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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농구 감독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박종천 朴鍾千 | |
출생 | 1960년 5월 13일 ([age(1960-05-13)]세) | |
전라남도 여수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94cm, 94kg | |
학교 | 서울체육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경영학 / 학사) | |
직업 | 농구 선수 (센터 / 은퇴) 농구 감독 | |
실업 입단 | 1981년 현대전자 농구단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현대전자 농구단 (1981~1988) |
코치 | 현대전자 농구단 (1994~1997) 대전 현대-전주 KCC 이지스 (1997~2002) 창원 LG 세이커스 (2003~2004 / 수석 코치)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6~2009 / 수석 코치) | |
감독 | 청주 현대 하이페리온 (2002) 창원 LG 세이커스 (2004~2005)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2009) 요령성 청소년 여자 대표팀 (2012~2013) 부천 KEB하나은행 (2014~2016) | |
해설 | KBS SKY 스포츠 (2002~2003) 엑스포츠 (2005~2006) MBC SPORTS+ (2010~2011) KBS N SPORTS (2016~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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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농구인.2. 선수 경력
1980년대에야 전기가 들어온 여수의 한 오지서 태어나 여러 차례 전학을 다닐 정도로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순천공고 1학년 때 단순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축구부[1]에 들어갔으나 벤치만 지키다가 순천공고 체육선생의 권유로 광주진흥고 농구부로 옮기며 늦은 나이에 농구를 시작했고, 광주진흥고 농구부가 어른의 사정으로 해체된 뒤 서울체고로 전학을 갔다.서울체고 3학년 때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고교 제일의 센터 유망주로 떠올랐고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 끝에 연세대학교가 그를 손에 넣었다. 대학 시절에 착실히 성장하면서 대학 무대에서도 괜찮은 센터로 활약했고, 한때는 고려대학교의 49연승 기록을 바라만 봐야 했지만, 4학년 때는 주장으로 고려대를 누르고 다시 패권을 연세대가 가져오는데 기여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 무렵에는 고교 졸업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거취를 두고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졌고, 전쟁의 승리자는 현대전자.
실업 무대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선보이면서 현대전자의 농구대잔치 3회 우승에 기여했다. 그리고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남자 농구가 중국을 누르고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이바지하였다. 당시 대표로서 활약하면서 농구 금메달을 차지하며, 일약 스타급 선수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 뒤로는 점차 무릎 부상이 악화되면서 다소 이른 나이인 28세에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후에 현대증권에서 평사원으로 근무하면서 농구와는 잠시 멀어졌다.
3. 지도자 경력
3.1. 1기
농구계로 다시 복귀한 계기는 1994년에 학교 선배이자 구단 선배이자 직장 선배인 신선우[2]가 현대전자의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아끼는 후배인 박종천을 코치로 지명하면서부터였다. 박종천은 이 때부터 2002년까지 현대 - KCC[3]의 코치로 재직하면서 신선우를 보좌해 두 번의 한국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그리고 2002년, 한국여자프로농구 청주 현대 하이페리온[4]의 새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처음 감독 자리를 맡게 되었다. 2002년 5월에 감독에 부임했는데, 놀랍게도 2002년 8월에 여름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데뷔 3개월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대는 창단 이래로 농구대잔치와 한국여자프로농구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콩라인 구단이었는데 이를 말끔하게 깨뜨린 것이다. 이 우승으로 박종천은 일약 농구 감독 인재 풀의 촉망받는 인재로 떠올랐고 앞으로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했지만...
우승하고 그 다음 달에 사임했다. 이유는 사무국과의 심각한 불화. KCC 코치 당시 받았던 연봉 1억 5백만 원에서 2천만 원을 깎고 여자 농구 감독으로 왔는데 우승을 했는데도 당시 어렵던 그룹 사정을 이유로 보너스도 안 주고 날로 먹으려고 한 것이다.[5] 이 때문에 박종천은 프런트와 심각한 불화를 거듭하다가 자진사퇴했다.
이후 해설자로 1년 재직한 후, 창원 LG 세이커스의 수석 코치가 됐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그의 흑역사가 개막한다.
3.2. 2기
김태환 감독을 보좌해서 수석코치로 시즌을 보낸 그는 2004년, 김태환 감독이 물러난 이후 LG의 새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문제는 이 경우 일반적으로 수석코치는 감독과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것인데, 김태환은 떠났지만 정작 본인은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하였다는 것. 이 때문에 박종천은 김태환을 배신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딱히 근거는 없다. 단지 모양새가 나지 않았을 뿐. 이런 상황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면 성적을 내야 하는데, 문제는 박종천은 그 전년까지 6강 PO에 꾸준히 오르던 LG에게 6강 PO 탈락과 9위 추락[6]이라는 굴욕을 선사하고 말았다는 것. 결국 한 시즌만에 자진사임 형식으로 짤렸다.그 후 한동안 야인으로 있다가 다시 얻게 된 자리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수석코치직. 연세대학교 선배 최희암이 호출해서 간 것인데, 여기서도 LG와 똑같이 최희암이 2009년, 재계약에 실패하자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또 똑같은 소리가 나왔는데, 다만 이번에는 최희암이 나서서 본인이 추천했다고 실드는 쳐 줬다. 사실 최희암은 한동안 쉬다가 모기업의 부름을 받고서 고려용접봉 해외 지사장으로 영전한 케이스인지라 잘렸다고 보기도 애매했다.
하지만, 역시나
2012년에 농구 해설가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가 8월에 중국 요령성 청소년 여자 대표팀의 감독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중국 무대로 건너갔다.
2014년 4월 1일에 한국여자프로농구 하나외환 여자 농구단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관련 기사.
3.3. 3기
하나외환이 몇 년 전부터 하위권에서 놀던 약팀이던 탓에, 감독 부임 첫 시즌은 6팀 중에서 5위로 마감했다. 남자 농구에서의 연이은 실패 때문에 현재까지 농구 팬들로부터 지도자로서의 평판은 그다지 좋은 편이 못 되나, 하나외환 감독 부임 이후 카메라를 주시하는 현란한 인터뷰 기술로 팬들의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어록까지 등장했다.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다른 팀 감독들의 인터뷰는 조회수가 보통 세 자릿수를 찍지만, 박종천의 인터뷰 조회수만 봐도 유난히 독보적인데 1,000건 이상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2만 건이 넘는 인터뷰도 있었다. 여기에 인터뷰 중 질문하고 있는 아나운서를 보며 방긋이 미소를 짓는것은 하나의 컬트적인 볼거리기도 하다. 오죽하면 그의 인터뷰를 보기 위해 하나외환을 응원한다는 팬들도 생겨나고 있으며 심지어 이런 기사까지 떴다. 코트에 나타난 국회의원?…박종천 감독 인터뷰 '화제'마지막 라운드를
인터뷰만이 아니라 작전타임도 웃기기로 유명하다. 선수들을 닦달하고 질책하는 것 같은 작전타임이 나오다가도 간간히 "알았죠~~~ㅇ"[8] 같은 귀여운 말투가 섞이면서 팬들을 웃게 하고 있다.
앞서 상술한 대로 한국프로농구에서의 처참한 성적 때문에 농구 팬들은 진작에 한국여자프로농구에서만 머물러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 정도로 남자 농구와 여자 농구 팬들 사이의 입장이 천차만별로 갈리는 감독.
별명은 국회의원 기호 1번 부천갑 등이 있다. 그의 감독시절 인터뷰 하이라이트 모음을 보면 이해가 빠르다.
다만 신세계 때부터 몇 시즌 동안 봄 농구를 하지 못해서 큰 경기 경험이 부족했던 하나은행이 챔피언결정전에서 우리은행에게 매 경기 15점 차 이상으로 털리면서 스윕당해 준우승에 그친 데다가, 2년 계약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도
4. 해설자 경력
그런데 같은 해 10월 10일, 하나은행 감독직에서 사퇴한 뒤 3개월 만에 KBS N 스포츠의 해설 위원으로 복귀한다는 충공깽스러운 소식이 들린 바람에 여자 농구 팬들은 뒷목을 잡아야 했다.그 와중에 2017년 대학농구리그 4강전 중앙대 - 연세대 전에서 양홍석이 얼리 엔트리 진출로 대회에 불참하자 대학을 배신했다는 말투의 발언을 해 농구팬들에게 까임지분을 꾸준히 누적시키고 있다.
이후 소식이 뜸하다가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사태로 인해 중국 우한의 후베이성 청소년 농구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사. 다행히 귀국했다고 한다.
5. 관련 문서
[1] 지금은 해체되었다.[2] 신선우 역시 현대산업개발 여자 농구단 코치를 잠시 지낸 뒤 현대증권의 영업부장으로 재직하다가 농구계로 컴백한 것이었다.[3] 이 시절 팀이 계속 개편되었다. 현대전자 실업농구단 → 대전 현대 다이냇 → 대전 현대 걸리버스 → 전주 KCC 이지스.[4] 모기업인 현대건설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한국산업은행이 임시로 관리하다가 2004년에 신한은행에 팔렸다.[5] 근데 당시 모기업인 현대건설의 상황이 심각하긴 했다. 결국 엄청난 액수의 공적 자금이 투입되고 자산 매각 과정에서 여자 농구단도 팔아치운다.[6] 최하위 전자랜드와 승차는 같았으나 연승에서 앞서 9위.[7] 사퇴한 결정적인 원인이 된 LG와의 경기에서 3쿼터까지는 10점차 이상으로 잘만 이기고 있다가 4쿼터에 야투 성공률 0%, 2-21을 남기는 바람에 역전당했다.[8] 글로 표현하기 굉장히 미묘하다.