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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09:40:37

미축(삼국지톡)

파일:미축(삼국지톡).png

1. 개요2. 캐릭터 묘사3. 작중 행적
3.1. 시즌 5: 협천자3.2. 시즌 6: 관도대전
3.2.1. 초반 ( ~ 하비 전투)3.2.2. 중후반(축록 사건 ~ 관도대전)
3.3. 시즌 7: 적벽대전3.4. 시즌 8: 입촉 ~ 시즌 10: 한중왕 유비3.5. 시즌11: 이릉대전
4. 여담

1. 개요

네이버 웹툰 삼국지톡에 등장하는 미축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2. 캐릭터 묘사

유비군의 물주. 간손미 중 가장 먼저 등장했다. 촉 진영에서 처음 나온 TS 캐릭터이다. 엄청난 거부였다는 사실을 반영하여 흰 밍크 코트를 입은 품위있는 모습의 대기업 회장으로 각색되어 등장하며, 작품 내외적으로도 '미회장님'으로 불린다.

3. 작중 행적

3.1. 시즌 5: 협천자

협천자 22화에서 자중그룹 회장+금괴 프사로 나왔고, 30화에서 수행원들이 조표를 제압하고 5만원권을 곁에 있는 진규, 진등 부자가 뿌리면서 연두카펫 위를 걸어와 후원해준다고 하면서 등장. 원래 첫 등장 장면에서 간옹과 통화하고 있었는데 손건으로 바뀌었다.[1]

유비에게 자신의 여동생과의 결혼을 주선하지만 거절당하자 당황해서 말투가 변하지만 금새 냉정을 되찾는다. 유비를 두고 '감히 삼키지 못할 큰 먹이를 탐내는 욕심 많은 실뱀 같다, 이 미축만큼 탐욕스러운 자는 처음'이라 평하면서 그를 용으로 키워 보고 싶다고 말한다.

3.2. 시즌 6: 관도대전

3.2.1. 초반 ( ~ 하비 전투)

유비가 여포에게 서주를 뺏기자 미방이 유비를 손절하라고 종용하지만, 오히려 유비를 영란과 결혼시킨 뒤 집안 재산을 있는 대로 털어서 그를 후원하겠다고 선언한다. 이 때 유비의 아내인 감소혜는 여포군에 사로잡힌 이후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여기에 대해 어떠한 감정도 비치지 않고 유비와 인척 관계를 맺을 절호의 기회로만 간주하는 모습이 좀 무섭다는 평가가 나왔다. 좋게 말하면 진정한 사업가의 면모라는 평가도. 하지만 정작 급하게 결혼식을 올리려 했더니 여포가 감소혜를 살려서 데려오는 바람에 결혼식이 엉망이 되고 만다. 여포는 서주는 빼앗았으되 유비를 죽일 생각은 없다고 하여, 이후 유비군은 소패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여포는 세력을 키우는 유비를 경계, 소패마저 침공하여 빼앗는다. 유비는 근거지도 잃고 병사들도 많이 잃어 길거리에 나앉게 됐고, 미축 또한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2] 그럼에도 절망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유비를 격려하며 멘탈을 다잡아 준다.
흠... 비록 이제 빈털터리라 어르신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몸은 가벼우니, 천국이든 지옥이든 기꺼이 따르지요!

그러나 유비가 '여포를 가장 극혐할 인물'이라는 이유로 조조에게 의탁할 것을 결정하자 경악. 이후 허도에서 조조가 유비를 융숭하게 환대하자, 유비군의 다른 인물들이 다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는 와중에 혼자서만 굳은 얼굴에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첫 입조를 앞둔 유비에게 황궁이 어르신 기대만큼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고 칼에서 권력이 나는 법이라고 충고를 해 주었다. 유비는 입조 이후 어전에서 황제는 실권을 빼앗긴 허수아비이며 실권은 조조가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고 미축이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도 황제와 동승, 그들의 파벌이 유비를 황숙으로 띄워주는 퍼포먼스를 벌인 덕에 미축의 예상은 좋은 방향으로 빗나갔다.[3]

30화에서 간만에 등장. 황제(를 앞세운 조조)에게 편장군, 영군태수 외 다수의 벼슬들을 받으면서 이전만큼 부유해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미축은 여전히 조조를 고깝게 여기고 있었으므로 '곱게 자란 내게 어울리지도 않는 장군 자리를 주는 이유가 뭐냐'고 빈정거린다.[4]

안 그래도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 못 하는 기색을 보이며 진땀 흘리던 조조는, "미회장님은 서주의 자랑이고 승마와 궁술에도 능하니[5] 무슨 벼슬인들 못 하겠느냐."고 아첨을 하는데, 사실 그 역시도 자신이 미축을 비롯해 서주 백성들에게 못할 짓을 했으니 미축이 자신을 곱게 보지 않을 거란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이미지가 시궁창에 처박힌 지금[6] 미축의 영향력을 어떻게든 이용하고 싶었기에 벼슬을 왕창 내려 포섭하려 한 것이었다.

곧이어 조조는 미축에게 '여포를 쫓아내 서주를 되찾으려 하니, 서주의 민심을 좀 달래달라'고 청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짓이 결코 가볍지 않음에도 '사소한 원한은 접어줬으면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며 미축과 서주 사람들에게 했던 짓을 길 가다가 가볍게 발을 밟은 것과 같은 급으로 여기며 미축의 손까지 덥썩 잡아버리는 추행을 저질러 곁에서 지켜보던 관우와 장비까지 경악시킨다.[7]

39화에서 여포에게 붙잡힌 유비를 구하기 위해 손건과 함께 서주성으로 달려온다. 차를 성벽에 박아버릴 정도로 급하게 달려와서는 여포에게 어디까지나 조조가 시켜서 그런 것이니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변명이나, 여포는 미축이 서주에서 지닌 영향력을 생각해 유비를 놔주고 만다.[8]

45화에서 유비와 함께 서주성에 들어와, 뒤늦게 돌아온 여포에게 화살 한 번 날려준다. 여포가 도둑이라고 욕하자, 어디서 개가 짖느냐면서 집주인이 강도를 몰아내고 집에 돌아온 것이 왜 도둑질이냐고 비웃어준다.

53화에서 새해를 맞아 눈사람을 만들었으나, 관우가 만든 작품에 비하면 크기도 작고 볼품 없었던데다 유비의 반응도 영 시원찮았는지 잔뜩 삐친 모습으로 등장한다. 덤으로 홍보실장에 의하면 새해인사도 썩은 개그와 엉망진창의 맞춤법이 난무했다고 하며, 이때문에 누구나 잘하고 못하는 게 있는 법이라며 부끄러워한다.

3.2.2. 중후반(축록 사건 ~ 관도대전)

69화에서 채팅창으로 간만에 등장. '아몬드가 죽으면 다이아몬드'으로 시작하는 아재개그를 보여주며 개그 센스가 안 좋음이 다시 드러났지만, '덧글 달지 말고, 친목방 다 나오고 sns 하지 마시라. 정 아니면 아예 익덕 씨를 시켜 모뎀에 소주를 부으시라.'라는 조언을 해 주어 유비의 처세에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76화에서는 사냥터에서 있었던 일들 때문에 조조의 위협을 체감한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허도 밖으로 내보내려 했을 때 등장. 다른 사람들이 모두 유비의 결정에 놀라고 슬퍼할 때 홀로 현재 상황과 유비의 심정을 이해하고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85화에서 유비와 함께 허도를 떠났다. 하지만 86화에서 허저에게 딱 걸려 버리면서 위기에 처하는데, 이삿짐 트럭을 몰던 감소혜가 여차하면 그대로 밀어버릴 태세를 취하자, 조수석에 앉아있었던 미축은 유비에게 무슨 수가 있음을 눈치채고 감소혜를 제지한다. 다행히 유비가 조조를 속여 허저를 물리게 한 덕에 일단락되어 탈출에 성공한다.

87화에서 서주로 향하던 중, 유비가 조조를 손절하고 허도를 떠난 일로 황제와 동승에게 왜 우리를 저버리는 거냐고 원망을 듣게 되자, 미축은 조수석에서 발을 올리고 편한 자세를 취하면서 영란에게 잔소리를 듣지만 이를 무시하고 황제를 향해 '어린 건지, 양심에 덥수룩하니 털 난건지? 지배자란 모름지기 어려도 잔혹한 법이라 둘다 해당 되겠지만, 그 정도가 너무 과했다. 떼쓰는 아이에게 공짜로 줄 수 있는 건 친절과 사탕 정도지, 목숨은 줄 수 없다'고 말하며 황제가 유비를 이용해 조조를 처단하려고 한 속셈을 갖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에 감소혜가 당황하자, '마님께서는 마음이 바른 분이라 우리가 황제를 저버리고 떠나는 것에 죄책감이 드시겠지만, 황제는 "유비"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기에 이래야 했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이유인 즉 '만약 유비가 계속 허도에 남아있었다면 조조에게 숙청당해 시체가 되었거나, 혹여 조조를 치는데 성공했더라도 황실 측근들에게 치이다 토사구팽 당하는 운명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뒷자리에서 대화를 듣고 있었던 간옹이 그렇다면 아예 조조의 손을 잡고 친황제파를 눌렀다면 우리도 팔자 피는 거 아니냐며 묻자, 간옹의 볼을 잡고 '그랬다면 머리통이 모가지에 붙어있지 못할 텐데 금은보화가 다 무슨 소용이겠냐, 조조가 원소를 건드린 이상 원소가 곧 허도를 치려고 할텐데 만약 우리가 계속 조조 옆에 붙어있었다면 조조와 함께 불타 사라졌을 것'이라며 이유를 설명해준다.

유비가 서주성에 돌아왔다가 도리어 조조에게 패배한 후, 간옹, 손건과 함께 유비를 부축해 원소에게로 간다. 그러나 처음에는 황숙 신분으로 환대 받았던 유비의 입지가 점차 위태로워지면서 유표에게로 옮겨가게 되는데, 겉으로는 같은 유씨로써 환대하주는 유표의 태도에 미축은 우리를 최전방에 박아두고 화살받이로 쓸 심산을 갖고 있을 거라며, 일단 가는 길에 닥치는 대로 사람을 모아 편을 만들어 두자고 유비에게 제시한다. 그리고 가족들의 빈 자리가 너무 큰 것에 한탄한다.

3.3. 시즌 7: 적벽대전

형주로 옮겨간 후에는 그동안 입고 있던 흰 코트를 벗게 되는데, 형주가 서주나 기주보다 남쪽에 있어서 더울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지 변신을 위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삼고초려 이전에도 간간히 얼굴을 보이긴 햇지만, 23화에서 유표가 유비에게 손권에 의해 황조가 죽었다며 도움을 요청하자 같이 놀라는 모습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이후 24화에서 제갈량이 입사하면서 격식을 차리지 않은 것에 관우와 장비가 열불을 내자 진땀을 흘리며 당황한다. 곧 제갈량이 형주의 떠돌이 백성들을 키울 자금을 줄 것을 유비에게 청하자 뜻은 장하지만 우리에겐 지금 그럴 여유가 없다며 만류하려 했지만 제갈량의 확고한 뜻에 일단 따른다.

27화에서는 제갈량이 입사한 후, 관우와 장비와 제갈량을 질투하는 것에 대해 손건, 간옹과 이를 지켜보면서 "지휘관들이 갈등하면 군 기강이 흔들리기 마련인데 어쩌냐"고 실소하며, 유비에게 조운이 이 문제로 자신에게 상담을 요청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우들과 속내를 터놓고 대화해 볼 것을 권한다. 하지만 직후 조조군이 박망파까지 다다랐단 소식에 놀란다.

36화에서 강릉으로 퇴각하는데 유비의 가족들과 간손미, 조운은 백성들을 보호하는 겸 뒤에서 따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곧 조조군에게 따라잡혀 이들을 태운 트럭이 습격받았다. 조운이 겨우 조조군을 물리치고 정신차리고 보니 어느 새 미영란이 보이지 않았는데, 미축이 조운을 붙잡고 동생이 호위도 무기도 없이 유선을 데리고 조조군에게서 달아났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9] 그러나...

37화에서 투신자살하던 미영란의 회상에서 등장하는데, 남매들의 톡방에서 모험하지 않았으면 천년은 금수저로 살았을 거라는 미방의 말에, 미축은 유비를 따르면서 힘들어진 것은 인정하면서도 호화로운 요트를 탄 채 죽느니 파도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서 자신들이 일으킨 유비라는 파도가 만들 세상을 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39화에서 끝내 조운에게서 미영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동생 미방과 함께 목놓아 울다가 유비가 미축과 조운에 대한 미안함으로 무릎을 꿇자 이를 만류한다.

이후 막판(66화~67화) 주유가 적벽에서 조조군을 물리칠 무렵 기도쇼를 펼치고 무사히 탈출한 제갈량이 (생존)문자를 보낼 때 뒤에서 유봉과 관평을 어깨동무하고 있었다가 제갈량과 관우가 문자로 설전을 벌일 때 흠칫하고 놀란다.

3.4. 시즌 8: 입촉 ~ 시즌 10: 한중왕 유비

시즌 8 시작부터 감부인이 죽자 장례식에 동참했으며, 뒤이어 유비와 노숙이 결혼 문제를 가지고 회담할 때 관우, 장비, 간옹과 장막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제갈량이 유비와 방통을 질타하고 익주 공략을 발표할 때 비슷하게 나온 것, 그리고 시즌 9 초반 마초를 위협할 때 멍한 얼굴로 깨진 술병을 들었고, 번외편에서 오현과 재혼한 유비를 위해 결혼식 축하 영상을 찍을 때, 감격에 겨워 우는 조운을 장비와 함께 위로한 것, 시즌 10에서 정군산 전투를 앞두고 조운이 불량한 태도로 엄안과 황충을 도발하자 촉 진영 제일의 바른생활 사나이인 조운이 왜 그러냐며 놀라다가 둘의 출정 후 본의는 아니었지만 명령에 따라 노인공격을 한 것에 자괴하며 얼차려를 시전하던 조운에 당황하는 것을 제외하면 이 시점부터는 비중이 이전보다 훨씬 더 줄어들었다.

3.5. 시즌11: 이릉대전

즉위식 날 간만에 모습을 비췄는데 안경을 쓴 채로 재등장했다. 정황상 돋보기인 듯하다. 촉 진영이 황실 예절과는 거리가 먼 탓에[10] 아무도 왕의 예복 입는 법을 몰라 당황한다. 그나마 영상을 보고 참고하지만 너무 빨리 지나가서 어려워한다.

은근히 유비를 개무시하던 남동생 미방이 유비가 한중왕이 되면서 거만을 떨고 '유서방'이라고 부르며 하대하던 것에 대해 뭐하는 짓이냐며 혼내는 모습이 나왔다. 차라리 남군태수는 미축이 역임하고 미방은 익주에 있었어야 했다.[11] 결국 미방의 배신으로 형주를 거의 상실하고 관우가 위험에 처하자 유비 앞에서 미방을 살려둔 자신이 역적이었다며 죽여달라고 청한다.[12][13]

유비의 한중왕 즉위식 당시만 해도 머리가 갈색이었으나 미방의 배신 이후 갑자기 머리가 백발이 되어 나타났다. 동생의 배신으로 충격받아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으로 머리 색이 변한 거라고 추측하는 네티즌이 있는데 이게 정설인 듯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단순히 나이를 먹어 희끗해진거라고 볼 수도 있다.

이후 등장이 없고 사망할 시기가 지나서 병사로 처리된듯 보인다.

4. 여담



[1] 애초에 간옹은 미축보다 훨씬 전에 유비를 따르던 인물이다.[2] 위 사진에 나왔던 입고 있던 옷도 더러워졌으며, 구두는 한 짝이 사라졌고, 통장 잔액도 221원... 참고로 통장 잔액에 찍힌 숫자는 공교롭게도 미축이 죽은 해이다.[3] 미축의 예상은 좋게 빗나갔지만, 여전히 조조가 실권을 지고 있다는 것을 달라지지 않았다. 기회만 되면 유비를 비롯한 헌제 측근을 제거할 수 있기에 말이다.[4] 옆에서 그를 호위하던 관우와 장비도 그녀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매우 빡쳤음을 짐작하고 진땀을 흘린다.[5] 정사에 기록된 사실이다.[6] 전직 댄스가수와 바람을 피워 사생아를 셋이나 만들었고, 완성 전투에서는 추잡하게도 장수의 숙모 추교요를 탐내서 껄떡대고 이에 분개한 장수를 적반하장으로 암살하려 들었다가 되려 역습으로 적장자믿음직한 경호원을 잃었다. 이 일로 격노한 부인에 이혼도 당했고.... 자업자득[7] 훗날 관직을 버리고 다시 유비에게 되돌아가는 것에 대한 개연성을 위해 넣은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8] 앞뒤 안가리는 여포가 미축을 보자 서주에서 끝발 날리는 자 라며 신경 쓰는 것을 봐서는 미축의 명성이 대단하긴 대단한 것으로 보인다.[9] 등장할 때마다 유비 진영에서 제일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던 미축이 여동생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자 눈물을 보이면서 조운에게 매달리는 것을 보고, '훗날 형주 공방전에서 남동생이 무슨 짓을 한 지 알게 되면 얼마나 충격받겠냐?'면서 안쓰러워하는 댓글들이 많다. 실제 미축은 형주 공방전 이후 스스로를 묶어 유비 앞에 나타나 벌을 내려달라고 절규하나 유비는 미축은 잘못이 없다며 넘어가주지만 유비가 제위에 오른 뒤 얼마 안 지나 사망한다.[10] 조조는 환관 조등의 손자에 황제에게 딸을 시집 보내기도 해서 익숙하기도 하고, 손권은 포로 중에 황제의 딸 원엽이 있어서 원엽에게 아들 손등을 교육을 맡겼기에 익숙한 편이다.[11] 관우가 번성을 공략하기 전에 미방이 관우 앞에서 우리 미씨가문이 아니었으면 짚신장수 였을 사람이 천하를 쥐겠다며 나대는 모습이 보인다.[12] 아직 관우의 위기를 몰랐는지 유비랑 장비가 미축이 스스로 묶인채 있자 장비는 단체로 활을 맞았냐며 미회장님이 아니면 대왕도 없었다며 당황했다.[13] 사실 시기적으로 미축이 유비에게 부형청죄한 시기는 잘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부분은 관우 사후로 알고 있다.[14] 곱상한 외모나 블링블링한 면(...)은 닮았지만, 가족을 포함해 주변의 모든 이들을 이용하는 원소와 달리 미축은 인간미가 있다.[15] 사실 이래야 맞는 것이 정사의 미축은 이전에 조조가 천거했을 정도의 명사였으며 조조도 미축에게 갖은 벼슬을 내려 회유하려 했고, 유비도 입촉 후에 안한장군(安漢將軍)이라는 벼슬을 주는데, 실권은 미축보다 높았지만 공식적인 관직은 군사장군이던 제갈량의 상석이다. 또한 안한장군은 말 그대로 한나라를 평안케한다.는 뜻으로 유비가 미축에게 이런 관직을 줬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유비 세력에서 존재감이 큰 인물이자 평생의 은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16] 그런데다가 재산을 다 날려버린 뒤에도 오히려 몸이 가벼워졌다며 유비를 끝까지 따르기로 한다거나 유비를 구하기 위해 여포를 설득하는 등 의리도 있어서 더더욱 호감 이미지가 강해졌다.[17] 인터넷 상에 있는 미축전에 문장 실력은 영 아니라는 언급이 있는 걸 참고한 모양이나 실제로는 감독에 능하지 않아 통솔을 해본 적이 없다는 구절을 오역하여 퍼진 거라 한다.[18] 미축은 동생이 배신했을때 스스로를 묶고 죄를 청한 다음, 유비가 용서했음에도 수치심에 시름시름 앓다 사망했으니 유비에 대한 충성심이 깊은 것으로 그려지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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