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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 - 1946 | 용산예수성심신학교 | ||||
1947 - 1958 | 성신대학 | ||||
1959 - 1963 | 가톨릭대학 | ||||
1964 - 1991 | 성심여자대학 | ||||
1992 - 1994 | 성심여자대학교 | ||||
1995 - 현재 | 가톨릭대학교 |
1. 역사
1.1. 성 요셉 신학교에서 가톨릭대학으로
배론 성요셉신학교 (1855 - 1866) |
현재 배론성지 |
1855년 조세프 메스트르 신부가 충청북도 제천시 배론에 '성 요셉 신학교'를 세운 것이 시초다. 초대 교장으로 C. Pourthie 신부가 취임했으며, 한국 교회사 최초의 가톨릭 신학교였다. 따라서 가톨릭대학교는 공식 건학년도를 1855년으로 잡는다.[1] 다만 이 성 요셉 신학교는 1866년 병인박해로 인해 폐교되었다.
용산예수성심신학교 (현재 서울 용산구 원효로 성심여자중학교ㆍ성심여자고등학교 교정의 예수성심성당) |
1970년대 성신대학 |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1885년 예수성심신학교가 경기도 여주시 부엉골에서 재개교하였고, 1887년 위치를 서울의 원효로로 옮겼다. 1947년 해방 후 성신대학으로, 1959년 다시 가톨릭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했다. 1962년 가톨릭중앙의료원(CMC)를 설립했으며, 1995년 성심여자대학교와 통합 이전까지는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의 신학부와 종로구 경운동[2]에 있다 서초구 반포동으로 이전한 의학부로 이루어진 단촐한 대학이었다.
1.2. 성심여자대학교
성심여자대학교 졸업식 |
성심여자대학교 주요 동문 |
성심여자대학교 |
1964년, 가톨릭대학교와 별개로 전세계에서 성심학교를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한 성심수녀회가 강원도 춘천시에 성심여자대학교를 설립했다.
1800년 프랑스에서 마들렌 소피이 바라 성녀에 의해 창설된 성심수녀회는, 전세계 41개국에서 수많은 성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 대학 및 중고교명에 Sacred heart, 聖心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학교는 대부분 성심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라고 봐도 무방하며[3], 명문학교가 상당수다. 국내에서는 성심국민학교(여학교)[4], 성심여자중학교, 성심여자고등학교, 성심여자대학교 등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바로 옆의 일본에서도 세이신 여학원을 운영하고 있다.[5]
성심학교의 초기 학풍은, 소규모의 학생들만을 뽑아 소수정예 교육을 하는 귀족풍의 학교였다(꽤 유복한 집안의 딸들이 많이 다녔다고 한다). 또 초창기 성심여중고를 졸업한 기업인 조안 리의 자서전에 의하면, 외국인 수녀님들이 많고 회화 위주의 교육을 해서, 영어 공부에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고 한다.
성심여자대학교도 1974년 부천 분교가 생기기 이전까지는, 소규모 학생들만을 유치해 전교생이 춘천캠퍼스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구조였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고리타분한 방식이지만 당시 시대상엔 딸을 가진 부모들에겐 꽤 매력적인 요소였고, 그래서 여러 정재계 인사들이 성심여대에 딸을 입학시켰다.[6][7] 외동딸이 성심여대 출신인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경우는 1980년 부천 분교에 도서관을 무상으로 지어 기증하기도 하였다.[8]
성심여자대학교 |
1960년대 후반부터 성심수녀회에서는 수도권 지역에 성심여대를 유치하기 위해서 이곳저곳의 터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 중에 후보지로 올랐던 곳이 바로 경기도 부천시 역곡과 현재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근처였다. 하지만 당시 테헤란로는 농경지로만 이루어진 촌이었기 때문에 결국 부천시 역곡에 새 학교 부지를 정하게 되었다.
성심수녀회는 1982년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 성심여대 춘천캠퍼스를 폐쇄하고 현 성심교정인 경기도 부천시로 이전했다.[9] 그후, 학교경영에 어려움을 겪은 성심수녀회는 성심여자대학교의 운영권을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이양했고, 서울대교구는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을 설립한 후 대학을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1.3. 두 대학의 통합과 '가톨릭대학교'의 탄생
1995년 가톨릭대학교가 성심여자대학교를 흡수통합하면서 현재와 같은 1대학 3교정 체제의 종합사립대학교로 변모했다. 이 당시, 사립대 의과대학 중 최저였던 등록금이 성심여대 등록금 수준에 맞춰지면서 등록금이 2배 가까이 뛰어, 의대 95학번 이상에서는 성심교정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한편 성심여대에서도 가톨릭대학교와의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이는 과거의 성심국민학교 → 성심여자중학교 → 성심여자고등학교 → 성심여자대학교으로 쌓아두었던 여성들의 엘리트 교육 코스라는 브랜드를 통합과 동시에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1981년도경 가톨릭대가 종합대로 변신을 꾀하기 위해 천주교 소속 수도회인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서강대학교에 통합을 제의했으나 서강대 측의 거절로 무산된 바 있다. 결국 가톨릭대는 1994년 천주교 수도회인 성심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성심여자대학교와의 통합으로 종합대학교가 되었고 그 이후 통합설은 잠잠해졌다. 그 후로 12년 뒤인 2006년, 이번엔 서강대의 제의로 통합설이 다시 대두되었으나 가톨릭대의 반대와 사학법 문제로 무산되었고 이를 마지막으로 양 학교 당국에서 통합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경우는 없다. 아주 가끔 외부에서 양교의 통합에 대한 소문이 돌기도 하지만, 사실 한국 사학법에선 하나의 학교에 두 이사회가 양립 할 수 없기에 통합을 위해선 가톨릭대의 가톨릭법인이나 서강대의 예수회법인 둘 중 한쪽이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하는데, 양측 모두 교육에 대해 각각 확고한 신념[10]과 목적이 존재하므로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통합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가톨릭 기반 교육의 기치 아래 양교의 교육 학술 연구 교류 등의 협력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성신교정과 성의교정에서 신부, 간호사, 의사만 양성하던 시절엔 4.19 혁명이나 80년대 6월 민주항쟁 등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가 발생할 때 가장 늦게 참여한다고 하여 "가톨릭대가 참여하면 정권이 바뀐다"는 말이 있었다. 이 당시 의과/간호대학에서 사용하던 구호인지 성심여대에서 사용하던 구호인지 확인되진 않으나 현재까지 구전되어 오는 가톨릭대의 FM은 '민주가대'다.
2. 총장
<rowcolor=#fff> 대 | 이름 | 임기 | |
<rowcolor=#fff> 취임일 | 퇴임일 | ||
1 | 장금구[11] | 1947. 4. 30 | 1948. 2. 28 |
2 | 윤을수 | 1948. 3. 1 | 1950. 1. 9 |
3 | 정규만 | 1950. 1. 10 | 1954. 10 |
4 | 한공렬[12] | 1954. 10 | 1961. 2. 13 |
5 | 황민성 | 1961. 2. 14 | 1964. 7. 31 |
6 | 이문근[13] | 1964. 8. 1 | 1967. 4. 5 |
7 | 정규만 | 1967. 4. 6 | 1969. 5. 1 |
8 | 김창렬 | 1969. 5. 2 | 1973. 9. 13 |
9 | 백민관 | 1973. 9. 14 | 1976. 8. 31 |
10 | 유봉준 | 1976. 9. 1 | 1979. 8. 31 |
11 | 최창무 | 1979. 9. 1 | 1980. 8. 31 |
12 | 최윤환 | 1980. 9. 1 | 1983. 8. 31 |
13 | 최윤환 | 1983. 9. 1 | 1985. 8. 31 |
14 | 백민관 | 1985. 9. 1 | 1988. 8. 31 |
15 | 정의채[14] | 1988. 9. 1 | 1991. 8. 31 |
16 | 최창무 | 1991. 9. 1 | 1992. 3. 31 |
17 | 최창무 | 1992. 4. 1 | 1995. 2. 28 |
<rowcolor=#fff> 대 | 이름 | 임기 | |
<rowcolor=#fff> 취임일 | 퇴임일 | ||
1 | 바바라 니콜스 | 1964 | 1968 |
2 | 주매분[15] | 1968 | 1971 |
3 | 노에 노드버그 | 1972 | 1975 |
4 | 김재순[16] | 1975 | 1979 |
5 | 김재순 | 1979 | 1983 |
6 | 고도임 | 1983 | 1987 |
7 | 고도임 | 1987 | 1988 |
8 | 박정미 | 1989 | 1992 |
9 | 박정미 | 1992 | - |
10 | 김재순 | 1993 | 1995 |
<rowcolor=#fff> 대 | 이름 | 임기 | |
<rowcolor=#fff> 취임일 | 퇴임일 | ||
1 | 강우일 | 1995.3 | 1998.2 |
2 | 최승룡 | 1998.2 | 2001.1 |
3 | 오창선 | 2001.1 | 2005.2 |
4 | 임병헌 | 2005.2 | 2009.1 |
5 ~ 6 | 박영식 | 2009.1 | 2016.12 |
7 ~ 8 | 원종철 | 2017.1 | 2024.12 |
9 | 최준규 | 2025.1 (예정) | - |
총장은 전통적으로 서울대교구의 신부 가운데서 선임되는데, 다만 1995년 성심여자대학교와 통합한 직후부터 1998년까지 3년간은 당시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였던 강우일 베드로 주교가 총장을 맡았다.
2대 총장인 최승룡 신부와 3대 총장인 오창선 신부는 성신교정의 신학과 교수 출신이며, 그 이후 4대 총장인 임병헌 신부와 현재 총장인 박영식 신부는 성심교정 종교학과 교수 출신이다. 또한, 2대 총장인 최승룡 신부와 4대 총장 임병헌 신부는 직전의 임지가 서울 동성중학교ㆍ동성고등학교 교장으로, 각각 9년과 2년간 역임했다.
한편 이사장의 경우 서울대교구 산하 학교이므로 서울대교구의 교구장 혹은 보좌주교(이한택 요셉 주교) 등이 겸임한다.
[1] 유교 계열 성균관대학교 다음으로 2번째로 오래 된 건학년도다. 개신교 계열 대학인 연희전문학교(경신학교 대학부에서 기원), 이화학당 및 배재학당 등이 전신 포함 1880년대에 설립되었고 개신교 최초의 신학 대학인 감리교신학대학교 또한 1887에 설립 되었으니 이보다 30년 정도 빠르다.[2]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은 처음에는 명동성모병원(현 가톨릭회관)에 있었으나 생긴지 5년만에 운현궁 앞에 새 교사를 지어 이전하여 1986년 강남 이전 때까지 이용했다.[3] 다만 전라북도 전주시의 전주성심여자중학교ㆍ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는, 성심수녀회가 아니라 천주교 전주교구에서 운영하고 있다.[4] 1962년 개교하여 1982년에 폐교.[5] 이에 따라서 일본에서도 귀족학교라고 불리는 세이신여자대학으로 가톨릭대학교의 여학생들은 교환학생을 갈 수 있다.[6] 사실 오늘날의 부모들도 딸을 집과 멀리 떨어진 학교에 보내어 자취나 하숙 등을 시키면 불안해하는데, 저 시절에는 더했을 것이다. 따라서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여자대학이라면 안심하고 딸을 맡길 수 있었을 것이다.[7] 다만 이는 단순히 기숙학교라는 이유보다도 이미 일본에서 같은 재단, 이름의 세이신(성심)여대에 일본의 황후, 공주들 및 각종 재벌집 딸들이 다니고 있었고 이러한 선례를 통해 귀족학교라는 이미지를 국내 재벌가 사이에서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의 영향이 컸었다. 기숙학교라는 점과 천주교 수녀의 이미지도 당시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고.[8] 비르투스관. 현재 니콜스관에 연결된 강의실로 쓰인다. 비르투스라는 말은 라틴어인데, 영어의 virtue에 해당하는데 의미상 덕, 도덕, 능력, 힘에 해당하는 뜻이다.[9] 성심여자대학교 춘천캠퍼스는,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무원장을 지내고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의 설립멤버였던 일송 윤덕선이 세운 한림대학교로 매각되었다. 현재 한림대 자리가 예전 성심여대였다는 이야기이다. 한림대병원이 성심병원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10] 서강대 운영 주체인 예수회의 교육에 대한 집념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가톨릭대 운영 주체인 대교구 역시 천주교가 전파된 국가에선 '반드시' 산하 종합대를 운영한다. 현대 들어 세계 각국에 있는 가톨릭계 대학들 중 단과대들끼리의 통합이나 운영 주체가 직접 변경된 경우를 제외하면 대교구 종합대와 예수회 종합대의 통합이 이루어진 적이 없으며, 이로 인해 2006년 통합설에 교황까지 관심을 가졌단 이야기 나올 정도로 파장이 컸다.[11] 명동성당 제6대 주임신부[12] 천주교 전주교구 제4대 교구장[13] 명동성당 제12대 주임신부이자, 성가를 많이 작곡한 신부이다.[14] 명동성당 제18대 주임신부[15] 중국인 수녀이며, 초창기 성심여자중고등학교 교장 및 프랑스어 교사를 맡기도 했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 등장하는 '주 수녀님'이 바로 주매분 수녀. 기업인 조안 리의 성심여중고 시절 은사이기도 하다.[16]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 주매분 수녀와 함께 등장. 여동생 김재숙도 성심수녀회 수녀인데, 김재숙 수녀는 박근혜의 성심여중고 시절 은사이기도 하다. 남동생 김재익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으며,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때 순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