가 12강에 진출하려면, 두 팀이 비기거나, 서독이 지거나, 서독이 오스트리아를 4점차 이상으로 이겨야 한다. 서독이 1점차나 2점차로 오스트리아를 이기면, 알제리가 떨어지고 서독-오스트리아가 나란히 12강에 진출한다. 칠레는 마지막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탈락이 확정됐다.

오스트리아가 3점차 패배를 할 경우 계산이 좀 복잡해지는데 0-3, 또는 1-4로 패하면 다득점에서 밀려서 떨어지는 상황이고 2-5로 패하면 오스트리아와 알제리는 득실차에 득점까지 동일(5득 5실, 득실차 0)하므로 추첨으로 12강 진출을 결정하게 된다. 3-6 이상으로 패해야 다득점에 앞서서 올라갈 수 있었다.[22]

전력상으로 서독이 더 앞섰지만 당시 오스트리아전성기였고, 무실점을 이어가고 있었으며 이전 1978년 월드컵에서 오스트리아가 서독을 3-2로 꺾은 바가 있기 때문에[23] 서독으로서는 심히 우려스런 상황.

서독이 난처해진 가운데, 오스트리아도 게르만 동포들이 올라가길 바라는 눈치였는지, 분위기는 점점 오묘해져 서독은 대승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았고 오스트리아 역시 패하더라도 3골 이상 먹히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양 팀은 쓸데없이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알제리도 기대와 불안을 감추지 못한 가운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24강 2조의 운명을 결정지을 마지막 경기가 다가왔다.

3.2. 충격의 끝

서독이 알제리에게 충격패를 당한 히혼에서 25일 다시 4만 1천 관중들이 보는 가운데 서독오스트리아의 경기가 열렸다. 승리가 절실한 서독이 파상공세를 이어갔고, 마침내 전반 10분만에 호르스트 흐루베슈가 선취골을 넣었다. 그리고...

두 팀은 나머지 80분 동안 무의미한 백패스로 공돌리기만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기 시작했다.

각 팀은 수비 진영에서 계속 의미없는 백패스로 공만 돌려댔다. 서독볼프강 드렘러오스트리아발터 샤흐너 등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어 보려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80분 동안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돌리기만 계속 이어졌다.


당시의 관중들은 할 말을 잃었으며, 경기가 진행되는 90분 내내 야유와 함께 “꺼져라! 꺼져라!”(¡Fuera, fuera!), “알제리! 알제리!”(¡Argelia, Argelia!)[24], “뽀뽀해! 뽀뽀해!”(¡Que se besen, que se besen!) “정정당당하게 싸워라!”(¡Sporting, Sporting!)를 외쳤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서독 ARD의 해설자 에베르하르트 슈타니예크는 어느 시점부터 해설을 거부하면서 "경기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말하지 않더라도 이해해 달라."면서 "이것은 축구라고 할 수 없다."고 해설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해설자 로베르트 제거는 후반에 시청자들에게 "TV를 끄는 편이 낫다." 라고 말하고는, 그 뒤 경기 종료 때까지 말을 단 한 마디도 안 하기까지 했다. 뉴욕 타임즈 기자 조지 벡시는 "콘서트다!" 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심지어 스페인 일간지 엘 코메르시오는 해당 경기의 결과를 범죄 섹션에다 실었다.

알제리 관객들이야 굳이 더 언급할 필요도 없고, 지난 월드컵에서의 코르도바의 기적을 멋진 경기로 되갚아주길 원했던 서독 관중들도 물론이며, 다시 한 번 멋진 경기를 기대했던 오스트리아 관중들, 그리고 개최국 스페인 관중들 모두가 위 아 더 월드로 나서서 비난을 하기에 이르렀다. 농락을 당한 알제리 관중들은 위의 사진처럼 돈을 흔들면서 매수라고 선수들을 조롱했으며, 후반전이 되자 경기장에 쓰레기통이 투척되고 한 서독 관중은 아예 경기장에 난입해서 서독 국기를 불사르기까지 했다.

성난 몇몇 서독 팬은 경기 후 선수단 호텔을 찾아가 계란을 던지는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선수들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물 폭탄 세례로 대응했다.

FIFA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져주기 게임 경기가 끝난 뒤, 2조의 최종 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rowcolor=white> 승점 결과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4 2 0 1 6 3 +3 12강 진출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4 2 0 1 3 1 +2 12강 진출
파일:알제리 국기.svg 알제리 4 2 0 1 5 5 0 탈락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0 0 0 3 3 8 -5 탈락
결국 서독오스트리아가 사이좋게 쎄쎄쎄를 하며 승점을 나눠 가져 손을 잡고 12강 조별리그에 진출했고, 알제리는 같은 승점을 벌어 놓고도 두 팀의 농간에 놀아나 12강 목전에서 2승 1패[25]6점을 따고도 16강 진출에 실패한 것이다!] 월드컵 13위[26]로 탈락했다.

4. 후폭풍

경기 종료 후 당연하게도 승부조작 의심이 불거졌지만, 서독과 오스트리아는 모두 담합 의혹을 부인했다. 알제리 축구 협회는 시합 이후 FIFA에 공식적으로 항의했지만, FIFA는 규정 위반이 이뤄진 바 없다는 이유로[27]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경기에서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국가대표 선수들이 프로의식을 망각한 경기 운영을 했으므로, 최대 피해자인 알제리는 물론, 서독과 오스트리아 자국 팬들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축구 팬들의 비난을 피할 수는 없는 일. 이를 두고 프랑스미셸 이달고 감독은 두 국가 대표팀을 노벨평화상 후보라고 대놓고 비꼬았다.

그렇게 전 세계 사람들을 실망시키며 치졸하게 12강 조별리그로 진출한 오스트리아는 결국 프랑스에 의해 짐을 싸게 되었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전력이 하락해 동네북으로 전락하면서 다음 대회와 1994년 대회에서는 지역예선 탈락, 그나마 본선에 진출했던 1990년, 1998년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으며, 1998년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도 두 번 다시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업보를 제대로 받은 셈.

서독은 12강 조별리그에서 잉글랜드와 개최국 스페인을 뚫고 4강 토너먼트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논란의 소지가 큰 승리를 거둔 뒤[28] 용케도 결승전까지 진출했지만, 이탈리아와 맞붙어 파올로 로시, 마르코 타르델리,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에게 한 골씩을 허용해 1-3으로 우승컵을 내줬다. 당시 이탈리아는 2라운드 12강 조별리그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이 포함된 12강 죽음의 조를 돌파해 올라왔다.[29] 게다가 4강에서는 당시 리즈 시절이던 폴란드까지 꺾고 결승에 온 상태였다.

이로 인해 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떠올랐고 마침내 UEFA 유로 1984를 시작으로 각종 국제 대회에서 1라운드 조별리그의 마지막 2경기나, 프로축구 리그의 마지막 경기는 승부조작을 막기 위해 모든 팀이 동시간대에 실시간으로 경기를 시작하도록 변경하는 제도가 시행되었다. #[30]

하지만 중간에 진행상황을 알고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조작을 하거나, 2차전만에(즉, 3차전 결과와 무관하게)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팀이 3차전에서 다른 두 팀의 3차전 경기결과와 무관하게 다음 라운드 진출 결과를 정할 수 있다면[31] 동시에 진행되는 다른 두 팀 간 경기를 신경쓰지 않아도 됨으로써 조작이 가능하므로 이 또한 승부조작 가능성을 줄인 것일 뿐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32]

2016년 미주 전체 미국 코파 100주년 대회에서는 이를 따르지 않고, 마지막 경기가 다른 시간대에 진행되었다. 다행히도 승부조작성 경기가 펼쳐지진 않아서 별다른 논란 없이 넘어갔다.

5. 현 조별 리그 체제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

한 그룹에 A, B, C, D 네 팀이 싱글 라운드 로빈으로 3경기를 해 2개 팀이 다음 라운드로 간다고 치자.

파일:조별리그담합1.jpg
파일:조별리그담합2.jpg

6. 유사 사례

6.1. 1982 월드컵 5조 스페인 vs 북아일랜드

무려 같은 날[34] 밤 9시에 비슷한 일이 또 발생했다. 발렌시아의 루이스 카사노바 경기장에서도 스페인과 북아일랜드 간 5조 최종전 경기가 열렸다. 스페인은 47분에 게리 암스트롱의 선제골을 얻어맞고 동점골을 넣기 위한 적극적인 공격 자체를 하지 않았다. 이는 스페인이 추가골만 실점하지 않는다면 다득점으로 전날 최종전을 마친 유고슬라비아를 제치고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래의 표는 본 경기 전날 사라고사의 라 로마레다에서 유고슬라비아 vs 온두라스 경기가 유고슬라비아의 1-0으로 끝나 두 나라가 조별 리그 경기를 모두 마치고 나서의 순위표다.
<rowcolor=white> 승점 결과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3 1 1 0 3 2 +1 1경기 남음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3 1 1 1 2 2 0 미정 (경기 완료)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 북아일랜드 2 0 2 0 2 2 0 1경기 남음
파일:온두라스 국기(1949-2022).svg 온두라스 2 0 2 1 2 3 -1 탈락

남은 40여분 넘는 시간동안 스페인과 북아일랜드는 공만 돌리다가 경기를 끝났다. 특히 스페인은 60분에 북아일랜드의 맬 도너기의 퇴장으로 수적 우세를 점하고도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 이른바 발렌시아의 수치라고도 할 수 있는 경기였다. 스페인은 앞서 유고슬라비아와의 2차전에서 페널티킥 오심으로 겨우 승리를 챙겼는데, 최종전에서는 0-1로 지고도 다득점으로 앞서며 유고슬라비아를 두 번 죽였다.

6.2. 그 외 사례

7. 여담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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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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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결승전
파일:헝가리 인민 공화국 국기(1949-1956).svg (1954)
vs 헝가리 2:3 승
파일:브라질 국기.svg (2002)
vs 브라질 0:2 패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2014)
vs 아르헨티나 1:0 (연장) 승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결승전
파일:스페인 국기.svg (2008)
vs 스페인 0:1 패
기타 경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1982)
vs 오스트리아 1:0 승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1994)
vs 대한민국 3:2 승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2002)
vs 대한민국 1:0 승
파일:브라질 국기.svg (2014)
vs 브라질 7:1 승
파일:멕시코 국기.svg (2018)
vs 멕시코 0:1 패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2018)
vs 대한민국 0:2 패
파일:일본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2022)
vs 일본 1:2 패
※ 동독 대표팀 기록 제외 }}}}}}}}}}}}}}}

9. 관련 문서


[1] 각각 흑백과 컬러일 뿐, 잘 보면 두 사진 다 똑같은 사람들을 촬영했다.[2] 히혼의 수치.[3] 히혼의 불가침 조약.[4] 샨데 폰 히혼(히혼의 수치). 공교롭게도 카잔의 치욕의 치욕도 독일어로는 Schande라고 읽는다. 치욕과 수치 둘 다 독일에서는 전부 다 같은 단어인 셈.[5] 니히트안그리프스팍트 폰 히혼(히혼의 불가침 조약).[6] 히혼의 수치[7] 히혼의 불가침 조약[8] 데스그라시아 데 히혼(히혼의 수치).[9] 팍토 데 노 아그레시온 데 히혼(히혼의 불가침 조약).[10] 파디하 히훈(히혼 스캔들).[11] 이 당시는 2라운드 8강 토너먼트가 아니라 1라운드 24강 조별리그에서 4개국씩 6개 조의 1, 2위가 가려지면 또 2라운드 12강 조별리그로 3개국씩 4개 조로 나뉘어 각 조 1위가 준결승 4강 토너먼트에 오르는 방식이었다. 즉, 본선 진출국이 24개로 조금 늘어나고 2라운드 12강 조별리그에서는 각 조 1위만 4강 토너먼트로 가는 식으로 변경했을 뿐, 경기 방식은 1974년, 1978년 대회와 같았다(2라운드를 조별리그로 실행한 점이 동일).[12] 이렇게 된 게 1938 월드컵에서 인도네시아의 무혈입성 참패탈락과 더불어 1954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 조별리그에서 9-0, 7-0 패배를 당하자 아시아는 당시 16개국 본선 진출 티켓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 실제로 1958 월드컵부터 아시아는 타 대륙과 합동예선에서 우승을 해야 16개국 본선에 진출하도록 바뀌었다.(즉, 아시아 1위를 해도 타 대륙과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하는 식) 심지어 1962 월드컵아시아와 아프리카, 북중미에 각각 0.5장을 주고 북중미는 남미와, 나머지는 유럽과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했고 1966 월드컵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3대륙을 하나로 묶어 1장을 지급하였다. 그래서 한국도 1958~1978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여러번 진출 실패했으며, 1966년 아프리카 국가들은 15개국이 통째로 기권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덕분에 아시아+오세아니아+아프리카 통틀어서 유일하게 북한이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었고 여기서 북한은 유럽의 이탈리아를 누르고 8강 토너먼트에 오르며 기적을 일으킨다.[13] 헤르베르트 프로하스카, 한스 크란클, 발터 샤흐너 등이 이끄는 건실한 팀이었다. 1978년 월드컵에서 2라운드 8강(7위)까지 진출.[14] 남미예선에서 에콰도르, 파라과이를 제치고 올라왔다.[15] 대략 2018년 월드컵 당시의 벨기에, 우루과이 정도였다고 생각하면 된다.[16] 직전 대회 우승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 월드컵에서 데뷔를 했고 거기에 지난 대회 우승의 주역인 마리오 켐페스까지 갖추고 있었다. 켐페스와 마라도나 중 하나만 있어도 우승권이라는 평가를 받던 당대의 축구계에서 아르헨티나는 둘 다 보유하고 있었다.[17] 사실 이 대회의 최강자 떡밥과 최종 보스 이미지는 전 대회 1978년 월드컵 무패 3위를 기록했으며, 지쿠를 필두로 하는 황금의 4중주의 브라질이 가지고 있다. 히혼의 수치와 같이 언급될 정도로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는 1978년 월드컵에서의 아르헨티나와 페루 간 6-0 경기 결과로 브라질은 무패 탈락이란 진기록을 세웠고, 결국 1982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아르헨티나를 격파하며 복수에 성공했지만, 이탈리아에 불의의 일격을 당해 탈락(5위)하고 말았다.[18] 이 날 선제골을 넣은 알제리의 라바 마제르는 5년 뒤인 1987년FC 포르투 소속으로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전에서도 동점골을 넣고 주아리의 역전 결승골까지 도와, 포르투의 사상 첫 빅이어를 선사했다.[19] 그리고 알제리는 32년 후 월드컵 본선에서 한 경기 4골 이상 넣은 최초의 아프리카 팀이라는 기록을 또다시 만들었다. 이 기록의 희생양이 바로 홍명보가 이끌던 대한민국.[p] 당시에는 이기면 승점 2점이었다.[p] [22] 이 대회에서 아직 승자승 타이브레이커는 없었다.[23] 이를 당시 경기가 열렸던 도시 코르도바의 이름을 따 코르도바의 기적이라 한다.[24] 알제리의 스페인어[25] 만약 이겼을 때 승점이 3점으로 바뀌고 32강 체제에서였다면 승점[26] 이것이 알제리의 역대 월드컵 최고 순위이고, 그 다음 2번째로 좋은 순위가 2014 브라질 월드컵 14위(16강) 1승 1무 2패이다.[27] 서독과 오스트리아 사이에서 시합 결과에 대해 명백하게 합의가 이뤄지거나 특정 시합 결과를 유도했다는 증거가 명백하지 않았다.[28] 이 경기에서 서독의 골키퍼 슈마허는 골문을 향해 쇄도하던 프랑스 수비수 바티스통을 무릎 공격으로 쓰러뜨려 끔찍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바티스통은 슈마허의 공격에 이빨과 늑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음에도 불구, 주심으로부터 반칙을 얻어내지 못했다. 미셸 플라티니는 이를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오심’이라 부르며 불만을 터뜨렸다.[29] 이때 브라질은 파올로 로시해트트릭으로 이탈리아에게 2:3의 충격적 패배를 당했고, 브라질 국민 2명이 자살하고 5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를 데 사리아 참사라고 한다. 이 경기는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해트트릭을 당하고 패배한 유일한 경기다.[30] 다만 예외적으로 아시안 게임 축구는 별도의 예선 없이 치러지고 이에 따라 참가하는 팀의 수도 항상 천차만별로 달라지기에 한 조에 3팀만 들어가는 일도 일어난다. 이럴 때는 최종전이 단 한 경기이므로 당연히 동시간대에 두 경기를 치르는 일이 없다.[31] 밑의 문단처럼 승점만으로도 작당질이 가능하거나, 심지어 지더라도 다른 두 팀간 경기에서 한 팀(C팀)이 승리하여 승점에서 B팀과 동점을 잡더라도(대개 4점) 그 득실차와 득점 수를 따라잡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라면 B팀이 확정적으로 16강에 진출이 가능할 때 그냥 대충 경기를 플레이하여 의도적으로 비기는 경우도 있다.(3차전 대진이 중간순위로 1위(16강 진출 확정) vs 2위 / 3위 vs 4위가 되는 경우. 이 때 2~4위는 16강 진출과 탈락이 확정되지 않음) 아니면 대진표에 따라 8강 이후에서 험난한 대진을 피하기 위해 16강에서 옆 조 1위와의 대결에서 이기는 기적을 노리고 일부러 조 2위를 유지하도록 이기지 않고 비기거나 지는 플레이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니면 16강 진출이 확정된 A팀의 상대인 B팀이 이 경기를 이기면 16강 진출이 매우 유력하고 지면 무조건 탈락하는 상황에서(즉 한 경기를 큰 점수차로 대승을 거두고 나머지 경기를 크지 않은 점수차로 패배하거나, 한 경기를 0-0이나 1-1 무승부로 끝내고 나머지 경기를 1점차로 패배한 경우 등) 나머지 두 팀 중 한 팀(C팀)이 이기더라도 B팀과의 득실차와 득점 수를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면 A팀이 B팀을 1점차로 져주면 자연스레 B팀과 C팀 중 골득실 우위인 B팀이 매우 높은 확률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나머지 C, D팀은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모두 16강을 탈락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32] 그에 따른 적절한 예시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H조의 마지막 3차전인 일본폴란드 경기에서 폴란드가 결승골을 넣어 일본이 0:1로 뒤지고 있을 때, 또다른 3차전인 세네갈콜롬비아 경기에서 콜롬비아가 1:0으로 앞서자 세네갈보다 카드를 적게 받았던 사실을 알고 있는 일본은 이 스코어를 계속 유지하고자 폴란드와 함께 거의 담합한 듯이 볼돌리기만을 시전해 비록 일본이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적게 받았던 카드 수를 악용해서 세네갈을 제치고 16강에 오른 일이 있었다.[33] 1, 2차전 서로 바꿔도 무방[34] 1982년 6월 25일[35] 24개국 본선 진출 대회[36] 왜냐하면 아시아 축구 연맹 주관 대회들은 유럽 축구 연맹 주관 대회들처럼 승점이 같으면 동률 팀끼리의 전적부터 보는 이른바 승자승 원칙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두 팀이 아닌 3팀 이상이 동률일 때도 동률 팀간 승점, 골득실차, 다득점 비교를 반복하고 거기까지 동률이어야 전체 골득실차를 본다. 그래서 한국은 이미 호주, 일본과 득점 없이 비겼기 때문에 호주와 일본이 1:1 이상으로 비기면 한국은 조 3위가 된다. UEFA 유로 2004의 이탈리아도 이런 사례의 희생자였다.[37] 말리가 대한민국에 득실차에 1점 앞서 있었다.[38] 바로 직전 유로2004 16개국 본선에서 스웨덴과 덴마크가 2-2로 비기면서 이탈리아가 탈락(9등)한 사례가 있었다.[39] 경기 종료 5분을 남기고 대한민국에서 먼저 볼돌리기를 시전했고, 패스가 끊겨 말리의 볼이 선언된 이후론 말리가 볼돌리기를 하며 경기가 종료되었다. 하지만 후술하는 2018 러시아월드컵 프랑스 vs 덴마크 경기만큼의 노골적인 수준은 아니었다.[40] 24개국 본선 진출 대회[41] 칠레가 패하고 콜롬비아와 페루가 비길 시 콜롬비아는 본선에 진출하고, 페루는 대륙간플레이오프로 진출하는데, 플레이오프 상대가 뉴질랜드인 것을 감안하면 이변이 없으면 거의 진출확정 수준이다.[42] 원조 히혼의 수치와의 차이라면, 그 때는 서독과 오스트리아 모두 경기 결과에 따라 떨어질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프랑스는 이미 16강 진출이 확정되었다는 점. 그러나 그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이 두 팀이 경기 내내 적극적인 공격을 시도하지 않고 공돌리기를 했다는 점은 원조와 똑같다.[43] KBS 한준희 해설위원도 후반 관중들의 야유를 듣고 중계석에 있지만 않았다면 자신도 야유에 동참했을 것이라고 언급할 정도였다.[44] 더욱이 이 경기는 2018 월드컵 첫 무득점 무승부 경기였다. 이번 대회에서 월드컵 최초로 도입된 VAR의 영향으로 페널티킥이 자주 주어져, 이 경기 전까지 36경기, 동시간대에 진행된 호주-페루전을 포함하면 37경기 연속으로 득점이 나오는 월드컵 기록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으나, 이 경기에서 그 기록마저도 매우 불명예스러운 졸전 끝에 깨졌다. 심지어 남은 10경기마저도 모두 득점이 나서 2018년 월드컵 조별리그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무득점 무승부 경기가 나오고 말았다![45] 호주는 페루와 무승부를 거둬도 탈락하고, 반드시 승리+덴마크의 패배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경기가 2:0으로 벌어지며 후반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3골 이상이 필요해졌기 때문.[46] 애당초 문제였던 것이, 일본은 폴란드전에 그 동안 뛰었던 주전 선수 6명을 빼는 도박수를 던진다. 한마디로 무조건 세네갈의 패배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뜻. 실상 주전 선수를 빼는 일은 이미 16강을 확정지은 팀에서나 체력 안배를 위해 하는 전략적인 행동인데, 일본은 16강 확정 상태도 아닌 상황에서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한 것이다. 결국 16강에 진출했음에도 비판 여론이 많았는데 만약 16강 진출에 실패했다면 온 천하의 조롱거리로 전락했을 것이 뻔하다.[47] 참고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신태용 감독은 선수들에게 〈멕시코 vs 스웨덴〉 경기의 상황을 말해주지 않았다.[48] 1990 월드컵과 1994 월드컵 아시아 예선은 우승팀과 준우승팀만이 월드컵 24강 본선에 진출해서 최종예선 조별리그가 아닌 합동 최종예선이었다.[49] 2014년 당시 1982년생은 32세로, 최소 그 때도 세상에 있으려면 32세는 되어야하며, 그조차도 30대 후반은 되어야 기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30대 후반이 되면 은퇴할 나이라 결과적으로는 그 사태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실제로 당시 독일 대표팀 스쿼드에 소속된 23명의 선수들 중 히혼의 수치가 있었던 1982년 당시 세상에 존재했던 선수는 공격수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서브 골키퍼인 로만 바이덴펠러까지 단 두 명 뿐이었고, 그들 또한 각각 4살, 2살의 아기에 불과했다. 게다가 감독인 뢰프 본인도 그 무렵에 프로 선수로 뛰긴 했지만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주로 백업으만 출전했기에 국가대표팀과는 거리가 멀었던 평범한 선수였다. 여담으로, 이 당시 뢰프의 포지션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던 선수가 다름 아닌 이 분.[50] 마지막 32강 조별리그였으며, 다음 2026북미월드컵부터는 48강 조별리그로 바뀌고 32강 토너먼트로 바뀐다.[51] 더 골때리는 것은 조 2위로 16강 토너먼트를 가면 8강전에서 브라질을 피할 수 있었다. 스페인은 이 경우의 수까지 계산했다.[52] 하지만 스페인 역시 16강에서 모로코에게 연장전까지 단 1골도 넣지 못하고 승부차기에서도 키커가 모두 슛을 넣는데 실패해 0:3 패배 탈락(13위)로 8강 진출에 실패하는 업보를 받았다. 모로코 입장에서는 지난 대회 스페인전 코너킥 오심과 더불어서 모로코가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영토 분쟁으로 역사적인 앙숙지간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한 일본도 16강에서 지난 대회 준우승팀이자 또다른 우승후보인 크로아티아를 만났고, 마에다 다이젠이 선제골을 넣으며 무승부 승점 1점도 얻었으나, 승부차기로 패하여 탈락(9위)하여 8강전에 가지 못하고 있다.[53] 그 다음 알제리의 최고성적은 1승 1무 1패 2014월드컵 14위(16강)[54] 히혼의 수치 30년 후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 준결승에서 독일인 선수오스트리아인 주심이 승부조작하며 신아람 선수를 1초 오심으로 탈락시켰다. 한마디로 히혼의 수치의 올림픽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