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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05 09:58:31

72시간

<colbgcolor=#000><colcolor=#fff> 72시간[1] (2024)
파일:1000022206.jpg
감독 ?
각본 ?, 김정은
장르 액션
제작 조선예술영화촬영소
개봉일자 파일:북한 국기.svg 2024년 2월
제작비 $1억 (USD)
제작기간 2022년 - 2023년
구성 총 2부작
연출 강덕[2], 공훈배우 함기섭 등

1. 개요2. 등장인물
2.1. 북한2.2. 남한2.3. 미국
3. 내용4. 상영 중지설5. 여담

1. 개요

<colbgcolor=#000><colcolor=#fff>
72시간 - 전편
72시간 - 후편

2024년 2월 개봉한 북한6.25 전쟁 영화이며 공산권에서는 흔하듯이 영화가 1부와 2부로 각각 2시간씩 나눠서 개봉했다.[3] 제작비로는 $1억 (USD)가 들었다. #

2. 등장인물

2.1. 북한

2.2. 남한

2.3. 미국


월북 미군으로 유명한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의 두 아들인 홍철과 홍순철 형제 모두 크레딧에 올라갔다.

3. 내용

6.25 전쟁 발발 당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었던 김일성의 명령을 받아 "미군과 한국군의 선제 공격"에 대항한 105땅크사단이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국군은 전차가 없었는데도 전차를 가졌던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상영 중지설이 사실이라면, 국군이 탱크를 쓰는 장면을 넣기 위해 재촬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것은 김일성의 뛰어난 지략 덕분이었다고 주장한다. 엔딩 후 자막에는 무책임한 민족보위성 책임일꾼, 군사지휘관들이 5일간 서울에 머물며 상급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일시적 후퇴'로 이어졌다는 장문의 자막이 이어진다.

놀랍게도 국군이 크게 분전한 것을 그대로 묘사한다. 다만, 국군이 분전한 이유를 월남한 지주집안 출신 국군 장교들이 다시 북한을 점령해서 지주제를 실시하려는 독기 + 북한군 2사단장 리청송이 사실 소련 사대주의[18]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작중 당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었던 강건과 장령들과의 작전 회의 중, 강건을 비롯한 장령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붉은군대의 활약을 얘기하면서 반공격[19]의 방향성을 잡지만, 김일성이 분명히 "산과 강이 많은 우리 나라에 맞는 전술로 밀어붙일 데에 대한 보고를 하라"고 강건에게 명령한다. 그러나 독소전쟁에서도 붉은군대의 일원으로 참전한 경력이 있던 2사단장 리청송은 작중 소련식 작전만을 밀고 나갔다가 사단이 궤멸 직전까지 되는 사태를 만들고, 결국 강건의 직속 명령에 의해 조선인민군 검찰국의 조사를 받게 된다.[20]

프로파간다의 성격이 매우 짙은 영화다. 한국에서 보기에는 영화라기보다는 정훈 교육 자료로 비춰질 부분이 많다. 본작은 6.25 전쟁 북침설은 '역사적 사실'이며,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태극기를 찢어버리는 연출이 있다.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것도 자신들이 선제 공격한 것이 아니라 대단한 지략으로 미국과 한국을 물리치면 자신들이 공격받고 나서도 반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이 묘사된다. 전쟁에서 잘된 것은 김일성과 그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 사람들의 공이고, 잘못된 것은 김일성을 따르지 않은 무리의 잘못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놓고 이런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한국을 '다른 나라'로 주장하고 헌법에 자신의 나라를 '북반부'로 묘사하지 말라고 김정은이 주장한 뒤 시간이 흐른 2025년의 상황에서도, 당시에는 '공화국 남반부'를 해방한다는 명분이 있었다는 것은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미군 증원 전, 통일을 한다는 계획이 충성심이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김일성, 김정일 시절에는 미국의 간첩도당으로 전락한 남로당과 그 우두머리 리승엽과 박헌영의 방해공작과 농간으로 적화통일에 실패하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선전하고 다녔다. 그러나 현재 충성심 타령으로 바뀐 걸보면 현재 김정은의 권력흐름이 어떠한지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 제목은 김정은이 직접 정했으며,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는 김정은이 직접 대본을 썼다고 선전하고 있다.

4. 상영 중지설

자유아시아방송에 제보한 익명의 북한 주민의 따르면 "상영을 금지하라는 당의 방침이 하달되었다"면서 "영화 상영을 금지하라는 것은 김정은의 비준방침으로 알려졌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다고 한다.#

현재 추정상 상영이 금지된 가장 유력한 이유로는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의 군지휘관들이 성과에 도취해 진격하지 않아 남한 전역을 통째로 점령할 기회를 놓쳤다는 인식을 북한 주민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인 것이 가장 크다.[21]

# 하지만 9월 27일, 주북 러시아 대사관 텔레그램에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대사가 대사관 직원들 및 평양의 러시아 유학생들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했다고 인증샷을 찍어서 올림으로 영구히 볼 수 없다는 주장들은 그냥 가짜뉴스 찌라시로 끝났다. 마체고라 대사는 "오랫동안 기다려오던"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6월에 러시아 대사관 텔레그램에서 72시간이 개봉해서 평양시민들이 보고 있다는 포스팅이 올라온 이후 3개월만의 일이다. 문제가 된 부분을 수정해서 새로 개봉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자세한 사정은 불명이며, 상영 금지설을 처음 보도한 자유아시아방송의 주장처럼 영화 자체를 북한에서 상영 금지했는지조차 진실이었는지 불분명하다.[22]

2025년 1월 1일, 보도를 끝낸 이후에 72시간이 TV를 통해 방영될 것이라고 예고편이 나왔다. 예고편 1월 2일, 20시 보도를 끝내고 20시 36분부터 방영을 시작했으며, 김정은이 직접 대본을 집필하고 촬영현장을 현지지도했다고 강조했다. 조선중앙TV의 방영을 통해 세계적으로 그 내용이 모두 공개되었다.

5. 여담


[1] 북한에선 '일흔두시간'이라 읽는다.[2] 김일성[3] 영화관에서는 각부의 표를 따로 판매하는 것으로 보인다.[4] 북한 영화에서는 김일성을 연기한 배우의 이름이 스탭롤에 나오지 않는 게 관행이었지만, 이번에 본 영화가 상영되면서 국룰을 깨게 되었다. 최근 김정은 정권이 미세하게 보이기 시작한 김일성 격하(탈신격화) 움직임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5] 북한에서 만든 다른 창작물에선 미국의 간첩인게 잘만 나오고 이를 비롯해 최근 북한에서 만든 드라마 '한 검찰일군의 수기'에선 미국 간첩단의 수장의 흑막으로 등장한다.[작중행적없음] 대사도 없고 크레딧에도 따로 없으나, 정치위원회 회의 때 나온다.[작중행적없음] [작중행적없음] [작중행적없음] [10] 크레딧에서는 부총참모장[11] 크레딧에서는 작전국장[12] 크레딧에서는 정찰국장[주인공] 북한 영화에 김씨일가가 배우가 분하면서까지 등장하면, 김씨일가를 제외하고선 주인공이란 개념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김일성을 비롯한 참모나 민족보위성 책임일꾼들 등을 제외하고 개인적 서사가 가장 많이 다뤄진 이들을 주인공으로 지칭한다.[14] 작중 쏘독전쟁이라 칭한다. 북한식 표현으로, 쏘련 - 독일 전쟁이란 뜻이다. 같은 공산권인 소련을 앞에 배치한다.[15] 그 외에도 영화 상에서 독소전쟁 관련 언급들이 이 사람뿐만 아니라 몇몇 부분에서 나온다.[주인공] [주인공] [18] 작중에선 교조주의라 칭한다.[19] 북한측 표현이다. 북한은 조국해방전쟁이 남한군이 이북을 먼저 친 거고, 김일성 수령이 북한의 한반도의 지형에 맞게끔 창시한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인민군대의 '반공격, 련속공격, 집중공격' 전술을 성공적으로 전개하여 역으로 치고 내려갔다고 가르친다... 보다보면 정말로 판타지 소설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20] 작중 그야말로 어깨의 계급장이 뜯기는 수모를 겪는다.[21] # 실제로 자유아시아방송에 제보한 제보자에 따르면 7일 "2월에 개봉한 조선예술영화 '72시간'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뜨겁다"면서 "6.25 전쟁시기 서울에서 3일간 지체해 남조선 해방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내용의 선전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다고 한다.[22] 추정상 상영 금지설은 자유아시아방송이 의도적으로 제작한 가짜뉴스 혹은 와전된 이야기를 검증없이 그대로 보도했을 가능성이 크다.[23] 대한민국 국군은 '계급', 조선인민군은 '군사칭호'라 한다.[24] 조선인민군 창군 때부터 병사로 불렸다가 후에 전사(戰士)라는 호칭으로 바뀌었지만, 김정은 집권 후, 군내외로 "'전사(戰死)'해서 전사다"라고 놀려대니 병사로 호칭을 회귀했다고 한다. 작중 시대상은 1950년대이므로 '병사'라는 호칭이 맞다.[25] 북한에서 탁아소(유치원 전 단계)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표현 중 하나가 "김정은원수님 고맙습니다"일 정도로, 최고 높은 사람에게도 '고맙습니다'를 주로 쓴다.[26] 우리나라에선 미디어로 통해 북한에선 "알습니다"라고 말하는 줄 알지만, 사실 북한은 군 용어로는 "알았습니다"가 일반적인 표현이며, 사석에서 가끔 "알겠습니다"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이때도 "겠슴다"정도로 들리게 말한다. "알았습니다"가 추측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겠-'이 없어 명확하게 들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신 북한에서도 일상적인 대화는 수긍을 할 때는 '알겠습니다'가 원칙이다.# 알갔습니다는 북한에서도 사투리로 여겨지는 평안도 사투리황해도 사투리를 억양을 과장해서 묘사하는 표현이다.[27] 위의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예시들은 북한에서 해당 표현을 사용은 하나 '주로' 쓰지 않는 정도에 그친다면, '사격'은 북한군이 사격 지시를 내릴 때아예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다. 포를 시험 사격한다든가, '시험사격', '검수사격' 등은 북한군에서 많이 쓰는 표현이다. 명사로는 '사격'을 쓰지만, 동사로는 쓰지 않는다.[28] '쏴'에 시옷 받침을 추가해서 '쐇'이라는 강조의 용법을 쓴다. 한국 표준어에서도 '차렷'도 올바른 표현이지만, '차려'를 '차렷'으로 쓰는 용법이 좀 더 북한군에서 자주 쓰인다. 비슷한 단어로 '서 + ㅅ = 섯'이 있다. '서'를 강조하는 뜻이다.[29] 1950년 당시 소양강에는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소양교(현 소양1교)와 미군이 임시로 설치한 목제 가교가 있었는데, 작중에선 일제 때 지어진 소양교를 돌파하려고 했다. 근데 그 돌파 작전이 M1919 브라우닝 중기관총 진지를 향해 닥돌 하는 것이다. 이 장면만 떼고 본다면 리청송의 지리멸렬한 지휘와는 반대로 월남한 국군 중대장이 패잔병을 규합한 병력을 효과적으로 통솔하며 분투하여 인민군을 격퇴 하는데 오히려 국군 선전영화로 보일 수준이다. 북한에서도 춘천 전투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참패이다보니 그 책임을 "교조주의적인" 장군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장면이다. 동시에 채병덕을 비롯하여 중대장, 기관총 사수, 포로로 잡힌 국군 장병 등 월남자들이 등장하며 하나같이 "빨갱이들에게 고향을 뺏겼다"라는 투의 대사가 나오는데 국군은 "인민의 적"이고 국군 장병들은 현 북한 주민들의 소유물들을 빼앗기 위해 눈에 불을 켠 집단이라고 선전하기 위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