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농구단 코치 (1975~1977) 삼성전자 농구단 코치 (1977~1982) 삼성전자 농구단 감독 (1982~1996) 안양 SBS 스타즈 감독 (1999~2002)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팀 감독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코치 (1986) 베이징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감독 (1990)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팀 감독 (1994)
프런트
청주 진로 맥카스 단장 (1996~1997) 청주 SK 나이츠 부단장 (1997~1998) 안양 SBS 스타즈 기술고문 (2002~2004)
행정
대한체육회 이사 (2002) 태릉선수촌장 (2002~2005) 대한농구연맹 부회장 (2005) 태릉선수촌장 (2008~2010)
신동찬, 안준호, 박인규, 임정명, 김진, 김현준과 함께 1984-85 및 1987-88 농구대잔치에서 각각 두 번 트로피를 들었다. 특히 1987 코리안 리그 우승 당시 김현준과의 우승 기념 사진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허재를 포함한 충격과 공포의 중앙대학교 출신이 있는 기아자동차 농구단의 창단으로 전성기에서 내려왔다.
당초 기아자동차는 방열을 시작으로 유재학과 정덕화의 연세대 색이 있었지만 중앙대 출신인 기존의 강정수를 시작으로 한기범과 김유택에 이어 허재와 강동희의 입단과 중앙대 출신 최인선의 감독 부임으로 예전 현대전자와 삼성전자를 뛰어넘는 역대급 팀으로 거듭났다.
1994-95 농구대잔치를 앞두고 삼성전자는 기존의 서동철과 강양택이 있었으나 전 대회에서 연세대를 우승으로 이끈 주역 문경은과 중앙대 4강 신화의 주역이자 터보 가드 김승기를 보강했고, 거기다 상무에서 제대한 센터 이창수까지 가세해 전 대회 우승팀 연세대, 절치부심한 기아자동차와 함께 우승 후보로 꼽혔는데, 김진과 김현준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농구대잔치 우승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거란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농구대잔치를 한달 앞두고 열린 실업 농구 코리안 리그 2차 대회 기아자동차와의 결승전에서 한기범에게 폭력을 휘두른 김진이 3개월 출장정지를 받았다 이후 징계가 경감되어 1994-95 농구대잔치 중반에 뒤늦게 참가했다. 삼성전자가 악전고투 끝에 8강전에서 연세대를, 4강에서 SBS를 꺾고 결승에 올라 김진 또한 커리어 마지막을 우승으로 장식하나 싶었으나, 결승전에서 기아 허재의 마이클 조던급 활약을 막지 못해 1승 3패로 또다시 패배했고 1996년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