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오스왈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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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이 오스왈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 ||||||||||||||||||||||||||||||||||||||||||||||||||||||||||||||||||||||||||
2005 | 2006 | 2007 |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
2000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bordercolor=#002d62> | 휴스턴 애스트로스 명예의 전당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91919,#ffffff | 밥 아스프로몬테 | 제프 배그웰 | 크레이그 비지오 | 호세 크루즈 | 래리 디어커 |
진 엘스턴 | 밀로 해밀턴 | 조 모건 | 조 니크로 | 셰인 레이놀즈 | |
J.R. 리차드 | 놀란 라이언 | 마이크 스캇 | 짐 움브리히트 | 돈 윌슨 | |
지미 윈 | 랜스 버크먼 | 세자르 세데뇨 | 로이 호핀츠 | 로이 오스왈트 | |
빌리 와그너 | 밥 왓슨 | 테리 풀 | 탈 스미스 | 빌 브라운 | |
빌 도란 | 르네 카데나스 | 켄 캐미니티 |
2005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 ||||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로이 오스왈트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제프 수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다승왕 | ||||
러스 오티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 로이 오스왈트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돈트렐 윌리스 (플로리다 말린스) |
200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왕 | ||||
로저 클레멘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로이 오스왈트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제이크 피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번호 44번 | ||||
크리스 홀트 (1999~2000) | → | 로이 오스왈트 (2001~2010) | → | 저스틴 맥스웰 (2012~2013) |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44번 | ||||
넬슨 피게로아 (2010) | → | <colcolor=#ffffff> 로이 오스왈트 (2010~2011) | → | 마이클 슈위머 (2012) |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44번 | ||||
마이클 커크먼 (2011~2012) | → | 로이 오스왈트 (2012) | → | 제이슨 프레이저 (2013~2014) |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44번 | ||||
후안 니카시오 (2011~2013) | → | 로이 오스왈트 (2013) | → | 라이언 휠러 (2014) |
}}} ||
로이 오스왈트 Roy Oswalt | |
본명 | 로이 에드워드 오스왈트 Roy Edward Oswalt |
출생 | 1977년 8월 29일 ([age(1977-08-29)]세) |
미시시피 주 코시우스코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위어 고등학교 - 홈스 커뮤니티 칼리지 |
신체 | 183cm / 86kg |
포지션 | 선발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6년 드래프트 23라운드 (전체 684번, HOU) |
소속팀 |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1~2010) 필라델피아 필리스 (2010~2011) 텍사스 레인저스 (2012) 콜로라도 로키스 (2013) |
기록 | 노히트 노런 (2003.6.11) |
SNS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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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국적의 투수.2. 선수 경력
2.1. 휴스턴 애스트로스
이전부터 휴스턴이 주목하고 있는 유망주였고, 드래프트 앤 펠로우 제도[1]를 통해 드래프트 이전에 50만 달러를 받고 계약한 다음, 드래프트에서 23라운드에 지명을 받고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2] 입단 후 3년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당시 마이너 투수 코치였던 마이크 매덕스의 지도를 받으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이후 2000 시드니 올림픽에 미국 대표팀으로 승선해 벤 시츠와 함께 팀의 원투펀치를 맡아 금메달 획득에 큰 기여를 했다. 특히 등판했던 2경기 모두 한국 대표팀과 맞붙었는데, 2경기 모두 정대현과 눈부신 호투를 선보이며 명품 투수전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3]
2001년 트리플 A에서 시즌을 보내던 중 메이저로 콜업해 신인임에도 솔리드한 활약으로 신인상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같은 시기 데뷔한 알버트 푸홀스가 그야말로 리그를 씹어먹으면서 수상하지 못했다. 이후 선발진에 안착해 매년 200이닝과 두자릿 수 승리를 보장하는 리그 정상급 투수로 발돋움했고, 로저 클레멘스와 앤디 페티트라는 거물들의 영입에도 매년 개막전 선발을 맡을 정도로 팀과 팬 모두에게 인정받는 확고부동한 에이스였다.
이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미국 대표팀에 승선했는데,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부진한 투구로 패전 투수가 됐다. 이후 부진의 이유가 팔꿈치 부상을 숨기고 던진 것이라는게 알려졌고, 설상가상으로 부상의 여파가 시즌에 영향을 끼쳐 예년만 못한 활약을 보이다 후반기에 시즌 아웃으로 마무리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다행히 부상에서 돌아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으나 팀은 에드 웨이드 단장이 주도한 리툴링이 지지부진하면서 지구 꼴지로 추락했고, 호투를 선보였음에도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하며 6승 12패를 기록하는 불운한 시즌을 보냈지만 팀을 위해 홀로 마운드에서 고군분투했다.
2.2. 필라델피아 필리스
이후 휴스턴이 리툴링의 실패를 인정하고 리빌딩을 선언한 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되면서 팀을 떠나게 됐다. 로이 할러데이, 콜 해멀스와 함께 H2O로 불리는 막강한 트리오를 구상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지구 우승 경쟁에서 승리했고, NLCS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등판한 2경기 모두 호투했지만 팀은 6차전 끝에 패배하며 고배를 마셨다.이듬해에는 클리프 리까지 영입해 판타스틱 4라 불리우는 역대급 선발진을 꾸려 월드 시리즈 진출을 노렸다. 하지만 허리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부상자 명단에 올라가면서 선발진에 이탈한 기간이 길었고, 그 사이 밴스 월리가 선발진의 공백을 잘 매꿔주면서 오히려 월리가 판타스틱 4의 일원인 것 같은 하극상까지 일어나버렸다.
2.3. 텍사스 레인저스
결국 필라델피아가 옵션을 거부해 FA 시장에 나와 보스턴 레드삭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의 여러 팀들과 염문설을 뿌렸지만 계약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결국 5월에야 텍사스 레인저스와 1년 5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으며 복귀했고, 시즌 첫 등판에서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호투하며 기립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이내 부진을 거듭하자 불펜으로 보직을 옮겼고, 설상가상으로 등판까지 거부하면서 팬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는 등 부진을 이겨내지 못하고 연장 계약에 실패해 팀을 떠나게 됐다.2.4. 콜로라도 로키스
다시 메이저로 돌아오기는 힘들어 보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한 결과, 결국 콜로라도 로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며 복귀했다. 첫 등판인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탈삼진을 11개나 잡아냈지만 피안타도 9개나 허용하면서 5이닝 4실점으로 패배했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진을 거듭해 4연패를 기록하면서 마이너로 강등됐고, 9월에 다시 콜업됐지만 반등하지 못했다.3. 은퇴
4. 플레이 스타일
5. 연도별 성적
로이 오스왈트의 역대 MLB 기록 | |||||||||||||||||
<rowcolor=#d2c295>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01 | HOU | 28 | 14 | 3 | 0 | 0 | 143⅔ | 2.73 | 126 | 13 | 24 | 6 | 144 | 1.059 | 170 | 4.2 | 4.7 |
2002 | 35 | 19 | 9 | 0 | 0 | 233 | 3.01 | 215 | 17 | 62 | 5 | 208 | 1.189 | 144 | 6.2 | 7.0 | |
2003 | 21 | 10 | 5 | 0 | 0 | 127⅓ | 2.97 | 116 | 15 | 29 | 8 | 108 | 1.139 | 148 | 2.6 | 2.9 | |
2004 | 35 | 20 | 10 | 0 | 0 | 237 | 3.49 | 233 | 17 | 62 | 11 | 206 | 1.245 | 124 | 6.6 | 3.9 | |
2005 | 35 | 20 | 12 | 0 | 0 | 241⅔ | 2.94 | 243 | 18 | 48 | 8 | 184 | 1.204 | 144 | 6.1 | 5.9 | |
2006 | 33 | 15 | 8 | 0 | 0 | 220⅔ | 2.98 | 220 | 18 | 38 | 6 | 166 | 1.169 | 150 | 6.1 | 5.9 | |
2007 | 33 | 14 | 7 | 0 | 1 | 212 | 3.18 | 221 | 14 | 60 | 7 | 154 | 1.325 | 140 | 4.9 | 6.6 | |
2008 | 32 | 17 | 10 | 0 | 0 | 208⅔ | 3.54 | 199 | 23 | 47 | 10 | 165 | 1.179 | 119 | 3.7 | 3.9 | |
2009 | 30 | 8 | 6 | 0 | 0 | 181⅓ | 4.12 | 183 | 19 | 42 | 8 | 138 | 1.241 | 100 | 3.5 | 2.4 | |
2010 | 20 | 6 | 12 | 0 | 0 | 129 | 3.42 | 109 | 13 | 34 | 2 | 120 | 1.109 | 116 | 2.5 | 2.6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10 | PHI | 13 | 7 | 1 | 0 | 0 | 82⅔ | 1.74 | 53 | 6 | 21 | 3 | 73 | 0.895 | 234 | 1.9 | 3.3 |
2010 시즌 합계 | 33 | 13 | 13 | 0 | 0 | 211⅔ | 2.76 | 162 | 19 | 55 | 5 | 193 | 1.025 | 145 | 4.4 | 6.0 | |
2011 | PHI | 23 | 9 | 10 | 0 | 0 | 139 | 3.69 | 153 | 10 | 33 | 5 | 93 | 1.338 | 104 | 2.8 | 2.1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12 | TEX | 17 | 4 | 3 | 0 | 0 | 59 | 5.80 | 79 | 11 | 11 | 3 | 59 | 1.525 | 76 | 0.7 | -0.3 |
<rowcolor=#c4ced4>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13 | COL | 9 | 0 | 6 | 0 | 1 | 32⅓ | 8.63 | 49 | 3 | 9 | 1 | 34 | 1.794 | 52 | 0.9 | -0.9 |
MLB 통산 (13시즌) | 365 | 163 | 102 | 0 | 2 | 2245⅓ | 3.36 | 2199 | 197 | 520 | 80 | 1852 | 1.211 | 127 | 52.6 | 49.9 |
6. 수상 내역
수상 |
올스타 3회 (2005, 2006, 2007)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2005) 내셔널 리그 다승 1위 (2004)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 1위 (2006) |
7. 여담
- 휴스턴에서의 말년은 팀 자체가 몰락하면서 불운의 대명사로 떠올랐지만, 그 커리어 전체로 따지자면 타선의 득점 지원으로 2년 연속 20승을 기록하는 등 운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꾸준히 정상급 투수로써 군림했지만 리그 전체를 지배하는 장악력을 보이지 못하면서[8] 사이 영 상 등의 수상 실적은 명성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 2019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을 받았다. 전성기 시절에는 리그 내 가장 꾸준한 투수였지만 누적 스탯과 수상 기록이 부족해 입성은 힘들어 보였고, 결국 첫해부터 꼴랑 4표에 그치며 그대로 탈락했다.[9]
- 마이너 시절에 고질적인 어깨 통증으로 고생했는데, 시즌이 끝난 후 집에서 트럭을 고치다 감전을 당한 다음부터 어깨 통증이 없어져 마이너를 정복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가 있다.
- 데뷔 시즌의 임팩트와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연상시키는 투구 폼[10] 때문에 국내 한정으로 화이트 페드로라는 별명이 있었다. 거기에 피지컬도 페드로처럼 투수치고 작은 편이기 때문에 롱런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실제로 30대 중반 쯤 하락세를 겪고 은퇴했다.
- 2005년 NLCS에서 맹활약하면서 구단주에게 불도저를 선물 받은 것이 화제가 됐다. 이후 휴스턴 시절 동료인 헌터 펜스는 인터뷰에서 그 불도저를 타본 적 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 어릴 때부터 벌목공이었던 아버지의 일을 자주 도울 정도로 효자로 알려져 있다. 야구의 길로 인도 한 것도 바로 아버지였기 때문이고, 그래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하여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 필라델피아 시절 타자로 나와 우익수 앞 땅볼을 당했는데, 당시 우익수가 바로 KIA 타이거즈에서 활약한 로저 버나디나다.
- 바비 발렌타인에게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동급으로 취급당했다. 지금 와서 본다면 통산 성적만 봐도 비교가 안되지만 메이저 입성 당시 마쓰자카의 기대치가 그만큼 높았다고 볼 수 있다.
- 로이 할러데이와 외모가 비슷하게 생겨서 종종 못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11] 둘 다 필라델피아로 오기 전에 10여년간 각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고, 예상에 비해 일찍 은퇴하게 된 점도 같다.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NL 사이 영 상 1~3위 (2000-2009)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시즌 | <rowcolor=#000> 1위 | 2위 | 3위 | ||
2000년 | 랜디 존슨 | 톰 글래빈 | 그렉 매덕스 | |||
2001년 | 랜디 존슨 | 커트 실링 | 맷 모리스 | |||
2002년 | 랜디 존슨 | 커트 실링 | 존 스몰츠 | |||
2003년 | 에리크 가녜 | 제이슨 슈미트 | 마크 프라이어 | |||
2004년 | 로저 클레멘스 | 랜디 존슨 | 로이 오스왈트 | |||
2005년 | 크리스 카펜터 | 돈트렐 윌리스 | 로저 클레멘스 | |||
2006년 | 브랜든 웹 | 트레버 호프먼 | 크리스 카펜터 | |||
2007년 | 제이크 피비 | 브랜든 웹 | 브래드 페니 | |||
2008년 | 팀 린스컴 | 브랜든 웹 | 요한 산타나 | |||
2009년 | 팀 린스컴 | 크리스 카펜터 | 애덤 웨인라이트 |
}}}}}}}}} ||
[1] 지명 받은 선수가 주니어 칼리지에 진학하게 되면 이듬해 드래프트가 진행되기 1~2주 전까지 계약할 수 있는 제도로, 2006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가 2022년부터 다시 부활했다.[2] 이 때 휴스턴에 입단하지 않았다면 이듬해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뽑혔을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3] 올림픽에서의 활약을 본 김재박 감독이 흥미를 가져 현대 유니콘스가 오퍼를 시도했지만, 당시 휴스턴에서 각광받는 유망주였기에 에이전트가 거절했다.[4] 2월 중순이 되어서야 은퇴 선언을 한 것을 보면 선수 생활을 연장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냉정한 현실 앞에는 어쩔 수 없었던 듯하다.[5] 암흑기 시절 휴스턴을 지탱하던 프랜차이즈 스타들이지만 리빌딩을 빌미로 토사구팽 당한 선수들이기에 지금이라도 대우를 해준 듯하다.[6] 한때 평균 94마일을 기록했고, 투심의 비중을 높인 후에도 93마일 정도로 유지했다.[7] 일반적인 커브와 자신만의 그립으로 구사하는 특이한 커브를 던지는데, 벌목공인 아버지가 몸 담았던 벌목공 야구 팀의 동료에게 전수받은 것이라고 한다.[8] 단일 시즌에 비슷한 성적이나 그 이상의 성적을 찍은 선수를 뽑자면 리그에서 5~10명 정도는 뽑을 수 있다.[9] 세이버메트릭스의 확산으로 누적이 부족해도 세부 성적이 좋다면 입성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마저도 애매한지라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10] 다만 투구 폼은 2003년에 부상을 입은 후 완전히 뜯어고쳤다.[11] 이름도 Roy로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할러데이는 Roy가 본명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