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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8-06-22 17:39:12

관우/연의



삼국지 반기 내지는 그 자체의 진 주인공.이자 인생의 승리자.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의 무예와 충의를 표현하는 장면이 여럿 추가되어 활약은 더욱 화려해졌다. 그에 비해 정사에서 관우의 실책은 대부분 연의에서 삭제, 또는 변경되었다.

연의에서 관우는 신장 9척에 수염 길이가 2자였으며 얼굴이 홍시처럼 붉고, 기름을 바른 듯한 입슬, 붉은 봉황의 눈, 누에가 누운 듯한 눈썹 등의 외모로 묘사된다. 그러나 정사에서 관우의 외모에 대한 묘사는 아름다운 수염말고는 없었다. 경극에서 관우는 충의를 상징하는 붉은 얼굴로 표현되는데 경극의 설정을 가져온 것 뿐이다.

관우가 고을의 악덕 지주를 살해했기 때문에 해현에서 추방되어 탁군으로 왔다는 설정인데 마침 만난 유비, 장비와 뜻이 맞아서 도원결의를 맺어 의형제가 된다. 정사에서 그들이 의형제를 맺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실제로 의형제 수준으로 가까운 사이였긴 했다. 연의에서는 관우가 162년에 태어났다는 설정이라서 나이 순으로 유비가 맏이, 관우가 둘째, 장비가 셋째가 된다. 그런데 관우는 사실 유비보다 1살 더 많았다는 관후조묘비기의 기록도 있기 때문에 관우가 유비보다 한 살 많지만 유비가 황족이고 인덕도 커서 큰형 자리를 양보한 것으로 나오는 판본도 있다.

유비 삼형제가 동네 대장간(…)에서 각자 병기를 만드는데 유비는 쌍고검, 장비는 장팔사모, 관우는 무게 82근의 청룡언월도를 주문해서 전용 무기로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월도 자체는 삼국지 시대에 없었으니 청룡언월도는 연의의 창작이다.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자 유비 삼형제는 공손찬의 부장 격으로 참전한다. 화웅에게 다른 장수들이 줄줄이 당하자 관우가 나선다. 원술[1]은 무명의 마궁수 주제에 나서냐며 관우를 나무라지만 조조의 허락을 받아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을 죽이는 장면이 묘사 된다. 관우가 화웅을 베어 온 이야기는 연의의 창작일 뿐이다. 정사에서 화웅은 호진 휘하의 부장에 불과한 장수였고 그나마 손견에게 죽었다는 기록 한줄이 역사에 나온 전부다.

호뢰관에서는 연합군의 여러 장수들을 쓰러트린 여포와 맞선다. 유비, 관우, 장비가 서로 힘을 합하여 적토마를 탄 여포를 후퇴시킨 이 싸움은 삼영전여포라 불리우며 연의 내에서도 매우 인기높은 장면으로 독자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정사에서는 찾을 수 없는 연의의 창작이다. 애초에 유비반동탁 연합에 참가했다는 기록 자체가 정사에는 보이지 않고, 영웅기에만 짧게 언급되는 실정이라 당시 유비 일행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알수가 없다.

공융이 황건적 관해에게 성이 포위되자 태사자가 직접 유비에게 원군을 요청하였는데 이때 관우와 관해가 90여합의 일기토 끝에 관해를 죽이고 공융을 구출한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유비가 공융에게 구원군을 보낸 것은 사실이나 유비 삼형제가 직접 전투에 참여한 것은 아니며, 따라서 관해가 관우와 창칼을 들고 직접 맞선다는 장면도 허구이다. 덕분에 관해의 무예는 과평가되어 삼국지연의의 수혜자가 되었다.

조조군과 유비군이 합쳐서 여포를 하비에서 포위 공격할 때 정사에는 관우가 진의록의 처 두씨를 달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나관중은 이를 윤리적으로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는지 관우에게 고고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두씨에 대한 부분을 삭제했다.

유비가 조조 밑에 있을 때 허도에서 조조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 조조가 헌제의 활을 빌려 사슴을 맞추는데, 헌제의 화살을 보고 모두 헌제에게 만세를 부르는 순간 조조가 헌제 앞을 가로막으며 환호를 받는다. 격분한 관우가 무례한 조조를 살해하려 하지만 유비가 말린다. 실제로도 정사에서 한창 사냥을 하던 도중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관우가 유비에게 조조를 살해하라고 권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헌제 대신 만세를 받던 조조의 모습에 분개하여 암살하자고 권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정사에는 조조가 사냥 도중 헌제 대신 만세를 받았었다는 언급이 없다.

유비가 서주자사 차주를 살해한 후 서주를 장악하고 관우는 하비성을 지켰는데 조조군에 관우의 하비성이 포위되자 조조는 장료를 보내 관우에게 항복을 권유시킨다. 장료는 관우에게 항복하지 않고 죽기를 고집한다면 이는 세 가지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설득한다.[2] 그러자 관우는 장료에게 세 가지 조건을 걸고 항복을 약속한다.[3] 조조는 관우가 항복하겠다면서 군사를 물리라고 청하자 조조는 그 조건들을 모두 들어주겠다며 정말로 군사를 물렸는데, 이에 조조의 부하들이 이틈을 타 관우가 도망갈지도 모른다고 반발하자, 조조는 "그럴 사람이라면 도망가라고 해라, 붙잡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정사에선 이러한 세가지 죄, 세가지 조건에 대한 내용이 없고 그냥 관우가 조조에게 포위되어 항복한 장면만 등장한다.

모종강본에서 추가된 장면이 있는데 조조가 관우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해 관우, 감부인, 미부인을 한 방에서 재우려고 하자, 관우가 촛불을 들고 문 밖에 나가 서서 한 숨도 자지 않고 아침까지 두 부인을 지켜, 조조를 감탄시켰다. 그러나 이는 정사에서 보이지 않는다.

조조가 관우와 함께 헌제를 알현하였다. 당시 겨울이라서 조조가 관우에게 수염 주머니를 선물했는데, 헌제의 요구에 응하여 관우가 주머니의 매듭을 풀어 수염을 보이자 관우의 아름다운 수염에 감탄한 헌제는 관우를 미염공(美髥公)이라고 칭했다. 이 장면은 창작이지만 그래도 정사에서 제갈량이 수염이 아름다운 관우를 염(髥)이라고 부르긴 했다.

조조는 관우를 붙들어매려고 금은보화와 미녀 열명, 좋은 저택, 높은 관직, 그리고 적토마를 준다. 관우는 금은보화는 봉인해두고 미녀는 형수님들을 위한 시녀로 일하게 하며, 적토마는 형님에게 돌아갈 때 편하겠다며 기뻐한다. 정사에서는 조조가 관우를 붙들어 매려고 하사품을 베풀었다고만 나오고 하사한 물품들이 자세히 나오지 않으며 특히 적토마를 준 것은 거짓이다. 정사에서 여포는 적토마를 탔지만 관우는 적토마를 타지 않았다. 그외 받은 물품을 모두 봉인하고 조조에게 서신을 남기고 유비에게로 간 것은 연의나 정사나 같다.

관도대전에 참전한 관우는 조조를 위해 원소군의 장수인 안량(顔良)을 벤다. 이는 정사에서도 등장하는 사실이다.
다만 정사에서는 관우와 장료가 선봉에 나섰을때 관우가 안량을 멀리서 발견하고 적진을 뚫고 안량을 벤 것인데, 연의에서는 관우가 후방에서 대기하다가 조조의 구원요청을 받고 출전하여 안량을 죽인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어서 관우는 문추(文醜)도 베는 공을 세운다. 하지만 정사에 따르면 관우는 안량만 베었을뿐, 문추까지 벤것은 아니다. 즉, 관우가 안량을 참한 것은 사실이나 문추를 무찌르는 장면은 연의의 창작이다.

관우가 안량과 문추를 베는 공을 세우자 조조가 표를 올려 관우를 한수정후에 봉한다. 원본에서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판본에서는 이 부분이 수정되어 나온다. 조조가 처음에 관우를 수정후(壽亭侯)에 봉했으나 관우는 사양했다. 그래서 조조가 한(漢)+수정후(壽亭侯)로 작위의 문구를 바꾸니 그제서야 관우가 받았다. 관우가 조조에게 항복한 것이 아니라 한나라에 항복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도 잘못 알려졌지만 사실 정사에서 관우가 봉해진 한수정후는 한수(漢壽)+정후(亭侯)이다. 한수는 그냥 지명이고 지금의 호남성 상덕현 지방이다.[4] 또한 정후는 관내후 가운데 최하 등급이다.[5] 조선의 선비 이덕무도 삼국연의를 논하면서 '예전에 내가 한수는 지명의 이름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것으로 보아 이런 얘기는 조선에서도 잘 알려진 이야기였던 듯하다.

이후 원소의 신하인 진진을 통하여 하북에 있는 유비의 소식을 듣게 되자, 관우는 당초에 약속한 대로 조조에게 이별 통보를 하고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조조는 피객패를 걸어서 접객을 피하려 했다.[6] 장료 역시 병을 핑계로 관우를 만나주지 않는다. 이에 관우는 조조로부터 받은 물건을 모두 집에 보관한 뒤, 조조에게 투항할 때부터 지니고 있던 개인적인 물건들만 챙겨서 두 부인과 함께 하북을 향해 출발한다. 조조의 부하들은 관우를 죽여버리겠다고 하지만 조조는 어쩔 수 없다며 늦게나마 그를 전송하기 위해서 관우를 쫓아간다. 조조는 노자로 쓰라면서 황금을 선물하였으나, 관우는 이를 거절하였다. 이내 조조는 다시 전포를 선물하였다. 조조의 호의를 두번씩이나 거절할 수 없었던 관우는 전포를 받았으나, 만약을 위해 말 위에서 청룡언월도 끝에 전포를 걸쳐 받고 떠났다. 선물을 칼끝으로 받은 관우의 버릇없는 태도에 조조의 부하들은 불평을 내뱉었지만, 조조는 혼자인 관우가 다수인 우리를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부하 장수들을 달랬다.

연의에서는 관우가 감부인, 미부인과 함께 유비에게 돌아갔다고 하지만 정사에서도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정사에서도 유비의 처자가 관우와 함께 잡혔다는 기록이 있지만 미부인은 이후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다만 감부인은 형주까지 유비를 따라왔으니 감부인만은 데려왔을 수도 있다. 사실 조조가 서주에서 유비의 처자를 모두 잡아들였는데 감씨가 여인 혼자의 몸으로 유비가 있는 하북으로 갔다고 보긴 어렵다.

조조가 관우가 이별을 고하지 못하도록 여러 날을 두고 고의로 관우를 만나주지 않았기 때문에 관우는 미처 통행증을 받지 못했다. 관우는 조조를 떠나 하북의 유비를 찾아서 필마단기로 천리 길을 떠나는데 다섯 관문을 지나면서 여섯 장수를 참한다.
이 오관육참 에피소드는 정사에서 보이지 않는 허구이다. 민담 등 연의 이전의 삼국지 문화에서부터 등장한 창작 장면인데 천리행 노선도 실제 상황과 부합하지 않게 구불구불하고 아무 필요도 없는 길을 간 것이며 관우에게 죽은 장수들도 전부 실존하지 않았던 가상 장수들이다.[7]

관우가 여남에서 장비와 만나는데 장비는 관우가 의리를 저버리고 조조를 섬겼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장비의 오해를 풀기위해 관우는 장비가 북을 세 번 치기 전에 마침 추격해 온 채양의 목을 벤다. 정사에서 채양은 유비에게 격파당해 죽은 장수였는데 연의에서는 이런 장면의 희생양으로 바뀐 것이다.

오관육참 후 황건적의 잔당이었지만 관우를 경모하던 주창이 관우의 심복이 된다. 그러나 주창은 가공인물로 주창의 존재는 익양대치 당시 노숙에게 항의한 이름없는 장수에 기반한 듯한데 이후 관우를 시립할 시종의 모습으로 송나라 이전에 그 모습이 정립되었다. 또 관정이 자신의 차남 관평을 관우의 양자로 삼는 것을 제안했고 유비도 관우가 아들이 없다고 거들자 관우가 이를 수락하여 관평이 관우의 양자가 되어 따라가게 된다. 정사에서 관평은 관우의 친아들이었다.

관우, 장비가 삼고초려 당시 유비에게 불만을 토로하거나 박망파에서 제갈량의 지휘를 가볍게 보는 묘사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정사에 있는 수어지교 일화를 부풀린 것으로 삼고초려에 관우와 장비가 동행했다는 기록이 없고 박망파 전투를 승리로 이끈 사람도 제갈량이 아니라 유비였다.

연의의 창작 에피소드 가운데 화용도 또한 유명하다.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조운, 장비에게 패퇴하는 조조의 길목을 차단하라고 명을 내리나 관우에게는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이에 관우가 불만을 표시하자 제갈량은 관우에게 명을 어겼을 경우 죽음으로 보상하겠다는 내용의 군령장을 쓰게 한 뒤에야 화용도로 보낸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조조가 죽지 않을 운세이니 관우가 과거의 은의를 갚으라고 화용도로 보냈다고 말한다. 관우는 화용도에서 조조와 만나나 오관육참에서 자신을 용서해준 조조를 생각했고 군령과 정의 사이에서 번민하며 괴로워하다가 결국 조조를 보내주었다.

중국소설사략에서 루쉰은 이 부분을 매우 칭찬하였고, 중국 고전 소설을 철저하게 평가한 학자 왕궈웨이도 삼국지연의는 순문학이 될 수 없지만, 화용도의 구절만은 대문학자가 아니고는 쓸 수 없다며 극찬하였다. 워낙 유명한 일화이기 때문에 정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화용도 일화는 연의의 창작이다.

정사에서 남군 공방전은 주유군과 유비군이 연합하여 함께 싸워 남군을 점령하고 주유가 유비에게 땅을 빌려준 것이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주유군이 열심히 싸워 놓은 것을 유비군이 집어 먹은 것으로 변경되었다. 정사에서의 남군 공방전 상황은 악진, 서황, 문빙, 이통 등이 조인과 합세해 손유 연합군의 포위를 풀려고 했는데, 관우가 이를 막기 위해 길을 막아 싸우지만 격퇴당해서 물러났다. 전투가 끝나고 이통이 포위망을 뚫고 조인을 구출했다. 연의에서는 이 과정이 나오지 않는다. 정사에서 남군 공방전이 끝난 이후 유비가 형주를 얻고 관우의 공을 으뜸으로 언급한 것은 연의에서 나오지 않는다.

연의에선 유비가 형주 남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조운, 장비, 관우 등의 장수들에게 나누어서 형남4군을 공략하게 하는데 관우는 장사성 공격의 임무를 맡는다. 관우가 황충일기토를 벌이는 도중 황충이 말에서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관우는 황충을 죽이지 않고 정정당당히 승부하자 말하고 돌아간다. 다음 날, 둘은 또 일기토를 벌이는데 황충이 화살이 없는 상태에서 화살을 쏘는 척을 한 뒤 이에 관우가 피하는 동작을 취하자 그때 화살을 쏘아 관우의 투구를 맞추어 어제의 은혜를 갚는다. 이 장면은 연의에서의 창작이고 실제 형남 4군 공략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이들은 조운과 제갈량이다. 그래서 이후 정사에서 관우가 자신과 동렬에 임명된 황충을 인정하지 않는 장면이 연의에서도 거의 그대로 나와서 모순이 된다. 그래서 몇몇 판본은 오히려 마초가 유비에 의탁하고 한게 뭐 있느냐며 마초를 까는것으로 바뀐다.

형주를 점령한 유비는 입촉하고 관우는 형주에 진수한다. 정사에서 관우는 반준과 불화했지만 연의에서는 그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정사에서 관우는 유비에게 투항한 마초에게 호승심을 느꼈고 마초와 비교해서 자신을 띄워주는 제갈량의 편지를 받고 기뻐하여 손님들에게 보여주기까지한다. 연의에서도 이와 비슷한 대목이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가 손권의 관솔을 내쫒은것은 동일하지만 익양대치 사건 자체가 아예 등장하질 않는다. 따라서 이 당시 관우가 감녕의 별동대가 강을 지키고 있는것을 보고 도강을 단념한 일화 역시 연의에서 보이질 않는다. 단도회는 형주를 탈환하고 관우에 이에 응하지 않을시 관우를 죽이려는 노숙의 책략으로 각색된다. 실제 정사에서도 단도회 자체는 일단 노숙쪽이 먼저 제의하고 관우가 이에 응해 참여한게 맞고 나눈 대화 자체도 의외로 연의에서도 비슷하다. 관우가 "오림의 전쟁은 좌장군께서 친히 시석을 무릅쓰시고 협력하여 적병을 깨부수었거늘 어찌 헛수고만 하고 한 척의 땅도 가질 수 없겠소? 이제 족하께서 다시 땅을 찾으러 오신 것이오?"라고 하자 노숙이 그에 대해서 정사와 비슷하게 "우리 주군께서 장판에서 격파된 유황숙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것이 아닙니까? 어찌 그런식으로 말씀하십니까?"이라는 논리로 반박하자 관우가 화답하지 못하는 사이 주창(정사에선 이름없는 장수)가 정사와 같은 논리로 반박하자 관우가 호통을 쳐 물러나게 하는것까지는 거의 같다. 다만 여기에서부터 나관중이 관우에서 버프를 거는 각색이 나오는데 원래 노숙이 연회장에 복병을 숨겨두었는데 회담 도중 끼어든 주창을 관우가 참견한다며 쫓아버리자 주창은 기회를 틈 타 연회장을 빠져나와 미리 대기시킨 관평 등에게 연락하여 배를 접응토록 한다. 관우는 술주정을 빙자, 노숙을 붙잡고 인질극으로 빠져나오고 복병들은 노숙이 다칠까봐 감히 움직이지 못하여 계략은 실패하는데 이에 노숙과 여몽은 관우를 칠 것을 결의하고 손권 역시 격노하여 관우를 치려다가 조조의 침공으로 그만둔다. 이후 조조가 장로를 처 한중을 점령하자 유비측이 이를 두려워해 강하, 장사, 계양을 양도한다는 큰 줄기 자체는 정사와 같다.

손권이 자신의 아들과 관우의 딸을 혼인시키자며 사자를 보내오자 관우의 대답은 "호랑이의 새끼를 의 새끼에게 줄 수 있겠느냐."였다. 손권은 술처먹으면 개가 되니까 옳은 말이긴 하다.[8] 이는 관우빠인 모종강조차도 "손권이 개라면 관우와 의형제를 맺은 유비는 손부인과 혼인을 했으니 호랑이 형과 개 누이가 혼인을 맺은 것이고, 호랑이 시동생에 개 형수가 있는 셈이다."라는 식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의외로 이 장면은 정사에는 나오지 않는다. 정사에선 그저 관우가 손권의 혼인사자를 모욕했다는 것으로만 나올 뿐, 손권이 거짓으로 지원을 해준다고 해놓고 안 왔다면서 담비 새끼라고 욕한 기록은 있으나 이것도 배송지가 '그랬다면 지원명목으로 들가면 되지 기습을 할 필요가?'라고 의문을 표한 기록이다.

번성 공방전에서 관우가 양성을 공격하다가 오른쪽 어깨에 독화살을 맞게 된다. 명의 화타가 스스로 찾아와서 관우를 치료하는데, 관우는 바둑을 두며 담소하는 가운데 화타에게 자신의 팔을 맡긴다. 관우는 살을 절개하며 피가 흐르는 상황에서도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바둑에만 열중했다. 이 장면은 정사에도 등장하는 사실이긴 하나 양성을 공격하다 화살에 맞은 상처를 치료한 것이 아니라 예전에 맞은 화살 때문에 통증이 가시질 않아 치료를 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의원 역시 화타가 아니였으며 관우는 오른팔이 아니라 왼팔에 부상을 입었었다.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는 데는 주로 오른팔을 사용하므로 관우를 부각시키기 위해 변경한 것으로 여겨진다.

번성 공방전에서 계속 관우가 문무를 갖춘 지장이라고 언급하는 장면이 많다. 그러다가 마침 비가 내리자 관우는 수공을 계획하여 번성을 수몰시킨다. 정사에서는 관우의 수공이 아니라 그냥 수재(水災)였다. 다만 정사 방덕전에 살펴보면 관우가 배를 타고 공격했다는 문구가 있다. 따라서 관우가 가만히 있다가 이득을 본 것이 아니라, 큰 비가 와서 범람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이에 따른 준비를 했을 수도 있으며 당장 온회는 수해에 조인이 대비하지 못하는사이 관우가 이 기세를 타고 조인을 공격할 것을 우려했으며 방덕전, 우금전, 조엄전 등에는 관우가 수군을 준비해 면수를 장악하고 위군을 공격한 정황이 있다.

정사에서는 관우가 손권이 고의로 자신에게 지원을 늦게 보내자 이에 격분하여 손권을 오소리라고 모욕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연의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관우가 우금과 포로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촉과 오의 상수 경계 영릉에 있던 상관 군량고의 쌀을 마음대로 가져갔다는 기록도 연의에서는 삭제되어 나오지 않는다.

오나라측에서 배신을 때리고 관우도 서황에게 패퇴하자 관우 등은 맥성에 고립된다. 유봉과 맹달에게 요화를 보내 원군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연의는 관우 등은 절대로 항복하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지지만 결국 맥성을 빠져나와 도주하는데, 여범이 점을 쳐서 복병을 매복시켜 사로잡는다. 이것은 연의에서 살짝 편집한 것으로 정사에서는 오주전, 오범전을 종합하면 이때 관우는 거짓으로 항복하고, 성 꼭대기에 깃발을 꽂아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는 이 틈을 타서 도주했다, 당초 손권은 오범에게 그가 정말 항복하려는 것이냐고 질문했는데 오범은 관우가 도주할 기미가 있으며 투항한다는 말은 거짓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이에 손권은 반장을 시켜 관우의 길을 끊도록 했으며 정찰하는 자가 돌아와 관우가 이미 떠났다고 보고했다. 오범이 이에 관우는 사로잡힐것이라는 예측을 했고 과연 그리되었다. 우번전에 따르면 우번 역시 이때 관우의 운명을 점쳤다고 한다.

나관중본에서는 맥성에서 도주하다가 궁지에 몰린 관우와 관평이 이제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고 하늘이 부르는 소리에 맞춰 승천한다. 해당부분은 다음과 같다.
관우는 아들 관평 등과 더불어 맥성 북문으로 탈출한다. 이르는 곳마다 오나라 복병들과 맞닥뜨리면서 결석(決石) 땅에 도달한다. 때는 5경에 가까운 시각인데도 순간 함성소리가 들리면서 다시 복병들이 공격해 왔다. 돌아보니 뒤쪽에는 주연과 반장의 정병이 기습한다. 관우는 반장의 부하인 마충과 맞닥뜨렸는데, 그 순간 하늘에서 사람의 음성이 들린다.

"운장은 인간 세상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옥황상제의 조칙이 있으니 범부와 승부를 겨루지 말라."

관우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깨닫는다. 마침내 싸움을 하지 않고 무기와 말을 버린 채 관우와 관평 부자(父子)가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되었다.(가정본)

이는 관우 신앙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모종강본부터는 관우 부자가 사로잡혀 참수당하는 정상적인 장면으로 변경되었다. 정사에서 손권에게 관우를 살려주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데, 연의에서는 좌함이라는 가공인물이 관우 부자 참수를 권유한다. 관우의 적토마는 마충에게 하사되었으나 풀과 물을 먹지 않고 스스로 굶어서 죽었다. 당연하지만 정사에서 관우는 적토마를 타지 않았으니 그냥 문학적 연출이다.

연의에서는 관우의 유령이 유비의 꿈에 나오는 등 죽고도 유령으로 계속 등장하는데 당연하지만 모두 허구다. 우선 죽은 관우의 유령이 당양의 옥천산에 나타나서 예전 오관육참에서 도움을 받았던 보정 선사와 만난다. 보정 선사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 크게 깨달은 관우는 사라진다. 이 부분은 익주명화록에서 관장군이 옥천사를 세우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기록을 보고 창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관우의 유령이 여몽에게 빙의하여 손권을 꾸짖는다. 놀란 손권이 장수들을 거느리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 절을 올린다. 그러자 여몽은 칠공분혈로 죽어버렸다. 사실 정사에서 여몽은 병으로 죽었다. 이 장면은 의로운 관우의 인상에 맞지 않고, 또한 비현실적이라는 점 등에서 최근에는 삭제하고 있는 판본도 많다. 손권의 관우의 목을 조조에게 보내고 조조가 상자에 담긴 관우의 목에 말을 걸었는데 갑자기 관우가 입을 열고 눈을 움직이면서 수염과 머리카락을 모두 곤두세운다. 조조는 아연실색하여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그 의를 조조가 높게 평가하여 손권이 보내준 목에 나무를 깎아 직접 몸을 만들어 붙여 성대한 장례를 치러 주었다.

관우의 차남 관흥은 정사에서 요절했지만 연의에서는 요절하지 않고 장포와 함께 이릉대전에 참전한다. 관우는 이릉대전 도중 유령으로 나타나 아들 관흥에게 도움을 주어 관흥은 아버지의 유품인 청룡언월도를 되찾게 된다. 제갈량의 북벌 도중 월길과의 싸움에서 위기에 처한 관흥을 구출하고 장포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또 유령으로 등장한다.


[1] 판본에 따라 다른데 원소라고도 한다.[2] 도원결의를 저버리는 것이 첫째, 유비가 자기의 가솔들을 부탁했는데 이를 저버리게 되는 것이 둘째, 유용한 능력을 버리게 되는 것이 셋째라고 했다.[3] 첫째는 한나라에 항복하는 것이지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둘째는 유비의 두 부인을 잘 보호하여 범하지 않게 함으로서 두 사람의 신변의 안전을 보장할 것, 셋째는 유비의 거처가 알려지면 지체없이 자신과 유비의 식솔들을 풀어줄 것이었다.[4] 여기가 고향인 사람이 대표적으로 반준이 있다.[5] 후는 등급에 따라 현후, 향후, 정후가 있었는데 정후가 그 중에서 최하 등급이다.[6] 피객패는 손님의 문 두드림을 거절한다는 내용으로 이것이 문에 걸려 있으면 손님은 조용히 돌아가는 것이 예의였다.[7] 이와 같은 케이스로 제갈량의 남만 정벌이 있다. 한두줄을 긴 이야기로 창작했다.[8] 여담으로 현대 중국어에서는 '손권의 아들'이라는 의미인 權子와 '개의 아들'이라는 의미인 犬子의 발음이 같다. 두 한자는 단독으로 읽으면 성조가 다르지만 해당 단어에서는 성조의 변화 법칙 때문에 똑같게 발음된다. 하여 일부에서는 반쯤 농담으로 해당 사건이 발음과 억양 차이로 인한 오해였다고 주장한다. 실제 해당 문구에서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글자 셋만 바꾸면 관우가 오히려 이 혼인을 기뻐했다는 의미로 고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