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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91970><colcolor=#ffffff> 로저 무어 경 Sir Roger Moore KBE | |
본명 | 로저 조지 무어 Roger George Moore |
출생 | 1927년 10월 14일 |
영국 잉글랜드 런던 램버스 스톡웰 | |
사망 | 2017년 5월 23일 (향년 89세) |
스위스 크항 몽따나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5cm |
학력 | 왕립연극학교 하트퍼드셔 대학교 (2012 / 명예박사) |
배우 활동 | 1945년 - 2017년 |
부모 | 아버지 조지 앨프리드 무어(1904년 9월 21일생~1997년 10월사망) 어머니 릴리언 포프(1904년 5월 30일생~1986년 6월사망) |
배우자 | 도언 밴 스테인(1946년~1953년 이혼) 도러시 스콰이어즈(1953년~1968년 이혼) 루이자 마티올리(1969년~1996년 이혼) 크리스티나 톨스룹(2002년 결혼) |
자녀 | 딸 데버러 무어(1963년 10월 27일생) 아들 제프리 무어(1966년 7월 28일생) 아들 크리스천 무어(1973년생) |
데뷔 | 1945년 영화 '결혼 휴가' |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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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007 시리즈의 3번째 제임스 본드 역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전 배우.2. 생애
경찰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한국에선 007 시리즈의 3번째 제임스 본드 역으로만 알려져있지만, 제임스 본드에 발탁되기 전에도 영국에선 ITV 드라마 "세인트(The Saint)"의 주인공 사이먼 템플러(Simon Templar) 역으로 잘 알려진 유명 배우였다.[1] 전체 화수가 118편에 달해, 총 120화가 방영된 어벤저스(1961-9)와 함께 가장 장수한 영국 첩보물 TV 드라마 시리즈로 손꼽힌다.
국내에서도 개봉했던 종교 영화 <기적>(1959)의 젊은 장교 역에서 절정의 꽃미남 외모를 볼 수 있다.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
6 피트 1 인치의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영국 출신[2]에 육군 대위였던 군 경력[3], 완벽한 옥스퍼드 영어 구사 등등 여러모로 원작의 제임스 본드 이미지와 잘 맞았기에 007 시리즈 영화화 초기 단계부터 본드 역 물망에 올랐다는 얘기가 있었으며 원작자 이언 플레밍도 초기에는 무어가 맡기를 원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플레밍이 실제로 원한 배우는 케리 그랜트와 데이비드 니븐이었고, 무어는 인터뷰에서 자신은 이전엔 제작팀에서 전혀 거론된 적이 없었고 코너리가 하차한 뒤에야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코너리-레이전비의 뒤를 이어 3대 본드 역을 맡게 된다. 초기에는 '제임스 본드 = 숀 코너리' 라는 관객들의 고정 관념이 워낙 뿌리 박혀 있어서 무어의 본드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007 문레이커>의 대박 히트로 자신만의 본드 스타일을 확립했다. 영국 해군 중령인 본드와 달리 육군 출신이지만, 역대 본드 역 배우들 중 유일한 장교 출신이라 군복 차림이 가장 자연스럽다.
숀 코너리의 냉철한 육체파 본드에 비해 무어의 본드는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인상이 강하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유있는 동작으로 위기를 빠져나오면서 미소와 함께 한마디 조크를 남기는 모습은 무어 본드의 트레이드 마크. 아무래도 본드 첫 출연 때부터 이미 4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였으니[4][5] 과격한 액션을 피하고 느릿하고 여유있는 동작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 덕분에 코너리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출연작마다 본드걸이 엄청 쏟아져나왔기 때문에 플레이보이 본드라는 이미지도 강하다. 한 편당 본드걸 4명 이상은 기본 사양이다. 한 인터뷰에서 "Sean is a Killer, I'm a lover."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 번 007을 관두려 했었다. 원래 무어는 3편의 007 영화만 계약이 되어있는 상태였고 3번째 작품인 1977년작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를 마지막으로 추가 출연을 고사하고 007 역할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의사를 반복적으로 영화사에 표시해왔다. 하지만 이때마다 영화사의 설득에 다시 출연하는 현상이 계속 반복돼 최종적으로는 1985년작 <007 뷰 투 어 킬>까지 총 7편의 007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당시 연세가 무려 58세. <007 뷰 투 어 킬> 본드걸의 모친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게 최종 계기가 되어 007에서 은퇴하게 된다.
본드 역에서 은퇴를 한 이후로는 나이 때문인지 영화 편수를 서서히 줄이다가, 2002년을 끝으로 배우업에서 은퇴했다. 원래 유작은 2011년 TV 영화 <어 프린세스 포 크리스마스>였으나 무어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줬던 TV 시리즈 "세인트"의 리부트 파일럿 <라스트 세인트>(2017)가 세상에 나오면서 이게 유작이 되었다. 촬영은 2013년에 완료되었지만 정규 편성에 실패한 뒤 그대로 묻혔다가 무어의 사후 그를 기리기 위해 비디오 영화의 형태로 공개되었다. 해당 파일럿에서 무어는 사건의 배후인 주요 악역이 궁지에 몰렸을 때 도움을 청하는 동료 악한 재스퍼 역이었다.
12년 동안 7편의 본드 영화에 출연해서 역대 최장수 본드로 기록되고 있었으나 다니엘 크레이그가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6년간 본드 역을 맡게 되면서 기록이 깨지게 되었다. 다만 크레이그의 본드는 5편으로, 최다작 기록은 아직 무어가 가지고 있다.
200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2%의 득표로 '최고의 본드'에 선정되기도 했다. 숀 코너리와 친구여서 마이클 케인까지 셋이 함께 1989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부문 시상자로 나와 콩트를 하기도 했다.영상
인도가 주무대였던 <007 옥터퍼시>에 출연했을 때 인도 빈민층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유니세프 대사로 활약하는 등 각종 봉사 활동을 활발히 행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 받아 2003년 대영제국 훈장 2등급(KBE)을 받았다. 2등급 이상의 훈장이었기 때문에 기사작위도 함께 받았다.
암 투병 끝에 2017년 5월 23일 스위스[6]에서 영면했다고 가족이 발표했다. 항년 89세. 이로써 역대 007 출연 배우들 가운데 처음으로 타계한 인물이 되었다. 장례식은 모나코로 이동하여 비공개로 치른다고 한다. #
3. 여담
- 결혼을 여러 번 했는데 아내들에게 자주 맞았다고 한다. 본인 말에 따르면 본인이 바람을 피우다 걸린 적도 있어서 그냥 맞았다고(...) 숀 코너리의 본드와 비교해 자신은 'lover'라 말한 적이 있는데 배역과 같은 삶을 산 셈이다.
또 로저 무어가 연기한 제임스 본드는 누구의 본드보다도 유머가 많다. 일상생활에서도 굉장히 유쾌하고 매너가 좋았다고.
- 팬과의 감동적인 일화도 있다.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 영화의 주인공을 맡았던 시절인 1983년, 그는 제임스 본드가 실존 인물이라고 생각한 7살 어린이 팬 마크 헤인스를 니스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사인을 해줬다. 하지만 그가 로저 무어라고 사인을 해주자 마크는 자신이 아는 '제임스 본드'의 사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스러워 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의 할아버지가 로저 무어에게 직접 가서 “아이가 말하길, 당신이 이름을 잘못 쓰신 것 같다고 하더군요. 분명 제임스 본드라고 하더이다.” 라고 말하자, 로저 무어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고서는 아이를 다시 불러 즉석에서 제임스 본드의 작전 수행을 연기하며 "나는 '로저 무어'라고 사인할 수 밖에 없었어. 제임스 본드라는 걸 밝히면 악당 블로펠드에게 들킬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나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비밀로 해 다오."라고 말했고, 덕분에 마크는 자신이 제임스 본드의 작전을 도와주었다고 믿고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7]
그리고 20여년의 세월이 지나 30대 성인이 된 마크는 방송 작가가 되었고, 어느 날 유니세프와 관련된 촬영에 참여하다가 그 자리에 대사 자격으로 촬영을 하러 온 로저 무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연히 마크도 이제는 로저 무어가 진짜 제임스 본드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는 나이. 마크가 어릴 적 그들이 만났던 경험에 대해 말하자, 로저 무어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제임스 본드를 만나 좋았겠다"며 유쾌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촬영이 다 끝난 후 복도를 지나가던 중 다시 마크와 마주친 로저 무어는 그에게 조용히 "물론 자네가 어릴 때 니스 공항에서 만났던 걸 기억하고 있지. 하지만 촬영장에 보는 눈이 많아서 말이야. 누구든지 블로펠드를 위해 일할 수 있거든."라고 말했다는 따뜻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로저 무어가 별세한 날 올라와 더 많은 감동을 주기도 했다. 즉, 팬도 비밀을 끝까지 지킨 것이다. 번역당사자 마크 헤인스의 30년 전 사인 티켓
- 상당한 시가 애호가로 영화 속에서도 자주 시가를 피웠으며, 007시리즈 촬영 중에는 영화사에서 공짜로 시가를 공급했는데, 영화사는 그 비용에만 수천 달러를 지급했다고 한다. 드라마 전격 대작전에 같이 출연한 토니 커티스의 집을 방문했을 때, “재떨이는 어디 있냐?”라고 묻자 토니는 흡연한 사람의 폐 사진을 보여줬다. 그걸 보고 “금연을 결심했지만, 시가만은 계속 피우겠다”라고 말할 정도라고 한다. 근데도 90년을 살았으니 건강은 타고난 듯...[8]
- 제임스 본드의 배우 캐스팅에 대해서는 피어스 브로스넌만큼이나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다. 대니얼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를 맡기로 결정되자, 많은 비호감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남기며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배정을 지지했다.[9]"제임스 본드를 맡는 배우는 딱 두 대사만 잘 하면 된다. '본드요. 제임스 본드',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로저 무어, 최고의 본드는 다니엘 크레이그
- 2017년 사망 소식이 나왔을 때, 네티즌들은 그가 과거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그린 사람을 자기 마크로 삼던 세인트의 주인공이었던 것에 착안해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그린 모습을 많이 합성해 추모했다.
- 1953년까지 활동한 동명의 단역 전문 배우 로저 무어(1900.09.21~1999.03.24)가 존재한다. 때문에 가끔씩 로저 무어가 1940년부터 배우 경력 시작했다고 잘못 아는 경우가 있다. 로저 무어는 1927년생으로 1940년엔 13살의 미성년자였다(...).
4. 필모그래피
<rowcolor=#ffffff>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1945 | 결혼 휴가 | 선원 | 단역 |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 로마 군인 | 단역 | |
1950 | Drawing Room Detective | BBC TV 영화 | |
1951 | One Wild Oat | 단역 | |
1954 | 내가 마지막 본 파리 | 폴 레인 | 조연 |
1955 | 중단된 멜로디 | 시럴 로런스 | 조연 |
The King's Thief | 잭 | 조연 | |
1956 | 디안 | 앙리 2세 | 조연 |
1958-9 | 아이반호 | 아이번호우 | ITV TV 드라마 |
1959 | 기적 | 마이클 스튜어트 대위 | 주연 |
1959-60 | The Alaskans | 실키 해리스 | ABC TV 시리즈 |
1959-61 | 매버릭 | 보 매버릭 | ABC TV 시리즈 |
1961 | 더 씬스 오브 레이첼 케이드 | 폴 윌튼 | 조연 |
골드 오브 더 세븐 세인츠 | 숀 개럿 | 주연 | |
1962-9 | 세인트 | 사이먼 템플러 | 각본, 감독, 제작, 주연 ITV TV 드라마 |
1970 | 로저 무어의 이중생활 | 해럴드 펠럼 | 주연 |
1971-2 | 위장 게임 | 브렛 싱클레어 | 감독, 주연 ITV/ABC 방영 TV 드라마 토니 커티스 공동 주연 |
1973 | 007 죽느냐 사느냐 | 제임스 본드 | 주연 |
1974 |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 제임스 본드 | 주연 |
1975 | 말괄량이 여기자 | 마이클 스콧 | 주연 영국-서독 합작 |
1976 | 암흑가의 방문객 | 율리시즈 | 주연 이탈리아 영화 |
로저 무어의 샤우트 | 시배스천 올드스미스 | 주연 | |
1977 |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 제임스 본드 | 주연 |
Sherlock Holmes in New York | 셜록 홈즈 | NBC TV 영화 | |
1978 | 지옥의 특전대 | 숀 플린 중위 | 주연 |
1978-9 | 돌아온 세인트 | 제작 ITV TV 드라마 | |
1979 | 아테네 탈출[10] | 오토 헥트 | 주연 |
1979 | 노스 씨 하이잭 | 루퍼스 엑스캘러버 포크스 | 주연 |
007 문레이커 | 제임스 본드 | 주연 | |
1980 | 주말의 연정 | 해리 린든 | 주연 |
바다의 늑대들 | 개빈 스튜어트 대령 | 주연 | |
1981 | 캐논볼 | 시모어 골드파브 | 주연 |
007 유어 아이스 온리 | 제임스 본드 | 주연 | |
1983 | 핑크 팬더 7 - 핑크 팬더의 저주 | 자크 클루조 | 조연 |
007 옥토퍼시 | 제임스 본드 | 주연 | |
1984 | 벗겨진 가면 | 의사 저드 스티븐즈 | 주연 |
1985 | 007 뷰 투 어 킬 | 제임스 본드 | 주연 |
1990 | 다이아몬드 작전 | 제럴드 브래들리-스미스 / 존 배버스탁 경 | 조연 |
메가톤 | 조지 윈저 경 / 먹베인 | 주연 독일 영화 | |
1992 | 사랑의 B&B 호텔 | 애덤 | 주연 |
1995 | 죽지 않는 사나이 | 타머스 그레이스 / 풀브라이트 경위 | 기획, 주연 |
1996 | 퀘스트 | 에드거 도브스 | 조연 |
1997 | 스파이스 월드 | 스파이스 걸스 음반사 사장 | 스파이스 걸스가 본인들 역으로 출연 |
세인트 | 라디오 아나운서 | 목소리 연기 | |
1999 | 드림 팀 | 데즈먼드 히스 | 조연 |
2001 | 디 에너미 | 라버트 오글비 경장 | 주연 |
2002 | 보트 트립 | 로이드 패버셤 | |
2008 | 에이전트 크러쉬 | 버트 개스킷 | 목소리 연기 |
2010 | 캣츠 앤 독스 2 | 태브 레이전비 | 목소리 연기 |
2011 | 어 프린세스 포 크리스마스 | 캐슬베리 공작 에드워드 | |
더 라이터 | 조지 보어먼 | 목소리 연기 단편 | |
2016 | 비틀스: 에잇 데이즈 어 위크 - 투어링 이어즈 | 본인 | |
2017 | 라스트 세인트 | 재스퍼 |
[1] 후배 본드 피어스 브로스넌 역시 본드로 발탁되기 전 이미 TV 시리즈 "레밍턴 스틸"로 잘 알려진 유명 배우였다.[2] 모든 본드 배우 중 유일한 런던 출신이다.[3] 1946년 9월에 소위로 임관되었고, 1949년 대위로 전역. 군번은 372394이다.#[4] 1대 본드 숀 코너리가 1930년생이니 오히려 무어가 3살 연상이다![5] 원작의 본드는 첫 등장한 소설 "닥터 노"에서 40대 초-중반이었기 때문에 영화 1편 <007 살인번호>(1962)에서 노숙한 외모와는 달리 고작 32세였던 코너리에 비해 무어 쪽이 원작 나이에 더 가까왔다. 하지만 그 이후 본드 역을 너무 오래 해서 나이가 안 맞게 되었다.[6] 세금 문제 때문에 스위스로 망명한 거 아니냔 비난에 로저 무어는 생전 아니라고 반박했다.#[7] 당시 자리로 돌아와서 할아버지에게 제임스 본드의 싸인을 받았냐는 질문을 받자 로저 무어와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본인이 착각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고.[8]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담배를 미친 듯이 태워도 멀쩡할 사람은 늙어 죽을때까지 멀쩡하고, 술을 아무리 퍼마셔도 간암은 커녕 간염 한번 안 걸리고 오래오래 사는 사람도 분명 존재는 한다. 그리고 사실 시가가 궐련보다 손톱만큼이나마 덜 해롭다.[9] 어쩌면 숀 코너리 이후 엄청난 부담을 느낀 본인의 옛모습이 떠올라서일 수도 있다. 로저 무어가 처음 007이 되어 대본을 읽는데 꼭 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고.[10] 의외로 007과 관련된 배우개그 소재들이 있다. 작중 고고학자 블레이크 교수 역을 맡은 데이비드 니븐은 007 패러디 영화인 <카지노 로얄>(1967)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다. 그리스 레지스탕스인 제노 역을 맡은 텔리 사바라스는 <007 여왕 폐하 대작전>(1969)에서 본드의 숙적 블로펠드 역을 맡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