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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7:05

강지광/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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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2. LG 트윈스 시절3. 넥센 히어로즈 시절
3.1. 2014 시즌3.2. 2015 시즌3.3. 2016 시즌3.4. 2017 시즌
4.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시절
4.1. 2018 시즌4.2. 2019 시즌4.3. 2020 시즌4.4.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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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

인천고등학교 시절 시속 150km/h의 패스트볼을 던진 특급 유망주였다. 이 때문에 지역 연고팀인 SK 와이번스의 강력한 1차지명 대상자로 거론됐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상인천중학교로 전학와 1차지명 대상에서 제외됐다.[1] 여기에 부상 경력이 있어 2차에서도 순위가 밀려 결국 전체 20번으로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007년 8월 제6회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팀을 대회 첫 우승으로 이끌고 본인은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결승전에서는 화순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2008년 8월 제6회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팀을 2년 연속 대회 우승으로 이끌고 본인은 2년 연속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였다. 결승전에서는 화순고를 상대로 완투승을 거두었다.

2. LG 트윈스 시절

프로 입단 후에도 계속 부상에 시달리는 바람에 퓨처스리그에서만 잠시 뛰다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팀에 복귀한 후 투수에서 내야수, 즉 타자로 전향했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LG 코치였던 염경엽은 미래가 촉망되는 투수라며 이를 말렸다고 한다. 그런데 또 다른 기사에서는 염경엽 감독이 “모든 이가 강지광을 선발 투수감으로 생각했지만, 난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며 “그만큼 타격 자질이 뛰어난 선수였다”고 회상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 나온 기사에 의하면 일단 타자 전향 당시 염경엽이 반대했던 것은 맞다고 했다. 자세한 건 기사 참조.

3. 넥센 히어로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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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차 드래프트에서 넥센 히어로즈가 2라운드에 지명하였다. 이적 후 기사에서 홈런 30개를 칠 것이라고 카카오톡에 적어 놓은 것이 알려졌다. 넥센에서는 외야수로 나설 것이라고 했다.

3.1. 2014 시즌

2014년 2월 연습경기에서 홈런을 포함한 장타를 연달아 치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2월 22일 SK전에는 5타수 2안타 1타점, 2월 23일에 한화전에는 6타수 3안타 1홈런 5타점을 기록했다.

2월 25일 한화와의 연습경기 전에 염경엽 감독은 강지광을 모든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 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정규 시즌에는 일단 2군에서 좀 더 가다듬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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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한화전에서의 호수비. 감독이 말을 하자마자 바로 맹활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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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시범경기 첫 경기에 나서 3회말 유희관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때려 냈다. 밀어쳐서 우측 담장을 넘긴 홈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3월 13일 SK와의 시범경기에서 멀티 홈런을 기록. 수훈 선수로 뽑히면서 신들린 듯한 인터뷰 스킬을 보여줬다. 놀라운 건 이번이 첫 인터뷰였다는 것.

2014년 4월 8일 손가락 부상을 당하면서 1군 데뷔가 늦어지게 되었다. 염경엽 감독의 원래 구상은 강지광을 1군에 올리고 로티노를 화성에서 포수 연습을 시킬 계획이었다고 한다. 결국 강지광의 부상으로 인해 구상이 헝클어졌지만, 포수진이 불안했던 넥센은 10일부터 로티노를 선발 포수로 출장시키게 된다.

2014년 5월 22일 한화전에서 승부가 한화 쪽으로 많이 기운 상황에서 교체 출장해 1군 데뷔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고동진의 타구 수비 중 중견수 이택근과 충돌해 서동욱과 교체됐고, 전방 십자인대 파열으로 진단받아 시즌 아웃됐다. 뿐만 아니라 선수생명도 간당간당하게 됐다. 1군 무대를 한 번도 밟지 못하고 은퇴한 유망주는 헤아릴 수 없지만, 한 경기 출장에서 시즌 아웃급의 큰 부상을 당한 것은 그야말로 전대미문. 선수생활의 시작을 불운으로 시작하게 됐다.

3.2. 2015 시즌

2015년에 재활을 마치고 시범경기에 나왔으나, 필 어윈의 공에 손목을 맞아 개막전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2015년 4월 18일 광주 KIA전을 앞두고 훈련 도중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하는 등, 또 다시 유리몸의 모습을 보였다. 이후 1군 13경기에 출전해 18타수 5안타 2타점을 기록했으나, 수비나 공격에서 크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해 2군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 그러다가 2015년 7월 23일 고대구로병원에서 오른쪽 무릎 연골 수술을 받게 되어 잔여 시즌 동안 재활군 확정. 결국 2015년에도 유리몸만 인증한 채 끝났다.

3.3. 2016 시즌

2016년이 되면서 코칭 스태프들이 이택근의 코너 외야 포지션 변경, 유한준의 FA 이적 등으로 인해 외야에 생긴 빈 자리를 매울 후보 중 하나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 2월 21일 오키나와에서 가진 요코하마와의 연습경기에서 경기를 뒤집는 3점 홈런을 쏘아올리며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2016년 5월 31일 부진하던 채태인의 2군행으로 올해 첫 1군에 승선했다. 그리고 같은 날 열린 고척 삼성전에서 7회 말에 고종욱의 대타로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출장해 백정현을 상대로 7구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냈고, 8회 초부터 좌익수로 수비도 가담했다. 9회 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심창민에게 삼구삼진을 당하면서 1군 복귀전에서 1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6월 1일 고척 삼성전에서 7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출장하였다. 2회 첫 타석 무사 12루에서 초구를 타격해 3루수 파울플라이로 물러났으나, 4회 1사에 차우찬에게 볼넷을 얻어내며 홍성갑의 3루타 때 득점하였다. 그리고, 5회에 유격수 방면 깊은 타구를 빠른 발로 내야안타로 만들어내면서 본인의 올 시즌 첫 안타를 만들어 냈다. 7회에 대타 고종욱으로 교체되면서 이 경기에서 2타수 1안타 1득점 1볼넷을 기록했다.

6월 2일 고척 삼성전에서 경기가 일찌감치 기울면서 4회 1사 만루에 서건창의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으나 삼진을 기록했다. 그 이후 우익수로 수비에 가담했으며, 6, 8회에 볼넷을 얻어내었다. 삼성전 세 경기에 모두 출장하였고 3연전 동안 4타수 1안타 4볼넷을 기록하며 비록 3경기지만 0.625라는 높은 출루율을 보여주고 있다.

6월 3일 광주 기아전에서 2번 좌익수로 선발출장해서 3타수 무안타인 상황에서 7회 무사 2루에서 대타 유재신으로 교체되었다.

6월 5일 광주 기아전에서도 2번 좌익수로 선발출장해서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8회 서건창이 무사에 1루수 실책으로 출루한 상황에서 대타 박정음과 교체되었다.

7월 22일 인천 SK전 10회 6:6 동점 1사 3루 상황 3루 주자였던 이택근의 대주자로 출장해 주루사를 당했는데, 이후 타자였던 박정음의 내야안타가 나오며 아쉬움을 더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해설인 안경현도 왜 무리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언급을 했으나, 후에 이 상황은 주루폭을 넓게 가져가는 것을 포함하여 모두 염경엽 감독이 직접 본인의 지시였다는 언급이 있었다. 세이프티 스퀴즈 작전이 지시된 것이었다는 이야기. 이 당시까지만 해도 강지광의 여론이 굉장히 험악해졌으나, 이 해명이 나오면서 반 이상이 벗겨진 것은 정말 다행이다.

다음 날인 7월 23일에는 안타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희생 플라이와 밀어내기로 2타점, 그리고 수비에서도 맥그레거의 QS를 결정짓는 호수비와 함께 9회에도 안타성 타구를 하나 잡아주는 수비를 보여주면서 전날의 아쉬움을 말끔히 털어낼 수 있었다. 팀도 10대 2로 대승.

7월 27일 고척 두산전에서 2회 3:2 무사 1루 상황에서 두산의 선발투수 유희관을 상대로 역전 2점 홈런이자, 1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다.

8월 3일 롯데전에서 8회말 1사 만루에서 박정음의 대수비로 우익수로 출전했고 9회말 이택근의 수비 투입으로 중견수로 이동했는데 9회말 1사 1-3루에서 강민호의 얕은 플라이 타구를 잘 잡았으나 송구가 강하게 홈플레이트 쪽에서 원바운드로 튀면서 빠져나가는 바람에 3루 주자 황재균의 득점을 내주는 끝내기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홈 접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모험을 걸고 강하게 뿌리다가 어긋난 것도 아니고, 애초에 홈에 들어오기에는 충분치 못한 플라이였기 때문에 적당히 주자를 견제하거나 중계 플레이를 하는 등의 여유있는 플레이가 필요했는데, 경험 부족 때문인지 성급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2] 이후 잔여 사직 원정 3연전 경기에선 대수비 등으로 출전되다가, 홈으로 복귀하자마자 임병욱과 함께 조용히 등말소를 바톤 터치. 이러다가 정말로 또다시 화성전드가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재등록 이후 9월 3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교체 출장하여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이후에는 대타와 대수비 등으로 간간히 나오고 있으며 주전들의 부상으로 인해 선발 타순에 나오고도 있지만 타격 부분에서 개선된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며 팬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

3.4. 2017 시즌

2017년 감독이 장정석으로 바뀌면서 엔트리에 들지 못하다가 5월 13일 밴 헤켄이 등록된지 하루만에 허정협과 함께 말소되면서 유재신과 함께 1군으로 콜업되었다.

그러나 단 한 경기 출장해 2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 바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고, 이후 한번도 콜업되지 못했다.

4.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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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2018 시즌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았다. 인천고등학교 야구부 출신이라는 점과[3], 2017년부터 SK 와이번스의 단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염경엽넥센 히어로즈 감독과의 인연 덕분에 지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투수로 전향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만 본인의 요청으로 투수와 타자를 병행 중이다. 그럼에도 SK 측은 투수가 더 낫다는 판단 하에 제춘모 2군 투수코치는 물론 별도로 멘탈코치까지 선임해 가면서 엄청나게 신경쓴 것으로 알려졌다.

입단 이후로 투수 전향 외에는 그 어떠한 소식도 들리지 않고 있어서[4] 팬들의 불안함이 늘어가고 있었으나, 4월에 발표된 기사를 보면 초반의 우려와 달리 투수 전향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듯 하다. 대부분의 패스트볼이 140km대 중반 이상이라고. 4월 말부터 3군 경기와 퓨처스리그를 차례로 거쳐서 빠르면 6월부터 1군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5월 11일 강화 SK퓨처스파크에서 열린 경찰청과 2018 퓨처스리그 경기에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해 1이닝을 퍼펙트로 막았다고 한다. 구속은 최고구속 154km/h, 평균구속은 150km/h가 나온다고 한다. 삼진을 잡아낸 구종은 포크볼로 최고구속 137km로 직구와 포크볼의 제구가 잘되었다고 한다.

6월 6일 경찰과의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최고구속 156km/h를 기록하였다. 6월부터 1군에 올라온다고 했으나, 결국 1군에 올라오지는 못 하고 있다.

현재 17경기 17.1이닝 20피안타 2승 8볼넷 13K 13실점 12자책 ERA 6.23을 기록 중이다.

7월 26일 서진용이 말소되며 이적 후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그리고 당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8-1로 앞선 9회초 등판해 투수 데뷔전을 치렀다. 제구력 난조로 1이닝 동안 볼넷 2개, 안타 2개를 맞으며 2실점하는 등 불안한 부분도 있었지만 평균 150km 이상의 구속과 최고구속 156km(!)를 보여주며 삼진도 잡는 등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8월 1일 문학 넥센전 8회말 1번 타자 투수 박희수의 대타로 들어가[5] 한 타석을 소화하고 9회초에 투수로 등판해 1이닝 동안 2탈삼진을 잡았지만 안타 3개, 볼넷 2개로 5실점을 허용하여 평균 150km 이상의 구속은 여전하지만 제구력이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8월 3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가, 10월 2일 박정권과 함께 다시 1군에 등록되었다.

10월 4일 KIA전에 등판해 1이닝 동안 4타자를 상대하며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10월 9일 삼성전 9회말에 등판해 2타자를 상대해 2안타를 허용하고 결국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못 잡은채 내려갔다.

트레이드 이후 13~17년 5년 동안 회복을 못한 송은범처럼 구속은 좋은데 구위가 형편 없고 펑펑 맞아나가는 꼴을 보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올시즌 1군에 등판한 4경기 중 2경기는 대량실점에 1경기는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 잡고 내려간 데다 맞으면 무조건 장타를 맞다 보니.... 여기에 아직 제구가 흔들리는 등 여러모로 과제를 남긴 시즌이 되었다.

시즌 후 가고시마 마무리 캠프에 참가했다.

4.2.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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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을 앞두고 자신을 데려온 염경엽 단장이 감독으로 보직이 바뀌면서 올해는 좀 더 중용될 것으로 보인다.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1차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으며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2차 스프랭캠프에도 참가했다.

3월 4일 한화와의 연습경기에서 최고 구속 153km의 직구를 앞세워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3월 24일 KT와의 경기 8회초에 등판해 공 10개로 1이닝을 막았다. 그리고 8회말에 타자들이 4점을 뽑아 역전에 성공하며 데뷔 후 첫 승리투수가 되었다.

3월 31일 키움전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데뷔 첫 홀드를 기록했다.

4월 4일 롯데전 7회초에 나와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못잡고 2실점에 무사만루를 만든 뒤 서진용으로 교체됐다. 그물로 공을 던진건 덤

결국 다음날 말소되었다.

4월 20일 채병용과 함께 콜업되었다.

4월 24일 삼성전에서 1.2이닝 동안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4월 25일 삼성전에서 2이닝 동안 1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5월 16일 NC전 7회말 2사 주자 1,2루 상황에 등판해 크리스티안 베탄코트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위기를 벗어났다.

5월 17일 두산전 8회초에 등판해 한 이닝을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았다.

5월 18일 두산전에도 등판했다. 4월 11일~13일 3연투한 김태훈에 이어 올 시즌 SK 두 번째 3연투. 1.2이닝 동안 2실점하며 패전 투수가 되긴 했지만 자책점은 없다.

5월 23일 잠실 LG전에서는 선발 브록 다익손이 5회까지밖에 던지지 못했던데다 전날 서진용, 김태훈, 하재훈이라는 필승조 투수가 모두 소모된 관계로 김택형의 뒤를 이어 개인 최다인 2⅓이닝, 39구를 소화하며 버텨줬으나 9회말 자신의 책임 주자를 신인 백승건이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폭투를 저질러 들여보내면서 잘 던지고도 패전의 멍에를 썼다.

지금까지만 보면 작년에 불안했던 제구를 어느 정도 잡는데 성공하며 순식간에 무서운 투수가 됐지만 가끔 흔들릴 때도 있고 아직 조금 부족한 모습이다. 하지만 투수 전향 2년차에 이 정도면 대단한 모습이다.

6월 8일 삼성전에 등판한 이후 일주일 넘게 등판이 없다가 6월 16일 NC전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러나 다음 날 말소됐는데 본인이 어깨가 무겁다고 한다.#

이대로 등판 없이 올스타 브레이크를 보내고 후반기 복귀를 앞두고 있는데, 검진 결과에는 이상이 없으나 본인이 투구에 불편함을 호소한다고. 야수에게 나타나는 어깨 탈골 증세가 있다고 한다. 염경엽 감독은 복귀 시점을 9월로 보고 있다고 한다.

시즌 후 다시 외야수로 전향한다고 한다. 어깨 상태는 피칭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본인이 포지션을 변경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서 무려 3번째 포지션 전향이다.

4.3. 2020 시즌

'또 타자한다고?' SK 강지광 "내 가슴 속 욕망, 숨길 수 없었다"

상단 기사에 따르면 염경엽 감독부터 시작해서 타자 재전향을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며 결국 타자를 하게 된 건 순전 본인의 의지였다고. 작년에 의학적으로는 회복했고 투수로 복귀할 의지가 있었으면 복귀했겠지만, 그럴 의지가 없었다고 한다. 기사 제목의 본인 발언 전문은 다음과 같다.
"투수를 하고 있을 때 홀드나 승리를 거둘 때도 나의 정체성의 의문이 가득했다. 이게 맞는 길인가 싶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타자의 욕망이 여전히 자리했던 것 같다. 숨길 수가 없더라"

구단 자체 청백전에서 그 하재훈을 상대로 홈런을 치는 등 활약했다. 그러나 피칭에 문제가 없음에도 굳이 타자로 포지션을 바꾼 것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2019년 150km/h 중반대의 강속구를 주무기로 27.1이닝에 나와 ERA 3.95를 기록하며 투수로 가능성을 보여주었는데도 지금까지 1군 무대에서 한 번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타자로 다시 돌아갔다는 것이 그 이유.

150km 중반대의 빠른 공을 가진 투수는 모든 감독이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최대성이 있는데, 제구가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빠른 공 하나로 무려 15년이상 선수생활을 지속했다. 그러나 그런 장점을 버리고 경쟁력 하나 없는 무색무취의 30대 타자가 되기를 스스로 선택했으니 팬들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 갈 따름. 안타깝게도 그런 포텐셜을 가지고도 투타 포지션 변경을 반복한 끝에 30대 중반까지 팀에 자리잡지 못한 롯데의 김대우같은 케이스도 있어 팬들의 우려가 컸다.

만약 뎁스가 얕은 내야수를 선택했더라도 강지광의 타격으론 1군 엔트리에 들기조차 어려운데, SK에는 이미 강지광보다 나은 외야수들이 많다. 1군 엔트리 급만 해도 외야를 볼 수 있는 선수가 김강민, 고종욱, 노수광, 정의윤, 한동민이 있고 교체선수로는 김재현, 채현우가 있다. 아직 타격 실력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포텐이 있는 유망주로 평가되는 최지훈, 정진기도 있다. 강지광이 나이가 깡패면 모를까, 더 이상 어린 선수도 아니다. 1990년생이면 올해 30살이 되고, 더 이상의 기량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노망주일 뿐이다. 무엇보다 구단에선 아직 경험이 필요한 선수를 기용한다면 채현우, 최지훈, 정진기 등의 유망주를 키우는 것이 훨씬 이득이지, 30대의 별 볼 일 없는 커리어를 가진 선수를 기용할 가능성은 낮다. 때문에 1군 선수의 부진, 부상이 있지 않는 이상 2020년 SK의 1군 엔트리에서 강지광을 볼 일은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단은 조용호, 배영섭을 이적시키거나 방출한 경력이 있다.

한국 야구에서 보기 힘든 인물인 건 사실이라 기자들도 기사를 내주고는 있지만, 항목 상단의 기사도 그렇고 기사마다 의문부호가 붙을 정도로 양치기 수준의 신뢰도를 가지고 있다. 투수야? 타자야? SK 강지광의 마지막 도전 분명 시즌 시작 전 언플들은 이와 같이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고 가족, 특히 아내의 응원 덕분에 자체 청백전에서 하재훈을 상대로 홈런을 쳤다는 기사도 여럿 나왔는데...

5월 8일 이후 2군 출장이 없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또 부상으로 재활 중이라는 소식이 떴다. 이에 팬들은 '이기적인 놈', '서른이면 자기 꿈과 할수있는 걸 구분해야 한다' '알아서 자기 꿈 찾게 방출해라' 라는 등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들리지 않다가 6월 15일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다시 투수 전향을 결정했음을 알렸다. 투수-타자-투수-타자-투수로 벌써 4번째 포지션 변경이다. 그나마 이번엔 본인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어리석게도 제 욕심으로 인한 미련한 마음 때문에 올해 다시 야수로 전향하게 되면서 많은 분들의 마음속에 상처도 주게 되고 특히 가장 가까이에 있던 코칭스텝 분들과 구단 모든 야구선수들 동료선수 그리고 팬 분들에게 신뢰받지 못한 선택과 행동을 한 것에 너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본인의 문제점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고, 지금 SK의 상황에 불펜으로는 제격이었던 선수라 의외로 반응이 나쁘지만은 않다. 단, 다시는 바꾸지 말고 투수로만 남아달라는 전제 조건 하에.

투수 재전향을 발표한 다음날인 6월 16일 한화와의 퓨처스리그에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1/3이닝 3실점을 기록했으며 18일 경기에서는 2/3이닝 1실점, 21일 두산과의 경기에서는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후로 두 달 넘게 등판이 없다가 9월 9일 LG전부터 다시 나왔다.

9월 29일 시즌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왔다. 김태우 기자에 따르면 최근 경기 최고 구속은 148~150 정도였고 지난해 항상 좋을 때 보다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전체적인 투구 밸런스와 제구는 나쁘지 않고 공의 힘과 움직임 모두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체인지업 구속은 130~132 정도였다고 한다.

4.4. 2021 시즌

4월 17일 이채호와 함께 1군으로 올라왔다.

4월 21일 라팍 삼성전 8회말에 김택형에 이어 4번째 투수로 등판했으나, 볼넷을 남발하며 3연속 밀어내기로 실점하는 등 커리어 최악투를 기록했다. 팀이 상대 선발타자 전원 볼넷을 허용한 건 덤. 8회말에만 41구를 던지는 난조를 보이는 바람에 라팍 불펜에서 잠시 서진용이 몸을 푸는 모습까지 나갔으나, 어째어째 강지광이 3아웃까지 책임지고 경기를 마쳤다. 이 때문에 본인의 시즌 평균자책점36.00으로 치솟았다. 스트라이크를 넣고 싶어도 넣지 못하자 사과를 엄청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4월 22일에 2군으로 강등됐다.

이후 퓨처스리그에서는 8경기 동안 8⅔이닝 5피안타 4볼넷 6K ERA 3.12를 기록하면서 반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7월 7일 두산전에서 0.1이닝 3실점 3피안타 2피사사구를 기록하며 무너졌고, 그 뒤로는 더 이상 등판이 없었다가 10월 13일 조용히 웨이버 공시되었다. 정작 방출 소식은 10월 31일 대거 방출자를 발표할 때에 가서야 기사가 났다.

이미 만 31세를 넘긴 선수이고, 한동안 2군 등판조차 없이 공백기를 가졌다가 방출당했다는 것은 부상이 있거나 기량 면에서 반등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 있기에 KBO리그 내 재취업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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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국 SK는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김태훈을 1차지명 했다.[2] 정확히는 이 당시 3루 주자였던 황재균이 태그 업을 시도하지 못했다가 실책이 이뤄진 후에 홈으로 들어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황재균 본인의 타구 판단 미스 때문이었다. 굳이 강지광을 변호하자면 이 당시 타구 위치가 손아섭이나 김문호같이 발이 빠른 선수였다면 승부가 가능했던, 좀 어중간한 타구 위치였다는 것.[3] 단 위에서 언급했듯 타 지역 전학생이어서 고교 졸업 당시에는 1차 지명을 못했다.[4] 심지어 스프링캠프에서의 등판 기록도 없었다(...).[5] 원래는 좌익수 노수광이었으나, 7회말에 김동엽이 지명타자 한동민의 대타로 들어가 8회초에 수비를 소화해 지명타자가 소멸하여,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