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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7:33:21

DiC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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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DiC 로고 ID.[1]

1. 개요2. 역사3. 대표작

1. 개요

공식사이트[2]

사명은 Diffusion,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의 약어. 발음은 "Deek"으로 읽는다.[3]

초창기에는 프랑스인이 설립한 회사라 프랑스 애니메이션 산업 역사의 하나로 분류할 수 있는 회사.

2. 역사

DiC 엔터테인먼트의 역사(유튜브 다큐멘터리)[4]

유럽미국을 거쳐서 지금은 실질적으로 캐나다 계열로 인수된 회사다.

1968년에 프랑스인인 장 샬로팽(Jean Chalopin)이 설립한 광고 업체[5]인 OGAP을 전신으로 하여 1971년부터 RTL의 지원을 받아 지금의 "DiC"이라는 명칭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1985년까지는 RTL의 계열사로 있었다. 이탈리아계 프랑스인 애니메이터인 브루노 비앙키(Bruno Bianchi)가 합류한 1970년대 후반부터 단순 광고가 아닌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당시 루팡 3세 시리즈를 유럽에 수출하려던 도쿄무비신사와 만나[6] 일본 현지에 자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차리는 1980년대 중순까지 도쿄무비신사와 손을 잡고 각종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1981년에 런칭한 이들의 합작인 우주선장 율리시스를 시작으로 정규 애니메이션 TV 시리즈를 제작했으며, 1982년에 애니메이션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자 미국으로 진출을 시작했다.[7]. 원래 미국에서는 현지화 및 번역을 맡기려고 했으나 아예 회사 전반의 업무를 미국으로 옮기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이러한 도전에 힘입은 딕은 LBS(Lexington Broadcast Services)에서 첫 방영한 형사 가제트, 더 리틀의 성공을 시작으로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이 주름잡던 미국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또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기획을 자사가 전담하되 작화를 하청으로 맡기고, 직원을 뽑을 때 연 단위 대신 작품 단위로 계약하거나 노조를 두지 않는 등[8]으로 "효율성"을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경영상으로는 효율적으로 굴러가는 대신 유연성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대신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제작진들을 다수 들여온데다가 회사 분위기가 느슨한 편이라, 갓 애니메이션 기획에 참여한 신인들의 애니메이션 제작 훈련장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 게다가 1980년대의 트렌드였던 완구 홍보형 미디어 믹스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잘 타서 G.I. 조, 케어 베어, 고스트버스터즈, 레인보우 브라이트 등의 각종 인기있는 외부 프랜차이즈들을 토대로 작품을 제작하는 데 상당히 주력한 덕분에 딕은 급속도로 규모를 불릴 수 있었다.[9]

1983년에는 장 살로팽이 도쿄무비신사 출신의 프로듀서인 카타야마 테츠오, 아카가와 시게루(Tetsuo Katayama, Shigeru Akagawa)와 함께 딕 엔터테인먼트 직속의 일본 스튜디오인 K.K. DiC 아시아를 설립했다. 이 일본 스튜디오를 통해 도쿄무비신사와 결별한 후에도 1988년까지 일본 업체들과 계약해 애니메이션 작화를 제공받았으며, 장 샬로팽이 딕 엔터테인먼트를 떠난 1986년부터 2000년까지는 장 샬로팽이 새로 설립한 애니메이션 회사 C&D의 애니메이션 작화를 담당하며 K.K. C&D라는 명의로 존속했다.[10]

그러다 북미 지부를 담당한 앤디 헤이워드[11][12]가 1986년부터 회사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이때부터 알맹이가 실질적으로 유럽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미국 애니메이션 회사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딕의 본사도 캘리포니아로 옮겼고 이름도 "딕 애니메이션 시티 주식회사(DiC Animation City Inc.)"로 바꾼 뒤 회사의 주요 초창기 멤버들이었던 브루노 비앙키, 장 샬로팽 등과 결별했다.[13][14] 또한 미국 진출 초기에 나온 실패작들이나 타 회사와의 합병 실패 등으로 사내에 부채가 쌓이기 시작하고, 비디오테이프 시장의 성장, 일본의 애니메이션 하청 비용의 급증 등으로 애니메이션 시장이 급변하여 회사 재정이 위험해지기 시작하자, 작화팀을 일본 대신에 중국, 타이완, 한국 등[15]으로 적극적으로 옮겨 비용을 절감하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극초반까지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어 "질 대신 양"으로 밀어붙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이때부터는 환율을 이유로 캐나다[16]에서 더빙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보험사이자 주요 주주 중 하나였던 푸르덴셜생명에 자사 지분을 매각하기도 했다.

작품기획 면에서 앤디 헤이워드 시절의 딕은 비디오게임 저작권 기반의 미디어 믹스 애니메이션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따라서 일본의 닌텐도를 설득해 마리오 시리즈젤다의 전설 시리즈 저작권의 사용권리를 얻어 미디어믹스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했고, 각종 서드파티들로부터 저작권을 확보해 1980년대 말부터 적극적으로 비디오 게임 기반 신작 애니메이션들을 공개했다.[17]

하지만 작품의 양에만 집중하고 나크처럼 작화 오류가 다발한다거나 하는 등[18] 1990년대 초 내내 별다른 성과 없이 미디어믹스 기반의 신작만 남발한 탓에 회사가 어려워지자[19][20] 1993년 캐피털 시티 커뮤니케이션, 정확히는 그 휘하의 ABC에 인수되었다.[21] 이어서 1996년에는 당시 ABC와 함께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잠깐 인수한 적도 있었지만 2000년에 도로 뱉었다. ABC의 주요 수익원인 ESPN과 함께 딕도 인수했지만 형사 가제트 외에는 별다른 고유 IP가 없어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고, 1999년에 개봉한 가제트의 실사영화[22]와 코미디 실사영화 미트 더 디들스(Meet the Deedles)가 실패하자 2000년 중순에 딕을 매각했다.

이후 앤디 헤이워드의 지휘 하에 2008년까지 제 2의 독립법인시대를 유지했으나 예전만큼의 큰 성과를 보지 못하면서 캐나다의 쿠키자(Cookie Jar) 계열에 인수되었으며, "DiC 엔터테인먼트"라는 명의도 쿠키자로 인수되는 과정에서 앤디 헤이워드가 발을 빼면서 사라졌다. 이어 2012년에는 모회사였던 쿠키자도 같은 나라의 DHX 미디어[23] 계열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딕 엔터테인먼트 작품들 상당수의 판권도 DHX 미디어의 후신인 와일드브레인 스튜디오에 있으며, 와일드브레인의 자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소장하고 있는 영상들 상당수가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다.

한때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을 밀어낼 정도로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던 애니메이션 제작사였으며, 전성기 시절인 1980년대 후반에는 미국의 주요 방송사 3곳에 애니메이션을 배급하거나 전국 토요일 아침 애니메이션 배정표[24]의 30%를 딕 작품들이 채우기까지 했다. 대한민국에서도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여러 작품들이 수입, 방영된 건 물론 비디오카세트 및 DVD 세트가 2000년대 중순까지 판매되기도 했다.[25]

도쿄무비신사와 결별 후 일본에서는 주로 NHK BS2에서 평일 오후 6시에 방영되던 "위성 아니메 극장"을 통해 방영되었다.

3. 대표작


[1] DiC에서 제작한 각종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지나가기도 하고 중간에 잠든 아이의 방너머로 별이 빛나더니 아마도 그 아이의 잠꼬대로 딕!이라는 외침이 들리는 ID도 제법 친숙할 것이다. 그 중에서 별이 빛나면서 등장하는 DiC 로고는 1987년에 확정되어 브랜드가 사라지는 2008년까지 변주를 거치며 쓰였다.[2] 현재는 와일드브레인 공식 홈페이지로 리다이렉트된다.[3] 철자인 DiC 중에서 중간 부분을 장음에 가깝게 읽는다. 발음이 영어권 속어인 "Dick"과 유사하기 때문에 영어권에서도 발음을 혼동하거나 아닌 걸 아닌데도 빵 터진다는 반응도 많으며, 역으로 놀림거리 삼는 경우가 있다. 앤디 헤이워드가 DiC의 회장이 된 1980년대 후반부터 쓰는 CG 로고부터 아이 목소리를 넣은 것도 이와 연개지을 수 있다.[4] 딕 엔터테인먼트의 흥망성쇠가 세부적으로 잘 정리된 개인 다큐멘터리이다. 영어인데다가 자막이 없고 자동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영상이므로 참고할 것.[5] 실사 광고를 주로 만들다가 애니메이션 광고도 제작하기 시작했다.[6] 이때 나온 대표작이 1981년에 나온 우주선장 율리시즈로, 도쿄무비신사와 처음 합작한 작품이었다. 덕분에 도쿄무비신사와 합작한 루팡 8세도 기획했지만 저작권료 문제로 무산되었고, 애니메이션과 사운드트랙까지만 만들어진 채 미완성으로 남았다.[7] 이후 DiC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취임하는 앤디 헤이워드가 이때 딕에 합류했고, 그 외에 사업가 겸 음악가인 하임 사반(Haim Saban), 1980년대 딕 애니메이션들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한 음악가 겸 프로듀서 슈키 레비(Shuki Levy)도 딕과 협력하여 헤이워드가 딕을 인수받은 1986년까지 협력관계를 유지했다.[8] 딕 엔터테인먼트 역사상 처음으로 노조가 설립되려다가 무산된 1984년 당시에도 동종업계에서 유일하게 노조가 없었다. 스토리보드 작가에게 노조가 있는 타 업체들 대비 절반 수준의 임금을 지불하거나# 작화를 한국, 일본, 중국 등에 하청으로 작업하거나 기간제가 아닌 작품 수를 기준으로 직원들을 고용하고 임금도 타 업체들 대비 절반을 지불하는 등, 단가 줄이기에 열중하는 행보 때문에 붙은 별칭이 "Do it Cheap"과 "Done in China." 이 때문인지 한때 딕과 같이 일했던 존 크릭팔루시도 딕 엔터테인먼트를 "필메이션이 40년대 디즈니같아 보이는, 애니메이션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곳"이라고 혹평했고, 미디어 업계의 각종 파업을 비롯해 애니메이터의 권리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높아지는 2024년 전후에도 SNS상에서 딕 엔터테인먼트를 혹평하는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9] 특히 전성기 시절 미디어 믹스 작품인 G.I. 조와 리얼 고스트버스터즈는 1988년부터 1991년, 그리고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시즌을 이어갔다.[10] 예시로 딕 엔터테인먼트의 당대 히트작이었던 리얼 고스트버스터즈는 1990년까지만 해도 K.K.로부터 작화를 공급받았으며, K.K. C&D 시절의 스튜디오가 1990년 다큐멘터리 "Slimer Won't Do That: Making of The Real Ghostbusters"에도 등장한다.[11] Andrew C. Heyward. 해나-바베라 프로덕션 출신의 스토리 작가로서 요기 곰,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등을 담당한 전적이 있었다. 1986년 말에 대주주들의 도움을 받아 장 샬로팽으로부터 회사를 사들였으며, 딕을 매각한 지 수 년이 지난 후에도 애니메이션 회사로 A 스퀘어드 엔터테인먼트(현 지니어스 브랜드)를 차려 업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니어스 브랜드의 주요 IP들 중 "워렌 버핏의 백만장자 비밀클럽"이 으로 정식 수입되고 있다. 2023년 6월, 지니어스 브랜드가 "카툰 스튜디오(Kartoon Studios)"라는 이름으로 사명 변경을 발표했다.[12] 참고로 딕 엔터테인먼트에서의 활동으로 인해 얻은 별명은 "애니메이션계의 로저 코먼." 이미 단가 낮추기에 주력하던 딕에서 단가 낮추기에 더더욱 집중했기 때문이다.[13] 대신, 하임 사반의 사반 인터내셔널은 딕 작품들의 해외 배급권(딕의 부채를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을 받았다. 이때 사반에서는 배급권을 장 샬로팽이 새로 설립한 애니메이션 회사인 C&D(Créativité et Développement)에 다시 매각했는데, 이걸로 앤디 헤이워드와 장 샬로팽, 하임 사반 간의 관계가 단단히 틀어져서 헤이워드가 샬로팽과 사반을 고소해 1991년까지 일이 정리되지 못했고, 2001년의 "돌아온 형사 가제트"를 내기 전까지는 별다른 공식적인 교류가 없었다.[14] 지금도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는 헤이워드와는 달리, 장 샬로팽은 1996년에 C&D를 매각하고 2001년에 돌아온 형사 가제트의 제작에 참여한 이후 큰 소식이 없었다. 2022년 기준으로 델택의 최대 주주로 소개되어 있는 등, C&D 매각 이후에는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다.[15] 1986년에 도쿄무비신사와 결별하고 자체 일본 스튜디오를 세운 지 얼마 안 되어, 일본 엔화의 환율이 불리하게 바뀌어서 하청비용이 40% 급증한 게 배경이었다. 한국 업체 중에는 세영동화, 새롬애니메이션, 동양애니메이션, 레인보우 애니메이션 코리아, 프러스원 애니메이션(현 프러스원 엔터테인먼트), 대원동화(현 대원미디어) 등이 딕 엔터테인먼트의 하청에 참여했다.[16] 개구쟁이 데니스 애니메이션 버전이 당시 캐나다에서 작업한 대표적인 딕 계열 작품이었으며, 온타리오 소재의 크로울리 애니메이션(Crawleys Animation)이 제작에 참여했다. 이후 G.I. 조를 비롯한 이후 작품들의 성우진들도 캐나다계 성우들을 많이 기용했으며, 세일러문을 수입할 때도 캐나다 더빙업체인 옵티멈 프로덕션에 외주를 맡겼다.[17] 당시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슈퍼 쇼!의 스토리에디터였던 리드 셀리에 따르면 앤디 헤이워드는 아예 "Super Mario Bros. Power Hour"라는 이름으로 온갖 비디오게임 기반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들을 종합방영할 1시간짜리 애니메이션 방영 블럭도 구상했으나 마리오, 젤다 정도만 현실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18]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작품들이 이 문제가 심했다. 노스텔지어 크리틱이 리뷰한 1989년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슈퍼 쇼!와 캡틴 N, 젤다의 전설 애니메이션만 하더라도 리뷰에서 작중의 각종 미완성된 작화 오류가 언급되었으며 1991년작인 해머맨도 노스텔지어 크리틱의 리뷰에서 "너무 게으르고 엉망이라 망가지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언급되었을 정도. 당시 현역이었던 제작진 스콧 쇼(Scott Shaw)는 "영상을 좀 수정하자고 하면 제작비도 못 댔다며 못 고치게 막았다"며 재정적자를 이유로 작품의 질에 무관심하고 싸구려만을 쫓는 회사이자 자신이 일한 최악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회고했다.[19] 1980년대 말에도 1시즌만에 단명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딕 엔터테인먼트 역대 런칭작 수가 가장 많았던 1991년의 신작들(슈퍼 마리오 월드 등 총 9개작)은 모두 데뷔하자마자 한 시즌만 나오고 종영해버려서 기존 작품들의 재방송으로 버티고 있었다. 또한 "교육용 애니메이션 방송 의무화"를 요구하는 학부모 단체들의 압박이 커지면서 1989년부터 법안으로 발의되어 기성 지방파 방송사에 애니메이션을 배급하기가 힘들어졌고, 이 지상파 방송사들이 애니메이션 편성표를 줄이기 시작하면서(딕의 1980년대 주요 고객이었던 NBC가 1991년 이후 애니메이션 편성표를 폐지했다) 고초를 겪었다. 또한 1990년대 초반부터 니켈로디언, 카툰네트워크같은 애니메이션 전문 케이블 채널이 지상파 대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방송심의 환경 속에서 자체 저작권에 기반하는 독점 컨텐츠들을 내놓으며 흥행을 달리고 있었다. 또한 애니메이션 전문채널의 성장은 아이들이 기성 방송사의 애니메이션 편성시간을 외면하는 계기를 마련해 그 동안 외부 컨텐츠 미디어믹스에 의존하고 지상파 방송사의 애니메이션 편성 시간대에 작품을 배급해온 딕이 크게 고전했다.[20] 이 부진을 극복하고자 세일러문을 북미 시장에 수입하거나 애니메이션 전문 케이블 채널에 작품 배급을 시도하기도 했고, 이 시기의 미디어믹스 신작들 중에서도 카르멘 산디에고, 고슴도치 소닉, 마법소녀 사브리나같은 양질의, 혹은 흥행한 작품이 조금씩 나왔으나 1개 시즌을 넘기지 못한 작품들도 많은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사 작품들을 방영할 곳을 찾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딕이 가진 자체 컨텐츠는 형사 가제트 정도가 전부였고, 기존 작품들의 재방영이 서서히 끝나가던 1990년대 말부터야 텍스 에이버리, 슈퍼 두퍼 스모, 리버티 키즈 등의 자체 컨텐츠를 보강하기 시작했다.[21] 처음에는 딕 애니메이션 시티와 별개로 합작법인인 딕 엔터테인먼트 L.P.(DiC Entertainment Limited Partnership)를 만들어 애니메이션 및 실사 컨텐츠를 제작하다가 1994년에 딕 애니메이션 시티를 합작법인으로 흡수시켜 ABC의 완전한 자회사로 인수했다.[22] 수익 면에서는 7천5백만 달러로 만든 영화로 1억 3천 44만 달러를 벌어들여 본전치기를 했으나 영화 순수 흥행만으로는 흥행실패, 여기에 평판까지 혹평 일색이었다.[23]WildBrain Studios, 2019년 9월 23일에 DHX 미디어가 와일드브레인으로 사명을 바꾸었다.[24] 당시 미국에서는 토요일 아침시간대에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25] 한때 교보북스 웹페이지 중에는 2004년 이후 DVD 카탈로그로 마리오(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 슈퍼 마리오 월드), 소닉(소닉 언더그라운드, 바람돌이 소닉)을 비롯하여 수 많은 딕 엔터테인먼트 계열 작품들의 DVD가 실려 있는 웹 카탈로그가 있었다. 그 외에도 딕 엔터테인먼트의 말년이었던 2007년 작품인 다이노스쿼드의 DVD 버전이 쿠키자 명의로 판매된 바 있다. #[26] 동화 원작. 1983년부터 형사 가제트와 함께 방영한 흥행작이었다.[27] 형사 가제트 프랜차이즈, 리버티 키즈, 그리고 2002년 장편 TV 극장판 "그루브스쿼드" 등과 함께 딕 엔터테인먼트의 몇 안되는 자체기획 프랜차이즈 타이틀. 한국의 아메코와 디지탈이메이션이 작화하청 및 공동 제작사(컨셉트 디자인 등)로 참여했다.#[28] 다이노스쿼드, 2007년판 케어 베어와 함께 딕 엔터테인먼트의 마지막 작품. 케어 베어와 함께 아메리칸 그리팅즈(현 클라우드코)의 동명 프랜차이즈가 원작으로, 2007년부터 총 52화를 방영했다.[29] 스시 팩, 2007년판 케어 베어와 함께 딕 엔터테인먼트의 마지막 작품. 2007년에 방영을 시작했다.[30] Madeline. 1939년에 출간된 아동용 서적 원작으로 대한민국에도 원작 동화책이 정식 번역되어 발매되었다.# 1988년에 딕 엔터테인먼트가 담당한 TV 특별판 1회가 만들어진 뒤 1993년에 정식 TV 시리즈가 등장해 1999년까지 총 59화가 제작되었다. 1999년에는 비디오 정발용 특별편 "Madeline: Lost in Paris"가, 2002년에는 TV 극장판인 "My Fair Madeline"과 "Madeline in Tahiti"가 등장했다.[31] 시즌 1 부터 시즌 3까지만 제작했으며, 시즌 4 부터는 제작사가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으로 이관되었다.[32] 마텔의 완구 원작. 1994년에 방영을 시작했고 1997년에는 스핀오프로 익스트림 다이노소어를 제작했다.[33] 선보우 프로덕션을 통해 제작하던 기존 TV 시리즈의 후속작. 선보우 프로덕션 시절 대비 원가절감을 단행했으며, 보다 저연령층 시장에 포커스를 두어 유머 중심의 플롯, 교육친화적인 에피소드들을 추가했다.[34] 미국 브로더번드의 역사/지리 교육용 게임 원작. 1994년에 첫 방영.[35] 콜럼비아 픽쳐스의 1984년판 고스트버스터즈를 토대로 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콜럼비아 픽쳐스가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36] 1985년, 그리고 2007년에 총 2개 작품을 담당했다.[37] 1986년 TV 시리즈를 담당했다.[38] 1997년에 방영한 슬랩스틱 코미디 애니메이션. 딕 엔터테인먼트의 첫 디지털 셀 애니메이션이자, 1995년의 꼬마형사 가제트와 1996년의 형사 가제트의 견학 이후 등장한 딕의 첫 오리지널 컨텐츠. 동시에 가제트와 그 스핀오프 시리즈 이후로 나온 첫 오리지널 프랜차이즈였다. 유명 애니메이터 텍스 에이버리의 작품의 오마주격으로서 에이버리의 딸인 낸시 에이버리 어클리(Nancy Avery Arkley)로부터 이름 사용을 허가받았다.[39] 참고로 이 작품을 제작한 스튜디오의 이름도 스튜디오 텍스(Les Studio Tex)로, 첫 작품의 제목이었던 텍스 에이버리의 이름을 따 붙였다. 1997년 3월에 딕의 지분을 40% 포함해 자회사로 설립했고, 2000년대 중순까지 디지털 셀 기반의 TV용 애니메이션을 주로 담당했다.####[40] 하지만 더빙 건으로 마하 GoGoGo의 정식 북미 수입사인 Speed Racer Enterprises가 딕을 고소해 13화까지만 더빙이 이루어졌다.[41] 맥컬리 컬킨 주연의 TV 시리즈. 13부작 구성으로 1991년 내내 방영되었다.[42] 쌍둥이 자매 배우 메리 케이트애슐리 올슨 주연의 TV 시리즈. 26부작 구성으로 2001년에 내내 방영되었다.[43] 미국 독립운동 시기를 다른 교육용 애니메이션으로, 2002년에 총 40화가 만들어졌다.[44] 일본의 남코의 비디오게임이 원작으로, 게임의 제목과 자동차 레이싱이라는 장르만 공유하는 작품이다. 1992년 SBS 만화잔치에서 날으는 레이스카라는 제목으로 방영.[45] 1984년에 방영한 실사 뮤직비디오+애니메이션. MTV와 비슷한 포멧이었으나 인기가 없어 7화만에 종영했다.#[46] 1999년에 나온 SF물로 3D 애니메이션+2D 디지털 셀 애니메이션 혼합. 대원동화가 2D 애니메이션 파트 하청자격으로 참여했다.[47] MC 해머가 주인공인 TV 시리즈로 총 13화 분량으로 제작되었다.[48] 1989년에 1기 13화를 제작.[49] 1991년에 시즌 2 한정으로 담당했으며, 시즌 1은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이 제작했다.[50] 1962년에 나온 밥 크렘펫 감독의 동명 TV 시리즈를 토대로 1988년에 신작인 The New Adventures of Beany and Cecil을 제작 및 방영했다. 존 크릭팔루시가 본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딕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했으며 빌리 웨스트가 본작에서 성우로 데뷔했다.[51] 1998년에 나온 딕 엔터테인먼트의 첫 번째 실사영화. 폴 워커가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