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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시 유키나가(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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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의 뜻대로만 되지 않을 것입니다."

小西行長 / 소서행장

1. 개요2. 작중 행보3. 비판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의 서브 빌런. 이광기[1]가 연기한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출생년도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555년생 또는 1559년생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출정 당시 나이는 만으로 37세 또는 33세. 드라마에서는 새치가 많아 실제보다 나이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2]

2. 작중 행보

2회에서는 라이벌인 가토 기요마사와 신경전을 벌이는 한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속마음을 파악하는 지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다.

처음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모습이 묘사되지 않았고 오히려 도요토미의 의견에 찬동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건 전부 페이크. 4화에서 사위 소 요시토시에게 확실한 반전 의견을 보인다. 단지 도요토미에게는 이를 말하지 않을 뿐. 전쟁이 나면 자신은 화살받이가 되고 자신이 보호하는 천주교 신자(기리시탄)들은 몰살당할 가능성이 있어 반전론을 가지고 있지만, 도요토미의 눈 밖에 날 것을 경계하여 도요토미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어 주고 음지에서 전쟁을 막아 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이도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8회에선 국서도 조작하지만 되려 히데요시의 전쟁 명분을 보태주는 결과가 되고 말았고 조선의 행동에 답답해 한다. 일단 전쟁이 기정사실화 되었기에 화살받이가 되는 걸 피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원정으로 군사가 출정하면 반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선봉으로 세우자고 주장한다. 도쿠가와를 선봉으로 세우는 작전이 실패한 후 10화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선봉장으로 나서서 쓰시마에 잠시 체류하는 동안 마지막으로 조선과 접촉해본 후, 설득에 실패하면 가능한 빨리 조선 왕의 항복을 받아내서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을 세운다.

11화에서 가토와의 모의전투에서는 승리하지만 이후 가토가 유도한 일기토에서는 패했다. 하지만 목검이 아니었다면 칼이 부러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어차피 백병전에서 이겼으니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가토에게 또 한 방 먹였다. 이후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조선 왕을 잡으려면 얼마의 기간이 필요하겠느냐??"는 도요토미의 질문에 "3달은 걸립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대노를 사고, "1달하고 보름 안에 해결 못하면 할복하라!"는 명령을 듣게 되었으며 그나마 이시다의 위로를 받는다. 12화에서 평의지를 조선에 보내 모든 정보를 다 주면서까지 전쟁을 막으려 하지만, 또 문전박대만 받으면서 그 마지막 노력도 물거품이 되었고 결국 자포자기를 하며 "믿지 못하면 직접 보여주어야지"라며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마침내 제1군을 이끌고 부산앞바다를 향해 출전한다. 13화에서는 역사대로 부산진성동래성을 연이어 함락시킨 뒤, 학살을 자행하며 죽령을 돌파한다. 물론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항복을 권유한 뒤, 그의 결사항전의 의지를 느끼며 감탄하였고 전투가 끝나고 그의 시신을 고이 묻어주라는 명령도 내린다.

14화에서는 지나가는 고을마다 남아있는 관리가 없어서 협상을 할 수 없음에 한탄하고 본토에 승전 서신을 보내는 한편 이시다에게도 별도로 조선과의 협상을 위해 일본 내의 분위기를 만들어달라는 서신을 보낸다. 그리고 소 요시토시로부터 상주에서 사로잡은 역관을 이용해 영의정 이산해의 사위인 이덕형을 통하여 강화협상을 하자는 의견에 동의하고는 역관을 풀어주어 이덕형을 데려오라 한 뒤 조령을 지나가는데 이곳에 매복이 있었다면 큰일날 뻔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탄금대에서 신립의 군대와 마주보며 전투준비를 명한다.

15화에서 신립군을 보며 제대로 된 전투를 한다고 기대하면서 소 요시토시의 의견에 동의하며 군사들을 좌우로 나눠 공격할 것을 지시한다. 전투가 막바지에 이를 때 남한강이 밑에 있는 절벽으로 몰린 신립과 김여물을 바라보았고 정정당당하게 둘이서 싸우자는 신립의 말에 조총사격지시로 답을 한다. 그러나 신립과 김여물이 강을 향해 뛰어내리는 것을 놀라며 그들이 뛰어내린 강을 바라보았고 아군의 피해가 심한 것을 걱정하면서 최소한 한양은 점령할 생각을 한다. 이후 찾아온 가토에게 뒷따라오느라 수고가 많다고 선공을 한뒤 가토가 1군의 피해를 우회해서 반격을 하자 다시 사야가의 일로 역관광을 한다. 이후 작전회의에서 자신은 조선의 지리에 안다며 가토에게 단거리루트를 양보하고 여주-양근을 거치는 장거리를 선택하면서 묘시(오전 5시~7시)에 가토군과 동시에 출발하자고 한다. 그러나 이는 가토를 속이기 위한 방책이었고 부상병과 남아 눈을 속이고 바로 요시토시를 휘하로 선봉대를 몰래 보낸다. 그리고 이덕형의 부재에 아쉬워한다.

16화에서 가토가 약속시간을 어기고 출발했다는 소식에 이럴 줄 알았다며 본군에 출발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겐소가 조선왕의 생존여부에 대해 묻자 조선의 민심에 따라 정하여 조선의 민심을 얻을 것이라 한다. 드디어 먼저 한양에 입성하나 궁궐이 불타버리고 조선왕이 몽진을 한 사실을 알고 멘탈붕괴되어 격분한다. 17화에서 버려진 주막에 모여 식사와 부상치료를 하는 부하들을 바라보다가 진군을 멈추고 한양에서 민심수습 및 대민정책을 시행하라는 우키타의 명령서를 보고 이에 동의하며 보름치 군량 중 3일치를 풀어서 백성들의 인심을 모은다. 한편, 자신의 입성에 방해한 것에 분노하는 가토를 보며 '넌 나를 이길 수 없다'며 비웃는다. 18화에서는 먼저 본진이 입성한 공으로 우키타로부터 진격로를 먼저 부여받는 영광을 얻고 가토를 비웃듯이 선조가 파천을 한 평안도를 택한다. 조선수군에 의해 보급이 끊겼다는 소식에 전라도의 조선수군이 관할 구역을 넘어오는 걸 예상치 못해 생긴일로 파악하며 이순신을 막 부임한 애송이로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후 전라도등 조선 남도의 근왕병들이 북상하고 임진강에 조선군이 방어선을 펼친다는 사실을 알리며 가토의 주장대로 선제공격을 하자고 우키타에게 말한다.

19화에서는 자신의 척후부대가 전멸한 것에 대한 분노와 복수로 움직이려는 가토를 비웃지만 전라도 등 조선 남도의 근왕병들이 북상하고 임진강에 조선군이 방어선을 펼친다는 사실을 알리며 공격을 주장하는 가토의 말에도 동의하면서 함께 치자고 한다. 이후 임진강의 모든 배가 조선측이 소개하자 협상을 하러하지마 오히려 가토가 이를 역이용한다.

20화에서는 자신 대신 겐소를 보내 이덕형과 담화를 나누면서 자신들의 목적은 조선이 아닌 명나라임을 재확인시키며 조선은 명나라로 가는 길만 열어주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이덕형이 항전을 주장하면서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대동강에서 진을 치며 감시원인 오타 카츠요시의 압력과 대동강의 도하문제로 고전하던 중에 진지가 적의 습격을 받게되어 습격한 조선군을 추적한다. 그런데 추적하다 조선군이 얕은 강가인 왕성탄으로 도망치는 것을 목격하고 상황을 타개할 수 있게되자 오히려 조선왕에게 향하는 길이 저절로 열렸다고 기뻐한다. 이후 대동강으로 진격하여 평양성 전투를 치러 승리한다.

21화에서 평양성을 점령하고 조선군이 비축해둔 군량 10만석까지 얻는 행운을 얻었으나 병사들의 피해로 진격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진격을 강요하는 오타 카츠요시의 강압에 시달려 스트레스지수만 높이고 있다.

24화에서 조승훈이 이끄는 명나라 군사를 상대로 성을 비운 것으로 위장해 기습공격하여 섬멸한다. 하지만, 여전히 평양성 위로는 진격을 못하는 상태. 때마침 찾아온 이시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명나라가 참전한 이상 명과의 직접 협상으로 전쟁을 끝낼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설득의 방법으로 분할통치론을 내세울 것이라고 한다. 또, 가토가 임해군을 포획한 사실을 듣는다.

29화에서 조명 연합군에 밀려 평양성을 빼앗긴다. 그러면서도 토굴에 숨어 명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펴면서 철저항전하려 하나, 자국 병력의 손실을 우려한 이여송이 그의 퇴로를 열어준다.

32화에서 행주산성 공격에 참전하는데 기세 좋게 돌격을 했다가 비격진천뢰 공격에 나자빠지면서 첫 돌격은 후퇴로 끝난다. 마지막 공격에서는 목책까지 뚫어서 백병전을 벌이나 우희다수가가 변이중 화차에 맞고 쓰러진 이후 퇴각나팔 소리를 듣고 분해하면서 퇴각한다.

33화에서 가토와 대면해 언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가토가 먼저 고니시의 연패를 지적하면서 기선제압을 했으나 고니시는 가토를 향해 "함경도에서 일개 의병장에게 패해서 훈도시 차림으로 달려왔다고 진중에 소문이 파다하더라?" 라고 역공을 날려 가토에게 망신과 분노를 동시에 안겨준다. 이 과정에서 고니시가 함경도의 추위를 언급하면서 가토의 아래쪽을 힐끔 쳐다보는 장면이 개그 포인트. 이후에는 심유경과 함께 희대의 사기회담을 진행하면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주고받는다.

장문포 해전 직후 이순신이 아니라 상대한 것은 의병이라면서 가토를 조롱한다.[3]

심유경과도 사이좋게 지내다가 46화에서 드디어 자신과 심유경의 사기극이 히데요시에게 발각되고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히데요시의 분노를 사게되면서 꼼짝없이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때 그는 히데요시에게 이순신을 잡을 계책을 마련했다며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고니시는 조선 사정을 잘 알면서 이순신과 조선 조정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점을 이용, 이순신을 잡는 계책을 내놓는다.
① 가토가 선봉으로 출전하여 조선 해협에 침입한다.
② 조선 조정은 이순신에게 가토를 공격하라 명한다.
③ 적의 함정임을 눈치챈 이순신은 일부러 출정하지 않는다.
④ 조선 조정이 발칵 뒤집혀 이순신을 압송한다.

고니시의 비범한 머리가 다시 한번 빛나 안그래도 조선 조정의 견제로 어려움을 받던 이순신에게 한방 먹인 결정적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순신이 삭탈 관직당하고 원래 이순신이 있었던 삼도 수군통제사에 원균이 부임하자 칠천량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때 고니시는 요시토시와 대화를 하면서 이순신은 결코 부산으로 출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 이유로 이순신의 '단점'들을 지적한다. 첫번째는 '싸움의 승산이 확실하지 않으면 출정하지 않는다', 두번째는 '군사들의 불필요한 희생을 두려워한다'.[4]

하지만 이순신이 다시 복직하고 명량 해전으로 남해안으로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상황은 다시 불리해진다. 게다가 그토록 주군으로 모셨던 히데요시마저 병사하고 철군하게 되자, 목적을 눈앞에 두고 왜 혼자 죽냐며 분개하고 절규했다. 최종화에서 본국으로 철군하려다가 처하게 된 노량 해전에서는 먼저 가버린 히데요시를 향해 "보고 계십니까! 결국 이렇게 허망하고 참담하게 끝나지 않았습니까!" 라고 외치며 절망적인 심정을 드러내었다. 배우 이광기의 열연이 돋보인 장면. 전쟁이 끝나고 히데요시를 배신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편을 바꾼 가토 기요마사[5]와키자카 야스하루, 구로다 나가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호소카와 타다오키, 나베시마 나오시게, 도도 다카토라 등과 달리 끝까지 도요토미 편에 남은 고니시는 2년 뒤 임진왜란 이후 벌어진 혼돈의 마지막 전투에서 패군지장으로 붙들려 참형으로 생을 마감하여 역사의 패자로 사라진다.

3. 비판

중간에서 국제사기극을 벌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히데요시에게 충성했던 인물인데 히데요시와의 관계를 이상하게 꼬아 놓아서 이 드라마만 봐서는 세키가하라에서 가토와 고니시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또한 반전을 주장하면서 조선이 계속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다고 까고 그러는데, 본 드라마에서 조선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만든 결정적인 장본인이 자기라는 사실을 계속 무시했다.[6] 도요토미의 조선 침략 야욕을 계속 명나라 조공같은 이유로 위장해대니 조선이 일본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7] 나중에 제대로 알리긴 하지만 이미 일본군은 출진한 상태이기에 너무 늦은데다가 조선 입장에선 자신들을 바보 취급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선조가 요시토시를 잡아들이라고 화를 내는 것도 무리도 아니다. 게다가 임진왜란 이후로도 이미 일본군이 조선 영토내에서 저지른 짓이 엄청나 더이상 상황이 협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강화협상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8]

고니시는 전국시대 무장으로서의 용감하고 잔혹한 면모, 상인출신다운 계산적인 면모, 천주교인다운 자비로운 면모 등 얼핏 모순으로 보이는 여러 모습이 공존했던, 왜란기 장수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한 인물이라 제대로 못다루면 캐릭터가 붕뜨기 쉽다. 그리고 현재까진 30년전 작품인 조선왕조 500년보다 묘사가 못하다.[9] 그리고 이 점이 개선되기는커녕 더 심해져서 평양성 전투 이후론 단순한 대마왕 부하 캐릭터로 전락했다.

정유재란이 재개되자 대마왕 부하를 넘어 그냥 살인광으로 전락. 직접 조선인을 죽이고 코를 베어내는 장면까지 나온다. 고증을 지킨다면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조선인 학살을 말리기까지 하는 모습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 있으나 어차피 2차 진주성 전투에서 대학살을 한 것을 보면 그리 옳은 주장은 아니다.


[1] 야인시대(2002)에서 이억일을 맡았다. 전작인 정도전(2014)에서는 하륜 역을, 훗날 태종 이방원(2022)에서는 그와 대척점에 있었던 정도전 역할을 맡았다.[2] 일본 사극 군사 칸베에(2014)에서는 당시 만 33세였던 오시나리 슈고고니시 유키나가 역을 맡아 동명의 인물 역을 맡은 이광기(당시 만47세)와는 상당한 나이 차이가 나 보인다.[3] 그런데 그 와중에 가토에게 "명에게 할지 요구한게 아니라 무조건 항복하겠다고 사신 보낸 거 아니냐"고 정곡을 찔리기도 한다. 이때 미묘하게 변하는 표정 연기가 백미였다. 물론 가토는 명이 자신들을 너무 무시한다고 여겨 해본 소리였다.[4] 그런데 고니시가 단점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이는 손자병법에서 '명장'의 요소로 꼽은 점이자, 실제 이순신이 가지고 있던 장점들이다.[5] 히데요시를 저버렸다기 보단 미츠나리와 사이가 안 좋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결국 본인은 이에야스와 히데요리의 만남에서 히데요리를 호위했다는 것이 원인이 되었는지, 의심스런 죽음을 맞이하고 아들 대에 개역당해 영지도 몰수당한다.[6] 실제 역사상의 조선은 심각성을 인지하고 전쟁 준비를 열심히 해두고 있었으므로 이 드라마 한정이다.[7] 다만 조선은 일본을 자주 무시해왔고 명나라를 세계 굴지의 대국으로 인지하고 있어서 올바르게 말한다헤도 비웃고 넘어갔을것으로 보인다.[8] 강화협상이 만약 이루어진다 해도 조선이 그 선행조건으로 당연히 선봉장이었던 자기 목을 원할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9] 조선왕조 500년은 일본 제작팀의 협력을 받아 일본측 인물고증이 상당히 잘 된 편이었다. 여기서의 고니시는 전쟁의 선봉에서 냉철한 전국시대 무장의 논리를 관철시켰지만 오다 쥬리아를 만나 선행을 베풀고 자신의 행위에 고뇌하기도 하는 시대를 감안하면 굉장히 입체적 인물상이었다. 오히려 2005년작 불멸의 이순신이 일본 무장들을 단순한 대마왕부하A로 격하시켜 지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