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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12:22:29

레젠다리움/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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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젠다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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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종교3. 마법4. 트라우마

1. 개요

톨킨은 작품을 알레고리적으로 쓰거나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지양했다.[1][2] 60년대에 쓰여진 서문에서도 스스로 밝혔듯이 그는 이야기를 현실에 대한 어떤 은유나 시사로 받아들이기보다, 이야기 그 자체를 사랑하고 쓰는 작가였다. 자신의 글에서 상징성을 찾아내려는 행위를 지극히 혐오했다. 사우론은 히틀러스탈린이라느니, 자본주의라느니, 현대 과학이라느니 이렇게 말하는 평론가들을 너무 싫어했고 "그냥 이야기는 이야기로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톨킨의 이 관점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화나 전설, 역사에는 자연스럽게 '적용가능성(applicability)'이 생긴다. 톨킨은 본인의 이야기에 다양한 적용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은 무척 환영했다. 그러나 '적용가능성'은 결코 '풍자(allegory)'와 같지 않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생각해보면 쉬운데, "마치 이카로스의 날개가 녹아내리듯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카로스 이야기는 ~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이야기야"라고 말하는 건 천지차이라는 것이다. 톨킨은 후자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극도로 싫어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톨킨의 표현들은 톨킨의 서간집(The Letters of J.R.R.Tolkien)에 고스란히 실려있다. 다만 역사적인 영감 정도는 받았으며, 예를 들어서 로한은 앵글로색슨족, 난쟁이는 유대인에서 따왔다고 밝힌 바 있다.

2. 종교

"반지의 제왕'은 물론 근본적으로 종교적이고 가톨릭적인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무의식적으로 그랬지만, 개정에서는 의식적으로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종교'와 같은 상상의 세계에서의 컬트나 관습에 대한 어떤 언급도 넣지 않았거나, 실질적으로 모든 언급을 배제한 이유입니다. 종교적인 요소가 이야기와 상징에 흡수되기 때문입니다."
J. R. R. 톨킨#[3]

톨킨은 어렸을때부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나니아 연대기와 같은 직접적인 알레고리를 싫어하긴 해도 기독교적인 요소가 작품 속에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일루바타르는 대놓고 아브라함계 종교절대신에서 따왔으며, 멜코르사탄루시퍼, 아이누는 천사와 흡사하다. 간달프, 골목쟁이네 프로도, 아라고른 2세 등이 예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이외에도 렘바스는 미사 때 사용하는 성체에 모티브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등을 위시하는 기독교 철학에 의하면 순수선은 존재해도 순수악은 엄밀히 말해서 존재하지 않는데 악에 실체가 없고 단순히 선의 부재로 보기 때문이다. 킨도 이에 따라 사우론 또한 엄밀한 의미에서의 절대악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3.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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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트라우마

톨킨 본인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고는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린 탓에 작품 곳곳에 그 영향이 있다. 특히 주인공 일행은 반지전쟁 이후로도 전쟁 도중에 얻은 트라우마에 고통받는 묘사가 있다. [4]

반지의 제왕 본편 외에도 실마릴리온이나 호빗, 그리고 가운데땅의 역사서에서도 트라우마를 겪는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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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루이스와 작품관으로 인해 갈등을 빚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2] 다만 다수의 평전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바로는 후에 종교적인 요소는 인정을 하고, 많은 모티브를 따로 이야기하기도 하였다.[3] 1953년 12월 2일, 톨킨은 그의 친구 로버트 머레이(Robert Murray) 예수회 신부에게 상당히 짧은 다섯 단락의 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는 그의 모든 편지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편지가 되었다. 머레이 신부는 ‘반지의 제왕’의 일부를 읽고 논평했으며, 그 글로 인해 “은혜의 질서와 긍정적인 양립성”에 대한 강한 감각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The Letters of J.R.R. Tolkien, 171-72).#[4] 또한 나즈굴 같은 자들은 아예 이를 무기처럼 휘두르기도 한다. 후술하듯이 파라미르를 괴롭힌 검은 숨결이 대표적.[5] 고통이 평생 얼굴에 각인되었다는 묘사가 흔하다.[6] 이는 톨킨의 개인 일화에서 따온 이야기이다. 전술했듯이 톨킨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고 그 악몽 탓에 힘들어할 때 아내인 이디스 톨킨의 춤을 추며 그를 위로했다고 한다. 이 일화를 톨킨 부부의 페르소나인 베렌과 루시엔 부부에 투영한 것이다.[7] 호빗 실사영화 시리즈에서도 스란두일이 긴 세월 동안 쇄국 정책을 펼친 이유를 과거 전란에서 얻은 트라우마 탓으로 소개하고 있다. 다만 판권 탓인지 모르도르가 아니라 앙마르를 정벌할 때 아내가 전사한 일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게 된 것으로 나온다.[8] 정확히는 스마우그의 마력이 소린의 트라우마를 자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