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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6 20:28:24

게임 판타지/비판

겜판소 비판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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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소재 자체의 약점
2.1. 게임 문화의 변화와 알맞지 않은 상황2.2. 현실성의 부족
3. 작가들의 문제
3.1. 소설이자 온라인 게임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몰이해3.2. 공정성에 대한 인식 미비3.3. 전개상 안전장치가 부족한 게임전개3.4. 기타
4. 설정의 미흡함
4.1. 게임 개발·운영의 이해부족4.2. 게임 시스템의 구성4.3. 기술발전에 맞지 않는 모습
5. 흔한 클리셰
5.1. 게임 관련 클리셰5.2. 등장인물 클리셰
6. 양판소와의 비교7. 옹호론과 실제 게임 판타지 연재와의 차이
7.1. 기술 형평성에의 지적7.2. 게임 시스템, 게임 기획에 대해7.3. 주인공 편향적인 소설?
8. 관련 문서

1. 개요

게임 판타지 소설 전반을 일컫는 겜판소라는 단어는 양판소와 같은 비판, 비난, 힐난의 어조로 쓰이기도 한다. 이때의 양판소는 '양산형' 판타지 소설이라는 명확한 비판적 대상을 가지고 있는 반면, 겜판소는 게임 판타지 소설이라는 분야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 이는 단순화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게임 판타지 전반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인식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서에서는 게임 판타지 소설의 퀄리티가 떨어지게 된 이유, 즉 게임 판타지 소설의 대부분이 양판소화된 이유에 대해 서술한다.

2. 소재 자체의 약점

첫째로, 겜판소는 게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게임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게임이 갖는 인식, 문화, 환경들이 문학적, 장르적으로 작품 수준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친다. 이 점이 게임 판타지의 장점이 되기도 하며, 약점이 되기도 한다.

2.1. 게임 문화의 변화와 알맞지 않은 상황

겜판소는 게임문화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10년대에 이르러서는 게임 판타지가 현세대의 게임문화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이 과정중에서 겜판소의 장점을 흡수한 대체장르들이 나타나며, 빠르게 현세대의 게임문화를 따라가지 못한 겜판소의 위축이 시작되고 있다.

이는 기존의 겜판소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주로 삼는데서 벌어진다. 기존 세대의 게임문화는 게임을 즐기는것에서 만족하거나,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형식이었다. 이러한 의식에서 출발하는 겜판소는 보다 게임을 잘하고, 즐기는 것이 주된 목적인게 대다수였고 이러한 목적 위에 겜판소가 쌓여가며 관련된 스토리, 클리셰가 형성. 이를 통한 장르적인 형식화마저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현세대에 이르러 게이머들은 게임을 1차원적으로 즐기지 않고,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매체와 방법으로 즐기게 되었다. 특히 게임을 하는 방법보다 보기만 하며 즐기는 방법이 더욱 인기를 끌기도 하였고, 게임을 이용해 방송을 하며 즐거움과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도 대두되기 시작했다. 내가 게임을 잘하지 않아도 프로게이머들의 프로리그가 과거보다 세계적으로 활성화되었기에 이를 보며 만족할 수 있으며, 또한 플랫폼이 다변화되고 게임과 접촉할 수 있는 관련 매체가 늘어나며 기존에 조명받지 않던 장르의 게임이 갑자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자신이 해본 게임에서만 습득할 수 있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게임 정보와 지식을 보다 쉽고 간편하게 습득할 수 있기도 하였다.

이처럼 현세대는 즐기는 것만이 아닌 다양한 관련매체를 소비하고 향유하는 방향으로 변한지 오래되었지만, 기존 겜판소의 클리셰와 내역은 즐기는 것을 골자로 삼는데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알맹이조차 랭킹 1위가 된다, 서버의 패권을 잡는다 같은 똑같은 구세대의 레퍼토리만 반복하게 되었다. 레이드물 같은 경우 어떻게든 참신한 스토리를 뽑아내기 위해 레이드 영상을 촬영해 인터넷 방송을 한다거나 몬스터로 먹방을 찍는다거나 같이 현실의 변화에 발맞춘 변화를 추구하거나 몇년 지나지 않고서도 다양한 파생 장르가 형성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형식화된 규모가 꽤 컸기 때문에 자신들의 장점을 가지고도 제대로 발맞추질 못한 것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장르소설의 유행 변화가 계속되자 결국 현재의 독자들에게 겜판소는 어색하고, 고리타분하게 읽혀지기 시작했다.[6] 이러한 상황에서 단점을 보완하는 신생장르와 겜판소 시스템의 퓨전이 발생하자 결국 본래의 겜판소는 소외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2. 현실성의 부족

현재 한국을 휩쓰는 영화는 마블을 위시한 수많은 히어로 영화들이다. 이와 같은 사례를 찾아보려면 일전의 반지의 제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즉 과거에는 판타지였으나 현재에는 히어로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의 문화 소비가 공상과 판타지를 현실의 대체제로 소비하는 것에서 나아가, 현실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문화로 변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르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장르소설은 과거 이고깽, 차원이동물, 판타지와 같은 이세계적인 환상에서 나아가, 현재의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 판타지, 회귀물기업물, 갑-을, 사이다 클리셰 같은 판타지를 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소설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리만족하려는 경향이 있다. 소설이 공상과 판타지적인 환상을 충족하는 것에서 나아가, 현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짚고 이를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즉 현실성이 보다 강화되었고, 독자들은 현실의 이미지, 욕구가 강하게 반영된 소설을 읽고 싶어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대변하는 모습중 하나는 이세계물의 변화이다. 이방인으로서 이세계에 추락해 이세계의 문화와 기술을 활용하며 성장하고 즐기는[7] 모습을 보이던 이고깽과 달리, 현재의 이세계물은 현대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이를 활용하며 발전하며, 한편으론 현실적인 딜레마와 고뇌를 느끼는 클리셰 다룬다는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장르소설은 현실성이 강화되었으나,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겜판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는 게임문화의 반영에 발맞추지 못한것과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길드패권전쟁, 게임을 통한 강력한 권력의 습득은 00년대 즈음엔 그래도 말이 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로 읽혀지는 것이다. 한편 계속 제기되어오던 겜판소 특유의 진지하지 못함, 결국 게임이라는 한계도 제대로 극복되지 못하는 가운데. 윗 문단과 마찬가지로 레이드물과 같은 보다 현실성이 강화된 신생장르들이 겜판소의 장점을 흡수해감에 따라 겜판소의 위축은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3. 작가들의 문제

겜판소는 게임이자 소설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장르소설판의 독자층을 확대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이 '게임을 그려내는 소설'을 읽고자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작가들에게 새로운 능력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즉 게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소설이면서도 게임이어야 하는 소설이라는 정체성을 요구한다. 이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게이머로서의 독자를 포섭하고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작가들에겐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논의의 미비는 필연적으로 겜판소의 많은 비판점을 낳고, 나아가 장르적인 정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말그대로 게임같지도 않은 소설이 수없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레이드물, 성좌물, 게임빙의물들이 기존의 단점을 대체할 안전장치를 찾고, 고유의 세계관과 특징을 크게 해치지 않으며 점점 발전해나간것과 대조적이다.

3.1. 소설이자 온라인 게임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몰이해

게임 판타지는 전혀다른 두 장르인 게임소설이라는 특징을 갖게 된다. 즉 '소설로서의 정체성'과 '온라인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이 공존하며, 막연히 한분류의 작법으로 대하면 안된다.

이는 게임 판타지의 정체성을 만든다. 게임을 읽는듯한 소설이라는 특징은 현실세계의 문화, 독자와 긴밀히 소통한다는 장점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동시에 문제도 만들어낸다. 소설이냐, 게임이냐는 것이다. 즉 있을법한 온라인 게임'이면서 동시에 '소설'이어야 하기 때문에, "소설로서는 말이 되지만 게임이기 때문에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생기기도 하며, "게임으로선 말이 되지만 소설로서는 재미없는 이야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둘중 많이 발생하는건 단언코 전자이다. 겜판소를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소설가이지, 게임 기획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즉 게임같지 않은 소설이 되는 것인데, 이는 설정충돌과 공정성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온라인 게임을 표방하지만 특정 소수에게만 유리한 구조이며, 초반부에 나왔던 최고의 스킬은 갈수록 쓰레기 스킬이 되어간다. 스탯은 기준없이 마음대로 부풀려진다. 때문에 독자들은 읽으면서 "말도 안되는 게임"이라는 느낌을 받고 몰입감이 떨어진다.

이러한 문제는 아래의 반론처럼 게임 이전에 "소설"이라는 말로 모두 무마하기엔 어려운 측면이다. 애초부터 게임 판타지는 작가들이 게임을 소설의 영역으로 끌고온 결과물이고, 그렇게 얻어낸 '게임이자 소설'이란 특징으로 성공을 했으면 이에 책임을 지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소설로서의 정체성에만 주목한 결과, 겜판소라는 장르는 현재에 이르러 다양한 장르로 해체되었고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는 분화와 발전이 아닌, 말그대로 장르적 종결에 가까운 모습일 뿐이고, 문제를 되짚어가면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에도 주목하지 않았다는 작가들의 문제가 나타난다.

3.2. 공정성에 대한 인식 미비

온라인 게임의 핵심은 공정성이고, 소설의 핵심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에게 이야기를 부여하려면 특별한 계기와 보상을 쥐어줘야 하지만, 온라인 게임의 공정성은 그러한 보상을 배제하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작가는 완전히 반대되는 두 개념을 동시에 다뤄야 하므로, 어떻게 해야 이 게임을 소설로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끝없이 궁리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러나 물론, 실제로 공정할 필요는 없다. 어찌되었든 게임 판타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의 정체성을 잃으면 안되고, 때문에 공정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8] 그렇지 않으면 온라인 게임을 배경으로 삼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정함을 대부분의 작가는 "특별한 히든클래스, 숨겨진 퀘스트, 버그, 치트"로 손쉽게 무너트리곤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한 고난도의 퀘스트는 사실 쉽게 해결할 방법이 있고, 주인공에게는 늘 편하고 지혜로운 샛길이 존재한다. 이처럼 몇 작가들은 이야기는 잘 짜낼지언정 소설의 기본적인 틀을 박살내게 된다. 게임으로서 전혀 공정해보이지 않는 것이다. 모두가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노력할때, 주인공은 환경너머에 존재하는 해법을 가져오곤 한다. 이러한 경쟁은 공정해보이지 않고, 따라서 온라인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는다.

이처럼 공정해보이지 않는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놓고, 독자들에게 게임 세상을 즐기라고 요구한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몰입감이 수직으로 하락하는 것이다. 게임 판타지의 기본은 독자들의 게임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그러나 소설속의 게임 세상은 자신이 알던 온라인 게임과는 한참 동떨어진 세상이니까.

이러한 문제는 나아가 겜판소가 각 장르에 찢겨지는 결과를 낳는데 일조하기도 하였다. 게임보다 소설에 치우친, 게임 세상 자체보다는 주인공의 활약에 더 집중하는 소설을 낳다보니 나아가 ' 굳이 겜판소일 필요는 없다'라는 결론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게임 시스템 속에서 주인공이 불공정하게 날뛰는 소설을 원한다면 게임빙의물이나 헌터물같이 훨씬 더 직관적이고 납득하기 쉬운 대체재가 있다.[9] 때문에 겜판소의 몰락이 가속화되었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3.3. 전개상 안전장치가 부족한 게임전개

독자들은 겜판소를 읽으며 자연히 자신이 한 적 있는 온라인 게임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제 게임과 겜판소 사이의 모순점을 쉽게 눈치채게 되는데 이 과정속에서 몰입감이 떨어진다.(그중 가장 많이 발견되는 모순점이 위에서 언급된 '공정성'이다.)

따라서 작가는 전개상 몰입감을 위해 다양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모순점이 없도록 미리 설정을 잘 짜두거나, 독자들이 눈치챌 수 없게 잘 가공하거나, 발견하더라도 납득하거나 잊어버릴 수 있도록 충분히 재미있게, 혹은 이야기의 핍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러한 안전장치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 같은 문제를, 많은 장르들은 납득가능한 장르적인 안전장치를 걸어둠으로써 해결한다.

그렇다면 겜판소의 히든클래스, 버그, 치트는? 같은 상황임에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온라인 게임은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서비스 상에서 유저들은 같은 출발선, 같은 룰, 모두가 선택가능한 선택지를 통해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게 된다. 만일 주인공이 성공조건을 조금 오버시켜서 조금 더 보상을 얻는다던지, 혹은 직업특성으로 일정퍼센티지의 보상을 받는다면 크게 상관은 없다. 룰 상으로 존재하고, 다른 유저들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든클래스 스킬'로, '치트, 버그'로, 주인공 혼자 모든 퀘스트마다 수배로 보상과 경험치를 벌어들이고 불합리한 편애를 받는 순간 독자들은 '망겜'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밖에 없게 되고 몰입이 극도로 떨어지게 된다. 앞의 여타 안전장치들과 달리, 핍진성이 떨어질뿐더러 세계관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즉 작가들이 고안해내고 유행하였던 설정, 전개상 안전장치들은 여전히 문제점이 많은편이고, 이를 조심히 다뤄야 했지만 많은 겜판소 작가들은 이를 깊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었다. 당장 주인공이 버그로 고생하면 독자들은 행복해하지만, 동시에 게임은 천천히 망겜이 되어가고, 독자들이 몰입할 이유가 없는 게임이 되어버린다.

3.4. 기타

겜판소에 난무하는 버그성 치트 아이템이나 스킬의 남발은 독자의 이입에 심각한 방해가 된다. 이미 현실에 진명황의 집행검이라는 아무나 얻기 힘든 사기 아이템이 있었지만 누구도 이를 겜판소 주인공의 치트 아이템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을 획득하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냥터 통제나 버그성 치트나 부정한 방법이라는 것은 동일하지만, 사냥터 통제는 유저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게임을 하면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그나 치트는 독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10] 온라인 게임 세계관을 제시해 놓고서는 작가가 편의주의적으로 이를 깨부쉈기 때문이다.[11] 거대 길드가 몇 년에 걸쳐 고생스럽게 만들어 낸 유일무이한 최강의 무기를 주인공이 스틸한 것과, 최강의 무기를 주인공이 아무런 시스템적 제지 없이 버그로 얻어낸 것, 독자들은 둘 중 어느 쪽을 더 '온라인 게임스럽다'고 여길까?

겜판소의 장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 뿐이라면 그건 작가의 능력 밖의 일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상당수의 겜판소 작가들은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보이지 않은 채 아무런 고민 없이 버그와 치트로 게임과 소설의 틈을 억지로 메우려 한다. 버그와 치트가 소설적 장치로 제대로 기능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일회성 설정으로 써먹고는 금방 잊어버린다. 아예 온라인 게임을 초월한 전혀 새로운 모습의 게임을 소설 속에서 창조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가 그렇게 창조했다는 말 한마디로 충분하니까. 하지만 온라인 게임 그 자체를 소설 속에 넣어놓고서는 앞뒤가 안 맞는 부분에 창작물이니까 괜찮다는 방패를 붙여놓는 것은 너무나 치졸한 짓이다. 재밌는 소설을 쓰기 위해 겜판소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소설을 쉽게 쓰기 위해 겜판소를 선택한 작가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4. 설정의 미흡함

달빛조각사』는 『신마법의대륙 패왕의진군』에서 설정을 따왔다. 이처럼 게임 판타지는 모티브가 되는 게임이 있다. 이 점이 역설적으로, 게임 세계관 설정을 미흡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모티브가 있다면 다른 판타지 장르와 달리 작가가 직접 해봤기 때문에 다루기도 쉽고 부담없이 쓰기엔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작가는 라이트 유저지 헤비 유저가 아니다. 헤비 유저들은 이런 소설 쓸 시간에 템 파밍 한번을 더 한다. 결국 작가는 모티브가 되는 게임을 깊이 알지는 못한 상태에서 세계관을 짜게 된다. 물론 작가가 노력해서 그 깊이를 메꾸면 되지만 그런 작가가 많지 않다는게 문제다.

따라서 원본 게임이 있는 덕에 기본 설정은 쉽게 짜지만, 동시에 원본 게임을 잘 파악하지 못하기에 세세한 설정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독자들도 직접 원본/비슷한 게임을 즐긴 경우가 많아 중세 판타지, 무협소설에 비해 오류를 지적받기도 쉽다. 그나마 작가가 원한다면 피드백이 쉽다는 장점은 있다.

작가는 개발자도 아니며 기획자도 아니고 프로그래머도 아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게임기획, 개발 과정,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별한 경우[12]를 제외하면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였을 뿐이며, 따라서 대다수의 게임 판타지 세계관은 본인이 해본 게임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여기에서의 게임경험은 플레이라 할수 있으며, 게임개발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게임 판타지계에는 겉은 게임. 속은 판타지인 소설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 게임의 탈을 썼지만, 그 실체는 게임과는 상관없는 판타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즉, 작가가 게임 시스템, 운영, 기획 등의 일반유저가 알기 어려운 사항에 대해 턱없이 낮은 이해도를 보이기에, 게임 판타지의 배경이 되는 게임의 설정이 굉장히 미흡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 판타지 소설은 결국 소설이다. 소설 작법에도 나와있듯이, 설정은 가장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현실세계를 다루는 것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다루는 소설에서 이러한 설정의 미흡함은 곧 소설 내용의 파탄으로 이어진다. 대다수의 게임 판타지는 레벨, 스킬, 아이템, 직업 등과 같은 게임 시스템, 밸런스를 중요한 요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 밸런싱의 붕괴는 곧 설정충돌로 직행하게 된다.[13]

그러나 이런 설정충돌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게임 판타지의 주된 흥미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주는 동질감, 유사한 경험에서 나타나게 된다. 헌데 이러한 오류가 쌓이고 쌓이면 게임 판타지는 게임으로서의 속성을 잃어가기 때문에 독자는 잘 읽던 이야기가 삼천포로 가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렇게 게임 판타지을 읽던 이유 상당수를 잃어버리게 되는 셈이다. 이에는 후반부로 갈수록 시스템에 대한 설정, 묘사가 사라지고 사실상 판타지화 되어간다던지, 아예 퓨전 판타지로 변해버리는 모습들이 자주 나타난다.

물론 작가의 본분은 스토리텔링에 있다. 흥미본위로 돌아가는 게임 판타지계는 그러한 설정을 짤 시간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설정에 힘을 빼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에만 집중했다면 모를까 이는 변명이 되기 어렵다. 그러한 비전문의 분야를 조사하고 관찰하는 것 또한 작가의 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관련서적을 읽고 주변의 게임의 시스템을 연구해본다면 지금과 같은 오류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톨킨이나 여타 유수의 판타지 작가들은 판타지 세계에서 살다 와서 작품을 현실감있게 썼고, 미생의 작가는 직장인이어서 직장인들에게 공감받는 만화를 그렸던가.

좋든 싫든 환경이 따르지 않든, 대다수의 게임 판타지는 준비를 태만하게 하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우며, 그리고 그러한 비판을 받는 항목은 주로 다음과 같다.

4.1. 게임 개발·운영의 이해부족

좋은 설정을 만드는 것은 오류가 없으면서 밸런스가 맞는 게임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작가는 게임 기획자가 아니며, 따라서 이러한 밸런싱 부분에 비전문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세계관과 크게 연관없는 스토리만을 써내려간다면 밸런스는 상관이 없겠지만, 게임 시스템, 이른바 랭커라든지, 스킬, 화폐구조와 길드 시스템 등을 서술하게 된다면 반드시 그러한 밸런싱, 오류수정을 겸하게 될 수밖에 없다. 스킬 하나 수정으로 밸런스가 개판난 사례는 현실의 게임에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게임 판타지에서 작가의 역량은 더더욱 시험을 받는다.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소모적인 유희나 카타르시스, 기본 스토리까지도 진행해야 한다. 따라서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밸런싱을 다루기 어려워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게임 밸런싱이 붕괴하고 장르 자체가 모호해지는 막장 전개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나게 된다. 이에 대안으로 순수 게임 판타지 소설이 아닌 퓨전판타지와의 융합을 꾀한 작품들이 잠깐 뜨기도 하였다. 정상적인 게임이 아니니 시스템도 비정상인 것이라는 것.

소설에 나타나는 게임은 대부분 '이게 게임인가?' 싶을 정도로 막장인 운영상태를 보이곤 한다. 이는 위의 밸런싱 문제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게임기획자도 아니며, 운영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미흡한 지식을 인지하지 못하고 판타지마냥 써댈 경우, 막장운영 수준의 게임을 만들기 쉬워진다. 이러한 미흡함에서 나타나는 막장운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물론 '현실적인' 히든피스라면 많이 있다.[14] 하지만 현실의 히든피스들은 말 그대로 숨겨진 조각일 뿐, 기본적으로 밸런스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모든 유저가 노력과 운에 따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게임 판타지에서는 일단 주인공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히든피스를 남발한다.
무협의 기연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이건 현실의 게임을 바탕으로 하는 게임 판타지 소설이다. 플레이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돌아가게 하는 게임이 밸런싱이 잘 잡히고 인기 있는 게임이다. 이런 기회를 돈으로 뒤집어버리는 운영이 현실에서 많은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데, 버그로 어떤 유저가 공짜로 많은 이득을 얻었다?
이러한 묘사가 생긴 건 『울티마 온라인』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초기 한국에서 서비스되던 『울티마 온라인』의 경우 자원봉사자와 GM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그들이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18] 그리고 GM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이런 묘사가 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GM이 실제로 뭘 하는 직종인지 아는 유저는 드물다. 일반적인 GM은 절대 권력자가 아니며, 게임 운영을 위해 열심히 구르는 존재다. GM은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큰 권한은 없다. 물론 책임을 져야 하는 팀장급은 정규직이니 제외. 뿐만 아니라 GM은 게임을 운영하는 'GAME MASTER'지 개발자나 기술자가 아니다. 물론 이건 현재의 게임 얘기고 미래의 게임에서는 GM이 다 해먹는다는 설정을 짜두면 또 모른다.
물론 막장 GM의 사례가 실제로 없는 건 아닌데, 『리니지』 초창기에 특정 유저나 혈을 밀어주던 GM이라든지,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GM들이 대표적이다. 현재도 운영이 막장화된 온라인 게임에서는 막장 GM이 버젓이 활동한다.

4.2. 게임 시스템의 구성

게임의 시스템 구성 또한 위와 같은 맥락으로 문제가 되곤 한다.
물론 주인공 보정이라는 게 있고 실제로 어려운 코스를 간단히 극복하는 게 없는 건 아니다. 권선징악의 쾌감도 줄 것이며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도 주어진다. 하지만 수천만의 인원이 플레이하는 게임이 이런 식으로 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그 게임이 아무리 잘 만들어졌어도 소수만을 위한 게임이 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이탈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런 식의 진행은 독자의 몰입감을 떨어트리는 요소가 된다. 주인공에게 닥치는 위험이 위험같지가 않아지기 때문. 이는 나중에야 정신차리고 주인공에게 난관을 줘도 몰입이 어렵게 한다. 케릭터에 대한 작가의 과도한 애착과도 관련이 있다.

4.3. 기술발전에 맞지 않는 모습

등장하는 가상현실의 수준은 오버 테크놀로지 수준으로 엄청나지만, 게임 시스템은 구시대적인 MMORPG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기본적인 게임의 시스템이 고무줄처럼 쓰여지는 경우도 상당하다.

5. 흔한 클리셰

대다수의 요소는 초기에는 신선하였으나, 이후 남발하면서 흔한 클리셰로 정착하기도 하였다. 이의 남용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 상황.

5.1. 게임 관련 클리셰

그러나 실제로는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화폐를 찍어내는 거나 마찬가지이므로 게임상의 화폐가치는 게임사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26] 때문에 게임회사에서는 간간히 도박성 짙은 아이템을 추가해서 그렇게 풀린 화폐를 회수하려고 하거나, 『EVE Online』처럼 엄청난 양의 재화 소모가 아예 일상화된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러한 돈의 가치는 금전에 쪼들리는 주인공이 게임을 해야하는 당위성을 부여해 준다. 대리만족의 시작이자 끝인 겜판소의 전개 상 현실적인 노가다를 통한 작업장 방식보다는 PK나 레이드를 통한 득템으로 일확천금을 얻게 된다.[27] 대부분의 겜판소에서 후반부쯤 가면 주인공은 게임머니만으로 재벌이 된다. 1권에 찢어지게 가난해서 할 수 없이 게임을 시작한 주인공이라도, 전혀 환금을 하지 않고 오로지 게임 속에 재투자한다.
왠지 갇혀서 못 나오거나 거기서 죽으면 진짜 죽는 막장게임이 꽤 있다. 바다에 빠져 질식사 했더니 실제로 질식사를 한다던가. 이러한 과다 싱크로율에 대한 설명으로 상당수 작품들의 경우는 반전을 이용하는데, 바로 그 게임이 사실은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29]

5.2. 등장인물 클리셰

대다수의 겜판소의 경우 주인공이 하는 게임이 전 세계 온라인 게임 마켓 점유율의 9할 이상을 차지하며, 조금 설정을 짠 경우 주인공이 하는 '장르'가 쉐어의 9할, 조금 더 설정을 짤 경우 다른 장르의 가상현실 게임이 등장하기도 한다. 가상현실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것은 PARC도 IBM도, 마이크로소프트 레드먼드도 아닌 게임 회사. 애초에 가상현실을 구축하려 연구하다가는 그 게임회사는 100% 망한다. 마치 컴퓨터가 나오기 전에 보드게임 회사가 컴퓨터를 개발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 기술을 다른 분야에 응용하지 않는다.
게임플레이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리기 위해 보통 뇌파를 제어해서 체감 시간을 늘리는 기술이 적용되는데, 놀랍게도 이것을 업무/학습에 응용하거나 기타 작업시간을 단축하는 데 응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고작해야 『신마대전』 정도일까.[32]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영화 『게이머』 등 가상현실 기술을 군사 목적으로 응용하려는 시도가 가뭄에 콩 나듯이 보이기도 하나 대부분은 그런 거 없다. 현실과 동일한 느낌으로 리얼한 피드백이 되질 않아 실용성이 없어서 활용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하는 작품도 있으나, 장비 조작법이나 다양한 상황을 훈련받을 수 있다는 점부터가 큰 메리트라는 점[33]을 생각하면 그다지 납득이 되는 부분은 아니다.

6. 양판소와의 비교

본 내용을 압축하면 빈약한 설정, 개연성 붕괴, 클리셰 남발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양판소의 문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겜판소와 판타지 소설의 공통점이라면 왠지 쓰기 쉬워 보인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없이 대충 설정 만들어내서 게임이니까, 판타지니까 대충 진행시키는게 가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입장벽이 굉장히 낮다는 것. 그러나 보기와는 다르게 좋은 게임설정, 판타지설정을 짜는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즉 능력없는 작가들이 함부로 뛰어들었다가 피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 개연성, 클리셰 문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개나 소나 겜판소, 판타지소설을 쓸 수 있으니 그만큼 망작 비율이 많을 수밖에.

7. 옹호론과 실제 게임 판타지 연재와의 차이


이 문서는 대부분 형평성에 맞지 않는 설정을 지적하고 있다. 이 지적은 여러 소설의 스토리, 설정 붕괴와 부실을 지적하기 때문에 얼핏 타당하게 들리고 이를 지킨다면 괜찮은 게임 판타지을 쓸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점은, 이 항목은 독자 입장에서의 비판이 다수 섞여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작가의 입장에 서서 이 비판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면 겜판소라는 장르 자체를 쓸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독자-작가간의 온도차 문제는 게임 판타지가 '게임'을 다루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혼동되며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7.1. 기술 형평성에의 지적

이 항목엔 기술 형평성을 지적하는 서술이 많다. 놀라운 기술이 게임에만 쓰이고 현실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것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겜판소라는 장르 자체는 놀라운 기술을 토대로 미래에도 실현되기 어려운 게임을 즐긴다는 설정을 깔고 가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기술 형평성의 오류는 자연스럽게 타협이 된 상태로 읽게 되므로 노골적이지 않은 이상 괴리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또한 작품에서 현실과 가상현실을 동일한 비중으로 다룰 게 아니면 기술 발전이 사회에 미치는 보편적인 영향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인간과 다름없는 고성능 인공지능 로직을 탑재한 NPC가 게임에서만 쓰인다 한들 작가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고 독자들이 반발하지도 않는다. 만약 이게 문제가 되었다면 원자력방사능에 대한 지식이 보편화된 현대 사회에서도 헐크가 유행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34]

7.2. 게임 시스템, 게임 기획에 대해

특히 위 항목에서는 게임 기획, 시스템과 연관하여 게임 판타지 설정 준비의 미흡함을 다수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가장 중요한 점은 게임 판타지란 '게임'을 기획하는 게 아니라 소설을 집필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게임 기획은 참고가 될 순 있어도 소설 집필과정에서 철저하게 본받아야 할 항목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게임 기획과 소설은 골격부터가 다르다. 소설은 단방향적이지만, 게임 기획은 상호작용적인 성격을 전제하고 만들어내는 전혀 다른 분야이다.[35] 예를 들어 게임 스탯공식을 계산한다고 가정하자. 실제 게임 기획에서는 표준정규분포 모델 등 통계학, 경제학 모델을 동원해서 스탯 공식을 계산한다. 게임 월드가 너무 빨리 만렙 유저로 포화되는 것을 막고 아이템 가격에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인데 소설에서 이런 걸 계산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소설에서는 작가가 묘사하고자 하는 장면만 묘사되고 묘사된 장면만이 소설의 전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소설 전개상 주인공이 이 장면에서 10레벨을 올려야만 한다면 스탯 공식은 집어치우고 당장 10레벨을 올려줘야 하는 것이다.

이는 스탯 외의 시스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게임 판타지에 쓰일 게임 시스템을 짤때엔 이야기 장치로서의 역할에 비중을 더 두고 생각해야 할 일이며, 게임 기획 방법론은 어디까지나 참고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뿐만 아니라 게임 시스템에도, 현실성에도 그리 엄격할 필요는 없다. 생각해보면 텔레파시수준의 통신이 가능한 가상현실 기계가 있는데도 굳이 가상 키보드가 나온다거나 알림창이 나온다는 것부터가 오롯이 게임 기획이고 시스템적인 요소로 작가가 설정한 것이다. 만약 주제와 이야기만 확실하다면, 전뇌공간에 천지인 자판이 나와도 독자는 조금의 괴리감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하드 SF가 아닌이상에야, 스토리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 아니라면 게임 시스템 고증과 현실성은 작가 마음대로 설정할 부분이다.

또한 실제 게임 기획에서는 확률과 통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은 스토리의 필연성이 핵심이기 때문에 확률통계를 먼저 계산하는것은 옳지 않다. 예를들어, 강화 성공 확률이 0.01퍼센트라도, 스토리상으로 그 강화를 성공하는 것만이 이후 진행에 아주 중요하고 확실하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다면, 그 강화는 성공해야만 한다. 그러나 만약 0.1%가 성공할때까지 돈과 시간을 미친듯이 쏟아붓는게 스토리상으로 중요하고 재미가 있다면, 그래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게임 판타지/비판에서처럼 게임론에 신경쓰면서 스토리를 진행하는게 아니라, 게임 이전의 소설으로서의 기능에 집중하여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이 전개를 남발하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 문제가 있다.

7.3. 주인공 편향적인 소설?

주인공 편향적인 스토리는 소설인 이상 어쩔 수 없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물이고 두번째가 사건, 마지막이 배경이다. 배경인 게임이 인물을 제대로 받쳐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갈아엎어버려야 할 정도로 인물과 주인공은 중요하다.[36]

때문에 이런 입장에서 보면,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공정성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이야기이다. 예를들면 현실에선 프로게이머가 아닌 이상 PvP의 승률은 50% 언저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겜판소에서 주인공이 한번 이기고 한번 지고를 반복한다면? 독자에게는 답답하고 진전이 없는 주인공으로 읽혀지기 쉽다. '플롯 반복'으로 인한 스토리 기대에의 하락이란 측면에서의 지적이 우선이 되고 중점으로 다뤄져야 할 문제이지, 공정성을 먼저 언급하는것은 소설으로선 괴상한 일인것이다.

또한 버그에러로 인해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템을 얻는 전개가 비판받는 이유는 대개 그 전개가 주인공을 아무런 댓가 없이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지, 그 자체가 문제인것이 아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쉬운데, 손쉽고 약한 튜토리얼 몬스터를 잡는 퀘스트를 수행하던 주인공이 버그나 우연으로 인해 방어력이 마이너스인 갑옷을 착용하게 되어 튜토리얼 존에서 남들은 하지 않은 개고생을 한다던지등의 시련으로 몰아넣기 위한 버그는 독자들이 상당히 환영하는 전개이다.

8. 관련 문서



[1] 양판소조차도 사망에는 얄짤이 없으며, 부활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 대가가 크다고 나오는 편이다. 따라서 캐릭터를 어느 정도 조심스럽게 다루게 되지만, 겜판소는 그런 게 전혀 없는 상태다.[2] 캐릭터 삭제, 레벨 다운[3] 다만 실제의 죽음과 연결시키는 경우 등장인물들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가 메인이 되고 게임은 그냥 세부적인 설정으로 변해서 게임 판타지보단 생존물의 느낌이 강해지기 때문에 좀 애매하다.[4] 직접 조작할 수 없는 시네마틱과 강제 이벤트의 비중이 큰 콜 오브 듀티 시리즈 같은 경우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게임보다 영화에 더 가깝다고 평하기도 한다.[5] 그리고 인터넷 방송/한계 항목에서 말하듯이, '내가 즐기기 위한 게임'과 '남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게임'은 다르다. 많은 겜판소 작가들이 착각하는 점이기도 하다.[6] 과거와 다른 MMORPG의 인식을 보는것도 중요하다. 겜판소의 주류는 MMORPG인데, 과거 MMORPG는 다수가 즐기는 주류게임이었으나 현재에는 과도한 현질과 폐쇄성으로 인해 린저씨들이 주로 하거나, 그만큼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만 한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MMORPG를 다룬 겜판소가 마찬가지의 인식과 평가를 피하긴 어렵다는 것.[7] 주로 하렘으로[8] 달빛조각사의 이현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달빛조각사가 사기다 아니다로 갑론을박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밸런스가 맞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공정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주인공이 이기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론상 최강이지만 컨트롤이 어려워서 사장된 직업인데 주인공이 신컨이라거나, 적이 결정적인 순간 뻘궁을 날렸다거나, 기가 막힌 타이밍에 지휘크리가 떴다거나. 어찌됐든 독자가 그 순간을 시스템에 기반했을 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납득할 수만 있다면 된다. 이걸 버그와 밸붕 치트로 대충 때우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9] 겜판소가 쇠퇴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공정하면 자극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공정하지 않으면 온라인 게임의 존재의의를 상실하게 되는데, 이 미묘한 밸런스를 잡을 수 있는 작가는 극히 드물었다.[10] 사냥터 통제는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짐승들이 자신의 사냥터에 다른 경쟁자가 오면 쫒아내는 것을 생각해보자.) 버그나 치트는 그렇지 않다.[11]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태어난 장르가 게임빙의물이다. 혼자 즐기는 싱글플레이 게임을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에 주인공을 굴리든 최강으로 만들든 버그가 난무하든 독자는 납득할 수 있다. 아무런 눈치 보지 않고 주인공만을 위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과 싱글플레이 게임은 같기 때문이다.[12] 작가의 전직이 개발자였거나 프로그래머였던 경우[13] 스텟 수식의 오류, 떡밥회수 실패, 스킬과 아이템 밸런스 붕괴 등.[14] 이스터에그로 존재하는 특수한 아이템이나 칭호, 또는 한정 이벤트로 얻은 아이템 등.[15] 버그는 말 그대로 개발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생긴 현상을 말한다는 것을 명심하자.[16] 한 가지 예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불타는 성전 확장팩이 출시되기 전에 날아다니는 탈 것을 보여줬던 GM이 있었는데, 곧 짤려버렸다.[17] 실제로 클로저스에서 이와 매우 흡사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운영진 측은 곧바로 내부감사에 들어가 유출한 직원을 곧바로 해고하고 유출된 정보를 직접 획득한 유저는 게임 영구 정지라는 중징계를 먹였다.[18].hack』 시리즈에서는 GM이 개발에 대한 권한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19] 대체로 아는 게임에서 복사하고, 조금 변용을 가하는 정도다.[20] 다만 대부분의 게임 판타지 내 게임은 어떤 천재에 의해 이미 완성되어있다. 즉, 밸런스 패치라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21] 하루 사망 패널티는 『달빛조각사』가 대표적이다.[22] 심지어 접속기는 해당 게임만 접속가능한 전용 콘솔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23] 레벨업 이후 달라진 사람들의 태도와, 강력한 몬스터를 압도적으로 잡는 모습은 익숙할 것이다.[24] 유니크아이템이라든지, 고레벨 퀘스트 등[25] 극단적으로 『레이센(소설)』의 경우 현거래로 창업자본금을 모으는 것이 바로 게임을 하는 목적. 다만 레이센의 경우는 작업장 스토리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해당 클리셰를 많이 벗어난 편이다.[26] 《달빛조각사》의 경우 이 사실을 언급하며, 유저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화폐 가치 하락이 덜하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또한 골드의 환율을 비롯해 서버에서 현금이 얼마나 돌아다니는지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으며, 주인공의 수입은 아이템 판매에서 방송국 중계로 전환함으로써 현금과 골드를 분리했다. 나름의 해결책을 보여준 셈이다.[27] 노가다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희화화되거나 몇 줄로 생략하고 끝난다.[28] 물론 계정 방식으로 운영돼서 주인공이 넷카마짓 하는 소설도 있다.[29]하룬』이나 박건이 쓰는 대부분의 작품을 보면 사실 그 게임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수단이라거나, 높은 경지에 있는 이들의 기술을 배우기 위한 거대한 학습의 장이었다는 식.[30] 물론 평범하게 생각해보면 게임에서 잘 싸우겠다고 현실에서 무술 배우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다. 평범하게 같은 유파들끼리 예의 차리고 시합장에 올라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온갖 병기에 괴수, 괴물, 그리고 마법 같은 초현실적인 공격수단까지 나오는 게 게임이다. 그런 싸움에서 고작 몇 개월, 몇 년 배운 걸 응용해서 대처할 수 있을 정도면, 그 무술에 더 진지하게 도전해볼 경우에는 그 쪽 업계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을 수준의 재능이란 것이다.[31] 심하면 현실 내용이 아예 안 나온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예 빼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32] 인터넷이 개발되기도 전에 나온 세계 최초의 사이버펑크 소설인 『스노우 크래쉬』에서 이미 가상현실의 시간 연장을 이용한 가상 기업체제가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33] SteelBeasts 같은 소프트웨어가 도대체 왜 팔리겠는가.[34] 단 이 예시는 부적절할 수 있는데, 위에서도 언급됐듯 헐크의 설정은 단순 감마선에 쬐인 것에서 감마선과 슈퍼 혈청의 복합적 반응에 의한 것으로 변경되기도 했으며, 애시당초 헐크는 헐크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실험의 결과도 아니고 다른 실험을 진행하다 발생한 사고의 산물일 뿐이다. 게임의 초월적인 기술이 다른 곳에 쓰이지 않는다는 비판점에 대한 반론으로 제시되기엔 애매하다는 것.[35] 전문 용어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36] 예를들면 대규모 업데이트가 일어났거나 주인공이 돈을 좀 벌어서 VR기기를 더 고급으로 업그레이드했다는 설정등으로 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