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군 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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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후추서 *B: 공화국 원수였으나 계급 개편으로 인한 강등 | }}}}}}}}} |
前 조선인민군 호위사령부 사령관 리을설 李乙雪 | Ri Ul Sol | |
출생 | 1921년 9월 14일 |
일제강점기 조선 함경북도 성진시 (現 북한 함경북도 김책시) | |
사망 | 2015년 11월 7일 (향년 94세) |
북한 평양시 | |
국적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군사학교[1] (학사) |
군종 | 조선인민군 육군 |
최종 계급 | 조선인민군 원수 |
직업 | 군인, 정치가 |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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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군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자, 오진우, 최광 사망 후 18년간 유일한 조선인민군의 원수 계급 보유자였다.2. 생애
일제강점기 중국공산당의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하고, 소련군 군사학교를 졸업하였다. 주로 김씨 3부자를 지키는 호위사령부 계통에서 일했다.그는 1948년 북한 조선인민군 연대장, 6·25 전쟁 기간 중인 1950년 7월에 북한군 제4사단 참모장으로, 1951년 4월 북한군 제15사단 제3연대장으로 전쟁에 참가하여 수많은 국군과 유엔군을 살상하며 대한민국에 많은 해(害)를 끼쳤다. 이후 1957년 소장에 올라 인민군 사단장을 지냈다.
북한의 6·25 전쟁 침공 기간 중 상세 행적을 보면, 북한군 제4사단은 전쟁 초기에 서부전선 방면에 투입되어 한국군과 교전했다. 북한군 제4사단은 연천-동두천 전투에서 교전했으며, 이 전투에서 한국군 수도사단 제1연대 제2대대장 이의명 소령이 전사했다. 이후 북한군의 남하에 따라 제4사단도 낙동강 전선까지 진출하였으나, 국군 제17연대 및 미군 24사단과 그 증원부대가 영산 전투 지역에서 북한군 제4사단의 공격을 격퇴했다는 기록이 있다.
김일성의 주장에 따르면 8월 종파사건을 간파하여 그에게 보고한 것이 리을설이라고 한다.
리을설은 1967년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6기를 제외하고 지난해 13기까지 내리 10선에 성공했다.
1972년 4월 23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공화국영웅 칭호 및 국기훈장 1급, 금별메달을 받았다. 1970년대 문건을 보면 제5집단군 사령관 재임 시절인 1974년 2월에 반당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정보 아니면 가벼운 문책을 침소봉대한 것으로 보인다. 1985년 4월 13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오극렬, 백학림, 김두남, 주도일, 김봉률, 김광진, 리두익과 함께 대장으로 진급했으며 1992년 4월 20일,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중앙인민위원회의 공동 정령에 따라 최광, 주도일, 최인덕, 백학림, 리두익, 김봉률, 김광진과 함께 조선인민군 차수로 진급했다. 1992년 4월 23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오진우, 최광, 김철만, 전문섭, 백학림, 주도일, 리두익, 최인덕, 황순희, 태병렬, 김룡연, 최용진, 리종산과 함께 공화국 2중영웅이 되었다.
1995년 10월 8일,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공동결정에 따라 최광과 함께 조선인민군 원수칭호를 받았다. 2012년 김정일훈장 수훈 당시의 증서를 보면 은퇴 이후 최고사령부 검열관이라는 명예직에 있던 것으로 확인된다.
2015년 11월 7일 폐암 투병중 사망하자 김정은은 11월 12일 국장으로 1일 간의 장례를 치르고 BTR-80 장갑차로 관을 운구하여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치하는 등 최고의 의전으로 예우했다.
중국 공산당 빨치산이자 6.25전쟁에도 참전해 침공했으며 북한군에서 최고위직을 역임한 것은 물론이고 백두혈통을 보위하는 최측근으로써 살았기에 살아생전 막강한 파워를 누렸다. 북한의 최고 등급 훈장인 공화국영웅 훈장을 2개나 받았고 로력영웅 칭호, 김일성훈장과 김정일훈장을 수여받는 등 훈장이란 훈장은 싹쓸이했으며 김정일 시기에는 인민군 원수계급까지 달았던 자이다. 이런 파워를 지닌 리을설을 두고 그 김일성과 김정일도 그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정도.[2] 북한 군부에 대한 숙청작업을 통해 권력을 강화시켜나가던 김정은도 그는 건들지 않았다. 사실 리을설은 김정은 시기에는 이미 노쇠한 군의 원로로 남았기에 김정은도 그를 굳이 숙청할 이유가 없었다.
3. 상훈
4. 장의위원회 구성
- 위원장: 김정은
- 위원: 김영남, 황병서, 박봉주, 김기남, 최태복, 박영식, 리영길, 양형섭, 강석주, 리용무, 오극렬, 김원홍, 김양건, 곽범기, 오수용, 김평해, 최부일, 로두철, 조연준, 임철웅, 김덕훈, 김용진, 리무영, 리철만, 김영대, 류미영, 황순희, 김철만, 김옥순, 박경숙, 리영숙, 리일환, 김춘섭, 김만성, 최상건, 리영래, 김정임, 김중협, 홍인범, 김경옥, 최휘, 김충일, 리병철, 전일춘, 김용수, 정명학, 김히택, 전경남, 김영춘, 현철해, 김정각, 리하일, 서홍찬, 림광일, 노광철, 조남진, 렴철성, 조경철, 윤동현, 김형룡, 윤정린, 김명국, 려춘석, 리명수, 최경성, 리태철, 정명도, 강동윤, 전창복, 김윤심, 김기선, 박재경, 손청남, 전태룡, 리용주, 최영호, 김락겸, 김영철, 오금철, 김정관, 김성덕, 리창한, 동영일, 리문국, 한광상, 리규만, 김택구, 리동춘, 전경학, 김상갑, 김수학, 방관복, 안지용, 윤병권, 김명균, 주동철, 최재복, 위성일, 방두섭, 리성국, 장정남, 김명남, 김영복, 리봉죽, 최두용, 한창순, 박수일, 김상룡, 김금철, 리봉춘, 송석원, 강순남, 송영건, 리태섭, 김송철, 김광수, 허성일, 리철, 리영철, 김광혁, 리국준, 정경택, 김준식, 김용일, 허영춘, 손철주, 박영래, 김국창, 주동철, 리영철, 장동운, 김도운, 로흥세, 리정래, 윤희환, 신기철, 김경룡, 한표섭, 리영남, 한명선, 리호철, 김정철, 조기복, 주송남, 권영진, 고원남, 주재욱, 장영길, 김동철, 진광철, 박일수, 태종수, 김수길, 박태성, 리만건, 박영호, 박태덕, 김재룡, 박정남, 전승훈, 리상원, 강양모, 림경만, 최영림, 홍선옥, 조춘룡, 전용남, 주영길, 리명길, 김정순.
5. 여담
고위 탈북자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바로는 이미 90년대부터 귀가 거의 먹었고 제정신이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고영환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이 마다가스카르 대통령 디디에 라치라카와의 리셉션 중 리을설을 불러서 호위사령부 산하 사금 채취량이 1세제곱미터당 어느 정도 되냐고 하자 리을설이 1.8킬로라는 말도 안되는 수치를 얘기하며 자랑을 했다. 김일성이 답답해서 몇번이나 1세제곱미터당 얼마냐고 채근하자, 한참만에야 그건 모르겠다고 해서 김일성이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고. 강명도의 책에서도 리을설은 귀 먹은 영감으로 묘사된다.그런가하면 자유아시아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김일성 항일혁명신화를 완전히 거스르는 빨치산 시대 썰을 풀곤 해서 좌중을 많이 경악시켰다고. 이건 과거 최현도 했던 짓이긴 하다.
고용희의 동생 고용숙의 증언에 따르면 90년대에 김정남과 김정은의 후계자 쟁탈전에서 김정남을 지지하였다고 한다. 그것치고는 김정은 시대에도 아주 성대하게 대접을 받았는데, 김일성, 김정일도 굳이 건드리지 않은 빨치산 1세대 최고 원로인 점도 크게 적용됐겠지만 국장이 거행되고 이후에도 충신으로 대접받는걸 봐서는 제때에 줄을 바꿨을 수도 있겠다.
태영호에 따르면, 유튜버 림송아[3]가 리을설의 외증손녀라고 한다. 리을설의 장례식 장면이 공개될 때도 임송아로 추정되는 여자아이가 등장하기도 했다.
[1] 정확히 어떤 군사학교인지는 불명.[2] 사석에서 김일성을 두고 존칭어도 안쓰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처형당하지 않았으며 북한 정권이 선전으로 미화하는 김일성의 일대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실제 김일성의 밑바닥 시절 인생을 사석에서 대놓고 말하고 다녔는데도 김정일은 그를 건들지도 않았다.#[3] 2011년생. 북한의 선전 유튜브에서 영국식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줘 큰 화제가 된 바가 있다. #
분류
- 로력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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