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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12 23:30:46

네가파탐 해전



1. 개요2. 배경3. 양측의 전력
3.1. 영국 해군3.2. 프랑스 해군
4. 전투 경과5. 결과

1. 개요

7년 전쟁 시기인 1758년 8월 3일 인도 카르나틱 해안의 네가파탐 인근 바다에서 영국 해군과 프랑스 해군이 맞붙은 전투. 양측 모두 막심한 피해를 입었으나 대체적으로 영국 측의 전략적 승리로 평가된다.

2. 배경

쿠달로르 해전을 치른 후 석달간 미드라에서 함대를 재편성한 영국 해군 중장 조지 포콕은 1758년 7월 25일 아쉐 백작의 프랑스 함대를 찾아내기 위해 미드라에서 출항했다. 그는 해안가를 따라 함대를 이끌고 가던 중 27일 저녁 퐁디셰리 근방에서 프랑스 함대 일부를 목격했다. 포콕은 이들을 추격해 따라잡으려 했으나 프랑스 해군은 적을 피해 후퇴를 거듭했다. 그러던 8월 3일 오전 5시, 영국 함대는 네가파탐 앞바다에서 전방에 늘어선 아쉐 백작의 프랑스 함대 전열을 발견했다. 이에 포콕은 전 함대에 적 함대를 격멸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3. 양측의 전력

3.1. 영국 해군

3.2. 프랑스 해군

4. 전투 경과

오전 7시, 포콕은 프랑스군이 바람을 거스른 채 전열을 편성한 것을 지켜보고 전 함대에 더 많은 돛을 달아서 바람을 등에 업고 적을 향해 접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후 오전 8시 30분 프랑스 함대가 영국 함대를 향해 조금씩 움직였다. 오전 9시, 두 함대는 5km 이하 거리까지 접근했다. 포콕은 Comte-de-Provence 호가 선두 대열을 이끄는 것을 보고 엘리자베스 호에게 선두 대열을 이끌고 적과 대결할 것을 명령했다. 오전 10시, 프랑스 일부 함대는 영국 함대의 후방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던 오전 11시 바람이 잦아들면서 영국 함대는 곤경에 빠졌다. 반면 프랑스 함대는 육지에서 가벼운 바람을 등에 업은 채 적을 향해 신속히 나아갔고, 일부 프랑스 함대는 영국 함대 후방에 바짝 다가가서 영국 함대 후미를 구성하고 있는 컴버랜드호와 뉴캐슬호를 본대와 단절시키기 직전에 이르렀다.

그날 정오,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포콕 제독은 전 함대에게 대열을 새로 편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영국 함대는 이에 따라 신속하게 이동했고 프랑스 함대 역시 대열을 재편성했다. 낮 12시 20분, 포콕은 전 함대에게 적을 제압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오후 1시, 영국 함선들은 프랑스 함대를 향해 무작위적인 포격을 개시했다. 그들의 대열은 반달 모양으로 이뤄졌고 선두와 후방은 프랑스 함대의 중심을 향해 있었다. 오후 1시 20분, 선두 대열을 이루고 있는 프랑스 함선들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간 엘리자베스 호를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엘리자베스 호와 Comte-de-Provence 호는 곧바로 서로에게 포격을 개시했다. 이때 엘리자베스 호 선원들은 적 함선을 향해 인화성 물질을 던져댔고, 결국 Comte-de-Provence 호의 돛대에 불이 붙자 Comte-de-Provence 호 선원들은 줄을 끊고 돛대를 잘라야 했다. 이렇게 Comte-de-Provence 호가 무력화되자, 엘리자베스 호는 Duc-de-Bourgogne 호에 공격을 개시했다. Duc-de-Bourgogne 호는 엘리자베스 호의 공세로 곤경에 처했으나 Zodiaque 호의 지원 덕분에 가까스로 후방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이후 Duc-de-Bourgogne 호는 후방에서 재정비한 뒤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으나 그만 탄약고 근처에서 화재가 일어나는 바람에 다시 후퇴했다. 그런데 Duc-de-Bourgogne 호는 후퇴하던 도중에 Duc d'Orléans 호와 엉키고 말았고, 이를 목격한 야머스 호와 타이거 호가 두 함선들을 향해 포격을 개시하는 바람에 두 함선들은 무지막지한 포탄 세례를 받았다. 한편 Condé 호와 Moras 호는 전선 밖으로 밀려났다.

오후 2시 15분, 후방에 있던 프랑스 함선들이 불규칙한 선로를 따라 후퇴하며 영국 함대로부터 조금씩 멀어졌다. 이를 본 포콕 제독은 적의 사기가 급격히 떨어졌다고 판단하고 전 함대에 적에게 접근하라고 지시했다. 프랑스 함대는 적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돛대를 달고 후퇴하다가 심하게 파손되었다. 영국 함대는 정신없이 도주하는 적을 3시까지 추격하며 대포를 퍼붓다가 적이 멀찍이 멀어지자 전열을 재정비한 뒤 해가 완전히 질때까지 적의 행보를 추적했다. 오후 8시경, 영국 함대는 카라이칼에서 5km 떨어진 항구에 정박했고 프랑스 해군은 퐁디셰리로 퇴각했다. 이렇게 네가파탐 해전은 막을 내렸다.

5. 결과

프랑스 해군은 이 전투에서 540명의 사상자를 기록했으며 아쉐 백작 역시 부상을 입었다. 특히 Zodiaque 호에서만 183명이 사망하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한편 영국 함대는 130명의 전사자와 116명의 부상자를 기록했다. 아쉐 백작은 퐁디셰리에 도착한 뒤 이 거기까지 쫓아올 것을 두려워해 배를 항구에 꽁꽁 묶어두고 선원들이 퐁디셰리 마을에서 쉬게 했다. 그 후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그는 모리셔스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퐁디셰리의 프랑스 총독과 현지 군대 및 시민들은 그의 이 결정에 경악하며 만류하려고 애썼지만, 그는 선장들의 지지를 받고 이들의 하소연을 묵살해버렸다. 결국 아쉐 백작은 9월 3일 함선들을 이끌고 모리셔스로 가버렸고, 퐁디셰리의 프랑스 해군 전투력은 이때문에 크게 약화되어 더이상 영국 함대와 대적할 수 없었다. 이리하여 영국은 인도 전선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승기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