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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19:37:53

선거군주제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왕위 계승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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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체 및 정체의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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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역사4. 사례
4.1. 현재
4.1.1. 유사하거나 애매한 경우
4.2. 과거
4.2.1. 아시아4.2.2. 유럽4.2.3. 아메리카4.2.4. 오세아니아
4.3. 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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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거군주제(選擧君主制, elective monarchy)는 '군주지위선거에 의하여 계승되는 정치 체제'이다. 특별한 신분의 귀족 가운데에서 군주를 선출했던 신성 로마 제국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군주제의 한 형태로 군주를 세습으로 세우는 게 아니라 선출하여 세우는 정치 체제이다. '선출군주제'라고도 한다.

2. 특징

군주가 혈연에 의해 세습되는 여타 군주제와 달리, 선거군주제는 말 그대로 군주를 별도의 선출 과정을 거쳐 세운다. 이는 공화제, 특히 대통령제와 유사하지만, 이들과 선거군주제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신분, 계급, 혈통, 가문 등의 비민주적인 요소가 들어가거나 한번 선출되면 종신의 임기를 가진다는 것이다. 즉, 보통선거의 원칙이 선거군주제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사실 선거군주제는 대통령제와의 구별이 모호한 감이 있다. 대통령제는 누구나 투표할 수 있고 누구나 출마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임기가 정해져 있는 군주로 생각할 수 있다. 최초의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서 대통령이란 영국 국왕을 대체할 목적으로 만든 자리라는 걸 감안하면 아주 이상한 건 아니다.[1] 당시 미국 국민들은 물론 초대 대통령 본인인 조지 워싱턴에게도 대통령은 일종의 선거군주로 인식됐으며, 워싱턴은 임기 동안 국민들에게 자신을 "전하(His Elective Highness)"로 부르도록 하고 황제처럼 스스로를 3인칭으로 말하는 등 군주제의 의전을 행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국민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끝내 종신집권을 거부하고 낙향했고, 그 덕분에 선거군주제와는 구별되는 현재의 대통령제가 확립될 수 있었다.

3. 역사

가장 오래된 선거군주제는 고대 로마왕정 시대에 나타났다고 하는데, 로마 국왕 7명 가운데 2이 선거로 뽑힌 왕이라고 한다. 그러나 로마 왕정에 대한 기록은 신화적인 요소가 많고 사실적인 기록이 별로 없으며, 무엇보다도 당대에 쓰인 기록이 외부의 침공내전으로 인해 남아 있지 않아서 실제로 선거군주제였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는 선거군주제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신성 로마 제국이 있다. 카를 5세 이후로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독점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증조부이자 2대 전 황제인 프리드리히 3세 이후로 이미 독점 상태였고, 그 뒤로도 선거권을 가진 선제후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뿌리고 이권을 양보하는 등 황위를 세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의 바이에른 선제후카를 7세로 즉위한 적도 있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이웃나라 프랑스 왕국도 초기에는 선거군주제로 시작하였다. 루이 5세의 죽음으로 인해 서프랑크 왕국카롤링거 왕조가 단절되자 파리 백작이었던 위그 카페가 프랑스의 초대 국왕으로 선출되었는데, 그는 이슬람 세력 등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 갑자기 왕위가 비면 위험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자신의 아들 로베르 2세공동 왕으로 선출하게 했다. 그리고 카페 왕조가 계속 적장자로 대를 이으며 정통성을 강화하면서 국왕 선거는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했고, 나중에는 아예 폐지되어 세습군주제가 정착되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또한 선거군주제였고[2], 덴마크 역시 1660년까지 선거군주제였으나 이후 절대왕정으로 전환했다. 중세 루마니아왈라키아 공국몰다비아 공국도 선거군주제였다.

이슬람 제국칼리파무함마드 사후부터 4대 칼리파까지는 선출제로 뽑았지만 우마이야 왕조가 들어서면서 반대파를 제압하고 세습제로 전환되었다.

한국사의 사례로는 신라의 전신인 서라벌의 촌장이 선거로 선출된 직위라는 사례가 있으며 신라의 시조 혁거세 거서간부터가 6부 촌장들의 만장일치로 즉위한 군주였다. 아직 국가가 되기 이전이었으나 한국사 최초로 지도자를 선거로 뽑은 사례로서는 의의가 있다. 신라는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은 후, 그리고 진덕여왕 사후 성골의 씨가 마르자 화백회의를 통해 선덕여왕태종 무열왕을 추대하기도 했고, 고구려 역시 초창기에는 다섯 부족의 족장들이 통치자를 선출하였다. 고구려의 이 다섯 부족 족장 가문은 나중에 중앙 귀족으로 진출한다.

오세아니아에서는 하와이 왕국의 카메하메하 5세가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하여 카메하메하 왕조가 단절되자, 선거군주제가 도입되어 마지막 여왕미군에 의해 폐위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4. 사례

4.1. 현재


그 외 티베트 망명정부의 경우, 달라이 라마 14세가 입적하면 달라이 라마 14세의 뜻에 따라 선거군주제를 도입할 수 있다.

4.1.1. 유사하거나 애매한 경우

한편 아래 예시처럼 선거군주제로 보기에는 애매한 나라들도 있다.

4.2. 과거

4.2.1. 아시아

4.2.2. 유럽

4.2.3. 아메리카

4.2.4. 오세아니아

4.3. 가상


[1] 다만 미국은 영국 국왕을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까지 한 상황에서 새로운 왕을 다시 추대하는 것은 독립의 취지에 맞지 않았다. 그리하여 미국은 군주는 아니지만, 미국을 대표하고, 미국 독립선언의 가치를 실현해 줄 국가 수반으로서의 연방 최고지도자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연방의회에서 논의 끝에 '상석에 앉은 자' 또는 '회의를 주관하는 자' 정도를 의미하는 President(대통령)라는 단어를 만들어 국가 수반의 명칭으로 삼았다.[2] 이 쪽은 아예 대외적 비공식 국가 명칭으로 귀족 공화정(Rzeczpospolita Szlachecka)이란 이름을 자처했으며, 국왕은 선출직이며 왕권은 귀족의회에서 정한 헨리크 조항과 리베룸 베토에 따라 제한됐다.[3] 캄보디아 불교의 수장[4] 바티칸 정부에 대한 소개 및 설명 페이지(이탈리아어)에 따르면 본인들의 정부 체제(forma di governo)가 전제군주제(monarchia assoluta)라고 하고 있다.[5] 쿠릴타이에서 선출[6] 엄밀히 말하면 야기에우워 왕조는 루블린 연합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탄생하기 전 폴란드 왕국에서는 선거군주제였다.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우워의 후손들이 대대로 국왕으로 선출되어 잘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야기에우워 왕조가 본가 게디미나스 왕조를 이어 세습해온 영토여서 자연스럽게 세습했다.[7] 독립군 지도자 장 자크 데살린이 초대 황제 자크 1세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자크 1세가 피살된 후 제정이 폐지되어, 아이티의 선거군주제는 1대로 그치고 말았다.[8] 원래는 혈통세습이었지만 직계 단절 이후 방계 중에 선거로 군주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다만 작은 섬나라라 유력자의 경우 카메하메하 혈통과 연관이 없을 수가 없었다.[9] 실제 이벤트 기간 동안에는 '첵스초코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독재자 체키가 대통령 당선 된 이후 왕정으로 갈아치웠다 카더라 당연한 말이지만 재현 오류다. 왕국은 선거군주제를 해도 왕을 뽑지 대통령을 뽑지 않는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나라는 공화제 국가 밖에 없다.[10] 즉, 중증의 시스콘인 국왕이 어떻게든 누나에게 권력을 양도하고 싶어서 만들었지, 오래 갈 제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11] 종교 지도자라는 입지가 더 강하지만 성국 자체가 귀족 대신에 사제들로 구성된 국가이다. 작품 중에서 성하 대신 폐하라는 경칭을 쓰는 등 오류가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