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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9 23:48:40

내 사랑 내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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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래
1.1. 김현식의 노래
1.1.1. 가사1.1.2. 커버
1.2. SG워너비의 노래
1.2.1. 가사
2. 영화3. 드라마

1. 노래

1.1. 김현식의 노래

파일:f_logo.png
대상
변진섭
<너에게로 또 다시>
(1990년)
김현식
<내 사랑 내 곁에>
(1991년)
신승훈
<보이지 않는 사랑>
(1992년)
* 2006부터 음반 대상디지털 음원 대상으로 나뉨
<colbgcolor=#000><colcolor=#fff> 내 사랑 내 곁에
수록 음반 KIM HYUN SIK VOL.6
앨범 발매 1991년 1월 26일
길이 4:24
작사/작곡 오태호
편곡 송홍섭
노래 김현식
앨범 제작사 서라벌레코드
노래방 수록 정보
파일:금영엔터테인먼트 심볼.svg 231
파일:TJ미디어 심볼 다크.svg 272, 62086 파일:TJ MR 아이콘.png
[clearfix]
1991년에 발매한 김현식 6집 앨범의 타이틀곡. 작사, 작곡은 오태호로 사후 싱글로 발매했다.

비처럼 음악처럼과 함께 김현식의 커리어 최대 히트곡 중 하나로, 이미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 노래가 발매되었을 당시의 대한민국에서는 발라드와 클래식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댄스곡에만 관심이 있었던 10~20대까지 거의 다 알고 있었을 정도로 국민가요로 손꼽히던 명곡이기도 하다.

1990년대 당시 매우 긴 시간동안 각종 음악 방송, 차트에서 1위를 달성하였으며, 2020년대 현재의 젊은 세대에게도 인지도가 매우 높을 정도로 가장 유명한 1990년대를 대표하는 명곡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또한,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곡 순위를 매길 때도 이 노래가 일단 최상위권에 랭크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발라드로써 대한민국 대중가요계를 상징하는 곡이 된 것이다.

이 곡을 발매하기 전 해인 1990년, 김현식은 32세라는 젊은 나이로 간경변 투병 끝에 명을 달리하게 되었고, 이 곡은 그의 사망 후 발매해 대성공을 거두었다.[1]

단, 이때 김현식의 술, 담배 영향으로 인한[2] 쇳소리가 진한 허스키한 창법 때문에 김현식의 초기 발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곡 때문에 허스키한 보컬리스트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면도 있다.

한 스튜디오에서 이 곡의 미공개 녹음본이 발견되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가수가 떠나고도 KBS 가요톱10에서 김정수의 <당신>과 공동 1위를 했고[3], MBC에서는 이범학의 <이별 아닌 이별>[4]을 꺾었으며, SBS 인기가요 1회(첫 방송) 1위를 차지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조금 놀라운 비사가 있다면 이 노래가 김현식 생전에 첫 계획에서는 다음 앨범 곡으로 계획했다는 것. 즉, 김현식의 대표곡인 이 노래가 나오지 못할 뻔 했다는 이야기다.

오태호의 말에 의하면 5음계로 작곡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인의 정서를 잘 반영한 곡이라는 평가가 있으며, 간혹 포장마차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어느새 안에서 술 마시던 모든 사람들이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기묘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tvN 선정 한국가요 불후의 명곡 탑 100곡에서 1위에 올랐다.

금영, TJ 반주기에서는 모두 원곡보다 2키 낮춰져 있다. 원곡은 G, 반주기는 F.[5]

1.1.1. 가사

내 사랑 내 곁에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철이 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당신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겠지요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 가는데[6]
약속했던 그대만은 올 줄을 모르고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 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 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 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 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1.1.2. 커버

1.2. SG워너비의 노래



SG워너비 6집에 포함된 노래다.

1.2.1. 가사

당신 소나기 같아요 흠뻑 젖을만큼 사랑을 주었던 그대
당신 햇살과 같아요 내가 흘린 눈물 마르게 한 그대

울지말아요 울면 안돼요
그 사랑에 보답이라곤 해줄거라곤 이별 뿐인데
웃어볼게요 웃어줄게요 My love
헤어질 시간이 보내줄 시간이 왔죠

내사랑 내곁에 제발 머물러줘요
마음속 천번 만번 소리치고싶지만
내사랑 가세요 아름다운 이별이니까 슬프지않아요
라 라라라 랄랄라 라라 라라라 랄랄라 사랑해요
라 라라라 랄랄라 라라 라라라 랄랄라 미안해요

당신 보물과 같아요 세상을 뒤져도 찾지 못할 사람
기쁜 날에도 슬픈날에도
나보다 더 기뻐해주고 슬퍼해주던 그대였는데
그리운 날엔 보고픈 날엔 My love
언제나 내곁에 달려와주었던 그대

내사랑 내곁에 제발 머물러줘요
마음속 천번 만번 소리치고싶지만
내사랑 가세요 아름다운 이별이니까 슬프지않아요

이별 없는 세상 혹시있다면
그대와 함께 나 살고싶은데
잊어도 잊어도 너무 그리워지면
한걸음에 달려가 안길지도 몰라요

슬퍼도 슬퍼도 그땐 날 모르는척해요 가슴은 아파도
라 라라라 랄랄라 라라 라라라 랄랄라 사랑해요
라 라라라 랄랄라 라라 라라라 랄랄라 고마워요

2.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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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드라마

3.1. SBS 주말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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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KBS 1TV 일일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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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무명이던 오태호가 신촌블루스에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흥얼 거리고 있다가 김현식이 그 노래가 뭐냐고 묻자 오태호가 본인이 작사 작곡한 노래라고 답했고 김현식은 이 노래를 달라고 했고, 오태호는 흔쾌히 수락했다. 5집 앨범에 수록되어 있지 않자 실망하며 '얘기라도 해 주시지' 라고 생각했었고 6집을 듣고 미안해졌다고 한다. 자기가 상상한 것과는 다른 곡이 나와 놀랐다고도 한다.[2] 본인이 의도적으로 허스키하게 냈다는 설도 있다.[3] 1991년 12월 4주에 당신과 공동 1위를 하고 1992년 1월 3주에 다시 1위를 했다.[4] 재미있는 것은 이별 아닌 이별을 작사하고 작곡한 사람도 바로 이 내 사랑 내 곁에를 작사작곡한 오태호란 것이다.작곡가 미러전[5] 그래서 원곡(G)으로 부르고 싶으면 #버튼을 2번 누르거나 남/여 버튼을 눌러서 여자키로 변경한 후에 b버튼을 3번 눌러야 한다.[6] 작사가 오태호에 따르면 의도한 가사는 '멀어 집으로'가 아니라 '멀어짐으로'인데, 잘못 부른 가녹음밖에 남지 않아서 그것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김현식이 임종을 앞둔 상태였음을 고려하면 '멀어짐'을 현생과의 이별, '집'을 사후세계로 해석할 수도 있어 어느쪽이든 비장함이 더해진다. 커버도 '멀어 집으로'로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하동균 등의 일부 커버는 '멀어짐으로'로 제대로 고쳐 부르기도 했다.[7] 다만 과도한 애드리브로 인해 거미의 개구쟁이와 함께 최악의 1위 곡으로도 뽑혔고 평이 갈리는데, 서정적인 느낌에 잔잔하게 부르는 것이 매력인 곡이라 실제로 리메이크 버전의 곡들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듣는 곡이 리치럼블 피쉬처럼 별 애드립 없이 부른 버전이다. 그래도 가창력에 대해선 이견이 없는 편이며, 사실 당시 김연우의 1위는 본 경연에서 광탈하고 뒤늦게 가창력이 재조명받아 일시적이지만 복귀 무대로서 받은 것도 있다.[8] 불후의 명곡에서 '비처럼 음악처럼'과 '골목길'도 불렀다. 비처럼 음악처럼의 중간에 내 사랑 내 곁에를 몇 소절 삽입했다.[9] 이 노래는 많이 건들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10] 당시 가요대전의 컨셉이었던 넘버원 스페셜에 맞춰 SBS 인기가요 제1회에서 1위를 차지한 노래를 불렀으며, 이 때 종현이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추모곡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도 보이는데, 실제로 아이유의 가창이 끝나고 종현을 추모하는 VCR이 나가기도 했다.[11] 1958년 서울 출생. 1983년 대만 국적 취득 후 1984년 가수로 데뷔.[12] 특별 생방송을 포함하면 조장혁도 선곡했다. 또한 설운도도 3라운드에 진출했다면 불렀을 선곡이었으며 이에 MC 재량으로 특별히 내 사랑 내 곁에를 불러 많은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