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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계 카자흐스탄인은 카자흐스탄 국적을 가진 러시아인 혹은 카자흐스탄 내에서 러시아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인구 집단 전반을 지칭하는 어휘이다. 다민족 국가인 카자흐스탄은에서 카자흐어는 국어로 지정되어 있고, 러시아어는 민족간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카자흐인 상당수가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과 반대로 러시아계 카자흐스탄인들 중에서 카자흐어가 유창한 경우는 적은 편이다. 민족간 의사소통을 주로 러시아어로 하기 때문에 카자흐어를 의무교육 과정에서 딱 배울만큼 배우는 경우가 다수라서 잘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고, 그나마 Q-POP이 히트치면서 좀 나아진 수준이다.2. 이민사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러시아인 가족, 1911년. |
첫 번째는 18~19세기 당시 이주한 카자크나 유형자 혹은 타타르인 무역상인들의 후손이다. 아스타나와 알마티는 19세기 초반에서 중반 사이 카자크들이 건설한 요새를 기원으로 한다.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 제국은 카자흐 칸국이 아직 러시아의 보호국이던 시절 현지 무슬림들과의 충돌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타타르스탄 일대의 볼가 타타르 혹은 시베리아의 시베리아 타타르들을 많이 파견하였는데, 이들은 오늘날 카자흐스탄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남겼다.
두 번째는 표트르 스톨리핀이 농민들의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이주를 지원하면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사이에 유럽 러시아 쪽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이민한 경우였다. 러시아 제국에서 1861년부로 농노를 해방한 이후 러시아 제국의 유럽 영토 지역 농촌은 인구 과밀 문제가 심각하였는데, 스톨리핀은 농민들의 빈곤 문제도 해결하고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영토도 확실히 개발할 겸 아시아 영토로 이주하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모든 체납금 탕감, 기차표 가격 인하, 5년 동안의 세금 면제, 무이자 대출 등 엄청난 특혜를 줬다. 이주 도중에도 식량과 의료 원조를 제공했다.[1]
세 번째는 1930년대 초반 카자흐스탄 대기근 시절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에 이주한 경우로 5개년 계획에 따른 산업화 과정이나 독소전쟁으로 인해 유럽 지역의 산업시설 등을 후방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이주한 경우가 많았다. 또 이 시기에는 소련에서 제5열 즈음으로 의심받아 강제이주당한 경우가 많았는데 러시아인 외에도 소련 각지의 소수민족 즉 고려인이나 체첸인, 흑해 그리스인, 폴란드계 러시아인, 볼가 독일인, 칼미크인, 메스케티 튀르크인[2] 등등이 많았다. 여담으로 국내에는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당한 여러 민족들 관련하여 솔제니친이 남긴 에세이가 잘 알려져 있다.
네 번째는 1950~70년대 처녀지 개간 운동이나 카자흐스탄 일대의 석유산업 육성 등 소련 중앙정부의 카자흐스탄 개발로 인해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경우이다.
러시아 제국 시절 이민한 사람들의 경우 이미 이민 온 지 100년도 더 된 사람들의 후손이라서 이미 카자흐스탄이 고향이고 세 번째와 네 번째에 해당하는 사람들 즉 1930년대 이후 카자흐스탄에 이주하였던 사람들은 카자흐스탄 독립 후 러시아로 많이 복귀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에 해당하는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지 100여 년이 넘는 러시아인 및 후손은 카자흐스탄 독립 후 일부 러시아로 복귀했으나 카자흐스탄 출신 촌놈이라는 괄시와 무시로 인해 러시아에 적응 못하고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귀향하기도 했다. 물론 소련 시절 이주해온 후자의 경우도 일부는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오거나 아예 러시아로 돌아가지도 않고 그대로 카자흐스탄에서 눌러살기도 한다.
카자흐스탄 현지에서도 자국 내 러시아인과 러시아 본토 러시아인을 분리하여 인식한다. 인종은 러시아인이지만 멘탈은 다른 사람이라는 식이다.
소련 시절에는 러시아인들이 위낙에 많이 이주했기 때문에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인을 제치고 제1민족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으나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로 되돌아가서 정착한 러시아인들이 많았고, 한때 출산율이 1명대 초반으로 떨어진 적도 있던 데다 지금도 카자흐인은 자식을 평균적으로 3~4명을 낳는 편인데 반해 러시아인은 2명 정도를 낳는 수준이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인구에서 러시아인들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래도 아직 남은 러시아인들도 300만명을 넘으며 곡창지대인 북부 지역에서 여전히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입장에서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2022년 러시아 동원령 이후 상당수의 러시아인들이 국경을 넘어 카자흐스탄으로 탈주하는 상황이라 카자흐스탄에 체류 혹은 정착한 러시아계 인구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3. 현황
2019년 기준 카자흐스탄 내 러시아인 인구 분포도. 주로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
2021년 기준 러시아계 카자흐스탄인 인구는 2,981,946명으로 카자흐스탄 국민 중 15.54%계가 러시아계이다.
러시아계 카자흐스탄인들 중에는 모어는 러시아어더라도 우크라이나계 성씨를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러한 연유로 2020년 인구 통계 조사에서 자신을 러시아인이라고 응답했다가 2021년 인구 통계 조사에서는 다시 자신이 우크라이나인이라고 응답한다든지 같은 경우도 흔하다. 2020년 통계 당시 카자흐스탄 내 러시아계 인구는 3,512,925명으로 나왔다가 이듬해 조사 때는 2,981,946명으로 대폭 감소하였는데, 반대로 자신을 우크라이나계라고 응답한 경우는 263,962명에서 387,327명으로 증가하였다.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이 코로나 시즌에 카자흐스탄을 활발하게 오고갔다고 보기는 힘들고, 이중적인 민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 분위기 등등에 따라서 응답을 달리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인구통계 수치와 관련하여 주의해야할 부분은 개인이 공식적으로 표기되는 민족명을 쉽사리 선택하여 바꿀 수 있다는 측면이다. 소련시기 공식문서에 표기되는 민족명이 러시아인 경우에는 전문적인 경력을 쌓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가 더욱 많이 주어졌기 때문에 폴란드인 가운데 다수는 러시아인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독립 이후에는 공식민족명이 러시아로 표기되는 경우에는 카자흐인과 러시아인간의 비우호적인 관계로 인해 사회적인 발전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가 어렵지만 반면 폴란드나 독일, 우크라이나로 표기되는 경우에는 공식민족명이 러시아로 표기되는 것보다는 더욱 많은 잠재력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KCI 등재논문 :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유럽계 소수민족 집단의 형성과 변화(폴란드인, 그리스인)
KCI 등재논문 :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유럽계 소수민족 집단의 형성과 변화(폴란드인, 그리스인)
카자흐스탄은 무슬림 인구가 사회 대다수를 점하는 국가이지만, 카자흐인 무슬림들이 상당히 세속주의적이라 민족적 갈등은 있을지 몰라도 종교적인 갈등은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비교하면) 사실상 전혀 없다고 보면 된다. 카자흐인들은 주로 정교회를 믿는 러시아계보다는 오히려 같은 무슬림들이자 이웃 라이벌 국가의 우즈베크인에게 라이벌 의식이 강한 편이며, 카자흐스탄에서 민족 폭동이 일어나면 주로 중국계 무슬림들인 둥간족들이 타격을 입는 편이다.# 카자흐스탄의 소수 민족 그룹으로 타타르족 중에 크랴셴[3] 인구 2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다른 중동 국가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2009년 민족별 종교 통계 당시 러시아계 카자흐스탄인 중 92.64%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응답하였으며[4] 6.09%는 무신론자, 0.43%는 무슬림이라고 대답하였다.[5][6] 같은 통계에서 자신을 유대교인이라고 응답한 경우는 0.04%, 불교 신도라고 응답한 경우는 0.02%였다.
4. 유명 인물
5. 관련 문서
[1] 다만 당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농민들 중에는 러시아인보다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더 많았다.[2] 조지아 일대에 거주하던 튀르키예인[3] 타타르족 중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배교한 사람들의 후손이 많은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이슬람에서 타 종교로 넘어간 배교자들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다.[4] 해당 통계에서 기독교 종파 관련 조사까지는 진행되지 않았는데, 러시아계 카자흐스탄인 대다수는 기독교 중에서도 정교회를 믿고 있다. 가톨릭이나 개신교 신자는 소수이다.[5] 타타르족이 아닌 러시아인이 자신을 무슬림이라고 응답한 경우는 대개 무슬림과 통혼하면서 개종한 경우이다.[6] 카자흐스탄의 민족 통계는 러시아인과 타타르족을 별개의 민족으로 구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