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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중 고려 삼한공신 김유렴 | 金裕廉 | |
본관 | 경주 김씨(慶州 金氏) |
이름 | 유렴(裕廉) |
생몰연도 | 연대 미상 |
아버지 | 김억렴 |
배우자 | 미상 |
자녀 | 딸 - 김영란(金英蘭)[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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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의 인물. 김억렴의 아들이다.[2]2. 생애
대아찬을 지내다가 917년 8월에 시중이 되어 919년까지 지냈다.신라가 견훤의 공격으로 황폐화되고, 930년에 왕건이 고창군에서 견훤을 물리치자 그 사실을 경순왕에게 알리면서 경순왕이 왕건을 만나기를 요청했다.
931년 봄 2월에 왕건이 금성을 방문하자 경순왕의 명으로 성문 밖에서 왕건을 맞이했으며, 경순왕이 연회에서 견훤의 공격으로 나라가 쇠퇴한 것에 대해 한탄해 주위에서 눈물을 흘리자 왕건이 경순왕을 위로하면서 김유렴은 경순왕, 태후와 함께 차등을 두어 물품을 받았다.
왕건이 수 십 일 동안 머물다가 돌아가자 김유렴은 볼모가 되어 왕건을 따라갔으며, 경순왕을 따라 고려에 귀부하면서 고려의 공신이 되었다.
3. 대중매체
- 2017년도에 출간된 이양훈 작가의 소설 《전화앵》에서 신라 경명왕 때 현승이 평등 국가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키자 김유렴은 골품제를 폐지하면 현승의 무리가 무너질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자신의 특권을 놓지 않으려는 귀족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쳐 묵살된다. 이후 왕건의 쿠데타 소식을 듣고 신라 조정에서 대신들과 이야기할 때 왕건이 터전인 송악으로 나라를 옮길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