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주요 선거·투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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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 제6차 1987년 10월 27일 | 시행 불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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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헌으로 부통령직 폐지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용 중 일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이후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2016년 1월 1일자로 효력을 상실하여 시행 불가능 | }}}}}}}}} |
대한민국 국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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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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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 72.9%▼ 0.3%p | |||||||||
선거 결과 | ||||||||||
정당 | 지역구 | 간선 의원 | 총합 | 비율 | ||||||
{{{#!wiki style="margin: 0 -10px" | 73석 | - | 146석 | 66.66% | ||||||
- | 73석 | |||||||||
52석 | - | 52석 | 23.74% | |||||||
2석 | - | 2석 | 0.91% | |||||||
[[무소속| 무소속 ]] | 19석 | - | 19석 | 8.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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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3년 2월 27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로 10월 유신 이후 유신헌법에 의해 치러졌으며, 투표율은 72.9%를 기록했다.무소속 출마가 허용되었다. 146석의 지역구 선출은 중선거구제로 시행하였으며, 나머지 73석은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선제로 선출되었다.[1]
지역구 의원 임기는 6년으로 연장되었으며, 의원정수는 219명이었다. 다만 간선 의원들의 임기는 3년으로, 전반기에 선출된 의원들은 후반기에 교체되었다.
간선 의원들은 어느 당에도 속하지 않고 유신정우회라는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었으며, 사실상 대통령의 입법부 내 친위 세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2. 결과
제9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 ||
제1당 | [[민주공화당|]] + [[유신정우회|]] | 73석 + 73석 |
제2당 | [[신민당(1967년)|]] | 52석 |
제3당 | | 2석 |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석 |
정당 득표율 |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당선인 | |||
[[민주공화당|]] | 4,251,754 | 38.68% | 73[A] | |||
[[신민당(1967년)|]] | 3,577,300 | 32.55% | 52[A]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48,178 | 18.63% | 19[A] | |||
| 1,114,204 | 10.14% | 2[A] | |||
[[유신정우회|]] |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 | 73[B] | ||||
총합 | 11,196,484 | 100.0% | 219[C] |
민주공화당은 무소속 후보들에게 상당수 득표를 빼앗겨 8대 총선에 비해 득표율이 10.1%나 떨어져서 38.7%에 그치는 참패나 다름없는 성적이기는 했지만 73석을 차지했고, 신민당도 민주통일당으로 지지기반이 이탈하여 득표율이 크게 하락한 것은 마찬가지라 52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민주통일당은 공화당과 신민당에 대한 분노와 실망으로 상대적으로 표가 쏠리며 10.1%라는 준수한 득표율을 올렸지만 2인 중선거구제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2석에 그쳤다. 그 대신 무소속 의원이 상당수 당선되어 19명에 이를렀다. 유신정우회는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선제 방식으로 선출되었다. 이전 8대 총선(지역구 기준)과 비교해볼때 공화당은 89석에서 73석, 신민당은 65석에서 52석으로 내려앉고, 공화당 지지표가 무소속으로 신민당 지지표가 민주통일당으로 상당수 이탈함으로써 유권자들이 나름대로의 심판을 한셈이지만 유신정우회의 존재로 빛을 발하지 못한 선거인 셈이다.
이 선거때부터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이전까지 총선 1당의 득표율이 40%를 넘기지 못하게 된다.[8] 또한 민주공화당의 득표율이 40%에도 미달하면서 박정희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2.1. 선거구별 결과
제9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국회의원 항목 참조.3. 여담
한 선거구에서 두 명을 뽑는 중선거구제에서 73개 선거구에 73명이 당선되어 민주공화당이 모든 선거구에서 당선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에는 한 선거구에 정당별로 두 명까지 공천할 수 있었고 민주공화당과 신민당 모두 선거구마다 1~2명씩 공천했다. 선거 결과 민주공화당은 서울6, 충남7, 전북3, 전북4 선거구에서 당선자가 없었고, 경기7, 충북2, 경북9, 경남3 선거구에선 한 선거구에 공천한 후보 두 명이 모두 당선되어 결국 당선자 수가 선거구 수와 같아졌다. 한편 신민당은 서울 8개 선거구에서 8명이 당선되었으나 모든 선거구에서 당선된 것이 아니고, 서울 5선거구(서대문구)에선 당선자가 없고[9] 서울6 선거구에 공천한 후보 두 명이 모두 당선되었다.[1] 정확히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인준했다.[A] 지역구[A] 지역구[A] 지역구[A] 지역구[B] 임명제 국회의원[C] 지역구 + 유신정우회 의원 합계[8] 지역구 득표율을 기준으로 한다면 2004년 17대 총선 때부터 비례대표 득표율을 기준으로 한다면 2012년 19대 총선 때부터이다.[9] 민주공화당 후보와 친야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