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31 21:39:51

노로돔 시아모니

노로담 싸이하무니에서 넘어옴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11c63, #032ea1 20%, #032ea1 80%, #011c63); color: #F0D657;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0px"
착토묵 시대
<rowcolor=#F0D657>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보롬 리치아 2세 나라야나 라마티파티 리치아 라마티파티 스리 스리요티 2세
<rowcolor=#F0D657> 제5대 제6대
토모 레차 1세 스리 스콘토르
롱벡 시대
<rowcolor=#F0D657>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네이 칸 앙 찬 1세 보롬 레차 1세 사타 1세
<rowcolor=#F0D657> 제11대
체이 체타 1세
스레이 산토르 시대
<rowcolor=#F0D657>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프레아 람 1세 프레아 람 2세 보롬 레차 2세 보롬 레차 3세
<rowcolor=#F0D657> 제16대 제17대
카에브 후아 1세 보롬 레차 4세
우동 시대
<rowcolor=#F0D657> 제18대 제19대 제20대 제21대
체타 2세 토모 레차 2세 앙 통 레차 보톰 레차
<rowcolor=#F0D657>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레메아 티피티 1세 보롬 레차 5세 체타 3세 프레아 케오 2세
<rowcolor=#F0D657>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앙 논 체타 4세 떼이여성 우떼이 1세
<rowcolor=#F0D657> 제30대 제31대 제32대 제33대
앙 엠 토모 레차 3세 사타 2세 토모 레차 4세
<rowcolor=#F0D657> 제34대 제35대 제36대 제37대
앙 통 체타 5세 우떼이 2세 앙 논 2세
<rowcolor=#F0D657> 제38대 제39대 제40대 제41대
앙 엥 앙 찬 2세 앙 메이여성 앙 두옹
프랑스령 캄보디아
<rowcolor=#F0D657> 노로돔 왕조 시소와스 왕조 노로돔 왕조
노로돔 프롬바리락 시소와스 참착라봉 시소와스 모니봉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제1왕국
<rowcolor=#F0D657> 노로돔 왕조 시소와스 왕조
노로돔 수라마리트 시소와스 코사막여성
캄보디아 제2왕국
<rowcolor=#F0D657> 노로돔 왕조
노로돔 시아누크복위 노로돔 시아모니
<rowcolor=#F0D657> 푸난 국왕 · 첸라 국왕 · 크메르 국왕 }}}}}}}}}

<colbgcolor=#032ea1><colcolor=#f8d913>
캄보디아 노로돔 왕조 제4대 국왕
노로돔 시아모니[1]
នរោត្តម សីហមុនី
Norodom Sihamoni
파일:노르돔 시하모니.jpg
출생 1953년 5월 14일 ([age(1953-05-14)]세)
캄보디아 프놈펜
재위기간 캄보디아 국왕
2004년 10월 14일 ~ 현재
가문 노로돔 가문
부모 아버지 노로돔 시아누크
어머니 모니크 이지
친척 노로돔 제나[2]
학력 프라하 공연예술 아카데미
종교 불교

1. 개요2. 생애3. 여담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캄보디아의 현 국왕. 크메르 공화국크메르 루주 정권 이전의 캄보디아를 다스렸던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아들이다. 시아누크 국왕의 퇴위 이후에 훈 센 총리에 의해서 반강제로 국왕에 즉위했으며, 현재까지 캄보디아의 국왕으로 재위하고 있다.

2. 생애

1953년 5월 14일생([age(1953-05-14)]세). 프놈펜에서 노로돔 시아누크의 7남7녀 중 6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제6비이자 1968년부터는 실질적으로 왕비 노릇을 했던 모니크([age(1936-06-18)]세)가 낳은 2남 중 장남이다. 초중고등학교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다니던 와중에 론 놀쿠데타가 터지자 계속 눌러앉아 프라하 공연예술 아카데미(AMU)에서 1975년 고전무용과 음악을 전공했으며, 이후에는 북한으로 넘어가서 영화촬영과 무용 등을 배웠다. 아버지 시아누크가 북한을 방문했을때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춘 영상이 남아있다.50:57 1977년에 유학을 마치고 캄보디아로 귀국했다. 당시에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그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에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오가며 권력을 쥐고있던 론 놀이 삽질과 베트남전의 미군의 폭격 등으로 폴 포트크메르 루주에게 정권을 내주자,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3]과 캄보디아 왕가는 귀국했지만,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은 1년 만에 대통령직에서 쫓겨났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1977년부터 프놈펜 왕궁에 유폐되었다.[4] 결국 베트남 인민군이 캄보디아를 침공한 덕에 가족들과 왕궁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후에 1981년부터 프랑스로 가서 20년 이상 영화감독이나 발레강의, 캄보디아의 전통무용의 소개 등을 하고 종종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프라하를 다녀오며 지냈다. 캄보디아 왕국이 들어서고 아버지인 노로돔 시아누크가 다시 국왕으로 복위한 1993년부터는 캄보디아 대사 자격으로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대사 일을 맡았다.[5]

그런데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이 2004년에 퇴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2004년 10월 7일, 왕실평의회에서 살아있는 형들(노로돔 라나리드, 짜끄라뽕)을 제치고 자신을 차기 국왕으로 지명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형 노로돔 라나리드가 당한 것처럼 훈 센이 사실상 모든것을 독재하고 왕실은 꼭두각시에 불과하기에 그대로 왕위를 계승하면 남은 생애를 왕궁 안에 갇혀서 감시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왕위계승을 거부하며 중국 베이징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버지가 왕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만류에 마지못해 즉위식을 사치스럽지 않게 해달라는 조건으로 차기 국왕으로 올랐고[6], 결국 남은 생애를 그대로 왕궁 안에 갇혀서 현재까지 감시받으며 가끔 가다가 서류결재와 손님접견을 받는 삶을 살고 있다. 같은 입헌군주국인 일본나루히토 덴노 즉위식 같은 외국 행사에 가끔 참여하는 것을 보면 총리의 허락을 받고 어느 정도의 대외활동도 다니고 있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유럽에서 발레와 영화 등의 예술 쪽에서 활동하던 왕족일 뿐, 캄보디아에는 아무런 정치적 기반도 없었다. 게다가 캄보디아는 독재자 훈 센이 모든 것을 휘어잡고 있는 나라이다.[7] 이런 상황에서 노로돔 시아모니 국왕이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3. 여담

미혼으로 가족이 없으며, 이것을 두고 항간에서는 국왕이 동성애자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캄보디아 국민들에게는 군주제에 대한 지지도가 높고 노로돔 시아모니 국왕 역시 선량한 성품으로 인기가 높다. 자식은 없지만 캄보디아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이 국가의 왕위는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총리, 원로원ㆍ국회의장 및 부의장, 불교 종정 등의 9명으로 구성된 국왕선출위원회가 왕족 중에서 선출한다. 따라서 노로돔 시아모니 국왕에게 자식이 없다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으며, 결국에는 왕족들 중에서 실권자 훈 마넷이나 그 후계자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이 차기 국왕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4.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세이소 왕조
빌럼알렉산더르 하랄 5세 프레데리크 10세 레치에 3세
테멩공 가문
앙리 한스아담 2세 이브라힘 이스칸다르 알베르 2세
모하메드 6세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프란치스코 필리프
볼키아 왕조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하사날 볼키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칼 16세 구스타프
펠리페 6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얀 조안엔리크 비베스 이 시실리아 에마뉘엘 마크롱
들라미니 왕조
음스와티 3세 찰스 3세 하이삼 빈 타리크 알사이드
노로돔 왕조
압둘라 2세 나루히토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노로돔 시아모니
미샬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라마 10세 투포우 6세
왕위 계승자 · 대통령 및 총통 · 공산국가 지도부
총리 및 수상
}}}}}}}}}


[1] 크메르어 발음대로 표기하자면 노로떰 싸이하무니.[2] 2012년 3월 11일 출생으로 캄보디아의 공주이자 캄보디아 왕실의 일원이다. 그녀는 노로돔 시하모니 왕의 조카, 노로돔 보파리 공주의 둘째 딸, 전 노로돔 시아누크 왕의 증손녀입니다. 그녀는 제나 공주라는 애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Jenna는 또한 배우, 가수, 댄서, 모델이자 Cellcard의 Royal Brand 홍보대사입니다.[3] 론 놀 군부독재 시절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은 베이징으로 망명가서 라디오로 쿠데타 정권을 규탄하고 크메르 루주를 응원했다. 이 덕분에 그는 크메르 루주의 치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4] 이 시기 7남 7녀 중 5명이 생사불명 되었다.[5] 캄보디아에서 베트남 세력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인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시절부터 맡아달라는 요청이 계속되어왔지만 거절해왔다고 한다.[6] 빈곤한 조국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7] 대표적으로 2017년에 지방선거에서 훈 센에 질려버린 캄보디아 국민들이 캄보디아 구국당이라는 반독재 야당연합체에 힘을 실어주었더니, 2018년에는 국회의원총선거를 앞두고 구국당 당수를 체포하는 한편 구국당 자체를 해산시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