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의 노래 (1946) Song of the South | |||
장르 | 애니메이션, 가족 | ||
감독 | 하브 포스터실사 윌프레드 잭슨애니메이션 | ||
제작 | 월트 디즈니 | ||
원작 | 조엘 챈들러 해리스의 《엉클 리무스》 | ||
출연 | 루스 워릭 루실 왓슨 외 | ||
음악 | 다니엘 앰피테아트로프 폴 J. 스미스 | ||
제작사 |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 | ||
배급사 | RKO 라디오 픽쳐스 | ||
개봉일 | 1946년 11월 12일 폭스 극장 초연 1946년 11월 20일 | ||
상영 시간 | 94분 | ||
제작비 | $2,125,000 | ||
북미 박스오피스 | $65,000,000 |
[clearfix]
1. 개요
Song of the South
1946년 11월 12일 애틀랜타의 폭스 극장에서 초연한 이후, 20일에 공식적으로 개봉한 미국의 실사 & 애니메이션 혼합 영화.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이 제작하였으며, RKO 라디오 픽쳐스가 배급을 맡았다. 디즈니 작품 중에선 첫 번째로 실사에 중점을 맞춘 뮤지컬 & 드라마 영화이기도 하다.
출연하는 주요 캐릭터는 엉클 리무스, 조니, 지니, 토비, 샐리, 할머니, 탬피, 존, 페이버스 부부, 제이크 페이버스, 존 페이버스, 브레어 래빗, 브레어 폭스, 브레어 베어 등이 있다.
2. 설명
영화의 원작은 조엘 챈들러 해리스(Joel Chandler Harris)[1][2]의 생전 문학 작품들 중 엉클 리무스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작중 시간대는 남북 전쟁이 끝나고 노예 제도 폐지 이후 재건 시기 미국 남부의 조지아주에 위치한 한 농장 일대를 배경으로 다룬다.월트 디즈니는 1938년에 어린 시절 원작(엉클 리무스)을 읽었던 기억이 생각난다고 말하면서 그를 기반으로 한 영화 제작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이듬해(1939년) 조엘의 유가족들과 접촉하여 작품의 영화화에 대한 판권 협상을 진행하면서 영화의 제작을 시작하였다.
제작 과정은 영화에 삽입될 애니메이션 시퀀스를 먼저 제작한 이후, 1944년 12월 애리조나 주에서 실사 시퀀스의 촬영을 진행하였으며 이 해에 영화의 제목은 Uncle Remus에서 지금의 Song of the South(남부의 노래)로 바뀌게 된다.
작품의 각본을 쓰는 과정에선 원래 디즈니 내부 직원에게 맡기려 했으나, 스튜디오 외부에서 전문 작가를 구하기로 계획을 변경해 수소문한 끝에 달튼 레이먼드를 고용했으며 실사 시퀀스 연출에 관심이 있었던 킹 비더를 자주 만나기도 했다. 헤이즈 오피스에선 달튼이 작성한 영화의 각본을 전반적으로 검토한 후 인종주의적인 여러 단어들을 제거할 것을 디즈니에 요구했으며, 이에 디즈니는 미국 흑인 작가인 클라렌스 뮤즈를 고용해서 각본의 자문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 남부 출신 백인 작가인 달튼이 뮤즈의 흑인 캐릭터들을 탈 고정관념적인 캐릭터들로 묘사해보잔 여러 제안을 무시하자 뮤즈는 자문을 그만두고 떠났으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디즈니는 미국 유대인 시나리오 작가 모리스 라프를 고용해 그한테 문제가 많은 달튼 레이몬드의 각본을 수정시켜줄 것을 요청했다.[3] 라프는 각본에서 인종주의적이자 공격적이던 여러 문구들을 제거했지만, 달튼과의 의견 분쟁으로 인해 프로젝트에서 제외되면서 라프가 주장한 의견들은 최종 각본에 완전히 반영되지 못했다.
영화의 애니메이션 시퀀스는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의 애니메이터인 윌프레드 잭슨(Wilfred Jackson)이 연출하였으며, 실사 시퀀스는 하브 포스터(Harve Foster)가 연출하였다.
3. 흥행과 논쟁
1946년 최초 개봉 당시 33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면서 이듬해(1947년) 최고의 미국 내 국내 제작 영화 매출액을 기록한 바 있었다. 영화가 개봉한지 얼마 뒤에 NAACP의 당시 사무총장 월터 프랜시스 화이트의 입장이 담긴 성명이 주요 신문지에 수록된 것을 시작으로 영화에 대한 전면적인 논쟁이 발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논쟁에 대해 당시 디즈니에선 원작과 마찬가지로 영화가 남북전쟁 이후의 시간대를 배경으로 했으며 (영화에 나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캐릭터들은 모두 노예가 아니라고 밝혔으며, 헤이즈 오피스는 디즈니에 (영화에 언급된) 책의 날짜가 1870년대로 설정되었는지 확인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시 디즈니의 홍보 담당자 번 콜드웰 또한 프로듀서 퍼스 피어스에게 영화의 소재가 논란에 휩싸일 것이란 우려의 의견을 전한 바 있었다.영화가 미국 내에서 흥행을 거두는 과정에서 The Afro-American 등의 여러 흑인 언론들은 영화에 나온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해 고정관념적인 묘사를 지적하며 이로 인한 악영향의 우려를 강렬히 비판하였고, 한 민권 운동 조직인 전국 흑인 의회(National Negro Congress)의 회원들은 남부의 노래가 상영 중이던 영화관들에 영화(남부의 노래)에 대해 항의하는 메시지가 담긴 피켓을 붙이면서 광범위한 행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다만 모든 흑인 언론에서 남부의 노래를 비난한 것은 아니었으며 정치적인 논조가 더욱 분열되는 양상이 나타났었고, the pittsburgh courier 지라는 흑인 언론은 영화에 대한 비난에 대해 불행한 인종적 신경증의 호그워시 증상으로 평가한 글도 있었고 남부의 노래를 인종 간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헤아릴 수 없는 호의를 증명할 것이라고 호평한 일도 있었다.
반면 당시에 영화를 감상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미국 흑인 유명인사들과 흑인 청중들도 적지 않았고, 칼럼니스트 중에서도 작품을 고평가하며 호평한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해티 맥대니얼은 개봉 이듬해의 인터뷰에서 내가 한 순간이라도 영화의 어떤 부분이 내 사람들에게 굴욕적이거나 해롭다고 생각했다면 난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을 거라고 발언해 영화를 옹호했으며, 제임스 바스켓도 난 특정 집단이 남부의 노래에서 나올 수 있는 것보다 불화를 일으키기 위해 내 인종에 더 많은 해를 끼치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하며 같은 의사를 표명했다. 브라더 베어의 성우를 맡은 닉 스튜어트[4]와 디즈니에서 일한 최초의 미국 흑인 애니메이터 플로이드 노먼은 각자 개봉 이후를 회상한 인터뷰, (노먼 본인의) 블로그에서 영화 내의 배경와 줄거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는 것과 이로 인해 영화 속에 숨겨진 메시지와 제작 동기, 남부의 노래가 점점 잊혀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취지로 언급하기도 하였다. 우피 골드버그도 2017년 디즈니 레전드에 올랐을 때 남부의 노래가 전반적으로 미국에서 다시 공개적으로 재출시되어 관객들에게 제공되기를 바란다는 언급을 하며 광매체 재발매를 주장한 일도 있었다.
영화의 제작자인 월트 디즈니는 남부의 노래 이전에 제작을 맡은 장&단편 애니메이션들에서 구시대적 스테레오 타입의 인종적 개그 유머가 나왔음에도 별반 문제를 느끼지 않았을 만큼 이런 문제엔 상당히 둔감한 면모를 보였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도 비백인 직원들을 줄곧 채용하면서 그들한테 인종차별적인 행보와 발언을 하지 않은 완벽주의자였으며, 제작 과정에서 인종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파악하고 또다른 인재를 수소문해 이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한 면모도 있었다. 이러한 월트의 노력으로 인해 영화는 주인공 리무스에 대해 백인 일가와 지인 흑인들을 포함한 많은 배역들이 블랙페이스 같은 차별적인 행동이나 발언 장면 없이 서로 편견 없는 자세로 활발히 대화하는 모습이 연달아 나오면서, 디즈니 (장편) 작품 중에선 첫 번째로 인종 간의 관계에 대한 상호 소통이란 메시지를 함유한 작품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다만 작품을 감상한 사람들이 많이 지적하는 문제점은 '남북전쟁 이후라는 역사적 배경 설정의 미국 남부'에서 백인들과 흑인들 간의 교류와 서로 차별하지 않는 사회상의 묘사로써, 각본 & 배경 설정에서 월트와 제작진이 고정관념적인 부분을 완전히 보완해내지 못해 시청자들의 실제 역사에 대한 혼동과 과거 현실 사회상의 미화에 대한 논쟁의 여지를 남긴 점은 과오로 여겨지며, 남부의 노래가 개봉한 1946년은 미국 흑인들의 세대가 교체되면서 점차 민권 의식이 향상되어 가던 년도이자 구시대적 고정관념적 묘사가 삽입&표현된 작품에 대한 고찰 의식도 높아지던 시기였기에[5] 이는 작품의 평가가 훗날 크게 낮아지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이후 마이클 아이스너의 언급으로 작품의 미국 내 홈비디오 출시가 불발되었고, 1986년 마지막 개봉을 한 뒤엔 모회사에서도 영화에 대한 언급을 더욱 꺼리게 되었으며, DVD, BD 발매도 이뤄지지 않는 작품이 되었다. 디즈니+에서도 스트리밍되지 않아서 시청할 수 없다.
1989년 디즈니 랜드와 1992년 도쿄 디즈니랜드, 매직 킹덤에는 이 영화를 모티브로 한 스플래쉬 마운틴이라는 어트랙션이 개장하여 운영되고 있지만, 작품이 작품인 만큼 해당 어트랙션에도 같은 논란이 따라붙었다. 결국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가 진행되던 무렵 해당 어트랙션을 개조하여 2009년 개봉한 공주와 개구리를 기반으로 한 전면적인 리뉴얼 계획을 공식 발표하였으며 2023년 1월 23일부터 매직 킹덤의 기종을 먼저 폐장하여 리뉴얼 공사를 진행중에 있다. 디즈니랜드의 기종도 2023년 5월 31일에 폐장하였다. 대신 도쿄 디즈니랜드의 스플래쉬 마운틴은 이와 관계없이 계속 현역으로 운행한다.
4. 여담
- 영화의 주인공 리무스를 맡은 제임스 바스켓(James Basket)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아카데미상에서 공로상을 수여받은 영화 배우가 되었다. 월트 디즈니는 영화가 촬영되기 전에 진행한 오디션에서 바스켓이 발휘한 연기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그를 주인공 리무스로 배정하였으며, 바스켓이 아카데미상을 시상받을 수 있게끔 캠페인을 열어주기도 했었다고 한다.[6] 하지만 바스켓은 애틀랜타에서 개최되었던 남부의 노래의 첫 시사회에선 당시 애틀랜타 주가 시행 중이던 인종 분리 정책을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다.
- 미국 내에서 광매체 발매는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해외에선 더빙되었거나 홈비디오로 발매된 나라들이 있으며[7] 저작재산권 보호기간(공표 후 50년)이 지났기 때문에 유튜브에서도 전 분량을 담은 영상이 업로드되어 시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3년 3월부터 디즈니에서 해당 작품을 직접 검열하기 시작하면서 유튜브에서는 감상하기 어려워졌다.
- 영화에서 나온 'Zip-a-Dee-Doo-Dah'란 삽입곡은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오리지널 주제곡 부문에서 수여받은 노래로 유명해졌으며, 디즈니 팬덤에서도 잊혀진 디즈니의 명곡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영화의 사운드트랙 노래 중 일부가 디즈니 어트렉션 스플래쉬 마운틴에 쓰이기도 했고 zip a dee doo dah는 국내에선 콩순이 노트북(...)에 쓰였다. 따라그리기를 누르면 들을수 있다. 디즈니랜드가 운영 중인 일본에서는 어린 시절 비디오로 감상한 영화에서 나온 노래로 디즈니 팬덤 내에 상당한 인지도가 있으며, 2010년대에 성우들이 커버한버전의 디지털 음반이 발매된 경력이 있었다. 논쟁과는 별개로 노래는 대흥행했기에 프랭크 시나트라, 루이 암스트롱, 잭슨 파이브 등의 미국인 음악가들이 커버해 부른 버전들도 속속 나왔었다. 《유로비트 디즈니》에서 도미노가 커버하기도 했다.
- 개봉되기 1년 전부터 1972년 12월 31일까지 남부의 노래에 나온 엉클 리무스와 브라더 래빗을 주역으로 다룬 코믹 스트립이 연재되었으며, 1986년 플로이드 노먼이 연재한 엉클 리무스와 브래어 래빗 코믹이 (해당 년도의) 디즈니 크리스마스 스토리에서 연재되었지만 후자의 경우 2017년 디즈니 크리스마스 클래식 컬렉션이 재인쇄되었을 때 삭제되었다. 다만 영화에서 나왔던 브래어 래빗 & 브래어 폭스 & 브래어 베어 콤비는 2020년 이전에 제작된 디즈니 작품이나 게임 중에서 카메오로 등장한 사례들도 있었다.
- 같은 원작을 기반으로 다룬 또다른 애니메이션 영화로 1975년 개봉한 랠프 박시 연출의 쿤스킨(Coonskin)이 있다. 전반적인 내용과 연출은 상당히 다른 점들이 많지만, 개봉 이후 사회적인 논쟁이 빚어졌다는 사례에선 서로 동일했다.[8] 그래도 쿤스킨은 작품이 차츰 좋은 재평가를 받으면서 광매체 발매도 이뤄졌고 현재는 OTT에서도 시청이 가능하지만, 남부의 노래는 그렇지 못했다는 차이점 또한 존재한다.
- 2020년대 들어 작품이 봉인된 경위와 결과에 대해[9] 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된 여러 사건사고에 대한 미숙하고 일방적인 대처나 비슷하게 과거에 스테레오 타입 유머가 연출된 다른 작품들은 멀쩡히 수록된 것을 두고 엇갈린 대우를 한다는 등으로 언급되기도 하면서 작품의 광매체 재발매 주장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나왔으며, 비공식이지만 필름을 리마스터링해서 복원한 사람들도 있다.
5. 관련 문서
[1] 1848.12.09 ~ 1908.07.03, 기자 & 소설가 & 민속 학자로 활동했으며, 어릴 적 남부의 흑인 노예 농장에서 자신의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란 배경으로 인해 흑인 노예들과 가깝게 어울리게 되어 그들의 언어와 억양, 비화들을 학습해 나갔고 서로 공유했던 비화들 중 아프리카계 미국인 동물 이야기가 엉클 리무스의 기초이자 영감이 되었다고 한다. 남북전쟁 종전 이후엔 미국 흑인들의 구전 야담과 아프리카의 민속 전통에서 비롯한 (브라더 래빗 등의 트릭스터 & 영웅 동물들과 엉클 리무스를 주역으로 저술한) 문학 작품들로 인기를 얻어 소설가이자 문학가로써 미국 전역의 백인과 흑인 독자들한테 많은 인지도를 알렸고, 말년엔 시어도어 루스벨트한테 초청을 받아서 백악관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2] 생전 조엘은 신문 매체에서 편집자, 작가로도 일하면서 미국 흑인들에 대한 고등 교육의 중요성과 참정권 보장 & 남부 백인들의 흑인을 향한 인종 차별을 비난하여 인종 화해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논조의 사설들을 기고한 바 있었는데, 그의 사후 (조엘의) 사설은 진보적이었지만 가부장적인 어조가 담겨 있단 평가를 듣기도 했다.(미국 사회의 종교적, 인종적 편협과 그로 인한 질투와 오해가 빚어지는 것을 해소하기 위해 전념하였으나 남부의 백인이 남부의 흑인들을 후원해야 한다는 생각에선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는 것) 마크 트웨인도 조엘의 작품을 호평하며 그를 거장이라 말하기도 했었고, 러디어드 키플링도 조엘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작품이 영국 내에서 유명하다고 언급한 일도 있었다. 다만 20세기 중반부터 조엘의 작품들이 다룬 흑인 문화의 전유성에 대한 의문과 민속 비화들의 출처에 대한 유사성과 비판이 미국 국내 학계에서 차츰 제기되기 시작했다.[3] 이에 월트 디즈니: 미국적 상상력의 승리(전기 도서)를 집필한 작가 닐 게블러는 2006년 출간된 자신의 책에서 월트 디즈니가 라프를 고용한 이유를 달튼의 남부 백인 중심에 쏠린 각본의 경향을 두려워하고 이를 완화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4] 닉의 딸 배러리 스튜어트는 당시 NAACP의 사무총장 월터 프란시스 화이트가 헤티 맥대니얼이 화이트 자신(흑백 혼혈)보다 더 피부색이 짙단 (흑인이란) 이유로 그녀를 질투하며 (그녀가 출연한) 영화에 대해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으며, 맥대니얼에 대한 화이트의 편견 때문에 맥대니얼이 출연한 남부의 노래가 (화이트의) 표적이 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었고, 짐 코리스가 2012년 저술한 한 책에선 화이트가 첫 개봉 당시 미 전역의 주요 신문사에 성명을 보낼 때 영화가 남북전쟁 이전의 설정을 묘사했다고 잘못 주장했던 일을 언급하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 이전에 칼 F. 코헨이 1997년 발간한 자신의 책에서 화이트는 남부의 노래를 감상하지 않았었으며, 첫 개봉 당시 언론 시사회에 참석한 두 NAACP 직원으로부터 받은 메모의 내용을 기반으로 자신의 입장을 담은 전보를 작성했다고 추정하였고, 주요 신문사들이 그 전보에서 비롯된 성명을 인용하면서 이러한 오해가 퍼졌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5] 이러한 변화는 19세기 중반에 발간된 문학 작품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평가가 달라지는 과정에서도 동일한 모습이 나타났다.[6] 월트는 작품 제작 당시로써는 발전된 시도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할리우드에서 만연하던 비백인 배우들을 익살궂은 성격의 배역으로 출연시키던 풍조를 의도하진 않았으나 영화사의 CEO(이자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로썬 처음으로 뒤집어나가는 계기를 만들어줬기 때문이었다.[7] 각각 일본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의 더빙판이 존재한다.[8] 쿤스킨의 개봉 당시에 논쟁이 일었을 때 NAACP는 남부의 노래와는 다르게 작품에 대해 어려운 풍자로 해석한다는 편지를 써보내며 쿤스킨을 지지해줬다.[9] 2019년 디즈니+ 서비스가 시작될 당시 밥 아이거가 남부의 노래를 언급한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디즈니+에서 (남부의 노래를) 수록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취지의 발언으로 답변한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