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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mm M1 전차포

M1 76mm 전차포에서 넘어옴
제2차 세계 대전의 미군 화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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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화포
보병포 <colbgcolor=#fefefe,#191919>37mm M1916 보병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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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mm gun M1
1. 개요2. 특징3. 특징4. 단점5. 평가6. 형식7. 적용 차량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기에 미국에서 개발된 구경 76mm[1] 52구경장 전차포. 2차 대전 당시 주로 미군이 사용했다. #

2. 특징

이미 미군이 2차 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해서 독일군을 상대로 전차전을 펼치기 이전부터 미군 내에서는 1897년식 75mm 야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존의 75mm M3 전차포보다 더 강력한 대전차 능력을 가진 주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주포는 1941년 9월에 당시 개발이 진행중이던 M4 셔먼 프로젝트에서 사용될 주포중 하나로도 계획되었다.

군사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구경 75mm와 76mm는 불과 1mm 차이 뿐인데 뭐가 다른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미군의 75mm 전차포탄과 76mm 전차포탄은 구경만 거의 차이가 없을 뿐이고, 장약이 들어가는 탄피 부분은 76mm가 75mm에 비해 거의 2배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76mm M1 전차포는 포구 초속과 위력 등이 75mm에 비교할 수 없이 강한 것이다.

새로운 76.2mm 구경의 주포가 개발된 이유는 기존의 3인치(76.2mm) M1918 대공포는 중량이 900kg이라서 M4 셔먼에 탑재하기에는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새로 개발하려는 주포에는 더 강한 강철이 적용되어 무게는 540kg지만 성능은 M1918 대공포와 비슷한 수준을 발휘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포미는 기존의 75mm M3와 유사하게 만들어졌지만 포신과 약실이 새롭게 변경되었다. 탄약은 M10 GMC의 주무장으로 장착된 3인치 M1918 대공포의 대전차포 버전인 3인치 M7 대전차포, 그리고 3인치 M5 대전차포와 공유했다. 다만 장약통은 달라졌다.

주포 자체는 이미 1942년 8월 초에 테스트를 받고 동년 8월 17일에 제식명까지 부여받았지만, 전차용 마운팅이 더 늦게 나오면서 한동안 실전에 쓰이지 못했다. 1943년 8월이 되어서야 제대로된 M4 셔먼용 주포 마운트가 개발되었지만, 포탑 내부 공간 등의 문제로 인해 전투용으로는 1944년 7월까지 승인되지 않았다. 76mm M1이 M4 셔먼에 장착되어 테스트를 받자, 가파른 경사면에 정지한 상태에서 포탑을 돌리면 무게중심이 쏠리는 구조 때문에 포탑 회전에 지장이 생기는 문제가 발견되었다. 개발진은 무게중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60kg(800 파운드)이 나가는 공구함이 포탑 후면에 장착한 다음에 1943년 4월에 테스트를 마쳤지만, 기존 셔먼 포탑에 M1 전차포를 장착하면 포탑 내부가 매우 비좁아진다는 문제가 있어서 최종적으로 채택이 거부당했다.

대신 1944년 1월에 M18 헬캣[2]에 테스트로 장착되는게 확정나면서 안치오 상륙 작전에서 헬캣의 주무장으로 쓰이게 되었고, 1944년 5월까지 전장에서 테스트되었다.

한편, 76mm 셔먼의 개발진은 당시 신형 전차로 개발중이던 T20 프로젝트의 T23 차량에 적용된 T80 포탑을 사용하면 셔먼에도 문제없이 76mm를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하여 셔먼에 새로운 T80 포탑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1943년 8월에 신형 T80 포탑을 달고 76mm M1으로 무장한 셔먼이 완성되었고, 미군 사령부도 포탑 내부 문제가 해결되자 생산을 허가하였다. 또한 당시 미군 사령부는 신형 포탑과 76mm로 무장한 1000대의 셔먼들이 실전 테스트에 투입되어 성공적인 결과를 낸다면, 앞으로 생산될 모든 셔먼은 76mm로 무장하게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사실 미군 사령부가 이러한 제안을 한데에도 이유가 있었고, 이는 76mm의 결함과 문제점을 빨리 잡아내라는 뜻이었다.

초기형 M1 포는 약실 연소 문제로 인한 과도한 포연과 포구 폭발[3] 문제 이외에도 75mm보다 떨어지는 고폭탄 화력, 길어진 장약통으로 인한 탄약 적재 및 운송의 불편함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고, 이러한 단점 때문에 76mm 포의 도입에 의문을 가지는 이들도 있었다. 대신에 처음부터 대전차전을 상정하고 만든 포인 만큼 관통력은 통상탄 기준으로 75mm 포보다 1인치 더 높았고, 정확도와 명중률도 76mm가 더 뛰어났다.

이후 더 많은 테스트를 거치면서 과도한 포연과 포구 폭발 문제는 연소효율이 더 뛰어나게 개선된 장약통을 사용하고 포구에 머즐 브레이크(포구제퇴기)[4]를 다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개선된 장약은 1944년 8월이 되어서야 생산이 시작되어 1944년 1월에 실전 테스트를 위해 생산된 76mm 셔먼 분량은 여전히 포구 폭발 문제에 시달렸다. 머즐브레이크도 없던 초기형 차량들의 경우 전차장이 사격시 전차 외부에 나가서 포수를 위해 관측을 하고 명중 여부를 확인해주는게 권장될 정도였다. 이외에도 약실 압력 때문에 고폭탄 위력 문제는 어쩔 수 없었고, 75mm보다 길고 무거운 탄약이 탄약 적재량을 떨어뜨리는 문제도 어쩔 수 없었다[5].

이처럼 셔먼에 76mm를 장착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난관과 문제들이 있었지만, 1943년부터 서부전선에 독일군이 5호 전차 판터를 다량으로 배치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75mm로 무장한 기존 셔먼들이 판터들에게 밀리기 시작하고, 티거와 판터에 의해 수많은 셔먼들이 격파당하는 것을 본 미군 사령부는 급하게 76mm 셔먼들을 생산하고 프랑스 등지와 같은 유럽 전선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워낙에 급하게 계획이 나와서 처음에는 기존의 75mm 셔먼에서 주포만이라도 76mm로 현지 개조하는 계획도 고려되었지만, 76mm 셔먼이 금방 빠르게 생산되면서 이러한 급조 계획은 취소되었다. 이후 빠르게 유럽 전선의 75mm 셔먼들이 76mm 사양의 신차로 교체되었지만, 전량이 76mm로 교체되지는 못해서 일부 부대는 75mm와 76mm 장착형 셔먼을 50:50 비율로 굴리기도 했다.

76mm 장착형 셔먼들은 미군 이외에도 영국군에도 공여되었지만, 영국군은 이미 76mm M1보다 대전차 성능이 더 뛰어난 17파운더로 무장한 셔먼 파이어플라이를 보유하고 있어서 76mm 포를 거의 쓰지 않았다. 영국군의 76mm 셔먼들은 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만 쓰이거나 자유 폴란드군 제1기갑사단에 배치되었다.

2차 대전기에는 이미 기존에 생산되었던 75mm 셔먼이 많았고 늦게 대량 실전 투입된 탓에 75mm 포만큼 활약할 일은 적었지만, 이후 6.25 전쟁에 76mm로 무장한 M4A3E8 셔먼들이 투입되어 뛰어난 정확도로 북한과 중공군의 T-34-85 전차들을 격파하는 활약을 했다.

3. 특징

처음부터 대전차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장포신의 고속 화포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포병 야포를 기반으로 개발된 기존 75mm보다 대전차 능력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장포신과 더불어 고속의 포구초속을 얻기 위해 장약통이 더욱 길어졌다. 이러한 점 때문에 탄두의 직경은 기존 75mm 포탄과 거의 차이가 없어보여도, 포탄 전체의 길이는 눈에 띄게 길어졌다.

그러나 1942년 8월 초에 실시된 프로토타입 T1의 시험에서 지나치게 긴 포신이 무게중심 문제를 일으킨다고 판단되어 구경장을 57에서 52로 줄여버린 결과, 철갑탄의 관통력이 처음 계획했던 정도보다는 약해졌다. 게다가 처음에 사용한 M62A1 APC 포탄의 성능도 부족하여 기대보다 대전차 성능이 떨어졌었다. 이런 단점 때문에 포와 철갑탄 성능에 대한 불만들도 속출했다.

결국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본격적으로 독일 전차들을 상대하자마자 문제가 터지고 만다.예시
셔먼의 76mm 주포는 수많은 미 육군 고위 장성들의 생각과는 달리 위력이 부족했다. M1A1 76mm 주포는 M62 APC탄 사용 시 457미터에서 20도 경사의 균질압연강판을 고작 109mm를 관통했다. 티거의 포방패는 120mm. 차체는 100mm 두께를 가졌다. 실제로 M1A1 76mm 주포는 100미터 이하에서나 티거의 포방패를 관통 가능했고, 차체는 400미터 정도에서나 가능했다. 현실은 시궁창스럽게도 76mm 주포로 티거를 정면에서 격파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M1A1 76mm 주포는 판터에게는 더욱 무력했다. 미군 장교들은 판터 포방패를 동 주포로 충분히 관통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서류상에는 판터 포방패 두께가 100mm, M1A1 76mm 주포 관통력이 109mm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판터의 포방패는 곡면 처리가 돼 있었기에 탄착각이 시쳇말로 쩔게 나오지 않는 이상 관통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판터의 포방패 뒤에는 무지막지한 두께의 포가(砲架)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판터의 정면 차체 상부 장갑은 고작 80mm 두께로 그냥 보기엔 만만해 보였다. 미군 장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이 부위는 55도 경사로 실제 방어력은 145mm에 달했다. 76mm 주포로는 이도 안 박히는 상황이었다. M1A1 76mm 주포를 상대로 판터의 정면 장갑은 무적이나 다름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미 육군의 고위 지휘관들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는 미 육군 병기국이 이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출처 - Steven Zaloga, Armored Thunderbolt (Stackpole Books 2008) 124, 125p

실전을 겪은 뒤에 미군의 자체 조사 결과가 위와 같이 처참하다. 셔먼의 76mm 주포가 M10 울버린의 주포를 개량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실전에서 영 신통치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건 교차검증도 되는데 독일 육군 병기국 1과가 1944년 10월 14일에 작성한 셔먼을 상대로 한 판터의 방어력 자료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실험 조건은 판터가 평지에서 30도 티타임 시 셔먼에게 일반적인 철갑탄(APC, APCBC)로 피격당했을 경우로 단위는 미터다.
부위 셔먼 75mm M3 전차포 셔먼 76mm M1A1 전차포
포탑 정면 0 700
포방패 0 100
차체 정면 상부 0 0
차체 정면 하부 0 0
포탑 측면 1500 3500 이상
차체 측면 상부 400 2800
차체 측면 하부 2600 3500 이상
포탑 후면 1500 3500 이상
차체 후면 1500 3500 이상
<출처 - Thomas L. Jentz, Germanys Panther Tank: The Quest for Combat Supremacy (Schiffer Publishing 1995) 127p>

보면 알겠지만 75mm M3 전차포로는 판터의 정면은 모조리 관통불가고 76mm M1A1 전차포로도 포방패는 100m까지 초근접해야 하며 포방패에 가려진 면적이 매우 많아서 피탄면적이 상대적으로 아주 적은 포탑 정면만 700m까지 접근하면 격파 가능성이 높다. 차체는 아예 정면에서는 상대 불가다. 이러니 셔먼이 76mm 전차포로 교체한 후에도 판터 잡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동급 주포를 쓰는 M10 울버린도 마찬가지다.

새롭게 개발한 76mm M93 HVAP-T 포탄이 등장하면서 기대 이하의 대전차 능력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되었다 물론 경심철갑탄의 특성상 거리 당 속도 감소율이 커서 원거리 사격에는 불리했지만, 미군의 자료들에 의하면 여전히 소련이나 독일의 APCR탄보다는 거리 당 속도 감소율이 괜찮았다고 한다.

그러나 해당 탄은 항상 부족한 텅스텐을 사용하고 제조가 어려웠다. 그래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인 1944년 9월부터 극소량이 사용가능했고 벌지 전투때부터야 어느 정도 지급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전선에서 사용할 수 있었으나 T4라는 시제품 명칭이 1945년 2월에나 M93으로 제식화될 수준으로 생산량이 적어서 1945년 3월까지 약 18,000발 수준의 매우 적은 양이 공급되었을 뿐 아니라 M4 셔먼 전차의 76mm 주포와 포탄 호환이 되지 않으므로 3인치용 탄약은 그 중에서도 58% 밖에 안되는 등 포탄 수량이 너무 부족하여 미국도 1945년에 이르러서야 전차 1대당 1발 정도 지급할 수준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열악한 기술문제로 인해 스펙과는 달리 조금만 목표와의 거리가 멀어져도 포탄이 정확하게 목표에 명중하지 않아서 도탄이 심각하게 일어나는 관계로 근접해서 쏴야 제대로 적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M93 포탄을 사용할 경우라도 4호 전차는 1850 야드(약 1691m) 내에서 격파가 가능했지만, 여전히 판터를 상대로는 초근접전이 아닌 이상 전면에서 격파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판터의 얇은 측후면은 2500야드(약 2286m)에서도 격파가 가능했다.

대표적인 탄종으로는 M42A1 고폭탄, M62A1 피모철갑탄, M79 철갑탄, M88 연막탄, T4 (M93) 경심철갑탄이 있다.

M42A1 고폭탄은 작약이 0.39~0.41kg 내장되었는데, 구경이 1mm 늘어났음에도 75mm 고폭탄에 비해 작약의 질량이 줄어들면서 75mm 고폭탄보다 위력이 더 약했다. 당시 미군의 75mm 고폭탄은 작약이 약 0.68kg 들어있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대전차 자주포는 90mm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당장 1944년 7월 6일에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지휘하는 사령부는 모든 M10 울버린을 가능한한 빨리 M36 잭슨으로 교체할 것을 요청했으며 이에 따라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된 결과 당시 유럽 전역에 배치된 52개의 대전차대대중 20개는 가능한한 빨리 M36 잭슨으로 장비를 교체하며 20개는 지휘관 재량 하에 M10 울버린이나 M18 헬켓을 사용하고 견인 대전차포를 운영하는 12개 대대는 90mm 대공포의 전시긴급형 프로토타입 견인 대전차포인 T5로 장비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944년 10월부터 긴급개발 완료 및 생산된 M36 잭슨이 유럽전선에 투입되기 시작했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대부분의 M10 울버린을 교체했다. 견인식 대전차포를 운영하는 부대는 벌지 전투에서 대전차 자주포보다 매우 심각한 손실을 입는게 입증되면서 다른 부대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전차쪽은 M26 퍼싱을 기다린다고 손을 놓았다가 벌지 전투때 대손실을 입은 후에나 미국제 셔먼 파이어플라이 긴급 도입시도가 있었다. 예시
잠정적으로 중단된 미국의 17파운더 파이어플라이 계획은 벌지 전투가 벌어지면서 부활했다. 1945년 2월 미국 파이어플라이 계획이 개시되었고, M4(17파운더)는 세부적인 면에서 영국 파이어플라이와 다른 면이 존재했다. 미국 M4A3(17파운더)는 1945년 3월 15일에 완성되었고, 1945년 3월 9일─파이어플라이로 개조되는 최초의─미국 셔먼들이 개조를 위해 프랑스에서 영국 사우스햄프턴으로 되돌아왔다. 1945년 4월 30일까지 초기 발주 물량인 미국 파이어플라이 160대의 개수가 완료될 예정이었다.

습식탄약고 탑재형 M4A3가 파이어플라이로 개조되는 데 더 적절했지만, M4 또한 개수에 동원되었다. 1945년 3월 말 총 11대의 미국 셔먼이 파이어플라이로 개조되었고, 최초로 배치된 5대의 미국 파이어플라이가 3월 31일 영국 사우스햄프턴 항구에서 유럽 대륙으로 발송되었다.

1945년 4월 7일 미군은 8대의 M4(17파운더)가 최초 배치된 이후 17파운더 개수 계획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종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M4(17파운더)가 독일 전차를 상대로 싸울 일이 더 이상 없다는 걸 깨달은 데다가, 신형 포탄의 보급 또한 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미군에게 발주 주문을 받은 영국 병기창에서 상당수를 개수 완료했거나 5월 7일까지 개수 작업을 계속했기에 총 100대의 M4(17파운더)가 완성되었다.

그 결과 초과분 M4(17파운더) 20대가 무기대여법을 통해 영국군에게 인계되었다. 마지막 M4(17파운더) 3대는 전쟁이 끝난 후인 5월 10일 사우스햄프턴에서 유럽 대륙으로 발송되었다.


대전 말기에 유럽 대륙으로 보내진 M4A3(17파운더) 중 실제로 미국 전차부대에 배치된 차량은 전무했으며, 후방에서 배치 준비하는 와중에 종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M4(17파운더)는 미국 제1군 및 제9군에 각각 40대가 배치될 예정이었다. 1945년 5월 중순 아이젠하워 사령부는 미국 제6 집단군 사령부에 M4(17파운더)나 M4A3(17파운더)가 대일전에 필요하냐고 의사 타진을 했다. 미국 제6 집단군 사령부는 태평양 전쟁에 동 전차들이 필요하지 않으니 현재처럼 유럽의 점령 임무에 동원하는 게 더 낫다는 의견을 보냈다.


이 미국 파이어플라이들의 운명은 알 수 없다. 종전 후 이 차량들의 처리에 관해 언급된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처> Steven J. Zaloga, Armored Thunderbolt (Stackpole 2008) 276-278p

1945년 1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워싱턴에 "우리 다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M36 대전차 자주포든 뭐든 아무거나 대구경 주포를 탑재한 물건을 더 보내주시오!"라는 늬앙스의 긴급 요청을 할 정도였고 이 때문에 1945년 2월에 인용문처럼 17파운더 도입 계획이 부활해서 100대의 미국제 셔먼 파이어플라이가 생산된 것이다. 투입시기를 놓쳐서 실전사례는 없지만 얼마나 당시의 미군 수뇌부가 당황했는지 잘 알 수 있다.

2차대전이 끝난 후에는 상대할 적 전차가 주로 T-34-85 전차 계열인지라 6.25 전쟁때 유용하게 사용했다.

4. 단점

76mm M1 전차포의 가장 큰 문제는 화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해당 전차포의 원본인 M7 대공포를 장착한 M10 울버린의 화력 부족이 부각된 사유는 미군 수뇌부의 탓이 컸다. 전간기때 미 육군이 거의 해산상태로 전락할 정도로 줄어들었다가 전쟁이 임박하면서 갑자기 병력을 엄청난 수준으로 증강시킨 덕분에 병력은 미숙하고 부사관들은 제대로 육성이 안되었으며 장교들도 적절한 경험을 하지 못한 채 고위직에 오르는 바람에 전반적으로 본다면 덩치만 큰 훈련병이나 마찬가지였던 게 당시의 미 육군이었다.

물론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수많은 고위 장성들이 훌륭한 능력을 펼친 끝에 단기간내에 제대로 된 군대가 되긴 했으나 세부적으로는 최신예 경향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던지 현장의 처절함을 깨닫지 못하여 세세한 실수를 하는 일이 많았으며 M10 울버린의 주포도 여기에 속한다.

미군이 전쟁에 참여하기 직전에 미군 수뇌부들이 가진 대전차전에 대한 생각은 딱 1897년식 75mm 야포의 미국 개량형인 75mm 전차포 M2–M6 정도면 압승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이상의 위력을 가진 화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상태였다. 그나마 이런 인식도 그 이전에는 M3 37mm 대전차포 수준의 화력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가 외부에서 타국 군대가 싸우는 정보를 받아본 후에나 빠르게 선회한 것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답없음이 충분하게 느껴진다. 이러다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잠깐 실전을 겪어 본 후에나 조금 더 나은 화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신히 파악하였다.

그런데 대전차전에서 화력을 강화하려면 확실하게 강화해줘야 한다. 특히 아군 화력이 적보다 떨어지는 것 같으면 그걸 감안해서 화력의 업그레이드 단계를 더 많이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전 경험이 부족한 게 작렬을 해서 기존 화력보다 조금 더 나은 상태 정도로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M10 울버린의 주포인 76mm M7 주포는 원래 조상이 3인치 대공포 M1918로 포신은 3인치 해안포 M1903의 76mm 55구경장 포신을 가져와서 1915년부터 개발에 돌입해서 3인치 대공포 M1917이라는 프로토타입을 거친 후에 주포 구경장을 40구경장으로 줄여서 1918년에 제식화된 오래된 화포였다. 개량이 지속되었지만 본질적으로 한계점이 많은 구식 화포로 이미 1938년에 전반적으로 성능이 우월한 90mm 대공포에게 밀려난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구식 화포를 개조해서 대전차포로 써먹으려고 하니 위력에 비해 주포의 부피, 중량이 모조리 커지는 사태가 발생했고 주포 구경도 고작 1.2mm 증가하는 바람에 장포신으로 탄약을 고속으로 발사함에 따른 내부작약 감소로 인한 고폭탄 화력 감소 문제까지 터진 것이다.

M10 울버린의 차체가 충분히 90mm 대공포 기반 화포를 감당 가능하고 실제로 그 결과물이 M36 GMC으로 등장했으며 90mm 대공포는 76mm M7 주포보다 사정거리, 명중률, 관통력등 모든 면에서 우수하며 고폭탄 화력도 90mm라는 구경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라서 대보병용으로 쓰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감안해볼 경우 미군 수뇌부가 제대로 판단만 했다면 그냥 90mm 주포 탑재형 M10 잭슨으로 한번에 확실하게 도약해서 화력 문제를 대부분 해결 가능했을 것이다. 속도의 문제는 M18 헬캣을 개발해서 고속 기동 대전차 자주포로 써먹으면 시대착오적 교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빼고는 모든 게 해결된다.

하지만 미군 수뇌부는 76mm M7 주포를 선택했는데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으니 미 육군 병기국이 실험한 아래의 실험자료 때문이었다.

M10 울버린의 주포인 76mm M7 주포의 사거리별 관통력은 밀리미터(mm) 기준으로 아래와 같다. 실험조건은 미국제 전차장갑 경도인 240BNH 장갑판을 상대로 90도 각도에서 정확하게 타격했을 때 기준이다.예시
포탄 종류 포구초속 100m 250m 500m 750m 1000m 1250m 1500m 1750m 2000m 2500m 3000m
M62 피모철갑탄
(표면경화장갑)
792m/s 124 123 121 118 115 111 107 102 97 87 77
M62 피모철갑탄
(균질압연장갑)
792m/s 124 121 115 109 103 98 93 88 84 76 68
M79 철갑탄
(표면경화장갑)
792m/s 132 124 112 101 92 83 75 68 62 50 41
M79 철갑탄
(균질압연장갑)
792m/s 154 145 131 119 107 97 88 79 72 59 48
M93 경심철갑탄 1,036m/s 239 227 208 191 175 160 147 135 124 108 88

겉보기에는 티거와 판터를 상대하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스펙같은 성능을 냈으면 굳이 90mm 대공포를 주포로 탑재한 M36 GMC이 등장할 필요도 없고 동급의 76mm 주포를 가진 M4 셔먼이 있으면 대전차전 대비도 충분했을 것이다.

위의 관통력표가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먹히지 않은 이유는 아래와 같다.

결국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본격적으로 독일 전차들을 상대하자마자 문제가 터지고 만다.예시
셔먼의 76mm 주포는 수많은 미 육군 고위 장성들의 생각과는 달리 위력이 부족했다. M1A1 76mm 주포는 M62 APC탄 사용 시 457미터에서 20도 경사의 균질압연강판을 고작 109mm를 관통했다. 티거의 포방패는 120mm. 차체는 100mm 두께를 가졌다. 실제로 M1A1 76mm 주포는 100미터 이하에서나 티거의 포방패를 관통 가능했고, 차체는 400미터 정도에서나 가능했다. 현실은 시궁창스럽게도 76mm 주포로 티거를 정면에서 격파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M1A1 76mm 주포는 판터에게는 더욱 무력했다. 미군 장교들은 판터 포방패를 동 주포로 충분히 관통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서류상에는 판터 포방패 두께가 100mm, M1A1 76mm 주포 관통력이 109mm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판터의 포방패는 곡면 처리가 돼 있었기에 탄착각이 시쳇말로 쩔게 나오지 않는 이상 관통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판터의 포방패 뒤에는 무지막지한 두께의 포가(砲架)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판터의 정면 차체 상부 장갑은 고작 80mm 두께로 그냥 보기엔 만만해 보였다. 미군 장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이 부위는 55도 경사로 실제 방어력은 145mm에 달했다. 76mm 주포로는 이도 안 박히는 상황이었다. M1A1 76mm 주포를 상대로 판터의 정면 장갑은 무적이나 다름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미 육군의 고위 지휘관들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는 미 육군 병기국이 이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출처 - Steven Zaloga, Armored Thunderbolt (Stackpole Books 2008) 124, 125p

실전을 겪은 뒤에 미군의 자체 조사 결과가 위와 같이 처참하다. 셔먼의 76mm 주포가 M10 울버린의 주포를 개량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실전에서 영 신통치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건 교차검증도 되는데 독일 육군 병기국 1과가 1944년 10월 14일에 작성한 셔먼을 상대로 한 판터의 방어력 자료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실험 조건은 판터가 평지에서 30도 티타임 시 셔먼에게 일반적인 철갑탄(APC, APCBC)로 피격당했을 경우로 단위는 미터다.
부위 셔먼 M3 75mm 주포 셔먼 M1A1 76mm 주포
포탑 정면 0 700
포방패 0 100
차체 정면 상부 0 0
차체 정면 하부 0 0
포탑 측면 1500 3500 이상
차체 측면 상부 400 2800
차체 측면 하부 2600 3500 이상
포탑 후면 1500 3500 이상
차체 후면 1500 3500 이상
<출처 - Thomas L. Jentz, Germanys Panther Tank: The Quest for Combat Supremacy (Schiffer Publishing 1995) 127p>

보면 알겠지만 M3 75mm 주포로는 판터의 정면은 모조리 관통불가고 M1A1 76mm 주포로도 포방패는 100m까지 초근접해야 하며 포방패에 가려진 면적이 매우 많아서 피탄면적이 상대적으로 아주 적은 포탑 정면만 700m까지 접근하면 격파 가능성이 높다. 차체는 아예 정면에서는 상대 불가다. 이러니 셔먼이 76mm 주포로 교체한 후에도 판터 잡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동급 주포를 쓰는 M10 울버린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3호 전차4호 전차는 M3 75mm 주포를 단 M4 셔먼으로도 충분하게 잡는다는 것은 북아프리카 전역 당시에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미군은 티거보다 판터, 티거 II[6]를 더 많이 만났고 판터는 수량도 많았으며, 티거 II는 정예부대로 이루어져있어 승무원들의 숙련도가 차원이 달랐다. 동급의 76mm 주포를 단 셔먼과 화력도 비슷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이러니 셔먼이 감당하지 못하는 적 전차를 상대해야 할 당시 미군의 가장 강력한 대전차화기인 주제에 화력 부족으로 제대로 된 해결을 못해서 어쩡쩡한 위력이라고 비판을 받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소련처럼 더 강력한 화포를 가진 대전차차량이 없어서 비판이 집중되었다.

측면으로 돌아가서 사격하면 되지 않는가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는데 적 전차를 상대로 그걸 하면 그게 바로 엘리트급 장병이다. 말은 쉬운데 실제로는 실천하기 매우 어려운 경우로 이게 쉽다면 일본군의 치하가 M4 셔먼의 측면을 손쉽게 공략해서 격파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경우라면 75mm 셔먼으로도 판터 측면을 때려서 잡는다. 크레이튼 에이브럼스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런 사람이 많을 리가 없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경우가 HVAP라고 불리는 고속철갑탄을 쓰는 경우인데 해당 탄은 항상 부족한 텅스텐을 사용하고 제조가 어려웠다. 그래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인 1944년 9월부터 극소량이 사용가능했고 벌지 전투때부터야 어느 정도 지급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전선에서 사용할 수 있었으나 T4라는 시제품 명칭이 1945년 2월에나 M93으로 제식화될 수준으로 생산량이 적어서 1945년 3월까지 약 18,000발 수준의 매우 적은 양이 공급되었을 뿐 아니라 M4 셔먼 전차의 76mm 주포와 포탄 호환이 되지 않으므로 3인치용 탄약은 그 중에서도 58% 밖에 안되는 등 포탄 수량이 너무 부족하여 미국도 1945년에 이르러서야 전차 1대당 1발 정도 지급할 수준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열악한 기술문제로 인해 스펙과는 달리 조금만 목표와의 거리가 멀어져도 포탄이 정확하게 목표에 명중하지 않아서 도탄이 심각하게 일어나는 관계로 근접해서 쏴야 제대로 적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제대로 맞으면 위력은 확실해서 M10 울버린으로 티거나 판터의 전면장갑을 쏴서 잡은 확실한 사례의 대부분은 HVAP라고 불리는 고속철갑탄을 쓴 경우다.

당시 영국이 개발해서 사용하던 APDS(분리철갑탄)을 도입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영국이 최신예 기술력을 쉽게 넘겨줄것인가는 둘째치고라도 당시의 분리철갑탄은 기술력 부족과 양산품질의 한계 덕분에 경심철갑탄인 고속철갑탄보다 문제가 더 많은 상태였다. 17파운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명중률이 개판인데다가 도탄도 더 잘 일어나고 탄자가 붕괴돼서 관통불가가 발생하는 참담한 경우까지 발생하는데다가 이게 언제 어떻게 발생할 지 알 수 없는 극단적인 물건이라서 고려대상도 아니었다.

이리하여 미 육군 병기국이 자랑하는 스펙과는 달리 실제로 M10 울버린이 제대로 티거와 판터를 잡는 경우는 매복해서 측후면을 쏘거나 돌진해서 측후면을 쏘거나 HVAP라고 불리는 고속철갑탄을 쓰는 경우가 대다수다. 실질적으로 상당수의 전투가 초근접거리인 200m 이내에서 이루어졌으며 해당 전투 상황은 본질적으로는 승무원의 기량에 의지하거나 보급이 잘 안되고 재고량도 부족한 특수탄을 쓴 경우라서 일반적인 전투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미리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은엄폐를 철저하게 한 준비된 진지에서 매복하고 대기하다가 적 전차의 측면같은 약점을 노리는게 대전차 화기의 이상적인 전투방식이겠지만 험악한 전장상황에서 이런 걸 모두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상대해야 할 적 전차 숫자도 많아서 매복해서 적 전차 1-2대 잡은 후에 적의 반격으로 개박살나는 걸 막고 싶다면 원거리에서부터 적 전차를 1대씩 빠르게 저격해서 명중하는 족족 완전격파하는 게 바람직하며 이런 이유로 인해 매복에 불리한 거대한 크기를 가진 8,8cm FlaK 같은 거대한 화기가 대전차전에 도입되었으며 마르더같이 차체가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최대급의 화포를 장착한 대전차 자주포가 개발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군은 주로 공격자의 위치라서 매복을 하거나 진지를 건설할 시간이 없다시피했고 대전차 자주포가 긴급 투입된 상황에서는 적 전차를 막기 위해서라도 적 전차의 전면장갑을 정면에서 관통할 강력한 화력이 절실했던 실정이었다. 90mm를 장착한 M36 GMC이 매우 좋은 평가를 받는 게 다 이유가 있다.

미국이 이런 삽질을 하는 동안 영국은 노획한 티거 전차를 상대로 6파운더등 대전차포를 총동원해서 관통실험을 직접 실시했고 그 결과 스펙과는 달리 대전차포의 성능이 떨어지거나 탄자붕괴현상이 일어나서 장갑을 관통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무기대여법으로 1648대를 공급받은 M10 울버린의 주포를 17파운더로 교체한 M10C 아킬레스를 1017대나 개조해서 만들게 된다. 안그래도 전쟁비용이 없는 영국이 공여받은 대전차자주포를 굳이 돈을 더 들여서 주포를 교체하는 등 대량으로 대규모 개조할 사례가 없는 것이다. 기갑차량 개조비용보다 포탄까지 공여받는 게 더 저렴한데도 말이다.

덕분에 실전에서 피박을 쓴 후에나 미국제 셔먼 파이어플라이 긴급 도입시도, M36 GMC 긴급 개발완료 및 도입이 이루어지게 된다. 1944년 7월 6일에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지휘하는 사령부는 모든 M10 울버린을 가능한한 빨리 M36 잭슨으로 교체할 것을 요청했으며 이에 따라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된 결과 당시 유럽 전역에 배치된 52개의 대전차대대중 20개는 가능한한 빨리 M36 잭슨으로 장비를 교체하며 20개는 지휘관 재량 하에 M10 울버린이나 M18 헬켓을 사용하고 견인 대전차포를 운영하는 12개 대대는 90mm 대공포의 전시긴급형 프로토타입 견인 대전차포인 T5로 장비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944년 10월부터 긴급개발 완료 및 생산된 M36 잭슨이 유럽전선에 투입되기 시작했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대부분의 M10 울버린을 교체했다. 견인식 대전차포를 운영하는 부대는 벌지 전투에서 대전차 자주포보다 매우 심각한 손실을 입는게 입증되면서 다른 부대로 전환되었다.

사실 90mm 대공포 기반의 주포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판터 차체 전면을 쉽게 관통하기가 어려웠다. 90mm로는 일반적인 철갑탄을 쓰더라도 티거는 쉽게 잡고 판터의 포탑 전면도 포방패를 750m 정도에서 관통이 가능한데 판터의 차체 전면 경사장갑이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명중률은 높아서 최대 4km에서 명중탄을 낸 사례도 있지만 항상 기본적인 철갑탄이 문제였다.
기존 90mm 철갑탄은 457미터 거리 이상에서는 판터 정면 차체 상부 장갑을 관통시키기 어려웠다. (중략) 때론 수 발의 90mm 포탄을 연사해서 판터 정면 상부 장갑을 관통시키기도 했는데, 이는 연속된 피격으로 약화된 장갑재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신형 T30E16 90mm 고속철갑탄은 벌지 전투가 벌어진 후인 1945년 1월이 돼서야 전선에 도착했다.

출처 - Steven Zaloga, Armored Thunderbolt (Stackpole Books 2008) 218, 219p

실제로 노획한 판터 전차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는 90mm도 그렇게까지 만족스럽지는 않은 결과가 나왔다. 예시
90mm M3 주포 관통력
조건: 거리 457미터, 30도 경사 균질압연강판

T33 APC 119mm
M82 APCBC 120mm
T30E16 HVAP 221mm

<출처> Steven Zaloga, Armored Thunderbolt (Stackpole Books 2008) 336p

따라서 판터 전차의 차체 전면을 상대하는 경우에는 90mm라도 일반적인 철갑탄으로는 500m 이내에서 상대해야 한다. 고속철갑탄으로 불리는 경심철갑탄인 T30E16 HVAP는 제대로 정타를 맞추면 1km 거리에서도 판터 차체 정면을 관통가능하지만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지면 착탄시 각도 문제로 도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서 어느 정도 적을 끌어들여서 일격필살하는 방법으로 나가야 했다.

벌지 전투 이후에는 독일 전차의 숫자가 크게 줄고 전략 폭격 및 원자재 부족등으로 인해 신규 생산된 독일 전차의 장갑재 품질이 떨어지며 독일 전차 승무원의 훈련도나 자질까지 폭락하면서 대전차 전투 자체가 크게 줄어들고 같은 화포로 상대할 때 쉽게 격파가 가능하게 된 점이 연합군에 있어서 행운이었다.

요약하자면 세계대전 초~중반부인 1943년 중반부까지는 상당히 살상력이 높은 주포였지만, 미군 수뇌부의 한계로 인해 진작 퇴역할 시기를 놓치게 된 비운의 포라고 볼 수 있다.

5. 평가

화포 자체만으로는 3인치 M1918 대공포을 개조한 것에서 비롯된 3인치 M5 대전차포의 위력에 비해 크고 무거우며 부피도 많이 나가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구경장도 조금 더 늘린 매우 좋은 전차포다.

하지만 상대가 독일 국방군이었다는 게 불운이었고 실전에서 5호 전차 판터6호 전차 티거의 전면장갑을 제대로 관통하지 못한데다가 위력좋은 특수탄인 T4 경심철갑탄의 보급도 늦었고 수량도 매우 적어서 답이 없었다는게 문제였다.

전반적으로 따져본다면 차라리 90mm 대공포를 위에 언급한 노력을 통해 축소해서 셔먼 전차에게 장착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며 실제 긴급상황이 터지자 셔먼의 차체에 퍼싱의 포탑을 이식한 대두전차 버전까지 생산하려다가 만 것을 생각해본다면 아쉬울 뿐이다.

6. 형식

7. 적용 차량



[1] 정확히는 76.2mm로 3인치다.[2] 정확히는 채택되기 이전 T70[3] 과한 포구 폭발 때문에 사격 후에 상당한 포연과 먼지 후폭풍이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이 문제로 인해 포수가 명중 여부를 확인하는 것에도 방해가 갔다.[4] 1944년 1월에 시험받은 후에 1944년 2월에 승인되었다.[5] 75mm 포탄을 최대 97발 적재할 수 있는 셔먼(M4A1은 90발)을 기준으로 76mm는 83발까지 적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43년 말에 미군이 유폭을 방지하기 위해 습식 탄약고를 도입하자 적재량이 71발까지 더 줄어들었다.[6] 아르덴 대공세 시기 이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