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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5 13:08:14

라모히시에호 침몰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라모히시에호 침몰.jpg

1. 개요2. 사고 내용3. 사고 이후

1. 개요

SS Lamoricière

1942년 1월 9일 발레아레스 제도 인근에서 일어난 해상사고.

2. 사고 내용

라모히시에 호는 1920년, 뉴캐슬 조산소에서 만들어진 증기선으로, 같은 해 5월 20일에 진수식이 있었다. 이름은 프랑스의 유명 장군 Louis Juchault de Lamoricière에서 따왔다. 길이는 110m, 높이 15m, 디럭스 스위트 룸 6개, 일등석 106개, 2등석 116개, 3등석 132개가 있었다. 원래는 연료로 석유를 썼으나, 도중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석유 값이 오르자 석탄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개조됐다. 이 과정에서 최대속도가 17노트(약 시속 31km)에서 10노트(약 시속 19km)로 확 줄었다.

1942년 1월 6일 오후 5시, 여객선 라모히시에호가 프랑스령 알제리 알제리항에서 출항했다. 배엔 승객 272명과 승무원 122명이 탑승했다. 승무원들은 알제리, 지중해, 마르세유 출신이었다. 배엔 약 300톤 가량의 화물도 실렸는데, 상당수가 채소였다. 배는 처음엔 문제 없이 가는 듯 했다. 그러던 1월 7일 22시 54분, 라디오 오퍼레이터 Lejean은 인근의 프랑스 화물선 Jumières가 사고로 엔진이 고장나 표류중이라는 구조요청을 받았고, 이를 선장 Joseph Milliasseau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라모히시에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배는 침몰해 승무원 20명이 사망한 뒤였다.

라모히시에호의 상황은 금속도로 악화됐다. 날씨가 나빠져 보퍼트 풍력 계급으로 7에 달하는 거센 바람이 불고 파도가 몰아쳤고, 배를 구하러 가는 과정에서 석탄을 너무 쓰는 바람에 석탄도 거의 떨어져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선내 가구를 석탄 대용으로 태워가면서 버티려 했으나 파도가 창을 깨고 들어와 배에 점점 차올랐고, 엔진실에 물이 차면서 엔진이 죽었다. 선장은 급히 SOS 신호를 보냈다.

1월 9일 오전 11시, 선장은 배를 포기했다. 구명정을 내리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 애썼다. 하지만 배가 이미 기울어 구명정을 내리기도 힘들었다. 한 구명정은 내려가는 도중 흔들리더니 그대로 가라앉아 2명을 빼고 전부 사망하기도 했다. SOS 신호를 받은 Gueydon호가 55명, Chanzy호가 25명, 그리고 Impétueuse호가 12명을 구조했다. 오후 12시 35분, 라모히시에호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93명은 간신히 살아남았으나 301명이 사망했고 선장도 배와 운명을 같이했다. 사망자 중에는 에니그마 제작에 참여한 폴란드의 암호학자 예지 루지츠키#도 있었다.

3. 사고 이후

2008년, 스페인인과 이탈리아인으로 이뤄진 다이버 팀이 메노르카 섬 인근 수심 156미터 지점에서 라모히시에호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